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늘
드라마 ‘미생’은 여러 배우를 스타로 올려놨다. 극 중 장백기 역을 맡은 강하늘도 그중 한 명이다. 물론 강하늘은 ‘미생’ 이전에도 꾸준히 연기를 해왔고, 뮤지컬 등 다양한 무대에 올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가능성’ 있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미생’ 이후, 강하늘의 위치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달라졌다. ‘가능성’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대중은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관심으로 화답했다.Q. 드라마 ‘미생’ 이후 굉장히 바쁘다. 영화 ‘쎄시봉’은 개봉했고, ‘순수의 시대’와 ‘스물’은 곧 대중을 만난다. 또 지금 연극 무대에도 오르고 있다. 누군가에겐 ‘미생’ 인기 덕이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하는 것처럼 보이겠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정작 ‘미생’ 이후 강하늘의 선택은 연극 무대다. ‘해롤드&모드’가 바로 그의 행선지다. 누군가는 ‘미쳤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연극배우였던 부모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강하늘에게 있어 무대는 무언가를 채우는 공간이다. 지금 강하늘은 “많이 배우고 있고, 오히려 정신은 맑아졌다”고 만족해했다.
대중에겐 연극보다 영화가 먼저 보인다. ‘미생’ 이전에 선택했던 ‘쎄시봉’ ‘순수의 시대’ ‘스물’ 등 작품들이 우연히도 ‘미생’ 이후 곧바로, 그것도 ‘줄줄이’다. 더군다나 선견지명이 있었던 건지, 각각의 작품마다 강하늘의 모습은 확확 바뀐다. 호기심이 마구 솟구치는 건 당연하다. 이번에 만난 건 윤형주를 그대로 재현한 강하늘이다.
강하늘 : 그러니까. 하하.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6개월 이상 시간이 걸리는데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아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냥 단순히 ‘다작’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작하려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을 선택해 열심히 촬영했다. 촬영할 땐 개봉 일을 모르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몰리게 됐다.
Q. ‘미생’ 이후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까.
강하늘 : 감사한 일이다. 작품이 워낙 좋았다. 직접 출연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도 ‘미생’ 팬이었다. 많은 사람이 ‘미생’을 좋아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것 같다.
Q. 특히 ‘쎄시봉’ 윤형주, ‘순수의 시대’ 진, ‘스물’ 경재 등 시대도, 장르도 모두 다르다. 무엇보다 각각의 작품 속 캐릭터의 변화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각각의 출연 계기도 다 달랐을 것 같다.
강하늘 : ‘쎄시봉’은 단 하나였다.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라이브 카페에서 음악을 하시는데 그 꿈을 주신 분이 윤형주 선생님이다. 그래서 이것만은 내 필모에 새기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캐스팅 확정됐을 때 만나게 해드렸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촬영할 때 일산에 계시는 아버지께 ‘여의도로 빨리 오시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윤형주 선생님을 만났는데 눈가가 촉촉해지더라. 아들로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어려서부터 쎄시봉 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로 익숙했다.
강하늘
Q. ‘순수의 시대’와 ‘스물’은 당연히 다른 이유일 텐데.강하늘 : 캐릭터는 작품 선택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가장 먼저 대본을 보고, 그다음 역할을 본다. 그렇게 봤을 때 운이 좋았다. 작품도 좋았지만, 역할도 다 달랐으니까. ‘순수의 시대’는 단순히 역사만을 그렸다면 지금까지 사극과 차별화된 게 없었을 거다. 일단 ‘순수의 시대’는 제목이 끌렸다. 순수와 순진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순수악’이란 말은 있어도 ‘순진악’은 없다. 세 남자가 모여 부딪히는 지점이 순수하므로 더 날카롭게, 첨예하게 보였다. 그게 흥미로웠다. ‘스물’은 요즘 한국 영화계에 웃을 수 있는 작품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영화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무거운 거 말고, 그냥 ‘재밌네’ ‘즐겁네’ 할 수 있는 그런 영화, 그게 ‘스물’이었다. 대사가 정말 차지다. 나뿐만 아니라 우빈, 준호도 한 번 읽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더라.
Q. 웃을 수 있는 작품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이유로 선택했다는 게 마치 한국 영화계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이나 책임감처럼 느껴진다.
강하늘 : 하하. 전혀 아니다. 책임질만한 재목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다. 단지 나 역시도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일 뿐이다. 관객 입장에서 이런 영화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포함된 거다.
Q. 흥미로운 건 실제 ‘미생’ 이후 강하늘의 선택은 연극이다. 분명 의외의 선택이다. 오래전부터 미리 예정돼 있던 건가.
강하늘 : 연극을 선택하게 된 건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연할 때 진짜 열심히 하는데 관객이 없어서 2~3주 만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그 모습을 보는데 화가 나더라. 부모님도 연극을 하시다가 생계유지가 안 돼서 포기하셨으니까.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알려진 다음에 좋은 연극 또는 뮤지컬을 할 테니까 날 보러 오셔서라도 다른 좋은 연기자를 더 많이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궁극적으로 목표 아닌 목표는 연극을 하면서도 생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어린 나이니까 할 수 있는 치기 어린 생각이라 할 수 있는데,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사명감은 있다.
Q.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강하늘 : 나는 정말 쉬운 결정이었고, 당연했다. ‘미생’ 시청률이 8~9% 될 때 ‘아 지금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연극) 하면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들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 드라마와 영화를 하다 보니 내 안의 깊이감은 사라지고, 점점 비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걸 채우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연극이었다. 지금 많이 배우고 있고, 채우고 있다. 체력적으로는 힘든 게 있는데 정신은 오히려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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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서 소속사도 샘 컴퍼니로.강하늘 : 큰 기획사의 제의도 있긴 했다. 내가 원하는 건 ‘공연하게 해 달라’는 것 하나였는데 모든 기획사에서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샘 컴퍼니를 만나게 됐다. 황정민 선배를 만나게 됐는데, 당돌하게 ‘공연만 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하시더라. (황정민이 연기 잘해서 데려왔다고 하던데) 그런 말 절대 안 한다. 강하늘 다루기 쉽게 생겼다 정도. 하하.
Q. 한편으로 부모님이 연극배우라서 이쪽 계통에 조금은 너그러울 수 있지만, 반대로 이쪽 생리를 알기 때문에 더 완강하게 반대할 수도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봤을 때, 누구보다 힘든 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 그걸 자식에게 하라고 할 부모는 없으니까.
강하늘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완강히 반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주변 친구들이 겪는 만큼 완강한 반대는 안 하셨다. 어차피 포기할 줄 알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계속하고 있는 거다. 하하.
Q. 앞서 말하기도 했지만, 부모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쎄시봉 음악을 듣고 자랐다고 했다. 이전 인터뷰를 보니까 벨소리도 윤형주 음악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강하늘 : 맞다. 그런데 지금 아이폰으로 바꿨는데 벨소리 바꾸는 방법을 모른다. 컬러링도 이문세 선배님의 ‘옛사랑’이었는데 그것도 못하고 있다. 조금 아쉽다.
Q. ‘쎄시봉’ 윤형주 역이 확정됐을 때 조금은 남다른 느낌이었겠다.
강하늘 : 음…. 뭐랄까, 그걸 이성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잘 흥분하지 않는 편이다. 마음속 어느 곳에서 그걸 막는 것 같다. 하하. 놀라는 것도 많이 없고, 그러다 보니 들떠서 뛰어다니고 그런 것도 없는 편이다. ‘쎄시봉’을 같이 하자는 전화를 받고, 바로 아버지께 전화했다. 윤형주 선생님 역을 맡을 것 같다고. 나와 달리 아버지는 감성적이시다. 엄청나게 좋아하시더라. 하하.
Q. 아버지께서는 뭐라고 하던가.
강하늘 : ‘진짜’ 그러더니 ‘언제 개봉하느냐’고 묻더라. 촬영도 아직 안 했는데. 아버지는 1년 전부터 기다렸다. 4번째 보셨고, 오늘 또 가신다고 했으니까 한 번 더 보시겠다.
강하늘
Q.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놀란 건 노래다. 직접 불렀다는 걸 미리 자료를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미성도 굉장히 잘 어울리고. 꽤 많은 노력을 했겠다.강하늘 : 100% 직접 불렀다. 다행스럽게도 윤형주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자라서 잔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조금 더 디테일한 부분을 캐치하기 쉬웠다. 사소한 것들이긴 한데, 팝송 부르는 걸 들어보면 발음이 수려하진 않다. 요즘 잘하는 사람은 원어민 수준이지 않나. 그게 아니라 클래식한 발음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다. 그런 단어적인 디테일을 찾아 채우니까 흉내 정도는 냈던 것 같다. (강하늘은 디테일한 발음을 설명하면서 극 중 노래의 한 소절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그것도 미성으로)
Q. 미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건, 그리고 기타는.
강하늘 : 자유자재까지는 아닌데. 하하. 무대에 오를 때 미성으로 해야 하는 역할이 있고, 굵게 불러야 할 역할이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런 연습을 했었다. 그런 게 얻어걸린 것 같다. 기타는 취미로 해왔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기타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그래서 기타 연습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않았다. 복래(송창식 역) 형도 기타를 잘 친다. 화음 위주로 연습을 많이 했다.
Q. 음악적으로 다재다능한 면이 있다.
강하늘 :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하하하. 절대 아니다. 그냥 취미 수준이고,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Q. 김현석 감독의 특별한 주문은 없었나.
강하늘 : 주문하시는 게 없었다. 그게 무슨 의미냐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아니라 고민한 거 그대로 표현해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아닌 것 같으면 어느 정도 수정이 들어간다. 우리를 믿어주시고, 편하게 생각한 걸 해보라고 한 거다. 그게 정말 좋았다.
Q. 최근 윤형주와 CM송을 같이 불렀는데.
강하늘 : 정말 기분 좋았다. 선생님 옆에서 녹을 한다는 게, 가수도 아닌 연기자가 몇이나 되겠나. 실제로 듣는데, 정말 좋았다.
Q. ‘쎄시봉’을 본 윤형주는 자신을 연기한 강하늘에게 뭐라고 하던가.
강하늘 : 목표는 딱 하나였다. 윤형주 선생님께 누가 되지 말자고. 그 목표를 위해 기타 연습하고, 노래하고, 연기한 거다. VIP 시사회 때 윤형주 선생님을 비롯해 쎄시봉 멤버들이 다 오셨다. 끝나고 나오면서 윤형주 선생님께서 ‘우리 하늘이가 젤 잘하더라’면서 엄지를 드는데 가슴이 찡했다. 잘못된 노력을 하진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Q. 개인적으로 영화 뒷부분에 윤형주 송창식 등 트윈폴리오가 실제로 깜짝 등장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내심 기대했는데 끝까지 나오진 않더라. (웃음)
강하늘 : 제의를 들였다고 하더라. 근데 정말 두 분이 바쁘시다. 그래서 일정 맞추기 어려웠나 보더라. 그런데 촬영은 한없이 미룰 수는 없고. 그렇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두 분이 실제로 나왔다면 서로 끌어안는 장면 말고, 그 문을 여는 것으로 끝을 맺어도 멋있겠다는 생각이다.
강하늘
Q. 최근 너무 높이 올라가서 내려올 준비도 잘해야 할 것 같다. 대비는 하고 있나.강하늘 : 대중이 보기에는 연극을 선택한 게 한발 살짝 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더 자신감이 붙고, 여유롭게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 찍고, 사인해 주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순수의 시대’만 해도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다. 광고 다 떨어진다고. 그런데 내가 고집했다. ‘많이 올라갔다’고 표현하는데 그런 걸 잘 모르겠다. 그리고 올라간 상황이 있으면 당연히 내려올 상황이 생긴다. 마음이 중요하다. 아직 어리니까 지금부터 배워나가고, 다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미생’으로 행복하냐고 묻는데 별로 행복하지 않다. 사람들은 단것에 빨리 취하고, 계속 찾게 된다. 이런 게 당연하고,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으려고 다그치고 있다.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다시 생각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편하게 행동해도 되는 건데 혹여 다른 의미로 전달되지 않을까에 더 고민하게 된다. 당연히 ‘미생’이 잘 돼서 좋은데 나 스스로만 봤을 때, 마냥 행복하진 않다. 그런 스트레스가 있다. 조금 더 자중하려고, 다 잡으려고 한다. 어른이 되는 기분이기도 하다.
Q. 그래도 ‘미생’에서 인기를 끈 덕에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이 1만 명을 돌파하지 않았나. 최근에 1만 명 돌파 이벤트로 간식을 쏘기도 했고. 솔직히 많이 올라간 거지.
강하늘 : 바보같이 개인카드로 쓴다고 해서 돈을 엄청나게 썼다. 지금까지 지출해본 적 없는 금액을. 하하하.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라고 하더라. 오랜 기간 상영돼서 1만 명은 있는데, 이번에는 첫 한 달 만에 1만 명을 넘은 거다. 550석 규모니까 거의 매일 다 객석이 찼던 거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위안이 됐다. 연극 선택하고 나서 ‘미쳤다’ ‘돌았다’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선택한 게 잘못된 건가, 틀린 건가 등 의심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 틀리거나 잘못된 생각은 아니구나 싶다.
Q. 앞으로 강하늘의 행보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강하늘 : 애초 목표는 1년에 최소 한 편 공연하는 거였다. 시간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무조건 할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작품을 만나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작년에는 못하고, 올해 하게 된 거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2년에 한 편씩은 꼭 하고 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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