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사람이고 싶다” 드라마 ‘미생’을 보다가 장그래(임시완)의 한 마디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XX, 영화판은 8할이 장그래인데…” 이 업계에 들어와 일한 지 10년. ‘비정규직’ 딱지를 운명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입장이다 보니, 계약직들의 설움을 보면 내일 인 것 마냥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영화과를 졸업하자마자 큰 꿈을 품고 충무로 영화 촬영부 막내로 들어갔지만, 현실은 허허벌판이었다. 저임금, 임금체불, 밤샘 촬영, 열악한 복지, 월화수목금금금 주말 없는 노동…명절 ‘떡값’은커녕 영화가 흥행해도 ‘보너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이 바닥이다. 언제 촬영이 끝날지 예측 불가능한 스케줄 탓에 여자 친구로부터 ‘바람남’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바람을 너무 맞춘다나 뭐라니. 그래도 어릴 때는 바보같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이게 나의 열정이야!’라고. 나뿐 아니었다. 영화판의 많은 ‘미생’들이 열정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말하지 못했다.
천만 영화 탄생 주기가 짧아지고,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시대를 열자 어머니도 ‘이젠 돈 좀 벌어서 효도하려나’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아이고, 죄송해요 어머니. 아쉽게도 영화 시장은 바뀌는데 현장 시스템은 그대로다. 영화판에 어마어마한 돈이 돈다는데 스태프들이 손에 쥐는 돈은 제자리걸음이다. 그 사이에서 생기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장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충무로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도제시스템’의 영향이 크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이 개선되리라 희망에 부풀었던 때가 있었다. 2011년 5월 영화계가 ‘표준근로계약서’라는 걸 만들었을 때 많은 현장 스태프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표준근로계약서의 핵심은 스태프 각자가 일한 양을 시간 단위로 계산해 지급하는 ‘시급제’다. 임금이 월단위로 지급되고, 4대보험이 적용되고, 1일 1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는 시급의 50%가 가산되고, 일주일에 한번 휴식도 가능하단다. ‘와, 버틴 자에게 복이 있나니’했는데, ‘역시나’ 김칫국이었다. 1년이 지나도 무소식, 2년 지나도 깜깜 무소식, 3년이 지나자 몇몇 제작사가 시범적으로 도전했으나, 강제성이 없는 ‘표준근로계약서’는 희망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스태프들의 희망고문 속에서 한국영화들은 연이어 샴페인을 터뜨렸다. 올해 흥행 초대박을 터뜨린 모 영화의 스태프들은 보수도 못 받고 추가 촬영을 했다는데, 워낙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영화흥행 기념으로 달랑 휴대폰 충전기 하나씩 받았다고 하니, 어째 내 몸이 방전되는 느낌이다.

그래서였다. ‘국제시장’이 합리적인 형태로 표준근로계약을 준수하는지에 이목이 집중된 건. 180억 규모의 주류영화이다 보니 ‘국제시장’의 표준근로계약서 이행 결과는 다른 영화들에도 파급력을 지닐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국제시장’ 스태프들의 만족도가 꽤나 높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른 현장과 비교해서 확실히 이상적”이었다는 ‘국제시장’ 조정희 촬영퍼스트의 말을 들어보니, 괜한 헛소문은 아닌가 보다. 그녀는 ‘국제시장’을 겪으며 표준근로계약서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본 듯 했다. “좋은 현장을 경험한 스태프들이 늘어나면 그들이 다른 현장에 가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이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영화 현장이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국제시장’을 통해 처음 영화판을 경험했다는 다른 파트의 막내스태프는 “다른 영화촬영에 들어가고 나서야 ‘국제시장’에서 이행한 표준근로계약서의 장점을 실감했다”고 한다. “경험해 본 자만이 어떤 게 좋고 나쁜 줄 안다”는 그의 말에서 희망을 찾아도 될까. 아, 괜히 기대했다가 상실감만 커지려나. 일한 만큼의 권리를 갖고 싶다는 것뿐인데, 우리 영화판 ‘미생’들에겐 그게 왜 그리 어려운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현장이지 말입니다!②‘국제시장’ 길영민 대표, 일한 만큼 대우받을 ‘을(乙)의’ 권리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제공. 명필름, JK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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