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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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장서윤 기자]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지만 엄밀히 따지면 연기 데뷔가 먼저다. 2009년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으로 화려하게 연기 포문을 연 이준은 이후 그룹 엠블랙의 멤버와 연기 활동을 병행해왔다. 다종다양한 표정 변화가 가능한 마스크와 직감적인 연기력으로 가장 성공한 아이돌 출신 연기자로 자리매김한 그는 올해 그룹을 탈퇴, 연기자로 전업 선언을 하며 본격적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나선다. 그룹 탈퇴라는 진통을 겪고 처음 도전한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는 그런 점에서 그에게는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겨질 듯하다. 극중 모범생 한인상 역으로 나선 그는 “아쉬움투성이”라면서도 얼굴에는 뿌듯한 안도감이 서려 있다.

Q. 겨울에 시작해 봄과 여름을 맞으며 6개월여에 걸친 대장정이 끝났다. 종영 후 어떻게 지냈나?
이준: 배우, 제작진들과 종영MT를 가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종방연 사회를 보느라 술은 못 마셨다. 사실은 마지막 방송도 본방사수를 못 하고 바로 MT갔다 인터뷰 일정 진행하는 강행군이다. 촬영할 땐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 또 아무렇지 않다.

Q. 첫 회 연기가 굉장히 임팩트있었다. 모범생이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돌진하는 반전이 보여져 초반 주목도가 높았던 것 같다.
이준: 하고 싶은 대로 연기했다. 감독님께서 특별한 지시 없이 ‘배우가 생각하는 게 가장 맞는 거다’라고 하셔서 마음 놓고 갈 수 있었다. 나중엔 좀 혼나기도 했지만.(웃음) 연기하는 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해 주셨다.

Q. 첫 회에서 임신한 서봄(고아성)과 택시를 탄 채 뒷자리에서 택시기사에게 키스해도 되느냐고 묻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이준: 나에게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으로 남아 있다. 실제 촬영에는 정말 빨리 찍었다. 딱 방송에 나온 분량만큼만 촬영했는데 한번만에 오케이가 나서 ‘벌써 끝났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때는 (고)아성이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빨리 끝나서 다행이란 생각도 했고. 돌아보니 ‘풍문’에 나오는 모든 신들은 거의 한번 만에 다 찍었다.

Q. 드라마 자체가 어찌 보면 한인상이라는 한 청년의 성장기로도 볼 수 있다.
이준: 답답한 캐릭터의 모습이 있어 끝까지 그러면 어쩌나란 생각이 있었는데 뒷부분에 해소가 되면서 시원했다. 아무도 생각 못한 부분까지 대사 하나하나에 세밀하게 담겨 있어 재밌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했다. 혹시 내가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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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 촬영장같은 분위기와 연극배우 출신의 쟁쟁한 선배들, TV 화면에서 주로 쓰는 숏컷이 아닌 롱테이크를 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촬영은 배우 이준에게 새로웠을 것 같다.
이준: 어떤 환경보다 편했고, 느끼는 대로 연기할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 뒷모습만 나올 때도 많았다는 점도 신선했고, 풀숏이 주로 쓰인 점도 신기했다. 롱테이크에 길들여져서 앞으로 다른 드라마를 할 때 오히려 생소할 것 같다. 보통 다른 드라마는 숏이 정해져 있어 특정 공간을 벗어나면 안 되고, 공식처럼 연기해야 할 때도 많은데 ‘풍문’은 주로 롱테이크와 풀숏으로 찍으니 몸을 쓰기도 훨씬 편했다. 어떨 때는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다는 것도 의시하지 못했다.

Q. 인상의 아버지 한정호가 큰 집에 홀로 남은 드라마 결말은 마음에 드나? 인상과 봄은 앞으로 어떻게 살까?
이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결말인 것 같다. 한정호가 홀로 집 안에 걸어가는 장면에 많은 부분이 담겨있는 것 같다. 인상과 봄의 앞에 닥친 상황은 사실 갑갑하다.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도 그리워했고. 내 바람이지만 둘은 행복하지 않을까싶다. 언젠간 부모님과도 다시 만나겠지.

Q. 모범생으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온 인상과 연예계에 일찍 데뷔해 스스로 삶을 헤쳐 온 이준과는 겉으로는 많이 달라보이는데 공감대가 있었나?
이준: 수재지만 엄한 아버지 아래서 만들어진 박제처럼 살아가던 인상이 이성에 확 눈을 뜨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는 설정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던 인상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거다. 그래서 봄을 보자마자 바로 택시에 태워 집으로 데려오는 장면 등은 굉장히 이해가 갔다.

Q. 한눈에 누군가에게 반하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나?
이준: 중고등학교때 그런 경험이 꽤 있다. 연애 감성이 어마어마할 때 아닌가?(웃음) 그 때를 많이 상상하며 연기했다.

Q. 연기하면서 답답함도 있었나보다.
이준: 똑똑하고 부자지만 늘 억압돼 있는 기분을 느꼈을 인상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것 같다. 아버지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인상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부단한 면이 한인상에게는 하나의 표현방식이지만 이준의 입장으로 봤을 땐 그가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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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제 이준은 단호한 면이 있나?
이준: 결정하면 가고, 아니면 마는 거고, 선택에는 결단력이 있는 편이다.

Q. 또래 배우들만이 아닌 쟁쟁한 연극, 영화계 선배들과 함께 연기한 것도 독특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이준: 현장에 있는 것 자체로도 공부가 됐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하지?’란 생각도 많이 했다. 연기에 대해 선배님들께 여쭤보면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시는데 뜻깊은 작업이었다. 모르는 부분은 창피해하지 않고 동생 역할로 나온 (박)소영에게도 많이 물어봤다. 나이와 경력과 상관 없이 얻을 게 있더라.

Q. 촬영장에서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나보다.
이준: 모르면 뭐든 잘 물어본다. 내 캐릭터지만 내 시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여러 의견을 들어보면 참고해볼 만한 굉장히 좋은 소스들이 있더라. 귀찮게해서 미안했지만 계속 물어봤다. 너무 많은 걸 물어보니까 나중에 (고)아성이는 그만 좀 물어보라고 하더라.(웃음)

Q. ‘하겠다고 한 건 해내고 만다’는 의지가 읽히는 것 같다.
이준: 해내지 못하더라도 노력은 한다. 안 그러면 내 손해니까.(웃음) 뭐든 닥치면 끊임없이 쉬지 않고 생각한다. 그래서 잠을 잘 못 잤다. 캐릭터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 한 시간마다 잠을 깨더라.

Q. 긴 호흡의 작품이었는데 중간에 슬럼프는 없었나?

이준: ‘연기적인 스트레스라고 할까? 어떻게 변화를 줘야할까 생각이 많아졌던 시기가 있다. 똑같은 세트장에서 똑같은 어투로 반복하듯 연기하면서 ‘내가 뭐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 욕심을 부리면 안되겠단 생각을 했다. 욕심을 부리면 연기도 구려지더라. 한 장면 한 장면이 의미가 있고 파트너인 아성이를 잘 받쳐주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장면은 없으니까.

Q. 작품을 하면서 나름대로 걱정이 많았나보다.
이준: 감독님이 ‘다른 애 시킬 걸’이라고 생각하시면 어쩌나하는 마음이었다. 사실 내가 외모적으로도 모범생처럼 생기지 않았고 날라리같단 얘기도 많이 들어서 순수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 연구를 많이 했다. 실제로 모범생이었던 적도 없었고. 주변에 물어봐서 눈을 착하게 정면으로 뜨는 연습도 했고 주머니에 손을 찌르거나 다리를 꼬는 등 늘상 가지고 있던 습관도 바꿨다. 똑바로 걷되 살짝 고개를 숙이고 주눅 든 듯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Q. 실제로는 네 살 아래인 고아성과는 호흡이 잘 맞던가?
이준: 촬영 내내 내가 그 아이 동생같았다.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웃음) 굉장히 편해지고 많이 배우기도 했는데 NG를 많이 내서 미안한 마음이다. 아성이는 NG가 거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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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이돌 그룹 연습생을 거쳐 데뷔했고 연기자로 본격적으로 전향하기까지 많은 일을 겪었다. 돌아보니 어떤가?
이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겪은 인생의 모든 경험이 언젠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오히려 지금은 주위 친구들에게 많이 배우고 싶고, 변하고 싶은데 사람이 쉽게 변하진 않더라. 성숙해지고 싶고, 어른스러워졌으면 하는데 아직 먼 것 같다.

Q. 특히 ‘풍문’ 촬영에 돌입하기 전 그룹 탈퇴라는 큰 변화도 있었고, 걱정도 많이 됐을 것 같다.
이준: 굉장히 부담이 됐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그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영역으로 들어서니 이전과 다른 점이 느껴지나
이준: ‘풍문’ 안판석 감독님이 배우라는 직업은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하시면서 ‘예를 들어 어떤 역할을 하면 달인이 될 만큼 연습해야 하는데 1년에 세 개 작품을 하면 세 분야를 파고들 수 있는 건데 얼마나 재밌고, 좋냐? 행복한 직업이다’하시는데 새삼 ‘아, 그렇구나’ 싶더라. 확실한 건, 어떤 작품을 하든, 나만의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뻔하지 않게, 뭘 하든 생각도 좀더 많이 하며 집중하고 싶다.

Q. 어떤 작품이 끌리나?
이준: 쉽게 가기 보다는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있다. 나와 거리가 먼 것들이 오히려 나와 융합돼가면서 새로움을 주지 않을까? 욕을 먹으면 먹는 대로 도전을 과감하게 해서 한 단계씩 발전하고 싶다. ‘풍문’도 그런 면에서 신선했다. 이전에 OCN ‘갑동이’에서 싸이코패스 역할을 할 땐 다들 잘 어울린다고 했었던 데 비춰보면 특히 그렇다.(웃음) 아, 임시완이 ‘변호인’ 나온 거 보니 정말 부럽긴 하더라. 잘했다고 칭찬 많이 해줬다.

Q. 출연작이 영화, 드라마를 합쳐 어느새 10여편에 육박한다. 촬영장에서 터득하게 된 본인만의 노하우도 생겼을 것 같다.
이준: 나는 그저 느끼는 대로 연기하는 편이다. 뭔가에 집중하면 몸이 흘러가는 대로 놔두면 되는 것 같다.

장서윤 기자 ciel@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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