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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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권석정 기자]“그런데 제가 개척을 하면…. 방송국이 바뀔까요?”(가인)

공중파 방송 심의 때문에 ‘파라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의 안무를 변경해야 하는 가인에게 “걸그룹이 할 수 있는 콘셉트를 개척해간다고 생각하라”고 말해줬더니 위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재작년 ‘2013 그래미어워즈’에서 여가수 핑크가 천장의 줄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하는 곡예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봤다. ‘한국에서 저런 퍼포먼스를 할 만한 여가수가 누가 있을까’라고 생각해봤을 때 떠오르는 이는 가인정도밖에 없었다.

가인은 새 앨범 ‘하와(Hawwah)’에서도 온몸을 던졌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부터 ‘피어나’ 등 솔로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파격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새 앨범에서도 역시 놀라움을 전한다. 이번에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와를 소재로 콘셉트를 만들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탄생한 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뱀의 유혹에 못 이겨 선악과를 깨물고 만다. 이것을 가인은 고난이도의 안무를 통해 표현했다.

밀턴의 실낙원에서 영감을 얻은 ‘파라다이스 로스트’에서 가인은 스스로 뱀과 하와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가인은 뱀을 몸으로 표현하려 했다. 뱀의 사악하면서도 매력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니며 춤추는 것도 불사했다. Mnet ‘엠카운트다운’ 녹화에서는 리허설을 하다가 발톱이 빠지자 테이프로 꽁꽁 싸매고 무대를 마쳤다.

‘엠카운트다운’ 가인
‘엠카운트다운’ 가인
‘엠카운트다운’ 가인

걸그룹들이 섹시함과 귀여움 두 가지 콘셉트에서 맴도는 가운데 이러한 가인의 신선한 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인은 무작정 섹시함을 표현하기 위해 웨이브를 타는 춤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안무를 위해 현대무용 강습까지 받았다. JYP엔터테인먼트 안무 팀이 만든 ‘파라다이스 로스트’ 안무는 기존의 여가수 안무 중 최고 난이도로 꼽힌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성경의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중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가인과 늘 함께 해온 프로덕션 팀(조영철 프로듀서-김이나 작사가-이민수 작곡가)은 복잡다단한 과정을 통해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안타까운 것은 정작 공중파에서 이 퍼포먼스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만 정상적인 버전으로 방송이 가능하고 공중파(KBS, MBC, SBS)에서는 심의 때문에 수정된 버전을 할 수밖에 없다. 가인 소속사이 미스틱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바닥에 눕고, 기고, 다리를 벌리는 동작들은 무조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안무를 통해 예술적인 부분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방송국이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인은 ‘파라다이스 로스트’와 함께 더블타이틀곡으로 나온 ‘애플’마저도 가사가 19금 판정을 받아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됐다. ‘금단의 사과’를 표현한 ‘애플’의 ‘하지 말라고 말하니 하고 싶다 갖지 말라고 말하니까 갖고 싶다’라는 가사는 야하게 해석하면 얼마든지 야하게 들을 수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섹스를 상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정도 가사가 허용이 안 된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가인의 콘셉트는 쉽지 않은 메시지를 노래와 안무로 충분히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다. 오히려 아이유가 가인을 부러워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콘셉트를 개척하면 뭐 하나?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는데 말이다.

텐아시아=권석정 기자 moribe@
사진제공. 미스틱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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