“비밀을 말해줄까. 사실 15년 전 이미 뮤지컬 해봤어. 아무도 모르지. ‘엘리자벳’이 첫 작품인 줄 알 테지. 중요한 건 이제 그는 모두가 인정한 배우. 최고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노력하지” (지난해 열린 박효신의 ‘해피투게더’ 콘서트에서 뮤지컬 배우 김수용의 노래 中)

팬텀
팬텀
[텐아시아=이은호 기자] 고백한다. 지난 2013년 뮤지컬 ‘엘리자벳’ 무대 인사 당시, “죽음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박효신입니다”라는 소개에, 다소간의 이질감을 느꼈었다. 변명을 하자면 가수로서 박효신의 아우라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효신이 펼쳐낸 ‘죽음’은 말 그대로 죽여줬다. 그의 노래는 신비롭고 매혹적이었으며, 동시에 묘한 안락함을 선사했다. 이듬해 개막한 ‘모차르트’에서도, 박효신은 운명과 자아 사이의 가혹한 갈등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그는 뛰어난 넘버 소화력은 물론, 물 오른 연기력과 작품을 향한 진지한 태도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지난 4월, 박효신은 뮤지컬 ‘팬텀’ 출연 소식을 알려왔다.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의 스핀오프 격인 작품으로 팬텀의 과거사와 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집중적으로 다룬 극이다. 박효신은 극중 팬텀 역을 맡아, 유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절한 운명을 보여준다. 뮤지컬배우 류정한과 카이가 같은 배역에 캐스팅됐으며 크리스틴 다에 역의 임선혜, 김순영, 임혜영과 호흡을 맞췄다.
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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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다. 팬텀의 과거를 보다 친절하게 설명해 더욱 깊은 공감을 불러내지만, 평면적인 캐릭터 설정과 뻔한 반전이 다소 밋밋하다는 평가다. 클래식 풍의 넘버들이 귀에 잘 안 감긴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건, 배우들의 ‘하드캐리(특정 플레이어가 공로를 세우는 것)’. 이는 박효신도 마찬가지다. 그는 “성대를 갈아 끼운다”는 팬들의 찬사처럼, 다양한 톤을 구사하며 팬텀의 감정을 묘사한다.

이를 테면 2막에 등장하는 ‘그 어디에-리프라이즈’와 ‘나의 빛, 어머니’라는 곡에서 박효신은 전혀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전자의 경우, 극도의 분노가 담긴 곡. 박효신은 강하고 단단하게 소리를 울리며 팬텀의 감정을 전달한다. 특히 곡 후반부, 오케스트라가 멎은 상태에서 박효신의 목소리만이 퍼져 나갈 때에는 가히 압도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반면 ‘나의 빛, 어머니’라는 넘버에서는 한결 청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노래하는 이 곡에서, 박효신은 소년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며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표정 연기가 어렵다는 핸디캡(극 중 팬텀은 내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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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의 음악’ ‘내 고향’ 등의 듀엣곡 역시 별미다. 앞서 박효신은 ‘엘리자벳’ ‘모차르트’를 통해 뮤지컬 배우들과 입을 맞춘 바 있으나 소프라노 가수들과 호흡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박효신은 매력적인 중저음을 주특기로 하는 만큼, 세 여배우 모두와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하게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널찍한 공간감을 선사하며 성악 전공 배우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낸다. 또한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나 ‘내 비극적인 이야기-리프라이즈’에서의 처절한 감정 표현, ‘그대의 음악이 없다면’에서 들려주는 신비로운 목소리 역시 무척 매력적이다.

물 오른 연기력도 극의 몰입을 돕는다. 한 관객은 “가면 위로 흐르는 눈물이 객석에서도 보이더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주변 인물과의 갈등 상황에서 등장하는 새된 외침 역시 관객들의 가슴을 긁는다. 여기에 호리호리한 그의 신체조건이 더해져 팬텀의 ‘짠내’는 한층 더 증폭된다.

김수용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처럼, 박효신은 이제 모두가 인정한 뮤지컬 배우가 됐다. 몇 년 째 감감무소식인 그의 7집 발매도 물론 기다려지지만, 배우 박효신의 차기작 소식 역시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박효신이 출연하는 뮤지컬 ‘팬텀’은 오는 26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에 위치한 충무 아트홀에서 개최된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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