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폭 등 그동안 센 역할을 많이 해왔다. 그리고 이번엔 연쇄살인마다. 피하고 싶었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살인의뢰’ 박성웅.[텐아시아=황성운 기자] 배우 박성웅은 등장만으로 화면을 꽉 채운다. 타고난 그만의 신체조건은 극 중 역할과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냈다. ‘신세계’ 이중구를 비롯해 ‘황제를 위하여’ 정성하, ‘찌라시’ 차성주 등이 그렇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센’ 기운이 흘렀고,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짓는 미소는 때론 공포였다. 이런 박성웅만의 특징은 그를 한정 짓기도 했다. 매번 약간의 변주는 더해졌지만, ‘신세계’ 이중구 이후 박성웅의 ‘센’ 캐릭터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즈음에 박성웅은 ‘살인의뢰’를 만났다.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체조건을 최대치로 활용했고, 그 시너지는 역대급 연쇄살인마 강천을 탄생시켰다. 행동과 표정만으로 보는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할 정도다. 사람을 죽이고, 희열을 느끼는 듯한 그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치가 떨린다. 칼에 찔려도 그 어떤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만 같다. 더욱이 강천은 왜 살인을 하는지, 그의 과거는 무엇인지 그 어떤 설명도 없다. 영화 속에서 강천 박성웅은 ‘악’ 그 자체였다.
박성웅 : 처음 역할 제의받고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싶었다. 건달 말고 하다못해 연쇄살인마를,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도 직업이니까 읽기 시작했다. 근데 정말 재밌는 거다. 편집방향이 달라져서 영화는 시나리오와 다르지만, 여하튼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다만 너무 세긴 했다.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영화처럼 여자를 그냥 안 죽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장면은 배제됐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드릴질’을 할 수 있었다. 하하.
Q. 정말 무섭긴 하더라.
박성웅 : 안 무서우면 그게 이상한 거다. 무서워야지, 밑도 끝도 없으니까. 그래서 연기하긴 더 편했다. 한쪽으로만 가면 되니까.
Q. 그 어떤 감정도, 히스토리도 없는 인물이어서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박성웅 : 촬영장만 가면 멍해진다. 그냥 ‘씩~’ 웃게 되고. 현장에선 정말 순진하게 웃었는데 앞뒤로 붙여놓으니까 웃는 것도 무섭게 되더라. 실제 취조실에서 ‘씩’ 웃는 게 있는데, 그건 아들이 보고 싶어서 웃은 거다. 다시 한 번 보면 아들 생각하는 미소라고 볼 거다. 하하.
Q. 시나리오에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의 히스토리가 없는 경우 보통 배우들은 스스로 만들지 않나. 그래서 그 캐릭터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박성웅 : 첫 미팅에서 이야기했던 게 전사(前事)를 만들어서 중간이든 어디든 끼워 넣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단호하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냥 강천은 아무 이유 없이, ‘No Reason’이다. 그게 훨씬 세 보이고, 무서울 것 같다고 하는 거다. 처음에는 뭔 소린가 했는데 촬영 다 하고 나니 알겠더라. 아무 이유가 없으니까 완전 사이코인 거다.
Q. 감독은 그렇게 말했어도 직접 연기하는 건 배우다. 박성웅은 따로 강천의 전사를 만들어보지 않았나.
박성웅 : 배우들은 원래 그렇다. 30대를 연기해도 어렸을 때 어땠을 것 같다 등 과거 시절을 만든다. 매번 시나리오 앞장에 그런 생각을 메모해놓는다. 그런데 이번엔 깨끗했다. 대사도 단답형이고, 10마디가 전부다. 그래서 전체 리딩할 때 죽는 줄 알았다. 2시간에서 2시간 30분을 하는데 한마디씩 하니까. 의사1, 경찰2 등의 대사를 대신 읽었다. 하하. 그 어떤 영화보다 대본에 가장 충실했다. 애드리브도 없고. 하하. 현장에서 풀어나가야 할 행동, 표정, 뉘앙스 등을 준비해가는 데 이번에는 빨리 경기장으로 출전하고 싶은 선수의 마음이었다. 현장에서 보여주고 싶은, 경기장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살인의뢰’ 박성웅.
Q. 대사도 없고, 표정도 많지 않다. 살짝 미소 짓거나 무표정이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역할을 표현하고 만들어야 한다.박성웅 : 몸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벗어서. 하하. 그렇게 길 줄 몰랐다. 정말 찍는 현장에서도 놀랄 만큼 따로 가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찍혔다. 카메라 감독은 감독대로, 의성 형은 형대로 딱딱 맞아떨어졌다.
Q. 목욕탕 액션 장면은 처음부터 나체로 찍는 거였나.
박성웅 : 아니 그럼 목욕할 때 옷 입고 하나. 하하. 샤워하다가 갑자기 (칼에) 푹 찔렸는데, 옷 입고 싸우자고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모두 웃음)
Q. 그 장면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박성웅 : 3개월 동안 좋아하는 술을 끊었다. 정말 한 모금도 안 마셨다. (집에서는 좋아했겠다) 뻔히 알지. 끝나면 또 마신다는 것을 아니까. 하하. 닭가슴살 먹고, 하루에 3~4시간 운동하고. 그때 ‘무뢰한’도 같이 촬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지방 촬영할 때 기구를 다 싸들고 내려가서 숙소에서 했다.
Q. 평소 운동도 하고, 몸이 좋을 것 같은데도 그렇게 고생스럽게 몸을 또 만들어야 하는 건가.
박성웅 : 평소에도 운동하긴 하지만, 항상 ‘식스팩’이 있을 순 없다. 항상 ‘식스팩’이 있는 사람은 친구가 없거나 운동선수거나. 그런데 난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운동선수도 아니다. 하하.
Q. 매우 격렬한 액션 장면인데, 부상 등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단순하게 박성웅 씨보다 김의성 씨가 좀 더 걱정되더라. (웃음)
박성웅 : 액션을 잘하는 사람은 때리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 조절이 안 되니까 때리게 된다. ‘찌라시’ 때 강우 어머니께서 나를 그렇게 싫어했다더라. 때린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의성 형은 30년 연기하는 동안 액션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중요한 액션이니까 크랭크인 전에 무술 감독이 두 사람을 불렀는데 깜짝 놀랐다. 오른팔과 오른발이 같이 올라갈 정도로 액션 문외한이다. 30분 정도 풀고 났더니 나한테는 ‘촬영현장에서 뵙겠습니다.’고 했고, 의성 형한테는 언제부터 시간 되느냐고 묻더라. 그때부터 의성 형은 3개월 동안 일주일에 2시간씩 연습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는 완전히 바뀌었다. 18시간 촬영했으니까 수월하게 한 건 아닌데 의성 형이 정말 잘해줬다.
‘살인의뢰’ 박성웅.
Q. 18시간 찍다 보면 나중엔 집중력이 흐트러지게 된다. 보통 사고는 그럴 때 나기 마련이다.박성웅 :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그래도 카메라 돌아가면 ‘으?으?’ 하고, 컷 하면 ‘어~ 죽겠다’하고. 이게 반복이다. 또 촬영 전날 몸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 있으면 물도 못 마신다. 수분이 없으면 아무래도 몸매가 더 선명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촬영 중에도 못 마시고. 9시간 예상했던 게 18시간 걸렸으니까 뒤로 갈수록 서로 눈치 보게 되고. 그리고 실제 액션 장면 찍다 타일에 부딪히는 장면이 있는데 액션팀과 미술팀이 서로 상의가 안 된 거다. 그래서 진짜 타일에 부딪혀 찢어지고 피가 나긴 했다.
Q. 그렇다고 따로 대역도 못 쓴다고 들었다. 박성웅과 체격이 비슷한 대역이 없다고 하던데.
박성웅 : 나도 쓰고 싶다.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연골도 찢어졌고. 그러다 최근에 발견했다. 김선웅이란 친구인데 그 친구 키가 187이다. ‘무뢰한’ 때 정말 위험한 촬영은 그 친구가 하고, 나머지 치고받고 떨어지고 뒹구는 건 내가 했다.
Q. ‘신세계’ 때는 인상 깊은 대사가 많았다. 이번에는 행동이나 표정이 인상적이다.
박성웅 : 꼭 남기고 싶은 장면이 있다. 마지막에 씩 웃는 건 내 아이디어다. 원래 ‘총 맞고 죽는다’였다. 그런데 손 감독한테 이 장면은 나한테 맡겨 달라, 그러면 촬영 때까지 연구해 오겠다고 했다. 촬영할 때 ‘씩~’ 웃었는데 손 감독이 좋았는지, 큰 소리로 ‘오~케이’를 외쳤다.
Q. 지독한 연쇄살인마를 연기한 정신적 후유증은 없나.
박성웅 : 스트레스가 오면 술을 마시면서 풀었는데 금주를 했으니까. 다른 장면보다 경찰 두 명을 죽일 때가 가장 힘들었다. 여자를 죽이는 건 직접 나오진 않으니까. 그날 밤, 잠을 못 자고 숙소에서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특수 분장을 했는데, 실제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다. 살을 뜯는 느낌이 느껴지고, 그것에 맞춰 피가 솟구치고, 그런 상황에서도 강천은 무표정이다. 그건 좀 힘들었다.
Q. 손용호 감독은 여린 감성을 가졌다고 표현하더라. (웃음)
박성웅 : 소녀는 무슨, 소년도 없는데 무슨 소녀냐. 하하. 실제로 강하지는 않다. 덩치가 크다보니 학생 때도 소위 먹어주는 게 있었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도 ‘넘버3’에서 건달3으로 시작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치 센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덩치 크고, 센 것만 하니까 센 것처럼 되는데 사실은 그렇진 않다.
Q. ‘신세계’에서 강한 모습을 선보였고, 그 이후로는 이미지의 반복도 많았다. ‘살인의뢰’는 박성웅의 신체조건을 최대치로 활용했고 그게 적중한 경우지만, 배우 입장에선 이미지의 반복에 대한 고민이 많겠다.
박성웅 : 그래서 다음 작품인 ‘무뢰한’은 청부업자이긴 하지만, 멜로 라인이 있다. 살짝. 달달한 멜로는 아니고 러프한 멜로지만. 또 ‘오피스’에선 사건을 파헤치는 광역수사대 반장으로 나온다.
Q. 당분간 악역이나 살인마는 피해야겠다. 이번이 너무 셌다.
박성웅 : 당분간은 안 하지. 그리고 악역이 안 들어온다. 지금 당장 후속작도 악역은 없다.
Q. 그렇다고 악역이나 센 역할을 전혀 안 하진 않을 것 같은데, 어떤 역할이면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나.
박성웅 : 얄밉게 나쁜 걸 하고 싶다. 약간 껄렁껄렁한. 내가 했던 건 스탠다드하게 나쁜 역할이다. ‘신세계’는 소위 ‘각’이 있는 악역이다. ‘황제를 위하여’도 보스고, ‘역린’ 때는 좋은 편이긴 했지만 다들 무서워하고. ‘찌라시’도 딱 떨어진다. 그런데 약간 싸가지 없고, 얄밉다면 또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다. 사실 ‘황제를 위하여’도 마찬가지다. 다들 우려를 많이 했는데, 부산 사투리를 하니까. 그게 나한테는 도전이었다. 이처럼 도전할 게 생기든, 새로운 장르의 악역이 들어온다면, 박성웅 표만의 연기를 하고 싶다.
‘살인의뢰’ 박성웅.
Q. 갑자기 든 생각인데 아내인 신은정 씨도 같은 배우긴 하지만, 그래도 악역을 계속하면 그다지 반기진 않을 것 같다.박성웅 : 아내도 연기를 오래 했다. 나보다 선배다. 그래서 악역을 제대로 잘했으면 좋아한다. ‘신세계’ 때는 별 이야기 없었는데 오히려 ‘사이코메트리’ 연기가 좋았다고 칭찬 들었다. ‘신세계’는 설정이 들어가지 않나. 목소리 톤도 그렇고. 반면 ‘사이코메트리’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으니까. 그래서 칭찬하는 걸 보고 확실히 선수라는 것을 느꼈다. 일반 관객의 측면에서 보는 게 아니라 배우의 측면에서 보는 거니까.
Q. 아내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많이 하나 보다. 같은 작품에 또 출연해도 좋을 텐데.
박성웅 : ‘미생’ 할 때 ‘오피스’ 촬영 중이었다. ‘오피스’를 김의성, 류현경, 고아성 등과 같이 찍는데 ‘미생’을 다 봤나 보더라. ‘미생’에서 아내가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에서 울던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고 칭찬을 하더라. 근데 예전부터 아내의 능력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배우라는 게 자기한테 맞는 옷을 입으면 빛을 발한다. ‘미생’이 그런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미생’은 제의가 들어왔다. 근데 ‘오피스’ 촬영하고 겹쳤다. ‘오피스’는 부산 올 로케였고. 또 아내가 나오는 드라마인데, 마주치는 신은 없어도 극의 흐름이 깨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있고.
Q. 악역이나 센 역할 말고, 다른 모습도 보고 싶다. 과거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처럼.
박성웅 : 시트콤은 내 본 모습이다. 작가님이 2~3번 보고, 썰렁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근데 썰렁한 사람이 계속 썰렁하면 웃기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받은 것도 있다. 제작 단계여서 그렇지 시나리오 보면서 웃은 게 처음이다. 거기서 혼자 웃긴 놈인데, 바보짓을 해서 웃긴 게 아니라 멋있게 등장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2% 부족한 그런 인물이다. 천천히 내년이나 내후년 정도.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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