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행 무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최민식 주연의 ‘대호’를 한창 촬영하고 있다는 허명행 무술감독에게는 호랑이 기운이 넘쳐난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주변 공기의 기운이 바뀌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용기는 마치 근육과 같아서 쓸수록 강해진다’고 했던가. 그는 반대로 근육을 이용해서 용기를 단련해 나가는 타입의 사람 같았다. 첫 만남에서의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캬~ 살아있네! 스턴트가 좋아서 영화를 시작한 허명행 무술감독은 이제 영화가 좋아서 무술을 한단다. 그리고 서울액션스쿨을 통해 제작자로서의 변신도 준비 중이다. 이 남자의 ‘무한도전’, 고고고!

‘대호’, ‘부산행’ ‘우는 남자’(2013) ‘감시자들’(2013) ‘남자가 사랑할 때’(2013)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푸른소금’(2011) ‘용의자 X’(2011) ‘악마를 보았다’(2010) ‘마더’(2009)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국가대표’(2008) ‘다찌마와리’(2008) ‘전우치’(2008) ‘중천’(2006)

Q. ‘무한도전’ 출연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
허명행:
불편하다.(웃음) 예전에도 남자 분들 중엔 간혹 나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무한도전’ 출연 후 너무들 많이 알아보신다. 사실 이런 상황을 염려해서 출연을 안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신세계’ 액션 씬을 찍으니 그림 상으로 나와 주셔야 좋지 않겠냐고 회유 당했다.(웃음) 그리고 지금 내가 서울액션스쿨 대표다. 위치도 있고 해서 나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여파가 커서 나쁜 짓을 못 하겠다.(웃음) 아, 서울액션스쿨 법인 대표는 설립자인 정두홍 감독님이시고 나머지 감독들이 돌아가면서 대표를 한다.

Q. 돌아가면서 대표를 하는 데에는 어떤 의중이 있는 건가.
허명행:
예전에 정사용 무술감독님이 이끌던 팀이 있었다. 굉장히 잘 나가던 팀이었는데 정사용 감독님이 돌아가시면서(92년, 드라마 촬영 도중 사고사) 그 팀이 와해돼 버렸구나. 정두홍 감독님이 그걸 겪으면서 “내가 없어져도 팀이 와해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취지로 대표직을 돌아가면서 맡기기 시작했다. 어떤 시련이 와도 팀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 있는 대표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무한도전-나는 액션배우다’에 출연한 허명행
‘무한도전-나는 액션배우다’에 출연한 허명행
‘무한도전-나는 액션배우다’에 출연한 허명행

Q.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됐나.
허명행:
배우 박지훈이라고 ‘감시자들’에서 정우성 오른팔로 나온 배우가 나와 ‘절친’이다. 그 친구가 고등학교 때 정두홍 감독님 밑에서 액션을 배웠다. 그때 지훈이가 감독님께 배워 온 무술을 나에게 가르쳐 주기도 하고, 둘이서 여러 무술 합을 맞췄는데, 그러면서 무술의 재미에 푹 빠졌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내가 제비가 된 거다.(웃음) 고등학교 졸업 후 그 친구는 대학에 가고 나는 정두홍 감독님을 찾아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Q. 바로 받아주시던가.
허명행:
처음에는 안 받으려고 하셨다. 내가 체격이 있지 않나. 당시 체중이 93kg이었는데 감독님이 위아래로 훑으면서 ‘이 새끼, 뭐야?’ 식으로 쳐다보셨다.(일동 웃음) 그래도 지훈이 이야기를 하고 하니까 “그럼 저기 구석에 가서 몸 풀고 있어” 그러시더라. 그때가 영화 ‘쉬리’ 준비 기간이었다. ‘쉬리’ 출연 배우들이 트레이닝을 할 때 혼자 구석에서 다리 찢고 몸 풀면서 감독님이 부르시길 기다렸다. 그런데 네 시간이 넘어도 안 부르시더라. 나를 깜빡 잊으신 거다. 밥 먹으러 갈 때야 나를 발견하고는 “아차차! 이리로 와봐. 이거 해봐. 저거 해봐” 하셨다. 내가 아무것도 못할 줄 아셨던 것 같다. 의외라는 표정으로 놀라면서 “운동을 배우긴 배운 놈이네? 내일부터 출근해. 부모님에게 각서 받아오고.” 하셨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스턴트를 시작했다.

Q. 그래서 들어갔더니 어떻던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도 많았을 텐데.
허명행:
3일 하고 그만 두려고 했다.(웃음) 화장실에서 샤워하면서 매일 울었다. 몸이 너무 아파서. 옷 하나 벗는 것도 일이었다. 다리를 올려서 벗어야 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안 올라가는 거다. 찔찔 울면서 팬티를 말아서 내리곤 했다.(일동 웃음) 그때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친구들. 친구들이 “야! 지랄하네~ 네가 무슨 스턴트냐! 그냥 우리 가게에서 일이나 해~” 할 때마다, “아니야, 꼭 스턴트맨이 될 거야!” 했었다. 그렇게 선언을 했는데 포기하면 비웃음을 받을 거 아닌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랄까.(웃음) 또 하나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였다. 어머니가 평소에 별 말씀을 안 하시는 분인데 그땐 “야, 남자 놈이 칼 뽑았으면 뭐라도 한 번 해 봐야지” 이러시더라. 그래서 ‘그래, 하루만 더 하자. 하루만 더’ 한 게 일주일이 됐고, 일주일이 딱 되니까 아픈 게 몸에 배면서 단련이 됐다.

‘신세계’ 촬영현장(위), 엘레베이트씬
‘신세계’ 촬영현장(위), 엘레베이트씬
‘신세계’ 촬영현장(위), 엘레베이트씬

Q. 무술감독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 혹은 사람이 있다면.
허명행:
전환점이라기보다,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무술감독이 나를 선택할 때 세 번째 안에 들어가자!’라는 목표. 가령 한 영화에 10명의 스턴트맨이 필요하면, 무술감독이 3명 정도는 미리 자기 재량으로 뽑는다. 잘 하는 놈으로. 그때 9번이나 10번으로 뽑히면 기분이 별로이지 않나. 그래서 무술감독이 뽑고 싶은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운동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두홍 감독님이 “너, 무술감독 해 볼 생각 없어?”라고 물어오셨다. 감독님이 밑에 애들을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를 포함한 네 명의 무술감독을 뽑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지중현 무술감독, 윤진율 무술감독(‘신기전’ ‘감기’ 등), 한정욱 무술감독(‘조선충잡이’ ‘황제를 위하여’ 등) 나까지 네 명이다. 그때부터 무술감독 교육을 받았다. 당시 ‘중천’을 준비했는데 콘티준비만 1년을 했다. 1년 넘게 매일 촬영하고 편집하고 검사받고, 찍고 편집하고 검사받고…실력이 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중천’으로 입봉을 하게 됐다. 할 수 있었다.

Q. 무술을 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일 것 같다.
허명행:
완전히 다르다. 스턴트를 안 해 본 사람은 절대 무술감독이 될 수 없다. 머리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몸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술을 짤 수 없다.

Q.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허명행:
많이 있었다. 정말 단순하게 따지면 추위와 싸워야 할 때. 하지만 진짜 그만 두고 싶은 순간은 몸보다 마음이 속상할 때다. 가령 다른 파트에서 준비를 허술하게 했는데, 우리가 그 책임을 다 지면서 끌고 가야 할 때. 그럴 땐 정말 힘들다.

Q. 반대로 이 일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허명행:
액션을 찍을 때는 아무래도 무술감독이 주가 되는데, 모든 팀이 ‘으?으?’ 해줘야 하는 액션 장면이 있다. 그럴 때 ‘아~ 일이네. 귀찮아’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스태프가 달라붙어서 열심히 해 주면 정말 힘이 난다. 그렇게 어렵게 찍고 모니터 확인 후 “오케이”가 딱 떨어졌을 때, 그리고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기뻐할 때 정말 뿌듯함을 느낀다.

‘우는남자’ 무술 지도 현장(위) ‘범죄와의 전쟁’ 모니터 중인 허명행
‘우는남자’ 무술 지도 현장(위) ‘범죄와의 전쟁’ 모니터 중인 허명행
‘우는남자’ 무술 지도 현장(위) ‘범죄와의 전쟁’ 모니터 중인 허명행

Q. ‘신세계’ 엘리베이터 액션 씬은 워낙 유명해서 ‘무한도전’에서도 재현됐다. 개인적으로 공들여 찍은 씬이 있다면.
허명행:
작품으로 따지면 ‘우는 남자’. 개인적으로 정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우선 이정범 감독님과 처음 일을 하는 거였고, 개인적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사실 ‘우는 남자’ 전에 내가 살짝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10년 넘게 일을 하면서 풀어진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내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 작품이어서 ‘우는 남자’는 더욱 기억에 남는다. 씬으로 따지면 ‘신세계’ 주차장 ‘몹 씬’이 기억에 남는다. 뭔가 특징이 있었으면 해서 고민하다가, 국회의원들이 싸울 때를 떠올렸다.(웃음) 자세히 보면 국회 싸움 같은 느낌이 있다.

Q. 많은 감독들과 작업했을 텐데, 역시 자극이 된 건 이정범 감독인가.
허명행:
맞다. 이정범 감독님은 무술감독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우리로서는 귀찮을 수 있지만, 사실 그래야 하는 게 맞다. 액션영화를 찍으려면 그 분처럼 해야 한다. “액션은 무술감독이 알아서 해 주세요” 이건 책임 회피거든. 물론 믿기 때문에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데 이정범 감독님은 “널 믿는다”도 있지만 “함께 하길 원해. 이런 걸 뽑아줘” 분명하게 얘기를 하신다. 자극이 많이 된다.

Q. 스턴트맨은 사고의 위협과도 늘 싸워야 한다. 지중현 무술감독님 이야기가 아까 살짝 나왔는데, 감독님이 2007년 중국에서 ‘놈놈놈’ 촬영지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허명행:
아직도 꿈같다. 그때 내가 앰뷸런스에서 인공호흡을 하면서 갔는데, 그것도 꿈같다. 15분을 달려서 병원을 갔는데 느낌이 안 좋았다. 그리고 결국 결과가 그렇게 됐다. 중현이 형의 향, 냄새, 감촉…이런 게 아직 안 떠난다.

Q. 지중현 무술감독님 사고 이후 스턴트맨들이 꽤 많이 그만 둔 걸로 안다.
허명행:
맞다. 그런데 나는 애들이 그만 둔 게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일에 대한 회의와 허탈함이 컸을 거다. 그래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텐데, 나는 무술감독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 중현이 형 사고 후 함께 한국에 들어와서 화장을 하고 중국으로 바로 가야 했다. 열 받았던 건, 빨리 와야 한다고 해서 갔는데 촬영이 미뤄진 거다. 3일 씩이나. 정말이지 3일 동안 울면서 술만 마셨다. 중현이 형은 가장 친했던 형이다. 10년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둘이 안 해 본 짓이 없다. 그런 형이 죽은 후 너무 힘들었다. 한 번은 꿈에 형이 나타나서는 자기가 죽은 게 ‘뻥’이라고 했다. 너무 화가 나가 꿈에서 형을 엄청 때렸다. 그 얘길 또 정두홍 감독님께 했다가 된통 혼났다. 아무리 꿈이라도 형은 왜 때리느냐고.

서울액션스쿨 식구들
서울액션스쿨 식구들
서울액션스쿨 식구들

Q. 무술감독이 보는 배우는 좀 다를 것 같은데, 무술을 멋지게 소화하는 배우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허명행:
(정)우성이 형. 그런데 우성이 형 팬들을 데려다가 형이 축구하는 걸 보여주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뭐야~!” 이러면서 정이 확 떨어질 거다. 공을 너무 못 차니까.(웃음) 소위 말하는 ‘개발’이거든. 하하하. 뛰는 폼도 사실 별로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에서는 굉장히 멋있게 나온다. 그게 다 경험 같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액션 씬들을 해 왔고, 자기가 어떻게 표현해야 액션이 잘 나오는지도 잘 안다. 합도 잘 알고, 포인트도 정확하게 짚는다. 액션 능력치로 치면 (강)동원이가 더 유연하고 높을 텐데, 표현만큼은 우성이 형이 최고다.

Q. 영화가 좋아서 스턴트를 하는 것인가, 스턴트가 좋아서 영화를 하는 것인가.
허명행:
시작은 스턴트가 좋아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영화 그 자체가 좋다. 사실 서울액션스쿨이 현재 큰 플랜을 짜는 중이다. 시나리오 작업이 마무리 된 작품을 NEW와 계약했다. 40억 규모로 우리가 제작을 한다.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서울액션스쿨이 영화사로 규모를 넓혀가지 않을까 싶다. 서울액션스쿨 내에 ‘스턴트 사업팀’과 ‘영화 사업팀’ 등을 두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Q. 오, 제작자로의 변신! 진정한 무한도전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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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제공. 허명행, 영화스틸, ‘무한도전’ 방송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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