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처럼 가수들의 죽음이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긴 적은 없었을 것이다. 서울 S병원에서 장 협착증 수술을 받은 후 가슴과 복부 통증으로 인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숨진 신해철의 사망은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팬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안겨줬다. 교통사고로 숨진 레이디스코드는 아직 다 꽃을 피우지 못한 걸그룹의 사망이라는 점에서 아픔이 컸다. 이와 함께 한국 재즈계의 거인 정성조, 팝 컬럼니스트 서병후, 블루스맨 채수영, 시베리안허스키의 유수연, 가수 유채영, 죠앤 등의 사망 소식이 이어졌다.

해외 거장들의 죽음도 이어졌다. 프로테스트 포크의 거두 피트 시거, 크림 출신의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 영혼의 보컬리스트 조 카커, 재즈 연주자 호레이스 실버와 찰리 헤이든, 작사가 제리 고핀, 라틴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 크루세이더 출신의 조 샘플, 맨하탄 트랜스퍼의 리더 팀 하우저 등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올해 해외 대중음악계 부고를 정리했다.

피트 시거
피트 시거
피트 시거

행동하는 포크음악의 거장 피트 시거
프로테스트 포크의 거장이면서 반전운동에 앞장섰던 피트 시거는 지난 1월 27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4세. 피트 시거는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피트 시거 미국의 포크 붐을 일으킨 ‘포크 리바이벌’의 중심에 있었다. 모던포크의 산실이 된 그리니치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밥 딜런, 조운 바에즈 등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선동적이고 반체제적인 노래로 미국 보수층의 예의 주시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50~60년대에는 공산주의자로 볼려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웨어 헤브 올 더 플라워즈 곤?(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이프 아이 헤드 어 해머(If I Had A Hammer)’와 같은 비판적 가사로 국내에서 한때 주요 검열 대상이기도 했다. ‘위 쉘 오버 컴(We Shall Over Come)’은 전 세계의 집회현장에서 불리는 노래다. 시거는 전 세계의 민요를 모던포크로 편곡해 노래해 미국에 보급하는 역할도 했다. 6·25 참전용사였던 그는 ‘아리랑’을 녹음하기도 했다.

고인은 인권 반전, 친환경 메시지를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 1940년대 스페인 내전 때부터 사회 운동에 나서 60년대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이르기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2011년에는 92세 고령의 나이로 투기자본금융을 비판하는 집회 ‘월가 점령’에 지팡이를 짚고 참석했다.

플라멩코기타의 전설 파코 데 루치아
스페인의 전설적인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는 2월 26일(현지시간) 멕시코 칸쿤 해변에서 가족과 휴가를 보내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7세. 스페인 왕실은 고인의 유족에게 조전을 보내 위로했다.

파코 데 루치아는 미국의 재즈 연주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특히 존 맥러플린, 알 디 메올라와 함께 1981년에 녹음한 음반 ‘프라이데이 나이트 인 샌프란시스코(Friday Night in San Francisco)’는 최고의 기타 라이브 앨범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파코 데 루치아는 칙 코리아 등 미국의 정상급 재즈 연주자들과 교류했다. 또한 파코 데 루치아가 기타를 연주한 브라이언 아담스의 노래 ‘해브 유 에버 리얼리 어브드 우먼(Have You Ever Really Loved Woman)’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파코 데 루치아는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는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파코 데 루치아 스타일의 연주를 구사한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재즈 페스티벌에 서는 등 왕성한 연주활동을 이어왔다.

호레이스 실버
호레이스 실버
호레이스 실버

블루노트 대표하는 재즈 피아노의 거장 호레이스 실버
재즈 피아노의 거장 호레이스 실버는 현지 시간으로 6월 18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호레이스 실버는 미국의 재즈의 명가 블루노트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하드밥 피아노를 개척한 선구자이면서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낸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고인이 남긴 1965년 앨범 ‘송 포 마이 파더(Song For My Father)’는 재즈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의 명반으로 칭송받고 있다.

1950년대 중반 마일스 데이비스, 스탄 게츠(Stan Getz) 등 재즈계의 거물들과 함께 레코딩을 하기 시작한 실버는 아트 블레이키와 함께 재즈 메신저스를 조직해 활동하면서 날개를 폈다. 재즈 메신저스를 통해서는 당시 재즈의 새로운 노선이었던 하드밥의 어법을 완성시켰다. 이후 자신의 퀸텟을 조직한 호레이스 실버는 블루노트 레이블을 통해 수많은 명연을 남긴다. 그가 남긴 대표곡으로는 ‘송 포 마이 파더’ ‘론니 우먼(Lonely Woman)’ ‘니카스 드림(Nica’s Dream), ‘더 프리처(The Preacher)’ ‘스노어 블루스(Senor Blues)’ 등이 있다. 1996년에는 ‘다운비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05년에는 미국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Nation Academy of Recording Arts &Science)로부터 대통령 공로상을 받았다.

캐롤 킹(왼쪽), 제리 고핀
캐롤 킹(왼쪽), 제리 고핀
캐롤 킹(왼쪽), 제리 고핀

팝 역사상 최고의 작사가 제리 고핀
팝 역사상 최고의 작사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리 고핀은 6월 19일(이하 미국 시간) 75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제리 고핀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캐롤 킹과 작사 작곡 콤비로 잘 알려져 있다. 1959년에 결혼한 둘은 1961년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한 슈렐즈의 ‘윌 유 러브 미 투마로우(Will You Love Me Tomorrow)’를 시작으로 약 10년 동안 네 곡의 빌보드 1위곡을 포함해 무려 40여 곡의 히트곡을 남겼다. 이외에도 고핀은 다른 작곡가들과 협업을 통해 80년대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만들었다.

캐롤 킹-제리 고핀 콤비는 비틀즈의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엘튼 존-버니 토핑 등과 함께 팝 역사상 최고의 명콤비로 남아 있다. 둘이 함께 만든 곡 중 아레사 프랭클린의 ‘유 메이크 미 필 라이크 어 내추럴 우먼(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리틀 에바의 ‘더 로코-모션(The Loco-Motion)’, 쿠키스의 ‘체인스(Chains)’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킹-고핀의 곡들은 후대의 수많은 가수들이 다시 불렀다. ‘체인스’는 비틀즈가 노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리 고핀은 퀸즈 대학에 다닐 당시인 스무 살에 열일곱 살인 캐롤 킹과 결혼한다. 둘은 60~70년대에 뉴욕의 음악 출판회사인 알든 뮤직(Aldon Music)에 전속 작사 작곡 팀으로 소속돼 수많은 히트곡을 함께 만들었다. 당시 둘이 함께 만든 곡은 편집음반 ‘고핀 & 킹 송북(Goffin & King Songbook)’으로 발매됐다. 둘은 1968년에 이혼했지만, 이후에도 몇 곡을 함께 만들었다. 1990년에는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캐롤 킹은 제리 고핀의 죽음에 대해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제리는 내 첫 사랑이었다. 그는 내 인생과 이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가사들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전했다.

바비 워맥
바비 워맥
바비 워맥

소울의 거장 바비 워맥 별세
소울의 거장 바비 워맥은 6월 27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외신은 “지난해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고 이전부터 오랜 기간 마약중독으로 고생한데다 결장암 수술도 받는 등 건강에 문제가 많았다”고 전했다.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바비 워맥은 긴 시간 미국 소울음악 계에서 활동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2009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열 살 때 형들과 가스펠 그룹인 워맥 브라더스를 결성했다. 이후 더 발렌티노스로 이름을 바꾸고 ‘잇츠 올 오버 나우’와 ‘루킹 포 어 러프’ 등 곡을 히트시켰다. ‘잇츠 올 오버 나우’는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롤링스톤스가 불러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소울의 전설 샘 쿡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다. 1960년대에 솔로로 전향 후 2012년까지 앨범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대표작으로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어크로스 원 헌드레드 텐쓰 스트리트(Across 110th Street)’ 등을 남겼다.

찰리 헤이든
찰리 헤이든
찰리 헤이든

재즈계의 거인 찰리 헤이든
재즈계의 거인 찰리 헤이든은 7월 11일(현지시간) 76세의 나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소아마비 증후군으로 인한 질병을 앓아왔다.

찰리 헤이든은 오넷 콜맨, 팻 메시니, 키스 쟈렛 등 최고의 연주자들과 협연해오는 한편 자신의 솔로 활동 등을 통해 수십 년간 정상의 재즈 베이시스트로 군림해왔다. 국내에서는 팻 메시니와 함께 듀오로 발매한 1997년 앨범 비욘드 더 미주리 스카이(Beyond The Missouri Sky)가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프리 재즈 연주자 오넷 콜맨과 ‘더 쉐이프 오브 재즈 투 컴(The Shape of Jazz to Come)’을 함께 작업하면서 부터다. 이후 키스 쟈렛 트리오, 폴 모션, 듀이 레드맨과 함께 아메리칸 퀄텟으로 활동하며 프리 재즈와 정통 재즈를 아우르게 된다. 찰리 헤이든은 음악을 통해 저항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70년대에는 칼라 블레이와 함께 리버레이션 뮤직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스페인 내전을 연주로 구현했으며, 반전을 부르짖는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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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블루스의 전설 조니 윈터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 조니 윈터는 7월 16일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44년 텍사스 보몬트에서 태어난 고인은 최근까지도 텍사스에서 활동을 이어간 진정한 텍사스 블루스맨이었다.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올랐다. 조니 윈터는 14세 때 친동생 에드가 윈터와 밴드를 결성했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1968년 ‘롤링스톤’의 텍사스 특집 기사에 실리면서다. 이듬해 조니 윈터는 데뷔앨범 ‘조니 윈터(Johnny Winter)’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조니 윈터는 릭 데린저와 함께 조니 윈터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으며 비비 킹, 윌리 딕슨, 머디 워터스 등 블루스의 전설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조니 윈터가 프로듀스를 맡은 머디 워터스의 앨범 ‘아임 레디(I’m Ready)’는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머디 워터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조니 윈터는 파이프 자른 것을 슬라이드바로 사용했다. 조니 윈터는 올해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는 등 노년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죽기 이틀 전인 지난 14일에는 프랑스 까오르 블루스 페스티벌에서 공연했으며 9월에 새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즈에서 R&B까지, 조 샘플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조 샘플은 9월 12일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75세. 고인은 재즈와 R&B 등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재즈 크루세이더스로 1961년 첫 앨범 ‘프리덤 사운드'(Freedom Sound)’를 발표해 인기를 얻은 그는 70년대로 접어들면서 크루세이더스로 팀 이름으 개명하고 펑키한 R&B를 들려줬다.

랜디 크로포드가 보컬로 참여한 대표곡 ‘스트리트 라이프'(Street Life)’는 빌보드차트 36위까지 올랐다. 샘플은 마일스 데이비스, 마빈 게이, 슈프림스, 조니 미첼, 티나 터너, 비비 킹, 스틸리 댄, 조지 벤슨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앨범에도 참여했다.

원조 아카펠라 스타그룹 맨하탄 트랜스퍼의 팀 하우저
‘자바 자이브(Java Jive)’로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보컬 그룹 맨하탄 트랜스퍼의 리더 팀 하우저는 10월 16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72세. 남녀 혼성그룹 맨하탄 트랜스퍼는 재즈와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출중한 화음을 들려줘 아카펠라 그룹의 교과서로 꼽힌다.

팀 하우저의 음악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69년에 맨하탄 트랜스퍼를 결성했지만 인기를 얻지 못해 팀을 해체하고 공사장인부, 택시운전 등을 했다. 택시 운전 중 태운 로렐 메시와 의기투합을 하고 재니스 시걸, 앨런 폴을 맞이해 2기 맨하탄 트랜스퍼를 결성하고 ‘자바 자이브’ 등 히트곡을 내며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1980년에는 퓨전 재즈 그룹 웨더 리포트의 ‘버드랜드(Birdland)’에 가사를 붙인 곡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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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과 재즈를 넘나든 잭 브루스
에릭 클랩튼과 록밴드 크림(Cream)으로 영광을 함께 했던 베이스 연주자 잭 브루스는 10월 25일 71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베이시스트 겸 보컬이자 작곡가인 잭 브루스는 영국이 나은 가장 위대한 연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0대 때부터 재즈 빅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한 그는 영국 블루스 록의 거물 알렉시스 코너가 이끄는 밴드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에서 그레이엄 본드, 딕 헥스톨 스미스, 진저 베이커 등 유망한 연주자들과 함께 했다.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가 와해된 후 잭 브루스는 잔여 멤버 그리고 존 맥러플린과 함께 그레이엄 본드 퀄텟을 결성해 재즈를 연주했다.

잭 브루스는 존 메이올이 이끄는 블루스 브레이커스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면서 에릭 클랩튼을 만나게 된다. 이후 에릭 클랩튼, 진저 베이커와 함께 크림을 결성하면서 영국 록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크림은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인 ‘슈퍼 밴드’로 명성을 날렸다. 크림의 해체 후 잭 브루스는 록 외에 재즈, 블루스, 월드뮤직, 클래식, 프리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다. 꾸준히 솔로앨범을 발표하는 한편 코지 파웰, 게리 무어, 로빈 트로워, 빌리 코뱀 등 최고의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했다. 블랙사바스의 토니 아이오미는 “대중음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잭 브루스의 부고를 듣고 매우 슬펐다. 그는 다른 많은 연주자들의 영웅이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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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보컬리스트 가수 조 카커
불세출의 가수 조 카커는 12월 22일 폐암투병 끝네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68년에 비틀즈의 곡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로 영국 UK차트 1위에 오르며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이듬해 미국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버전은 미국 인기 드라마 ‘케빈은 12살(The Wonder Years)’에 삽입돼 국내에도 알려졌다.

조 카커는 백인임에도 흑인의 소울 창법을 구사하는 ‘블루 아이드 소울’의 대표주자로도 알려져 있다. 사자같이 울부짖는 특유의 거친 목소리를 통해 남성적인 보컬리스트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국내에서는 빌리 프레스턴의 원곡을 커버한 ‘유 아 소 뷰티풀(You Are So Beautiful)’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1983년에는 제니퍼 원스와 듀엣으로 부른 ‘업 웨어 위 빌롱(Up Where We Belong)’이 그래미상을 받았다. 미국의 유력매체 ‘롤링스톤’이 2008년에 선정한 ‘최고의 보컬리스트 100’에서 카커는 97위에 올랐다. 2012년에는 22집 ‘파이어 잇 업(Fire It Up)’을 발표하는 등 고령에도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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