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키 있잖아? 정신세계가 애가 독특한 거 같지 않아? 이상한 노래 해. 정신 팔려서 색소폰 부는 거 봤어? 언니 공연 가봤어요? 아니 가보진 않았어. 왠지 내가 미칠 것 같아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곡을 썼을까? 그냥 즉흥곡 아냐? 그 악보가 머릿속에 없을 것 같아. 그냥 애드립이야 걔. 애드립치는 거야. 음악을 뭘 알겠어?김오키 ‘격동의 시간여행’
김오키 ‘정신세계’ 中
색소포니스트 김오키의 2집. 본인은 동의할는지 모르겠지만 김오키는 2013년 자신의 밴드 동양청년과 함께 녹음한 1집 ‘케루빔의 분노(Cherubim’s Wrath)’를 통해 한국 재즈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집 ‘격동의 시간여행’은 김오키(색소폰), 준킴(기타), 김윤철(베이스), 서경수(드럼)의 4인조로 녹음됐는데 이는 동양청년 2기라고 한다. 김오키는 이들 멤버로 무키무키만만수와 함께 합동공연을 갖는 등 재미난 공연을 열었고, 준킴은 동양청년의 멤버들과 자신의 앨범 ‘감성주의’를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격동의 시간여행’에서 이들 4인조가 풀어내는 음악은 기본적으로 재즈이지만, 록의 비트가 적극적으로 반영돼 록 앨범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김오키는 이 위로 역사적 사건, 우리 일상의 사건 중 쉽게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들을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김오키 특유의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를 표현하는 듯한 연주는 여전한데, 이런 폭발력은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연주 중간에는 일종의 ‘인터루드(Interlude, 막간 곡)’ 트랙이 있다. 심오하기도 하고 웃음도 나오는 콩트 비슷한 내용들도 있는데 듣고 있으면 왠지 연민이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녹용의 냄새가 궁금해지는 앨범.
최문석 ‘그대여’
최근 SNS상에 재미난 배틀이 벌어졌다. 연주자들끼리 마치 래퍼들이 랩을 주고받듯이 연주를 주고받은 것. 주인공은 박주원(기타), 임헌일(기타), 양시온(베이스), 그리고 최문석(건반)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 최문석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클래식에 기반을 둔 그는 그동안 세션 연주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데뷔앨범인 ‘그대여’에서는 본인이 작사, 작곡, 편곡, 노래를 모두 소화했다. 여기에 음악동료들인 임헌일,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바이올리니스트 윤종수 등이 연주로 참여했다. 최문석의 음악은 요새 보기 드물기 담백하다. 요 몇 년 사이 건반을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들, 가령 에피톤 프로젝트와 같이 전자음을 적절히 배합한 음악들, 그럼으로써 어떤 이미지를 선사하는 회화와 같은 음악이 강세를 보여왔다. 최문석은 피아노를 바탕으로 진중하게 음악을 들려준다. 90년대 정통 발라드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으며 클래식 피아노의 어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군데군데 드러나는 섬세한 악기 편곡들이 노래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탁월한 연주력과 여린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앨범. 주목할만한 신인의 등장이다.
이영훈 ‘내가 부른 그림 2’
포크 싱어송라이터 이영훈의 정규 2집. 이영훈은 매우 섬세한 감성을 가진 뮤지션이다. 연주도 목소리도, 악곡도 그러하다. 대세를 이루고 있는 달콤한 근래의 달콤한 포크와는 약간 거리가 있으며 사뭇 진지함도 느껴진다. 이영훈은 정말 섬세한 악기의 울림을 잘 살릴 줄 안다. 앨범에서는 기타를 중심으로한 미니멀한 편성의 곡들과 건반, 프로그래밍이 삽입된 곡들이 적절히 섞여 있다. 앨범 초반에는 오르간이 멋지게 들어간 인트로와 ‘멀리 있는 그대에게’가 색다른 감흥을 전한다. 무엇보다 사운드의 공명감이 잔잔하게 울리는 맛이 좋다.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려주는 앨범. 롤러코스터 출신으로 최근 피처링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조원선이 이영훈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 것이 눈길을 끈다. ‘무얼 기다리나’에서 음색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원선은 이영훈의 목소리와 은근히 어울린다.
러브 엑스테레오 ‘We Love We Leave, Part 1’
토비와 애니의 혼성 듀오로 이루어진 일렉트로 팝 밴드 러브 엑스테레오(Love X Stereo)의 새 EP. 토비는 한국 인디 1세대 펑크록 밴드 18크럭 출신(18크럭이 궁금하면 ‘18크럭 한국을 떠나다’를 들어보시길. 이 곡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멋쟁이)이다. 둘은 밴드의 사운드가 강하게 가미된 일렉트로 팝을 구사한다. 이들의 진짜 매력은 공연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다. 기존의 일렉트로 팝 아티스트들의 경우 여성 보컬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사운드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경우가 있는데 애니는 공연에서 강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마치 신디 로퍼, 또는 애니 레녹스 등을 연상케 하는 카랑카랑한 맛이 있는데, 이러한 점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일렉트로니카 팀들 중 차별성을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는 ‘플라이 오버(Fly Over)’ 등 팀의 대표곡 5곡의 새로운 버전과 신곡 두 곡이 담겼다. 사운드에 있어서는 80년대 신스팝의 복고적인 면과 최근의 트렌디한 느낌이 골고루 느껴진다. 80년대 팝을 좋아하는 이들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엠버 ‘Beautiful’
에프엑스 엠버의 첫 솔로앨범. SM이 최근 들어 소속 걸그룹, 보이그룹 멤버들의 솔로앨범을 연달아 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함수소녀들의 솔로 데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에프엑스가 들려준 음악들이 기발하고 독특하면서 완성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 첫 주자는 엠버다. 수록곡들은 엠버의 씩씩하고 보이시한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곡들의 스타일이 특별히 에프엑스 때와 크게 연계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SM으로서는 엠버의 개성을 잘 살려주려 한 것으로 여겨진다. 타이틀곡 ‘쉐이크 댓 브래스(Shake That Brass)’의 경우에도 엠버가 가진 장기라 할 수 있는 리듬감을 잘 살려주고 있다. 이 곡은 막판의 태연의 보컬이 삽입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리듬이 강조된 곡이다. 그 외에 전체 5곡 중 어쿠스틱 팝 성향의 곡이 두 개(‘Beautiful’, ‘I Just Wanna’) 선곡되는 등 의외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고색창연 ‘고색창연 하나, 외로운 사람들’(이정선 송북)
고색창연은 프로젝트 그룹이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베테랑 베이시스트 서영도를 필두로 기타리스트 오정수와 방혁, 그리고 3호선버터플라이의 미녀 드러머 서현정이 뭉쳤다.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뮤지션을 선정해 재해석함으로서 그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취지로 모였다고 한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이 이정선 송북이다. 많은 이들이 이정선을 ‘이정선 기타교실’로 알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사실 이정선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특유의 품격 있는 가사와 멜로디로 한국 포크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거장 중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서영도, 오정수의 기존 앨범을 들어봤다면 이정선의 음악을 실험적으로 바꾸거나 재즈 록으로 편곡했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앨범을 들어보면 원곡의 스타일을 헤치지 않고 간결한 연주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연주자들에게는 편안한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또 어떤 거장의 음악을 재조명할까?
김연자 ‘아모르 파티’
계은숙과 함께 원조 한류 가수로 회자되는 김연자의 국내 복귀 작으로 작년에 나온 일종의 베스트앨범이다. 김연자는 일본에서 정식으로 엔카 가수로 활동하며 인기로 정점을 찍고 일찍이 홍백가합전에도 나갔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 젊은 팬들에게는 낯선 존재였다. 하지만 2012년에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살벌한 노래 실력으로 1위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환기시켰다. 나훈아와 마찬가지로 트로트라는 장르를 넘어서 명창이라 할 수 있는 가수로 노래에서 ‘신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앨범에는 정통 트로트부터 모던한 느낌의 곡까지 다채로운 스타일이 담겼다. 2009년에 오랜만에 국내 컴백작으로 발표한 ‘10분내로’, 윤일상이 만든 ‘아모르 파티’를 비롯해 송창식이 만든 세 곡, 서울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에서’, 씨름대회에서 울려퍼지는 ‘천하장사’ 등 주옥과 같은 12개의 대표곡이 담겼다.
재즈민 설리반 ‘Reality Show’
지소울이 최근에 나온 앨범 중 가장 즐겨 들었다고 추천해준 앨범이다. 흑인 디바 재즈민 설리반은 2008년 데뷔앨범 ‘피어리스(Fearless)’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4년 만에 발표한 이번 앨범은 정규 3집으로 평단에서 벌써부터 ‘올해의 앨범’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만큼 R&B의 정수를 잘 파고든 앨범이다. 현대적인 사운드 메이킹으로 복고적인 스타일을 되살려낸 느낌이 강하게 든다. 특히 ‘렛 잇 번(Let It Burn)’과 같은 곡은 80~90년대 소울 편곡이 강하게 드러내는 곡이지만, 낡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은 프로듀서들이 더 잘 알 거싱다. 무엇보다도 보컬의 매력을 십분 느껴볼 수 있는 정정당당한 앨범. ‘브랜드 뉴(Brand New)’,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 등 버릴 곡이 없다. 베스트 트랙이라 할 수 있는 ‘마스카라(Mascara)’에서는 진솔함도 느껴진다.
이매진 드래곤스 ‘Smoke + Dragons’
이매진 드래곤스의 정규 2집. 이매진 드래곤스는 2012년에 발표한 데뷔앨범을 통해 최고의 신인 록밴드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워리어스(Warriors)’가 컴퓨터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2014 챔피언십 주제가로 쓰였다. 덕분에 리그 오브 레전드의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 ‘롤드컵’에 행사를 뛰러 왔다. 언젠가 록페스티벌에서 볼 거라고 예상한 이들에게는 조금 김샌 내한일지 몰라도, 이들이 한국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진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On Top Of The World’가 삼성 갤럭시 노트 8.0의 캠페인 송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이 잦다는 것은 슈퍼스타라는 방증. 신보에서는 록의 강렬한 매력이 강조되고 있다. 기존의 이매진 드래곤스는 최근의 댄서블한 록의 트렌드 선상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록밴드 본연의 맛을 잘 살리고 있으며 그 위로 다채로운 사운드를 덧칠해 나름의 개성을 선보이고 있다. 이제 다음에는 록페스티벌로 내한해서 보다 많은 음악 팬들을 열광시키길.
O.S.T.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요새 장안의 화제인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OST. 굉장히 야한 영화라고 하던데 아직 보지를 못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영화만큼은 여자친구와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은 뭘까?(지금 여자친구가 없으므로 이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얼른 사귀어야 한다) 앨범에는 기존 곡들과 함께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 스코어가 함께 실려 있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들 덕분에 전반적으로 빨간색이다. 즉 애니 레녹스부터 시아의 노래들에 이르기까지 노래들이 일관성 있게 흐른다는 것이다. 들어보면 섹스의 배경음악으로 쓰기보다는 순수하게 감상용으로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만큼 귀가 즐겁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는 왜 이리 야하게 들리는 것일까? 대니 엘프먼의 스코어들은 역시나 대니 엘프먼스럽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