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림, ‘엄마의 꿈’ 저자
박경림이 만난 엄마들의 이야기, 책 ‘엄마의 꿈’은 서문부터 코끝이 찡해지고 만다. 박경림은 그녀의 엄마 이야기로 책을 시작했다. 어느 날 어린 아들로부터 “엄마는 크면 뭐가 될꺼야?”라는 천진한 질문을 받았다는 그, 정작 자신의 엄마에게는 꿈을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 그렇게나 미안했단다. 비단 박경림만 그러했을까. 코 끝 찡해지고 만 우리 모두 엄마의 꿈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저 나의 엄마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했으니 말이다.
당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엄마들이 낳아 기른 딸들이 다시 엄마가 된 지금, 딸들은 지쳐있다. 뚜렷한 자아실현의 욕구와 혹독한 육아의 과정, 희생 가운데 아등바등 힘든 딸들. 그들에게 박경림이 던진 ‘당신 엄마의 꿈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의 울림은 꽤 강렬했었나 보다. ‘엄마의 꿈’에 등장한 모든 딸들이 박경림과의 대화 중 울고 웃으며 자신의 엄마를 이야기하고 서로의 엄마와의 기억을 나웠다. 그 대화 한 가운데 박경림은 엄마와 딸의 깊은 유대를 몸으로 느꼈고, 엄마와 딸들이 만들어갈 세상에 확신이 생겼다고 말한다.
박경림이 이번 책을 통해 만나게 된 인물은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배우 홍은희, 여자 핸드볼 감독 임오경, 배우 신은정 등이 있다
Q. 책 ‘엄마의 꿈’은 연재 인터뷰를 묶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번 인터뷰는 어떻게 제안을 받게 됐고 또 수락하게 됐나.박경림 : 처음부터 엄마를 꿈꾸는 사람은 없다. 엄마는 어느 순간 되어 있는 것이더라.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과 공부를 하게 되지만 엄마가 되는 것은 추상적으로만 생각하지 공부를 하지 못했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매일매일 좌절하며 엄마의 현실을 경험할 때, ‘엄마의 꿈’ 제안이 왔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같은 시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육아와 본인의 일을 어떻게 분배하고 극복하는 것이 답일까’ 하는 궁금증에 시작하게 됐다.
Q. 정말이지 다양한 인물을 만났다. 이들에게 ‘엄마의 꿈’ 이야기를 꺼내니 어떤 반응이 돌아오던가.
박경림 : 본인의 꿈에 대해서는 다들 자신있게 이야기 하더라. 하지만 당신의 엄마의 꿈에 관한 질문은 모두가 당혹스러워했다. 나 역시 ‘엄마의 꿈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엄마의 꿈’ 연재 인터뷰를 시작한 계기였다. 처음에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엄마들을 응원해주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딸로서 엄마의 꿈을 몰랐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역시 이 인터뷰를 마음 먹은 계기였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여전히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더라. 또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때 엄마가 된 우리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또 엄마 역시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기에 모든 것이 버거웠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Q. 책에서보면 당신 어머니의 꿈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고 털어놓는 과정이 나온다.
박경림 : 같이 출연한 한 방송에서 엄마가 당신의 꿈을 이야기 해서 그제야 알게 됐다. 나는 내 꿈 쫓겠다고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 과정에서 늘 날 응원해주고 믿어줬던 엄마였는데 정작 나는 엄마의 꿈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Q. 그런데 모든 인터뷰이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박경림 : 계속 그녀들에게 그녀들의 엄마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게 됐다. 처음에는 다들 ‘그런 생각은 많이 안해봤어요’ 혹은 ‘그런 질문은 처음 들어봤어요’ 라는 반응을 보이더라.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통해 엄마를 같이 느꼈다. 우리는 결국 딸로 돌아가서 같이 울고 웃고 또 다시 엄마로 돌아와서 공감도 많이 했다.
뮤지컬 배우 전수경, 쇼호스트 유난희, 작가 하성란과도 엄마 이야기를 했다" />박경림은 국립발레단 명예예술감독 최태지, 영화제작자 심재명, 대한항공 기장 황연정,
뮤지컬 배우 전수경, 쇼호스트 유난희, 작가 하성란과도 엄마 이야기를 했다
Q. 딸로서 미안한 마음도 함께 공유했겠지만, 자식을 기르는 엄마로서의 이야기도 많이 했을 것이다.뮤지컬 배우 전수경, 쇼호스트 유난희, 작가 하성란과도 엄마 이야기를 했다
박경림 : 그렇다. 다들 유명인들이라 뭐가 힘들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텐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일의 종류와 상관없이 고민도 비슷하고 부딪히는 어려움도 비슷하다. 결국은 모두가 하루하루 극복하고 버텨나가는 것이더라. 그런 면에서 위안도 많이 됐다. 내 스스로가 엄마들과 웃고 울며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를 나누고 또 으?으? 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대화를 마친 지금은 다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육아와 일의 선택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방법이 다르고 선택이 달랐으니 정답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도 그렇게 못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용기를 얻었다.
Q. 인물 선정 과정이 궁금해지더라. 특히 마지막 고(故) 김향안 여사의 경우, 어떻게 책에 싣게 됐는지 가장 궁금해지는 인물이었다.
박경림 : 김향안 여사는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했다. 김환기 선생(화가, 김향안 여사의 남편)의 회고록을 보면서 (김 여사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책에 실린 다른 엄마들은 모두 현존하는 분들인데 이 분만 유일하게 이 세상에 안 계신 분임에도 내가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책에도 썼지만 엄마의 역할은 다양하지 않나. 그 역할을 총체적으로 바라 봤을 때, 엄마는 리스너일 수도 있고 리더일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빌리버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믿어줌으로써 누군가의 꿈이 실현되는 것, 그 꿈에 날개를 달아주는 존재가 되는데 그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 분이 김 여사였다. 책을 통해 만나게 된 김 여사는 김환기라는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데에 일등공신이었다. 희생도 있었으나, 가장 큰 것은 역시 무한한 믿음이었다. 모든 엄마들이 누군가의 빌리버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녀를 이야기 하기로 했다.
Q. 흔히 자식 낳아 길러본 이들이 하는 말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다고 한다. 엄마가 된 이후 당신이 경험한 내적 성장은?
박경림 :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는 직업의 종사자인데, 아이를 낳기 전에는 기다려주는 것이 좀 짧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절대적으로 기다려줘야하는 존재더라.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다. 3개월을 기다려야 배밀이를 하고 1년을 기다려야 서고 걷는다. 그러니 누군가를 만날 때 늦거나 내 마음 같지 않더라도 기다려주게 된다.
Q. ‘엄마의 꿈’ 책을 읽고 또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엄마가 된다는 것은 결국 성숙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점에서 사실 육아 휴직의 짧은 단절을 큰 손실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의 시각은 단편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조직원이 성숙해져서 돌아오는 것 아닌가.
박경림 : 그렇다. 조직원의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공간적으로는 단절이 될 지언정, 한 인간이 감정적으로도 또 생각하는 폭에서도 더 성숙해져서 돌아오게 되니 결국은 추가라고 생각된다. 나 역시 엄마가 되고 나서 사람을 보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일단은 사람을 바라봤을 때, 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또 육아의 과정을 통해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며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다시 조직으로 돌아왔을 ? 기능적으로는 공백이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보다 더 큰 마음으로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된 것이 가장 큰 성장이다.
농구코치 전주원, SM C&C 대표 송경애, 환기미술관 설립자 김향안도 박경림이 만난 사람" />배우 박은혜. 바둑기사 한해원, 방송인 최윤영, 소아정신과 의사 신의진, 배우 채시라,
농구코치 전주원, SM C&C 대표 송경애, 환기미술관 설립자 김향안도 박경림이 만난 사람
Q. 그래서일까. 확실히 요즘의 박경림은 디테일하다. 기자들 입장에서도 행사장에서 만나면 기자들의 입장까지도 놓치지 않고 짚어준다는 점에서 감동스러웠던 적도 많았다.농구코치 전주원, SM C&C 대표 송경애, 환기미술관 설립자 김향안도 박경림이 만난 사람
박경림 : 영향이 없지 않다. 과거에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했다. 재미가 없으면 끝이다라고 생각했고 또 무엇보다 내가 돋보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예컨대, 한 행사에서 몇백명의 기자들이 왔다면 기자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생각하게 되고 또 행사를 주최한 제작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참가한 배우들 입장에서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를 고루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좀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Q. 그런 공감능력이 여성 진행자의 가장 큰 강점일텐데, 사실 요즘 예능계는 여전히 남성 주류 아닌가. 아쉽지 않나.
박경림 : 남성 진행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나 역시 그들을 좋아한다. 일단 재미있다. 또 남성이기에 잘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똑같이 망가져도 남자 예능인이 망가졌을 때와 같은 것을 여자 예능인이 할 때 바라보는 시각차가 있는 것 같다. 또 동시에 여자들이 더 잘 하는 것도 분명 있다. 선배들을 봐도 여자 선배들이 더 공감능력이 있더라. 다만, 지금은 그런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활동할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때를 기다리면 또 많은 분들과 공감하며서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다보면 찾아온다. 무조건 ‘설 자리가 없어요’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늘 스스로를 훈련하고 있어야 한다.
Q. 당신은 말을 하는 직업인만큼, 늘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어야 한다. 다시 자신을 채우는 시간은 언제인가. 육아까지 겸하고 있어 혼자의 시간은 가질 수 없을 것 같은데.
박경림 : 거의 없다고 본다(웃음). 그런데 어릴 때는 나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늘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싶었으나, 어느 순간 진행을 잘 하시는 선배들, 유재석 씨나 김국진 씨를 보면 말수를 최대한 줄이면서 상대를 빛나게 해주는 능력이 탁월하더라. 이제 이 일을 한지 15년이 넘다보니 나도 내 이야기를 많이 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다. 물론 상대가 굉장히 말 수가 적으면 내가 말을 많이 해야하지만. 어느 정도의 수위 조절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Q. 지금은 톱스타가 된 최진혁도 있고, 과거 힘든 시절 박경림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는 이들이 많다. 엄마가 되어서 더 성장해 남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하지만, 이런 일화를 듣다보면 원래도 주변을 돌아보는 따듯한 성정이었던 것도 같다.
박경림 : 나 역시 진혁이도 그렇고, 나라나 수영이 등 그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위안을 얻으니까. 그리고 10년 넘게 방송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인생이 길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돌아온다. 누군가의 말을 끊어가며 밟고 올라서지 않더라도 묵묵히 열심히 하다보면, 남을 돋보이게 한다고 해서 내 빛이 없어지지 않더라. 사람은 제각각 고유의 빛이 있어, 남이 더 빛난다고 해서 내 빛을 빼앗기지는 않더라.
Q. 끝으로, 어린 아들도 궁금해했던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박경림 : 과거에는 거창하게도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자서전이나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멋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그녀가 겪어온 경험들 이겨낸 역경을 다 모른 채 그냥 가장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라는 점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꿈은? 엄마 박경림이 아닌 방송인 박경림으로서는 오랫동안 방송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평범한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꿈 역시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특히나 방송은 내가 선택을 당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또 하나 덧붙이자면, 누구와 대화를 하더라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다.
Q. 그리고 엄마로서의 꿈은?
박경림 : 아들 민준이가 엄마가 하는 일을 멋지게 생각해주면서 동시에 엄마 박경림에 대해서는 평범하게 생각해주는 것이 내 꿈이다. (Q. 민준이는 엄마가 방송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아직은 TV는 만화만 봐서, 엄마가 TV에 나오는 것은 모르지만, 함께 다니며 라디오를 들었던 적은 있어 엄마가 라디오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앞으로 민준이가 엄마가 하는 일이 사람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것이라고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엄마 박경림은 재미있게 잘 놀아주는 엄마로 생각해준다면 좋겠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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