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전중연 기자] 북팔 웹툰소설 “명동” 리뷰
도대체 이 작품의 장르가 뭘까. 명동 사채 이야기라고 해서 무자비하고 억울한 스토리를 떠올렸다면, 그런 1차원적 상상은 작품 초반부에 완전히 깨져버린다.
‘돈’이라는 살벌한 주제를 실화를 바탕으로 풀어서인지 웬만한 스릴러보다 더 긴박하고, 로맨스보다 가슴 아프다. 심지어 어지간한 경제물보다 깊고(어렵기도 하다), 어지간한 추리물보다 반전은 더 기발하다.
웹툰소설을 읽기 위해 북팔 앱을 다운받아 유료까지 내 가면서 이 작품을 읽어본 직후의 소감은 이렇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경제소설에 웹툰이 붙으면 경제를 이렇게 쉽게 풀어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 그나저나 도대체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이지?
웹툰소설 ‘명동’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전형적 갈등구조 역시 이 작품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일까. 명동은 작품 곳곳에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천한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회계사와 변호사를 포함한 여러 전문직 종사자들도 돈 앞에서는 ‘수단’으로 변해버린다.
아무것도 모르고 주식에 뛰어드는 개미투자자들을 딛고 돈을 버는 이른바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의 꼼수도, 말로만 듣던 대기업의 ‘갑질’도 등장한다. 상황은 적나라하지만 묘사는 딱 거기까지. 선악의 판단은 철저히 독자의 몫에 맡긴다.
사채시장
읽으면서 가장 공감이 갔던 건 주인공들이 던지는 화두들이었다.
“손윤식 사장이라는 창업자가 평생 몸 바친 좋은 회사가 있어. 그런데 갑자기 대기업 눈밖에 나서 영업이 안돼. 영업이 안되면 돈이 더 필요하지. 그런데 누가 투자할까? 이 과장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손윤식 사장을 믿고 투자할까?”
순간 명동사채의 ‘순기능’마저 떠올리게 만드는 글도 있었다.
“어려울 때 도와주고 돈을 많이 버는 게 나쁜 건가? 죽어가는 회사를 살려주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통 크게 맘먹고 회사를 살려주면, 당연히 먹을 게 많아야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그래야 손 사장이나 다른 주주들도 재산을 건지고 먹고 사는 것 아니겠어?”
한국 시장의 빈틈을 파고 든 외국계 자본의 생리도 등장하는데, 여운이 많이 남는다.
“한국 놈들은 이래서 안되요. 정말 어려울 때 우리 외국자본들이 피 같은 돈으로 도와주면 고마운 줄을 몰라요. 기업한다는 놈이나, 망할 놈의 사채업자들이나 아니면 이렇게 불쑬불쑥 찾아와서 개수작피는 머니게임 선수들이나 말야. 다 양아치 새끼들. 똑같아”
“그렇지. 우리 양아치들은 죄다 하수들이지. 니들 선진 외국 양아치 짓을 뒤늦게 배워서 뒤치다꺼리나 하니까 말야”
여러 용어들은 좀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 적힌 대로 ‘갈등구조’에 주목하니 크게 어렵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특히 ‘워런트’라 불리는 어려운 경제용어도 마치 보물찾기처럼 이해하면 보기 편했다. 결국 누가 어떻게 워런트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주인과 전쟁의 결과가 달라지는 단순한 구조였다.
경제지식 적인 측면에서, 명동에서 가장 크게 배운 건 복잡한 용어보다도 돈과 기업의 관계였다.
명동 사채가 어떻게 기업을 사냥할 수 있는지, 막연히 전해만 들었지만 이걸 읽고 나니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과 이사회, 주주총회로 이어지는 기업사냥의 과정과 싸움이 순차적으로 그려지면서 곳곳에서 다양한 화두와 이해관계들이 새롭게 눈앞에 펼쳐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 닿은 부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애환같은 ‘미생’이 아니라 더 큰 구조적인 미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여자, 재벌은 아니더라도 튼튼한 기업 2세, 그리고 CEO를 꿈꾸는 우리 세대 수많은 청년들의 이야기들. 바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였다.
호스티스
“나 솔직히 돈이 필요한데 가진 게 몸뚱아리밖에 없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도 내가 챙겨야하죠. 그런데 평범한 우리나라 여자가 할 수 있는 일 정말 많지 않아요. 생각해봐요. 공무원, 교사, 은행원, 승무원 이런 정도 말고 뭐가 있을까요?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 스타가 될 수도 없고….적어도 돈 받고 가랑이를 벌리지는 않잖아요. 명품 빽 살려고 몸을 팔지도 않구요. 오히려 술집 나와서라도 상류층 사람들하고 적당히 대화하면서 자존짐을 지키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변명이겠지만요” (술집 호스티스지만 우수한 재원인 여 주인공의 변명)
웹툰소설 명동의 스케일은 상당히 큰 편이다. 원조 명동 사채업자와 검찰 수사관의 대화에서는 멀게만 느껴지는 기업 M&A전쟁 이야기가 미디어를 타고 불쑥 우리의 안방으로 들어오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화 글 김동하 작가의 말처럼 명동은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해 많은 건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림 제피가루 작가의 말처럼 웹툰소설이라는 새로운 창작방식은 웹소설의 진지한 호흡을 가져가면서 웹툰의 생생한 전달력과 재미, 상상력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신선한 방식으로 다가왔다.
결론적으로 명동은 ‘사채’보다는 우리 주변 ‘사람’의 이야기에 가깝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주식회사’를 둘러싼 금융권, 사채, 외국자본의 돈, 머리, 그리고 감정 싸움은 한 우량한 ‘기업’을 빼앗고 그 기업을 통해 큰 돈을 벌기 위해서 펼쳐진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과 갈등을 이끌어가는 건 전부 우리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승자와 패자는 분명히 갈리지만 누가 나쁜 사람이고 누가 착한 사람인지는 분명치도, 그렇게 간단하게 선을 긋기도 쉽지 않다. 좀 더 똑똑하고 영악한 자가 차가운 돈의 전쟁에서는 이긴다. 독자들에게 있어서 선악의 판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명동” 인물 계보도
텐아시아=전중연 기자 zero@
사진. 북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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