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대단한 화제작은 아니었다. SBS ‘추적자’ ‘황금의 제국’의 박경수 작가와 김래원 김아중 조재현 등 스타 배우들의 속속 캐스팅 되면서 기대감을 높였지만 ‘시한부 인생을 앞둔 검사의 참회록’이라는 한 줄 요약이 시청자들과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의구심도 일었다. 그러나 뚜껑을 연 ‘펀치’는 첫 방송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명확히 했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전개 속에는 사회 풍자를 담고, 도치법와 은유법이 가득한 대사는 작품의 묘미를 한껏 살렸다. 주, 조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자리를 잡은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을 한층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렸다. 2015년 포문을 여는 성공작으로 남은 ‘펀치’만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맛깔나는 ‘대사의 묘미’를 어떤 작품보다 진하게 남긴 ‘펀치’를 돌아봤다.

SBS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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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땅에서 캔 칡이 맛있다” (‘펀치’ 6회, 죽음을 택한 이태섭(이기영)이 동생 태준에게 남긴 마지막 말)

주인공들의 삶을 짐작하게 해 준 은유 어린 대사는 말 뒤에 숨은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줬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여러 가면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태준도 형 앞에서는 그저 어릴 적 형이 캐다 준 칡을 먹던 동생일 뿐이다. 그런 형이 태준 앞에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평생 짐만 돼서 미안하다. 나 없는 곳에서 날개 펼치고 살아라”라는 사과와 “칡이 맛있지? 원래 언 땅에서 캐낸 게 맛있다”라는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긴 태섭은 태준에게 ‘힘들게 쟁취해 낸 성과가 너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겨울 바다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펀치’의 또다른 묘미는 이런 지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권력을 둘러싼 차가운 암투를 그리면서도 과하지 않게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진하고 뭉클하게 다가온 것은 캐릭터들의 지난한 과거를 알 수 있게 해 준 대사 속에 수어 있었다.

SBS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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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살길 바란다” (‘펀치’ 10회 중 죽음을 앞두고 남긴 박정환이 동생 박현선(이영은)에게 남긴 메시지)

현대판 ‘갑을 전쟁’이 빈번한 한국 사회에서 정환이 남기는 메시지는 종종 폐부를 울렸다. 권력의 정점에 서서 그 또한 사람들과 엎치락 뒤치락 야망을 향해 달려왔지만 죽음을 앞둔 그에게는 겸허함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당부만이 남았다. 100년이 채 되지 못하는 인생을 살면서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살라는 메시지를 박 작가는 시종일관 강조했다.

법무부 장관의 자리에 오른 윤지숙(최명길)은 “장관이라는 자린 내 몸을 더럽혀서 세상을 만드는 자리”라며 “내 몸 깨끗하게 사는 동안, 젊은 검사들이 다쳤어요”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렇듯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는 작품 전반에 걸쳐 조망됐다.

SBS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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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디게 좋아하네. 평! 아파트 평수. 등! 학교등수”(‘펀치’ 4회 이태준이 자신을 견제하려는 윤지숙을 향한 대사)


현실감 있는 사회 풍자가 묻어난 대사는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표면적인 평등은 이뤄졌지만 ‘아파트 평수’와 ‘등수’로 한 줄 세우기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평등은 요원하다는 태준의 한 마디는 한국 사회의 현실적 여건을 돌아보기에 충분했다. 자동차연구원 양상호(류승수)의 “감옥에서 나왔는데, 여기도 감옥이야. 젠장. 이 나라가 나한텐 감옥이네”라는 대사도 누군가에겐 감옥일 뿐인 현실을 돌아보게 해 줬다.

‘펀치’ 속 주인공들은 이렇듯 불합리한 세상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인물, 갈등 속에서 방향을 선회한 인물,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를 지키려는 인물로 각각 나뉘어져 자신만의 프레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사들은 상징과 은유 속에서 현실감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그 손 놓읍시다. 말은 놓지 마시고” (‘펀치’ 7회, 신하경(김아중)의 손을 잡고 제지하려는 조강재(박혁권)을 향한 박정환의 대사)

박경수 작가의 대사는 종종 힙합 음악을 연상시켰다. 한 줄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대사는 언어유희적인 감각을 유지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히 전달한다. 시종일관 대립각을 세워 온 조강재에게 경고성 메시지로 ‘하경의 손을 놓으라’면서 그는 ‘말은 놓지 말라’는 엄포를 이렇게 전한다.

힙합 음악에서 흔히 ‘라임(rhyme)’을 맞춘다고 일컬어지는 이런 언어유희는 말의 잔치로 이어졌다. 이태준 총장의 사임을 계획하는 정환을 두고 “국민과 언론을 견딜 수 있겠냐”고 하경이 묻자 정환은 “이혼할 때 네 눈빛도 견뎠는데”라고 짧게 답한다. 그런가하면 ‘박정환 게이트’를 앞두고 자신을 믿지 않는 이태준에게 정환은 “취임식 마치고‘정환아, 네 앞에 파란불은 내가 켜줄구마’라고 하셨죠. 총장님 저 떠나는 길 파란불 켜 주세요”라고 응수한다. 매번 짜임새 있게 직조된 대사는 이렇듯 시와 노래 가사를 방불케하는 완성도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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