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부블레
마이클 부블레는 꼭 나훈아 같았다. 기름기가 흐르는 노래부터 관객을 웃기는 유머감각, 느끼하지만 왠지 매력적인 제스처, 그리고 능글맞은 표정까지. 영락없었다. 지난 세기의 음악, 지난 세기의 스타일을 가진 부블레는 연미복을 입고 말끔한 크루너 보컬을 들려 줬다. 프랭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 토니 베넷 등 미국의 전통적인 음악을 선보이는 그에게서 트로트 가수의 넉살을 느끼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부블레의 내한이 알려졌을 때 업계에서는 집객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는 너무나 미국적인 가수이기 때문이다. 스윙 빅밴드가 함께 하는 1930~40년대의 복고적인 무대에 팬들이 얼마나 반응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부블레의 첫 내한공연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관객이 들어찼으며 열기도 대단했다. 아카펠러 그룹 내추럴리세븐(Naturally 7)의 40분 가까운 오프닝이 끝나고 20분이 넘게 흘러도 부블레는 무대에 나오지 않았다.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부블레가 등장해 경사진 무대를 슬라이딩하며 담백한 음색을 선사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30초도 흐르지 않아 그가 대단한 ‘쇼맨’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바로 ‘크루너 간지’였다. 연미복을 입고 나와 유선 마이크의 끝 부분을 지긋이 잡고 꾸부정한 자세로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마치 영화 ‘대부’ 속의 연회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여성들은 자지러졌다. “너무 멋지다. 섹시하다.”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입담도 대단했다. 스윙 리듬 위로 느끼하게 노래를 하다가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지루해질 것 같으면 연신 썰렁한 농담을 던졌다. “오늘 밤 데이트를 하시는 분들은 ‘더티 섹스’를 나누길 바란다. 솔로로 오신 분들은 커플과 함께 쓰리썸을 시도해보시길”이라고 19금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 하긴 그의 음악은 엄연히 성인가요이기 때문에 성인농담이 나오는 게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농담으로 웃겨주다가 ‘해븐트 멧 유 옛(Haven’t Met You Yet)’ ‘올 오브 미(All Of Me)’와 같은 로맨틱한 곡으로 넘겨버리는 게 그의 ‘수법’ 같았다. 중간에 태양의 ‘눈,코,입’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에브리바디(Everybody)’ 등을 노래하는 팬서비스도 선사했다. 빅밴드 멤버 소개를 마치 NBA농구 선수 소개 영상처럼 만든 센스도 관객을 웃겨줬다.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실력이 대단했다. 객석에서 춤추는 남자 관객을 발견한 부블레는 “월드투어를 돌면서 남자가 춤추는 것은 처음 봤다”며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려 춤을 추게 하고 본인은 랩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댓츠 올(That’s All)’ ‘하우 캔 유 멘드 어 브로큰 하트(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등의 느린 템포의 곡을 연달아 부르더니 지겹다는 표정으로 “이제 느린 곡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며 댄스와 함께 다프트 펑크의 디스코 곡 ‘겟 럭키(Get Lucky)’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필링 굿(Feeling Good)’ ‘홈(Home)’ 등 국내에 잘 알려진 노래들도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사실 잠실실내체육관이라는 장소가 빅밴드의 사운드를 섬세하게 소화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춤추며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부블레의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만약에 그를 시골 동네잔치에 보내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웃기며 노래할 것 같았다. 공연 막판에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육성으로 ‘송 포 유(Song For You)’를 노래하며 강한 여운을 남겼다.
주최사인 CJ E&M 측은 이날 공연에 6,000명의 관객이 입장했다고 전했다. 부블레는 한국 관객의 열정적인 반응에 매우 고무된 것으로 보였다. 그는 “티켓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공연을 보러 와줘서 너무 감사하다. 반드시 다시 한국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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