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토토가’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을 때 영화 ‘정글스토리’를 찾아보게 됐다.‘정글스토리’는 故신해철이 OST를 맡아서 그나마 알려졌던 영화였다. 흥행은 서울 관객 6,000여명에 머물렀는데 OST는 무려 50만 장 이상이 나갔다는 전설의 영화. 지금은 보고 싶어도 ‘어둠의 경로’로도 구할 수 없는 희귀영화다.
이 영화는 YB 윤도현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밴드가 하고 싶어서 파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도현(윤도현)은 낙원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겨우 팀에 들어가게 된다. 클럽 ‘록월드’에서 공연을 하다가 매니저(김창완)에게 발탁돼 엉겁결에 솔로가수 데뷔를 한다. 하지만 투자사가 앨범을 엎으면서 솔로 활동이 흐지부지되고 초심으로 돌아간 윤도현은 밴드를 다시 모아 공연을 열게 된다는 내용.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를 보다가 ‘정글스토리’가 떠오른 이유가 있다. 이 영화는 90년대 가요계의 한 단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때를 보자면, 80년대 파고다 시대가 저물고 90년대 홍대 인디 신이 꽃피기 전, 그러니까 한국 록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언더그라운드로 침체되던 딱 그런 시기다.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실제로 90년대에는 영화 속 도현처럼 많은 록 보컬리스트들이 밴드가 아닌 발라드가수로 데뷔했다. 암흑기였던 것이다. 음악평론가 강헌이 시나리오에 참여한 ‘정글스토리’는 다큐멘터리처럼 당시 밴드들의 힘든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실존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해 사실감을 더한다. 당시 헤비메탈의 메카였던 클럽 ‘록월드’의 강기주 실장은 영화 속에서도 록월드의 실장으로 나오고 시나위, 넥스트, 멍키 헤드 등도 멤버들 그대로 등장한다. 기타리스트 김광석은 솔로가수 윤도현의 편곡자로 나오는데 “편곡비나 제때제때 줘”라고 하는 대사가 연기가 아닌 듯 자연스럽다. 영화에는 록월드가 문 닫는 장면도 나온다. ‘토토가’의 가수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겠지만, 이러한 영화 속 ‘록의 9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영화는 망했지만 OST에 담긴 신해철의 노래 ‘절망에 관하여’ ‘아주 가끔은’ 등은 히트곡이 됐다. 당시 수많은 청춘들은 노래방에서 ‘절망에 관하여’를 절규하며 불렀다. 이 곡은 영화 속에서 윤도현이 소수의 관객을 앞에 놓고 공연을 하는 슬픈 장면에서 연주곡으로 흐른다.
그런데 정말 영화 같은 일도 벌어졌다. ‘정글스토리’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윤도현이 정말로 록 스타가 된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윤도현은 윤도현 밴드를 통해 히트곡을 내고 2002년 월드컵을 지나면서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OST 속지에서 ‘크게 될 도현이’라고 적었던 신해철의 촉이 딱 들어맞은 것이다.
영화에 깜작 출연한 신해철
‘토토가’가 90년대를 소환한 것이 좀 이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다. 헌데 신해철이 1996년에 ‘70년대에 바침’이란 노래를 발표한 것을 보면, 이 소환이 그리 이른 것 같지는 않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토토가’에 90년대 록밴드나 록 가수는 없다. ‘정글스토리’ 도현처럼 록밴드에서 솔로로 데뷔한 이들 중에는 90년대에 잘나간 가수도 꽤 있는데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소찬휘가 록밴드 기타리스트 출신이긴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방송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사실 ‘토토가’에 나온 이들은 지금은 중견이지만, 당시에는 최고의 아이돌 스타들이었다. 그리고 때때로 예능을 통해 얼굴을 내비쳐 우리 곁을 아주 떠났던 이들은 아니다) ‘토토가’가 소환한 90년대 가요도 의미가 있지만, 90년대에는 더 많은 좋은 음악들이 있었다. 망한 영화 ‘정글스토리’ 속 90년대가 ‘잃어버린 90년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의미 있는 90년대’로 남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식의 재조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인디 신 탄생 20주년이 되는 해다.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정글스토리’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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