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혁의 노래를 들고 있자면 기분이 다운되고 쓸쓸해진다. 가슴 아린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가 기저에 깔려 있는 그의 음악은 지우고 싶은 트라우마까지 부활시켜 우울하게 만드는 마력의 노래다. 사실 칼로 살을 베이는 것 같은 생채기를 남기는 우울한 음악은 불편하다. 일반적으로 밝고 즐거운 음악이 아닌 어둡고 진지한 음악은 태생적으로 주류 대중음악과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칙칙하고 재미없으면 외면해 버리면 그만인데 문제는 이장혁의 노래는 칙칙하긴 한데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세련된 질감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장혁의 음악은 소수의 지지자들이 열광할 뿐이지만 주류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세련된 어법과 작법은 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선명하다. 우리 시대가 그의 음악을 주목하는 이유다. 큰 울림으로 노래하는 이장혁이 6년의 침묵을 깨고 정규 3집으로 돌아왔다. 워낙 앨범을 발표하는 텀이 지루할 정도로 긴 뮤지션인지라 이상할 것은 없다. 풋풋한 절대동안 음색은 여전하고 앨범 완성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인디음악 태동기인 1996년 아무밴드로 시작했으니 이장혁도 어느새 20년 내공의 중견 뮤지션이 되었다.
1997년 클럽 재머스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창작곡 ‘판토마임’을 발표하며 데뷔한 이장혁은 살아남은 극소수의 1세대 인디뮤지션 중에서도 전설적으로 회자된다. 1998년 레이블 인디에서 발표한 명곡 ‘사막의 왕’이 수록된 아무밴드의 앨범 ‘이·판·을·사’ 때문이다. 2004년 명곡 ‘스무 살’을 발표하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솔로 1집은 그를 한국대중음악의 중요 창작자로 견인했다. 4년의 기다림이 필요했던 2집 역시 청자들의 마음에 시퍼런 상흔을 남기며 이장혁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창작자임을 재확인시켰다. 신작인 3집도 6년이라는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건 느려도 너무 느린 보폭이지만 어쩌겠는가. 발표하는 음악의 향기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슬프고 아름다우니.
사실 3집은 2012년에 나왔어야 했다. 소리 소문 없이 제작은 했지만 이장혁은 까칠하게 회수했고 2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다시 발표했다. 칩거하며 느린 호흡으로 음악을 만들고 대중의 반응보단 자기만족과 완성을 최우선하는 그의 음악스타일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래도 완성도 높은 앨범을 들고 돌아와 주니 반가울 따름이다. “3집은 제작은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어 정식발매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작년 6, 7월에 밤샘 작업을 시작해 겨우 완성을 했습니다. 만약 2012년에 마음에 들지 않은 채로 그냥 앨범을 발매했으면 엄청 후회했을 겁니다. 제 팬들은 20~30대가 많은데 저는 그 분들을 의식해 곡을 만들지는 않아요. 앨범도 같은 맥락인데 제 음악은 제 마음에 들어야 팔 수 있는 거죠.”(이장혁)
2014년 가을, 홍대 앞 클럽 타에서 이장혁의 3집 발매기념 쇼케이스가 열렸다. 통기타를 든 이장혁이 3명의 세션과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숨조차 크게 쉬기 힘들 정도로 클럽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그가 공기 속으로 내던지는 소리 하나 하나에 몰입했다. 세상의 아픔을 노래해온 이장혁은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듯 한결 따뜻해진 노래를 선보였다. 관객들은 그의 가사에 아파하고, 공감하면서 결국 객석은 감동의 물결을 이뤘다. 대중이 그의 노래에 매료되는 것은 분명하다.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진정성’ 때문이다. 세상살이에 찌든 세상의 어두운 단편적 조각들은 그의 시선을 통해 하나의 단어들이 시로 뭉쳐 결국 청자의 아프고 쓸쓸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3집 제작을 하면서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고 고백한 그는 쇼케이스에 와 준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전의 공연에서는 말도 없이 노래와 연주만 했던 그다. 트레이드 같았던 그의 묵묵함을 기억하기에 실없이 웃고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정감 있게 풀어내는 변화된 모습이 놀라웠다. 돌아온 이장혁은 젊은 날의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살아가는 자신을 녹슨 칼집에 비유하는 중견 뮤지션의 관록을 보여주었다. 1집의 화두인 ‘칼’이 스무살 무렵의 이장혁을 대변한다면 지금의 모습을 대변하는 노래는 3집의 ‘칼집’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날카로운 것이 무뎌지는 제 모습이 녹슨 칼집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안의 분노가 없어진 것이 아닌데 예전처럼 그 분노를 끄집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고 그러나 한켠에 마치 홧병처럼 남아 있는 것에 대한 노래입니다.”(이장혁)
이장혁은 음악의 정서와 결은 한결 같지만 어딘가 부드러워졌고 이른 봄 서울 청량리에서 소나기를 피하는 노인의 무표정한 슬픔에서는 따뜻한 온기까지 느껴진다. 취재를 앞두고 지인들을 통해 이장혁에 대한 이런저런 깨알 정보를 취재했다. 대부분 말수가 적고 질문에 대한 대답이 짧아 재미가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많았다. 실제로 만나본 이장혁은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뮤지션답게 독특한 구석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진지하면서도 따뜻했고 말 수도 많았다. 그는 일곱 살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친구들과 ‘치맥’만 먹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할 중년의 남자이고 작년부터 시작한 강남의 녹음실 음악감독 일이 즐겁고 바쁜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음악 속에서의 이장혁은 여전히 세상은 비관적이고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믿는 비관론자다.
여담이지만 이장혁 1집을 듣고 마음에 들어 푹 빠져들었을 때, 청춘의 아픔, 자폐, 우울, 절망, 분노로 가득 찬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인해 “혹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다. 솔직히 그의 노래에는 희망을 잃지 말자고 따뜻하게 말해주거나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거려주는 친절함 따윈 없다. 강산이 2번이나 바뀌었지만 그의 노래는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희망은 멀리 있고 우리들은 쓸쓸하게 세상에 내던져 있다’고 말한다. 이장혁이 구축한 그만의 음악 세상은 절망의 끝판을 보여준다. 여전히 세상은 우울하고 캄캄하다. 그의 노래들은 눈물마저 사치로 여겨지는 희망 없는 세상의 절망을 농축시킨 회색빛 결정체다. 이건 마치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서 매서운 겨울 칼바람에 벌거벗은 몸으로 맞서는 섬뜩한 기분이다. 그런데 미치도록 아름답고 헤어나기 힘든 중독성을 지닌 치명적인 음악이다. (PART2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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