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화
정용화가 만든 노래엔 좋은 에너지가 가득하다. 곡마다 그것들이 표현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뿐, 그의 음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힘들 때조차도 날 것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들었을 때 좋아질 만한 노래가 뭘까”를 생각하는 남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세상 사는 게 쉽지 않다”고 느껴도 그가 겪었을 수많은 어려움은 그의 노래에선 쉬이 느낄 수 없다. 솔로 앨범 ‘어느 멋진 날’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내어놓은 그와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물처럼 흘렀다. 종착지가 어디인지, 정해놓지 않은 채.Q. 이번 솔로 앨범으로 자신의 어떤 것들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 같나.
정용화 : 증명이라기보다는, 노래를 열심히 만든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은 느낌이다. 주변에서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다음에도 더 좋은 노래로, 더 발전했단 얘기를 듣도록 열심히 해야지.
Q. 창작자가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아니면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대중의 환호에서 오는 희열 때문에. 정용화는 어느 쪽인가?
정용화 : 둘 다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가야 하는 것 같다. 만약, 열심히 만들었는데 계속해서 잘 안 되면, (내가) 힘들어질 것 같다. 많이 사랑해 주시면, 탄력을 받아서 또 열심히 하게 되고. 제일 좋은 건, 재미있어서 하는 거다. 재미없어져서 하기 싫을 땐, 바로 접는다. 하고 싶을 때 써 놓으면 되니깐.
Q. 하기 싫어지는 기간이 길어지는 때도 있나.
정용화 : 일단, 너무 피곤하면 그렇다. 그래서 활동하면서는 잘 안 쓴다. 웬만하면 앨범 활동이 끝나고 나서 작업에 들어간다. 계속 쓸 수는 없다. 자판기처럼 버튼을 누른다고 (곡이) 나오는 게 아니니깐. 지금, 앨범 하나를 다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곡들을 써놓긴 했지만, 이게 또 앨범에 어울려야 하니, 그거에 맞춰서 해야 한다.
Q. ‘어느 멋진 날’ 앨범의 경우, 미리 써놨던 것들 중에 조합하기도 한 건가?
정용화 : 새로 쓴 것도 있고 써 놨던 걸 고친 것도 있다. ‘체크메이트(Checkmate)’는 원래 써놨던 곡이고, ‘마일리지(Mileage)’는 멜로디만 작업해 둔 거였다.
Q. ‘마일리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느 한 편으론 그 곡이 꽤 남성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들이 다 어우러졌을 땐 그렇지 않았지만, ‘똥 기저귀 샤워’ 등의 가사에서 ‘세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거든.
정용화 : ‘마일리지’는 생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쓰자는 생각으로 만든 거라, (가사를) 꾸미지 않았다.
혼자 보내는 화이트데이를 표현한 정용화
Q. 씨엔블루 앨범에서 솔로 앨범으로 넘어가며 쭉 들어 보니, 이전의 ‘캔트 스톱(Can’t Stop)’ 앨범엔 ‘섬세한 소년’의 이미지가 있다면, ‘어느 멋진 날’ 앨범엔 ‘남자의 담담함’이나 ‘멋 부리지 않은’, 그런 느낌이 있더라.정용화 : 맞다. 씨엔블루 앨범은 어떻게 보면 좀 더 꾸며진 느낌이다. 내용들도 그렇고. 씨엔블루 활동 땐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 공통적인 생각을 해야 됐다. 게다가 씨엔블루를 보는 시선, 이런 부분까지 다 생각을 해야 해서 (솔로 앨범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솔로 앨범에선 곡마다 가사 쓰는 방식을 다 다르게 하긴 했는데, 머리를 많이 굴려가면서 쓴 거라기보단 그냥 툭툭, 손이 가는 대로 썼다.
Q. 혹시, 풍경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인가? 음악을 듣고 나면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곡들이 있는데, 정용화가 만든 노래들도 그런 것 같다. 바람이나 하늘 등의 자연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어느 순간 떠오르게 되는 건 물론, 멜로디가 빚어내는 공간감까지 있다.
정용화 : 영감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음악을 만들 때, 노래를 통해 어떤 분위기나 계절이 생각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어느 멋진 날’은 추운 날 밤, ‘캔트 스톱’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다.
Q. 솔로 앨범 구상을 2년 전에 했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었나?
정용화 : 씨엔블루 노래를 계속 써오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좀 해야 시너지가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만 갇혀 있는 것 같았거든. 그 당시엔 하드한 것도 해보고 싶었고… 많은 걸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차분해지는 음악을 하게 된 것 같다.
Q.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시점과 최근 사이, 심적인 변화가 있었던 걸까?
정용화 : 그런 건 너무 많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라기보단,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힘든 일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해결해야지, 라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깐. 시간이 지나면 된다. 괜찮아진다.
Q. 스트레스가 많겠다.
정용화 :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그걸 표출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야 하고 좋은 영향을 줘야 하는 직업이니, 감정적으론 감춰야 될 부분이 있다. 노래를 만들면서 가수가 아닌 그냥 정용화의 감정을 녹여내는 게 좋은 건데, 난 대중이 원하는 것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가수 정용화와 원래의 나는 다르다.
Q. 원래의 정용화가 음악을 만든다면 어떤 스타일이 나올 것 같나.
정용화 : 완전 들쑥날쑥 할 거다. 장르도, 이야기도. (웃음) 내가 계속 (웅크리는 동작 하며) 이러고 살진 않을 테니깐. 짜증 날 땐 짜증도 내고, 이게 진짜지. 그렇다고 해서 그 짜증을 음악에 퍼붓고 싶지는 않다. 그건 또 싫다. 아직까진 사람들이 내 음악을 통해 좀 더 좋은 감정을 느끼거나 힐링을 받았으면 한다. 내가 힘들고 그럴 때, 그걸 그대로 음악에 다 드러내는 게 아니라, 나중에 들었을 때 좋아질 만한 노래가 뭘까, 이렇게 한 번 꼬아서 생각을 한다.
정용화는 곰돌이와의 케미도 만점
Q. 참 신기한 게, ‘스키장 훈남’ 사진을 계기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뒤 본인의 음악까지 만들게 된 것 아닌가.정용화 : 어린 시절에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긴 했다. 피아노에 클라리넷에, 성악도 배웠거든. 음악을 그렇게 계속 가까이하긴 했지만, 직업이 될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중3 때 처음 데모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만들어 보긴 했지만 말이다.
Q. 가수가 된 게 단지 운 때문만은 아니었구나.
정용화 : 물론, 운도 있었다. 학창시절에 서울은 먼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연예인을 한다는 건 아예 상상도 안 했다. 처음에 ‘서울 사람’이 캐스팅 때문에 나한테 연락을 했을 때만 해도 거짓말인 것 같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지. 그 기회가 아니었다면 난 생각도 안 했을 거니깐.
Q. 아! 얼마 전에 운(행운)과 관련된 심리테스트를 해 봤는데…
정용화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 나 그런 거 진짜 좋아한다.
Q. 인터뷰하면서 심리테스트는 처음인데, 하하. 그럼, 이걸 한 번 해보자. ‘친구의 집에서 홈 파티가 열린다. 그런데 가는 길에 넘어져 준비한 케이크를 실수로 떨어뜨렸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1번, 뭉개진 케이크를 버리고 새로 사 가지고 간다. 2번, 뭉개진 케이크는 내가 먹고, 새 케이크를 사 간다. 3번, 그냥 케이크를 가지고 가서 “뭉개졌지만, 괜찮다면 그냥 같이 먹자”라고 말한다.’
정용화 : 1번!
Q. 진짜, 1번인가? 1번 결과는, ‘불운을 기회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불운으로만 받아들여서…’
정용화 : 어, 맞다! 나 그런다. 아니, 행운은 행운이고 불운은 불운, 맞잖아. 하하. 그런데 누가 떨어진 케이크를 (부산 사투리 하며) ‘퍼고’ 있나. 앗, 상자 채로 떨어진 거였나? 난 또, 케이크를 떨어트렸다는 줄 알고. 그럼, 그냥 상자 채로 뭉개진 거 그대로 들고 갔을 것 같은데? 난 새로 안 산다.
Q. 이건 결과가 다르다. 3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 실수를 행운으로 만드는 타입.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괜찮아, 뭐 어때”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타입’이란다.
정용화 : 그런 것도 같다. 근데 지금 저 말은 자기 최면을 걸어서 억지로 한다는 거네. 난 1번과 3번의 믹스인 것 같다. 이렇게(1번처럼) 생각하는데, 아닌 척(3번처럼) 하는. 해야만 하는 건 어쨌든 해야 하는 거니깐. 그런데 심리테스트가 이것밖에 없나? 한 세 개는 해야지용. (웃음) 흠, 문제를 한 번에 이해 못 해서 그게 좀 찝찝하다. 케이크 상자, 이걸 알았어야 하는데! 이참에 타로 점이나 봐야겠다.
시크한 매력의 정용화
Q. 타로 같은 거 좋아하나?정용화 : 아니, 한 번도 안 봤다. 그래서 한번 보고 싶다. 그런 말들에 되게 휘둘리는 스타일인데. 하하. 올해 불운이다, 이러면 진짜인 것 같고.
Q. 그럼 옆에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줘야겠다. 그러면 다 좋게 생각될 테니깐.
정용화 : 그렇지. 그런데 이젠 슬슬 그렇게 좋게 얘기를 해줘도 안 믿게 되더라고.
Q. 올해 운세는 어떨 것 같나?
정용화 : 좋아야 될 텐데… 지금까지는 좋은 것 같다, 이대로만 쭉 갔으면 좋겠다.
Q. 의심이 많은 편인가? 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걸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는 스타일이 아닌 듯하다.
정용화 : 맞다, 의심이 많다. 그러니깐 아까 심리테스트처럼 1번인데, 억지로 3번이라고 생각하는 편인 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Q. 머릿속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상상을 해 보기도 하나?
정용화 : 상상을 하는 것들이 있긴 한데,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막 온다. 그때면 그런 것들을 부숴가며 가는 거다. 그런 순간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단 나 혼자 많이 이겨내려고 한다.
Q.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소속사의 한성호 대표가 “용화는 틀에 갇혀 있다”란 말을 했다. 지금 보니 자신이 만든, 보이지 않는 선으로 그려 놓은 틀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그 안에선 자유로운 것 같다. 그것을 벗어나서, 일탈해 보고 싶단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나?
정용화 : 난 일탈을 안 좋아한다. 실컷 놀고 난 다음 날, ‘잘 놀았어, 후회 없어’ 이런 성격이 아니고, ‘내가 왜 그랬지, 찝찝하다’ 이런 성격이라 아예 그런 일들을 만들지 않는다. 후회 없이 논 거면 후회 없이 하고 싶은데, 내 성격상 그게 안 된다. ‘내가 왜 그랬지?’라기 보단, ‘이렇게 찝찝할 거면 왜 놀았냐, 왜 했냐’ 이거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굳이 벗어날 필요성도 잘 못 느낀다. 왜 이걸 벗어나야 하지? 항상 이 생각을 하고 있어도 부족한데….
Q.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편하게 보진 못하겠다. 나중에 이거 써먹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할 테니.
정용화 : 그런 생각, 참 많이 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하려면) 항상 그런 ‘촉’이 서 있어야 하는 것 같다.
Q.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끔은 생각의 스위치를 끌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날 때가 있기도 할 텐데.
정용화 : 맞다. 그럴 땐 그냥 잠만 잔다. 잠을 안 자고 있으면 다른 일들을 하고 있어도 계속 생각이 나니, 잠을 자는 게 최고다. 어떤 일을 겪는다 해도, 자면 된다. 그러면 모든 생각이 없어진다.
‘심쿵’ 유발자, 정용화
Q. 올해 스물일곱, 가수로 데뷔한 지 햇수로 6년이다. 사회에선 이 정도 연차가 되면 일에 불을 붙이기 위한 땔감이 조금씩 바닥을 보여 다시 채워 놓아야 한다. 정용화의 땔감은 어디에서 구해오나?정용화 : 아…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난… 아직 난, 다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30대가 돼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Q. 30대는 20대와 다를 것 같나?
정용화 : 하아… (서른이) 거의 다 왔네. 하하. 다르지. 그땐 다른 걱정들을 할 것 같다. 지금보다는 일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모르겠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Q. 정용화의 20대는 순항 중인가?
정용화 : 내 20대는 ‘해적선’ 같은 느낌이다. 순탄하지 않다. 싸우기도 하면서, 뺏을 건 뺏어야 하고, 뺏길 건 또 뺏기고 하는, 그런 해적선. 어떤 때는 여우같이 해야 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곰처럼 해야 될 때도 있고, 많이 어렵다. 세상 사는 게 쉽지 않다. 사회에선 친하다고 다 친한 것도 아니고… 자석처럼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게 참, 표현하기가 어렵네.
Q. 자석은 같은 극이면 밀어낸다. 오히려 N이 다른 극 S를 끌어당기지.
정용화 : 밀어내고 붙는, 그런 성질 말이다. 안 맞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긴 하지만, (N극과 N극이어서) 서로 자꾸 튕겨 나간다 해도 붙으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있다.
Q. 다 그런 것 같다. 사회생활이란 게.
정용화 : 그런 것들이 참 어렵다.
Q. 그러면 그때, 자신의 감정이 그대로 다 드러나나?
정용화 : 아니, 사람들은 잘 모른다. 속으로 그냥 삭인다. 그래도 학창시절 친구들에게는 터놓을 수 있다. 오랫동안 만난 사람들이니깐… 다, 시간의 힘이다.
나른하고 쓸쓸한 느낌을 표현한 정용화
Q. 인생에서 캡처해 두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건 언제일까? 즐거웠든 힘들었든, 기억해 두고 싶은 때가 있지 않나.정용화 : 학창시절을 통으로 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하루하루는 정말 밋밋했다. 매일 학교만 가던, 별것 없던 하루하루였는데, 다 추억이 되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립다. 지금의 난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깐.
Q. 그래도, 요즘의 어린 친구들이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다 데뷔하는 것과 달리 나름대로 학창시절을 풍족하게 보내고선 가수가 되었다.
정용화 : 그때가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서 다 내게 도움이 되어 주고 있다. 뿌듯하다. 물론 일찍 가수 활동을 시작하는 것에도 장점이 있겠지만 그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의 장점도 많다. 그 시절을 다 보내고 와서… 좋았다.
Q. 만약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정용화는 어땠을까?
정용화 : 큰일이지. (웃음)
글. 이정화 le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정용화의 화보와 인터뷰는 텐아시아가 발행하는 매거진 ‘10+Star’(텐플러스스타) 3월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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