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원 감독01
신수원 감독01
[텐아시아=황성운 기자] ‘순환선’ ‘명왕성’ 그리고 ‘마돈나’까지 신수원 감독은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전 세계가 주목했다. 칸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를 연이어 다녀왔다. 또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영화는 냉철하고, 무섭다. 묵직하게 파고드는 메시지는 너무 적나라해서 불편할 정도다.

제목부터 독특한, 어딘지 모르게 화려해 보이는 제목의 ‘마돈나’는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미나와 그런 미나의 뒤를 추적하는 해림, 두 여자를 통해 사회를 꼬집는다. 여자를 전면에 내세웠기에 세상은 더 잔혹했다. 고등학교 입시를 통해 사회의 단면을 들춰냈던 ‘명왕성’에 비해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다. 역시나 신수원 감독은 매우 무서웠다. 실제로는 웃음 많은 여 감독이지만, 적어도 영화만 놓고 보면 그렇다.

Q. 먼저 칸에 다녀온 소감부터. ‘순환선은 비평가 주간에 초청돼 카날플뤼 상을 받았다. 이번엔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다음엔 경쟁부문이나 수상이겠다. (웃음)
신수원 감독 : 칸이 무슨 동네 시상식도 아니고. (웃음) ‘순환선’ 초청됐을 당시 메인 상영관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영화를 보러 갔다. 그때 ‘나도 여기서 영화 틀면 기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되니까 어리바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박수 쳐주는 것도 그렇고. 처음 겪어보는 것들이었는데 이런 맛에 오는 건가 싶었다.

Q. 수상에 대한 기대는 정말 안 했나. 충분히 기대해볼 만한 작품이다.
신수원 감독 :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근데 사실은 칸 공식 발표를 기다릴 때까지 이미 심적으로 지쳤다. 뭘 해도 일이 손에 안 잡혔을 정도다. 그러다가 새벽에 전화가 오는 데 그 순간 이미 상 받은 느낌이었다. 또 공식 상영 끝나고 나면 박수를 쳐주는 데 그때도 그랬고. 이 영화가 한국적인 상황의 영화인데 이게 유럽 정서에 먹힐까 싶었다.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봤고, 아무래도 그러면 수상은 어렵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서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한 시간 정도는 기분이 울적했다. 그 이후론 괜찮았다.

Q. 해외에선 마돈나를 어떻게 보던가. 방금 말했던 것처럼 한국적인 상황이지 않나. 정서적인 공감이 아닌 하나의 영화적 텍스트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신수원 감독 : 그럴 수 있다. ‘명왕성’도 판타지로 받아들이더라. 한국의 입시문화를 모르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분명 비현실적인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Q. 어찌 됐든 소설보다 영화에 더 재능이 있었다는 게 이번 영화를 통해 더 확실해진 것 같다. (웃음) (‘명왕성인터뷰 당시 신수원 감독은 소설을 쓰겠다는 흑심을 품고 영상원에 들어갔다고 했다.)
신수원 감독 : 그런가. (웃음)
신수원 감독02
신수원 감독02
Q. ‘명왕성때 시나리오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게 마돈나였나.
신수원 감독 : 맞다. ‘명왕성’이 베를린 가기 전, 2013년 초부터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Q. 우연히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응용해 명왕성이 나왔다고 했다. ‘마돈나는 어느 순간 여자 노숙자를 보면서 떠올렸다고 했는데, 뭔가 우연한 계기로 영화 소재를 발굴해내는 것 같다.
신수원 감독 : 혼재돼 있던 게 모여서 만들어진 것 같다. 노숙자도 있지만, VIP 병동에 관심이 많았다. 직접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홈페이지에 나온 것을 보면 호텔처럼 생겼더라. 저기 있는 사람들은 뭐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썼고, 기억의 창고에서 다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돈나란 인물이 심장을 제공하는 노숙자로 들어오면서 제목도 뽑혔다. 원래 처음 제목은 ‘VIP 병동’이었다.

Q. ‘마돈나제목이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다. 제목만 봤을 땐 굉장히 화려하다. 반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처절하다. 이런 반어적인 제목을 쓴 이유가 있나.
신수원 감독 : 실제로 그런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고 들었다. 뚱뚱하고, 가슴 큰 여자한테 마돈나라고 놀린다고 하더라. 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친구를 통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주워들은 게 조합됐다. 또 미나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별명으로 마돈나를 부여하면서 ‘이게 제목이네’ 싶었다. 그리고 나선 고민하지 않았다. 원래 ‘마돈나를 아시나요’로 썼다가 세 글자가 좋더라. (웃음)

Q. 무엇보다 캐스팅이 쉽지 않았겠다. 어떤 배우를 선택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어떤 배우라도 이 역할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신수원 감독 : 어려웠다. 시나리오를 보면 미나가 더 세다. 표현할 수 있는 폭도 여러 가지다. 반면 해림은 정적인 인물이고, 따라가고 지켜보고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인물이다. 그랬는데 해림 역을 영희 씨가 하겠다고 하는 순간, 해림에 대한 고민은 사라졌다. 그런데 미나가 고민이었다. 영희 씨가 인지도 있는 배우라서 미나는 덜 알려진, 연기 잘하는 배우를 섭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시나리오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살찌우는 것에 부담을 느끼더라. 그리고 센 장면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작정하고 모든 영화를 다 뒤졌다. IPTV용 영화까지. 그중 IPTV에서 상영한 20분짜리 단편영화에서 권소현이란 친구를 본 거다. 그리곤 만났는데 평범한 이미지에서 파격적 이미지까지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카메라 경험이 없는 거다. 그래서 주말마다 모든 장면 리허설을 했고, 그 영상을 보면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했다.

Q. 그야말로 권소현이란 배우는 엄청난 세공 과정을 거친 셈이다.
신수원 감독 : 겁났다. 어떻게 보면 공포심에서 출발한 거다. (웃음) 예전에 단편을 찍을 때 연기 경험이 없는 배우들과 했는데 아무것도 못 하더라. 그날 일정을 날릴 수가 없어 2시간 기다렸다 찍은 기억이 있다. 그 공포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번엔 비중이 절반이니까.

Q. 뭔가 마돈나의 원천은 공포심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웃음)
신수원 감독 : 맞다. 모든 게 공포심이다. 배우들도 공포심이 있지 않았을까. 공포에 떠는 감독을 바라보는 배우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웃음)

Q. 사실 권소현도 권소현이지만, 관객을 끌고 가야 하는 서영희도 만만찮다. 더욱이 정적인 인물이라서 대중의 시선과 감정을 가져가기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언론시사회 때 제가 한 연기가 맞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서영희의 말이 그런 의미로 들렸는데, 감독은 어떤 확신이 있었나.
신수원 감독 : 확신이라기보다 영희 씨한테 미안한 게 있다. 정적인 인물이라서 감정선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촬영했어야 했는데 그럴 일정이 아니었다. 소현 씨는 살을 찌워야 하고, 영민 씨는 중국에서 영화 촬영 때문에 뒤늦게 합류했다. 그러다 보니 영희 씨가 뒤에 있는 장면을 먼저 찍어야 했다. 세세한 감정이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캐릭터인데, 그 부분이 미안했다. 본인도 ‘이게 맞나’ 생각하는데, 나 역시도 한 톤으로만 가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더라. 그래서 머릿속에 생각한 톤을 생각하면서 여러 주문을 했다. 배우 측면에서는 힘들었을 거다.

Q. 감독님 말대로, 배우들이 진짜 공포를 느꼈겠다. (웃음)
신수원 감독 : 대신 신 연결을 하면서 항상 보여줬다. 현장 편집본을 순서대로 붙여서 ‘이렇게 나왔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걸 보면서 감정 주문을 했다. 그게 많이 도움됐다.
신수원 감독03
신수원 감독03
Q. 권소현 캐스팅 과정은 들었는데, 해림 역의 서영희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신수원 감독 : 영희 씨는 꼭 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그래서 사실 처음부터 고려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때 극 중 역할을 위해 인공 선탠이 아니라 실제 몇 시간 동안 살을 태웠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던지면서 하는 배우라는 신뢰감이 들었다. 그리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의 역할은 미나 같은 흐름이다. 만약 미나 역을 한다면 이미지 반복인데 해림 역할은 그와 정반대 지점의 역할이다.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만났을 때 머리가 길어 커트해주시고, 살도 빼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나중에 싹둑 잘라왔더라.

Q. 영화를 보면서 해림과 미나가 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림이 미나의 과거를 추적하는 데 그게 곧 해림의 과거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이를 살리는 건 좀 차이가 있지만.
신수원 감독 : 그렇게 의도한 게 있다. 두 사람이 중심인물인데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쓰면서도 이들의 공감대를 어떤 식으로 가져갈까 고민했다. 가령 미나가 개천에 쓰러져 있는 장면 다음에 물의 이미지로 넘어가면서 해림이 나온다. 그런 식으로 두 인물이 마치 한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그런 장치를 쓰려고 했다. 이란성 쌍둥이 같은 동질감을 주고자 했다.

Q. 김영민이 연기한 상우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 캐릭터는 굉장히 전형적이고 단선적인 캐릭터로 전락할 수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수원 감독 : ‘명왕성’ 할 때 단선적인 캐릭터가 눈에 보였다. 이번엔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다. 자본주의 얼굴을 가진 인물인데, 욕망의 노예인 동시에 가해자다. 그리고 한편으론 피해자 의식을 넣고 싶었다. 그래서 부잣집 아들이 가질 수 있는 결핍에 대해 생각했고, 근본적인 외로움은 있을 거로 봤다. 영민 씨의 가능성을 본 게 김기덕 감독님의 ‘일대일’이다.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존 카사베츠의 ‘얼굴들’이라는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곤 알아서 해주겠거니 생각했다. (웃음)

Q. 배우들이 힘들었겠다. 알아서 해주겠거니 만큼 무서운 게 없는 것 같다. (웃음)
신수원 감독 : 툭 던져놓고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주문하는 편이다. 그리고 현장에 오면 배우들을 오래 지켜보면서 ‘뭘 뽑아먹을까’ 생각한다. 스토킹하듯 훔쳐본다. (웃음) 아무래도 없는 걸 만들어내는 건 한계가 있다. ‘명왕성’ 때 성준도 그랬다. 장난치고 노는 표정을 보고, 그 얼굴을 써먹기도 했다.
신수원 감독04
신수원 감독04
Q. 엔딩을 보면서 미나의 아이를 지킨 게 정말 잘한 일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태어난다 한들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으니까. 그런데도 미나의 아이를 살렸다는 건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하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
신수원 감독 : 사실은 초고 그렇게 써놓고 동의가 안 됐다. ‘이런 아이를 낳아야 하나, 죽이는 게 맞지 않아’란 생각이 들었다. 동의가 안 돼 시나리오를 내팽겨쳤다. 그 이후 미혼모 다큐멘터리 ‘엄마의 꿈’을 찍으면서 깨달았다. 그때 만난 미혼모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라. 처음에는 아이가 미웠는데 어느 날부터 태동을 느끼고, 초음파 사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서 도저히 지우지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빠와 무관하게 애정을 쏟는 관계가 된다는 거다. 또 미혼모는 가족으로부터 차단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고립되고 외로움 속에서 뱃속 생명체에 대한 애정이 매우 크다. 그 후 다시 시나리오를 보니까 말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아기의 인생은 그와 전혀 무관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그 아이를 죽였다면 그 기회마저 없는 거고, 그걸 인간의 힘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는 게 맞지만, 내리기 싫었고,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Q. ‘명왕성, ‘마돈나도 사회 고발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그리고 뭔가 걸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화면에 담아 표현하는 것 같다.
신수원 감독 : 없는 현실이 아니라 리얼에 기반을 뒀다. 그걸 푸는 방식 자체도 ‘다 보여주지’ 이런 쪽인 것 같다. 일부만 포장해서 보여주는 건 거짓말인 것 같다.

Q.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되다 보면 작품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을지 몰라도, 흥행에선 조금 멀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신수원 감독 : 웃기는 일이 있었는데 자료 조사를 위해 종합병원에 갔다. 영화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만약에 임신한 여자가 뇌사상태로 들어왔는데 장기 이식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아기를 꺼내는 게 급선무다. 미혼모가 아기를 낳는 사랑스러운 장면으로 만들어 달라’고 조언하더라. (웃음)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타협점을 만든 게 의사들이 결국 살린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존재한다, 이런 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 딜레마에 놓인 인간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한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두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다.

Q. 다음에는.
신수원 감독 : (쓰고) 있는 데 자신 없다. (또 우연히 뭔가 딱 들어오는 것 아니냐) ‘마돈나’ 개봉한 다음에 그분이 오셨으면 좋겠다. 갑자기 영감을 주고, 시나리오를 쓰게 하고. (웃음)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거 안 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 하고 싶다. (웃음)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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