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석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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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2005년 극장가 최대 반전의 주인공이었던 ‘왕의 남자’가 이 남자 장원석의 머리에서 시작됐음은 익히 알려진 일화다. 작품에 대한 그의 예리한 감각은 이후에도 여러 번 충무로를 들었다 놨다했다. 공석에서 그리고 사석에서 몇 번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놀란 것은 이 남자의 ‘전우주적인’ 친화력과, 개그맨도 울고 갈 유머감각과, 영화를 향한 일편단심 바보사랑이었다. 그의 주변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일 것이다. 장원석 프로듀서는 충무로에서 아이디어 뱅크로도 통한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는 구상중인 영화 줄거리를 술술술 풀어냈는데 어찌나 맛깔나게 설명하던지 괜히 피팅의 귀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밀어붙이는 추진력, 현장을 조율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특유의 친화력,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무한 애정. 정글 같은 충무로에서 그가 오랫동안 건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허삼관’(2014) ‘끝까지 간다’(2013) ‘집으로 가는 길’(2013) ‘내가 살인범이다’(2012) ‘점쟁이들’(201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퍼펙트 게임’(2011) ‘최종병기 활’(2011) ‘평행이론(2010) ‘의형제’(2010) ‘비스티보이즈’(2008)

Q.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됐나.
장원석:
어릴 때 ‘시네마 천국’을 보고 영화에 대한 꿈을 품었다. ‘시네마 천국’을 보면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 감독이 된다. 그걸 보면서 ‘아, 나도 감독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걸었다. 그래서 리서치를 했는데 가장 많은 감독을 배출하는 곳이 서울예대(전)와 중앙대였다. 먼저 중앙대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바로 붙어서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던 중 영화기획자 안동규 대표님이 학교 특강을 오셨고, 그 인연으로 대표님이 ‘박봉곤 가출사건’ 제작부 일을 소개시켜 줬다. 그때가 21살. 군대 다녀온 후 2학년 때 아예 자퇴를 하고 본격적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Q. 프로듀서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 혹은 사람이 있다면.
장원석:
제작실장 때 했던 ‘왕의 남자’. 그때 장생 역을 맡은 감우성 선배님이 ‘왕의 남자’ 흥행에 대한 7번째 이유 중 나를 1번으로 꼽아주기도 하셨다.(웃음) 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얘기를 하지 않나. 나는 그 말이 달콤한 미화 같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진짜 성공은 성공으로부터 배우는 것 같다. ‘왕의 남자’를 통해 ‘성공이라는 게 이토록 달콤한 거구나. 정말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물론 성공으로 인해 나태함이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취감이 더 크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실패에서 좌절해 버리면 성공으로 갈 수 없으니까 실패도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하는 미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장원석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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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런 생각은 실패와 성공을 여러 번 오간 경험에서 터득한 것일까.
장원석:
사람들이 다들 성공성공 하길래 ‘과연 성공이란 뭘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생각해 보니, ‘왕의 남자’나 ‘최종병기 활’의 성공이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됐다. 냉정하게 말해서 실패가 힘이 되는가! 안 된다. 힘 빠지고 맥 빠진다. 하지만 실패는 이겨내야 한다. 거기에 함몰되면 끝난다. 그때마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성공했을 때의 기억들이었다. 기쁘고 짜릿했던 기억들을 되새기며 힘든 상황을 이겨내지, 흥행에 실패한 작품을 떠올리며 이겨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Q 사실 영화만큼 성공과 실패가 수치로 확 갈라지는 분야도 많지는 않다. 둘 사이를 여러 번 오가다보면 성공과 실패에 어느 정도 무뎌지나.
장원석:
절대 무뎌지지 않는다. 내가 다작을 하는 편인데, 한 작품 한 작품 내 작품이 아닌 게 없다. 흥행을 못하면 정말 괴롭다.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 배우, 투자배급사, 마케팅 팀 들에 대한 심각한 죄책감이 찾아온다. 영화라는 것이 대자본이 들어간 거대 문화산업이라면 그 자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거다. 개인적으로 자본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돈 1-2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물적 인적 자원들에 대한 가치가 투영돼 있다고 본다. 그런 가치를 활용해서 한 편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었으면 그 가치에 투자해 준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게 맞다. 다작을 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너무 큰 성공이나 큰 실패에 함몰돼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그럴 때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차기작으로 빨리 갈아타는 거다. 새로운 작품에 몰두하다보면 아픔이든, 영광이든 빨리 잊혀지는 것 같다.

Q. 제작자겸 프로듀서로서 본인이 좋아는 것과 관객이 원하는 것, 그 사이를 어떻게 조율하나.
장원석: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다. 대신 나는 모니터링을 굉장히 많이 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꼼꼼하게 체크한다. 시나리오가 나오면 일단 주위에 돌리고,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과반수이상 나와야만 영화에 들어간다. 그런 목적으로 1차 모니터링을 하는 거다. 반응이 안 좋으면? 과감하게 포기한다.

Q. 시나리오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영화화 됐을 때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는 경우도 많다.
장원석:
그런 일은 드문 것 같다. 제작이 잘 진행되면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크게 차이가 난다면 이유는 두 가지일 거다. 감독이 너무 창의력을 발휘해서 훨씬 뛰어난 영화를 만들거나 반대로 완전히 망치거나.

장원석의 제안에서 출발한 ‘왕의 남자’, 큰 흥행을 거뒀다
장원석의 제안에서 출발한 ‘왕의 남자’, 큰 흥행을 거뒀다
장원석의 제안에서 출발한 ‘왕의 남자’, 큰 흥행을 거뒀다

Q. 충무로에서 아이디어 뱅크로 소문 나 있다. 지금도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을 구상중인 걸로 아는데, 그 많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 건가.
장원석:
내가 벌써 영화판에 20년 가까이 있었다. 어릴 때 연극영화과를 가려고 준비했던 시간까지 더하면 25년 넘게 영화를 좋아한 셈이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운 거다. 내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보니 쉬지 않고 생각을 하게 된다. 기자님들이 기사 거리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녹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영화를 업으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많이 안 보는 걸로 안다. 일처럼 느껴지니까.(웃음) 그에 비해 나는 즐기면서 보는 편이다. 얼마 전에도 새벽 4시에 주성치 영화를 봤다. 흥행하는 영화는 가급적 관객이 많은 시간에 보려고 한다. 그래야 동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영화를 소비하는지 알 수 있거든. ‘국제시장’ 볼 때도 영화를 보다가 의식적으로 빠져 나와서 사람들이 어디에서 울고 어디에서 웃는지 체크하면서 봤다.

Q. 현장에서 프로듀서의 천적은 무엇인가.
장원석:
자기 자신이다. 게을러지는 걸 특히 경계해야 한다. 마음이 늙는 거, 그걸 가장 조심하려고 한다.

Q. 여러 감독과 작업을 했는데 가장 자극이 됐던 감독은 누구인가.장
원석:
감독에게 자극 받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웃음) 나는 ‘버드맨’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해도 큰 자극을 받을 것 같지 않다. 그냥 서로 맞춰가면서 일을 하는 거고, 그러면서 배워 가는 게 아닐까 싶다.

Q. 흥행 성패와 관련 없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의 순간이 있다면.
장원석:
1987년 최동원과 선동렬이 15회 연장전까지 가는 무승부를 기록한 실제 게임 다룬 ‘퍼펙트게임’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촬영 도중에 최동원 감독님이 돌아가셨다. 오버일 수 있지만 흥행이나 모든 걸 떠나서 그 분 인생에 헌정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감독님이 자신이 이야기가 영화화 되는 걸 정말 힘겹게 동의를 해 주셨는데, 영화가 개봉하는 것을 못 본 채 돌아가셔서 많이 아쉽다. 영화에 대한 우호적인 반응에 비해 흥행도 저조했다. 조금 더 많은 관객들이 그 분의 이야기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

2014년 정말 끝까지 달렸던 장원석 제작의 ‘끝까지 간다’
2014년 정말 끝까지 달렸던 장원석 제작의 ‘끝까지 간다’
2014년 정말 끝까지 달렸던 장원석 제작의 ‘끝까지 간다’

Q. 프로듀서는 감독과 스태프와 배우의 중간에서 모두를 커버해야하는데, 그들의 입장이 충돌할 때 어떻게 조율하나.
장원석: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될까’다. 그게 핵심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개는 감독의 손을 들어준다. 영화는 어쨌든 감독이 끌고 가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감독님 의견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는 반기를 든다. 영화를 찍다보면 배우와 감독이 어떤 장면을 두고 충돌할 때도 많은데, 두 사람 모두가 원하는 걸 찍어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 돼서 오해가 생기고 꼬인 것일 뿐 얘기를 해 보면 결국은 다 풀린다. 서로 깊게 대화하고 조금씩 양보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Q.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 어떤 것이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나.
장원석:
가장 큰 변화는 투자배급사의 파워가 강해진 거다. 그리고 영화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전문적으로 변했다. 아주 사소한 거지만, 눈에 띄게 변한 또 하나는 커피다.(웃음) 예전에는 다들 믹스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요즘은 스태프들도 원두커피를 마신다. 믹스커피는 찬밥이다. 대한민국이 변한 거지.(웃음)

Q. 투자배급사의 파워가 세지면서 여러 잡음들이 나오고 있다.
장원석:
멀티플렉스와 거대 배급사들이 눈앞의 이익에 치중하는 건 큰 문제다. 자사 영화에 상영관을 몰아주다보니 지금 3등이 없다. 극장들이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콘텐츠의 다양함을 보장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가다가는 영화 환경과 풍토가 망가질 게 뻔하다. 다양한 영화를 소화해야 관객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정말 프랑스처럼 스크린을 법적으로 강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Q. 기획이 부실한, 그러니까 배우의 스타성만 믿고 가는 영화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장원석:
제발이지 투자배급사들이 TOP급 배우만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TOP급 배우, 물론 너무 좋다. 연기 잘 하니까 TOP인 거고 진정성이 있으니까 TOP인 건데 문제는 그 수가 한정돼 있다는 거다. 콘텐츠를 정말 좋다면 TOP이 아닌 배우들에게도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배우 스펙트럼이 확장될 수 있다.
장원석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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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장원석 만의 무기는… 얘기해 보니 바로 알 것 같다. 굉장히 사교적이다.
장원석:
하하하. 나만의 무기는 아니지만 남들보다는 강한 것 같다. 프로듀서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해야한다.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중요하고.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말이지 않나. 첨예한 지점들을 봉합하고 풀어가야 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말의 기술이 있으면 좋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원래 꿈은 감독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다들 “너는 프로듀서를 해야 한다”고 했다. 프로듀서를 할 것인가 감독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2003년도에 감독의 꿈은 접었다. 미련? 없다. 없었는데, ‘허삼관’을 하면서 살짝 다시 들긴 했다.(웃음) 다른 이유는 아니고, 직접 한 번 만들어보면 나중에 다른 작품을 제작하고 프로듀서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Q. 당신이 영화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진짜 원동력은 무엇인가.
장원석:
사실 촬영하는 내내 조마조마하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 제작비가 오버되면 어쩌나, 영화가 잘 안 되면 어쩌나. 그런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그리고 내겐 다작 중 한 편인 작품이, 어떤 감독에게는 평생의 찬스일 수 있다. 작품을 잘 메이드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압박감이 자동적으로 든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순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 하는 건 정말 좋아하는 일이고 그나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일을 해 나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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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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