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리
My Name is 스테파니 리. 미국에서의 내 세례명이기도 하다. 아빠가 지어준 ‘정아’라는 한국 이름이 있지만, 좀 더 소중하게 다뤄졌으면 해서 그냥 “파니야~ 스테파니야~” 라고 쉽게 불리는 게 더 좋다. 이름 뜻은, 정치 정(政)에 계집 아(娥)를 써서 ‘정치하는 여자’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50년 후를 기대해 주세요~ 하하.미국에서 태어나 시골 섬에서 자랐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휴양지 느낌이 나는 곳으로, 집 앞이 바로 바다였다. 그러니 패션이랑은 거리가 멀었을 수밖에. 백화점을 가려면 차로 한 시간이나 운전해서 가야 했다! (웃음) 그러던 어느 날 ‘도전! 슈퍼모델(America’s Next Top Model)’을 보다가 내가 알던 ‘예쁨’과 다른 ‘예쁨’을 지닌 모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호기심이 생겨 뉴욕으로 향했는데, 그때 내 나이가 한국 나이로 열일곱. ‘엘리트 모델’을 찾아가 우연히 만난 에이전트에게 “I wanna be a model(모델이 되고 싶어요)”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 바로 사이즈 재고, 옷 입어 보고, 사진 찍고. 마침 타이라 뱅크스까지 있었는데, 내게 “동양적으로 예쁘게 생겼다”고 말해줘서 옆에 있던 에이전트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당장 계약하자고 했다. 그 뒤로 쭉, 모델 일을 하게 됐다.
뉴트로지나 광고에 출연한 건, ‘럭(Luck)’이었다. 이쪽 일은 특히 ‘럭(운)’이 필요한 것 같은데, 난 모델 시작부터 이 ‘럭’이 좋았다. 물론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웃음) 내가 한국과 뉴욕을 왔다 갔다 하고 있던 때였다. 회사 언니가 미국에 있던 나한테 ‘뉴트로지나’ 발음을 녹음해서 빨리 보내라고 하더라. 그래서 ‘뉴트로지나’란 단어가 들어간 어떤 문장을 녹음해서 보냈는데, 계약까지 하게 됐다.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 모델 업계가 아닌, 대중 분들은 아직 나를 많이 모르시니, 한 1년간은 ‘뉴트로지나 걸’로 불려도 괜찮을 것 같다.
기운찬 에너지로 가득한 스테파니 리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의 최성윤은 나와 성격이 정반대다.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몇 달 전부터 옷 입는 것부터 해서 말투나 이런 것들을 아예 성윤이처럼 했다. 연기력을 갑자기 쌓을 수도 없으니, 그냥 성윤이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이 “너 이상해졌어” “말을 왜 그렇게 해?”라고 했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눈빛도 이랬으니깐. 이제는 조금은 나를 찾아가면서 성윤이가 배어 나오도록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요샌 촬영장에 가면 다른 친구들이 나를 성윤이처럼 대한다. 하하. 성윤이는 약간 4차원에 뭔가를 아는 듯하면서도 모르는 것 같은, ‘얘 뭐지?’ 싶어지는 그런 아이다. 조금 느리고 둔한 느낌도 있고. 그런데 난, 전혀 그런 성격이 아니거든. 제스처나 모든 것들이 (손등을 세운 뒤 구획을 나누는 동작을 하며) ‘딱딱딱’, 이런 편이다. 에너제틱하기도 하고.성윤이란 캐릭터가 어린 친구들에겐 인기가 좀 있는 것 같다. 사촌 동생들이 초, 중, 고등학생인데 자기 친구들이 “너희 누나 개그맨이야?”라고 물어봤단다. 입술 같은 거 쭉 내밀면서 “억(옥)수수”나 “니야~”, 이런 원초적인 대사나 코믹한 행동을 많이 보여줘서 그런가 보다. 하하. 여운혁 감독님은 “넌 한국에서 이렇게 배우다가 해외로 나가야 해”라고 계속 말씀하신다. 내가 “여기서 하면 안 돼요?”라고 하니깐 “넌, 그 그릇이 아니야. 그래, ‘본드걸’! 그거 해라”라고 하셨다. 한국 친구들보다 외국에서 더 먹히는 얼굴이라서 그런 것 같다. 중국 배우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하더라고. 프랑스나 스페인 쪽에 갔을 때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준 걸 보고 ‘난, 할리우드를 가야겠구나’ 했다. 하하하.
UFC 선수 벤 헨더슨을 좋아한다. 잔인한 걸 즐기는 건 아니고, 경기할 때의 그 ‘무브먼트(움직임)’가 너무 아름답다. (팔을 휘두르는 동작을 천천히 하며)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서 경기 동작을 슬로우 모션으로 한 번 봐보라. 근육이 움직이는 모양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진짜 ‘아트’ 같아 보인다. 농구를 보면 조단이 경기하는 모습이 춤 같잖아. 샤악 샤악 화악. 그런 것 같은 거다. 농구 선수 중엔 하워드랑 론도를 좋아한다. 그 친구들도 ‘무브먼트’가 흐르듯이 이어진다.
매력적인 얼굴의 스테파니 리
배우 서기를 사랑한다. 물론, 사람으로서! (웃음) 그 사람의 에너지가 너무 사랑스럽다. 그리고 오드리 헵번도. 최근에 전시회에서 그분의 삶이 담긴 사진들을 봤는데, 역시 에너지가 좋더라.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를 보면 눈 하나 ‘깜빡’ 하는 것까지도 집중해서 보게 되는데, 그건 정말 엄청난 거라고 생각한다.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으음~”, 이런 이미지면 좋겠다. (감탄하는 듯하면서도 개운한 표정으로) “으음~” 이거. “걔 완전 예뻐’ “섹시해” “귀여워” 이런 것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으면 한다. 오드리 헵번이나 서기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그런 “으음” 같은 거, 나도 그런 게 있었으면 한다.
글. 이정화 le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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