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눈물이 정말 없는 편이었거든요. 근데 ‘미생’을 하면서 굉장히 많아졌어요”Q. 처음부터 ‘미생’이 잘 되리라는 예상이 있었나
당차고 씩씩할 것만 같은 그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더니 눈물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죄송하다”며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지난 7월 ‘미생’ 촬영을 앞두고 만났던 강소라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의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다섯 달 후, 사회적인 신드롬을 낳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다시 만난 그에게서는 이성도 감성도 훌쩍 성장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강소라: 잘 될지보다는 안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신입사원 역이니 지금이 아니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꼈던 시기에 만나 더 좋았다. 이번처럼 욕심없이 나를 작품에 맡기고 연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좋은 작품에 내가 잘 묻어난 것 같다. 워낙 대본에 표현하는 부분이 잘 나와 있어서 어떻게 해야할까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해야 잘 표현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많이 했다. 대본 자체가 이해 안되는 부분이 없었다. 배우로서 즐거웠다.
Q. ‘미생’은 강소라에게 어떤 작품이었나
강소라: 내 눈을 너무 많이 높여줬다. 이후 다른 작품을 어떻게 하나란 고민을 할 정도로. 원래 눈물도 별로 없는 편인데 ‘미생’을 하면서 굉장히 많아졌다. 몰랐던 감성을 일깨워준 작품인 것 같다.
Q. ‘미생’에서 다른 캐릭터들은 이른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는 얘기도 들을 정도로 원작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반면 안영이 역할은 드라마와 만화의 싱크로율이 떨어졌던 것 같다. 만화에서는 안영이가 상사들의 기를 확 죽이는 캐릭터인 반면 드라마에서는 여기저기서 치이고 내면적인 갈등도 많이 겪는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 같다.
강소라: 영이가 만화에 드러난 부분이 많지 않다. 홍일점으로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영이 비중이 많았다.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부족한 부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서툴고 어릴 적 부모님에게 당한 게 많다 보니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내면의 상처가 많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회상 장면에서 숏컷 머리스타일이었던 것은 군인이었던 아빠가 아들을 원해,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음을 뜻했다면 이후 아빠와의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한 후 여성성을 지니고 머리도 길러보고 화장도 하는 인물로 바뀌었다.
Q.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영이의 인생 스토리를 직접 다 작성했다고 들었다.
강소라: 작품에 나오지 않은 영이의 삶을 탐구해야 대본에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내가 소화할 수 있다. 어릴 적엔 남자아이를 원했던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학창시절엔 공부를 꽤 잘하는 우등생이었고, 대학시절에 연애는 어떻게 했을지를 세세히 다 상상해서 써봤다. 결과적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Q. ‘미생’에서는 로맨스가 나올 듯 나오지 않은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안영이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업무적이고 어디까지가 사적인 관계였을까.
강소라: 남녀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이성간의 호감이 없을 수는 없다고 본다. 초반에 안영이가 장그래에게 말도 많이 걸고 그랬던 건 낙하산이라는 소문에 영이 입장에서는 장그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굳이 조언을 안해줘도 될 정도로 장그래가 성장해서 영이가 필요없었던 것 같고. 그러다 장백기(강하늘)는 오히려 아무 도움도 필요없는 인물처럼 보였다가 회사 적응 과정에 고난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진 것 같다.
Q. 실제로 강소라라면 어떤 타입의 인물에 더 끌리나
강소라: 음…. 장그래?
Q. 장그래, 한석율, 장백기, 안영이 등 인턴 4인방 중 실제 강소라와 가장 비슷한 인물을 꼽으라면
강소라: 내가 장그래였던 것 같다. 감독님은 오차장님이었던 것 같고. 만일 내가 입사해서 생활하게 된다면 장그래 반, 한석율 반의 모습일 것 같다. 처음에는 어리바리하고 적응도 잘 못하지만 관계가 풀리면 술자리를 압도할 만큼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Q. 그렇다면 실제 안영이와 강소라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되나?
강소라: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건 비슷하다. 나도 안영이도 일단 일에 대한 욕심이 있는 인물들이다. 다른 게 있다면 소통? 나는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40% 정도 비슷한 것 같다.
Q. 극중 안영이의 자연스러운 외국어 실력도 화제였다.
강소라: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다. 외동딸이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가 디즈니 비디오를 갔다주셨다. 때론 자막이나 더빙이 없는 비디오도 많았는데 그걸 이해하려고 많이 듣고 거의 50번씩은 반복해서 본 것 같다. 러시아어는 이번에 처음 배웠다. 태어나서 듣도보도 못한 말이라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데 다른 배우들이 외국어를 할 때 보면 너무 발음에만 치중하다 보니 안 들릴 때가 있더라. 결국 중요한 건 의사소통이니 발음이 잘 안되더라도 소통에 주안점을 두자고 생각하며 익혔다.
Q. 드라마 상에서 ‘365만원’이라고 찍힌 안영이의 급여도 관심을 모았다. 신입사원의 월급치곤 꽤 많지 않나
강소라: 처음엔 많다고 느끼는데 실제론 안 그렇더라. 매일같은 야근에 업무량도 상당하고 해외 출장도 잦은 업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늘 대단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Q. 극중 안영이가 하대리 등 상사들에게 지속적으로 혼나는 장면은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이 있나? 그리고 실제 강소라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강소라: 아마도 나라면 더 털털하게 다가갔을 것 같다. 상사들에게 말도 많이 걸고, 나를 싫어한다고 느꼈다면 답답해서 물어봤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드라마 속에서는 참는 모습이 많이 비춰지는 게 힘들더라. 일을 열심히 하면 알아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영이가 혼자 계단에서 우는 장면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울 데가 없었으면 계단에서 혼자 눈물지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Q. ‘미생’ 촬영 전 실제로 대우 인터내셔널에서 체험을 했다고 들었다.
강소라: 처음엔 막연했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고, 사회생활은 연예계가 처음인데 조직문화도 다르고 어려울 거란 생각을 했다. 회사 내에서 서로 관계가 어떤지가 가장 궁금했다. 과장님께 얘기할 때는 자리에서 하는지, 일어나 다가가서 말씀 드리는지 소통하는 부분같은 지점이 가장 궁금하더라. 실제로 안영이같은 사원을 만나기도 했다. 외국에서 자원 개발하고 방송국이나 병원을 지어주는 업무를 담당하는 여직원이었는데 그 분을 많이 참고했다. 늘 일이 많으니 불편한 옷을 입을 수 없어 플랫슈즈를 신으시더라. 그리고 불시의 미팅을 대비해 책상 밑엔 하이힐이 있고 여벌의 재킷도 준비해 놓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Q. 실제 직장인 체험을 한 부분이 ‘미생’이라는 드라마와 맞물려 남다르게 느껴졌겠다.
강소라:직장인은 굉장히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배우들은 늘 작품이 언제 들어갈지도 모르고, 금세 잊혀질 수도 있는 직업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직접 일해보고 나니 안정적일 거란 생각이 가장 먼저 깨졌다. 일이 정말 많이 치열하고, 종합상사 특징일 수 있지만 개개인이 감당해야할 나라와 업무가 정말 많더라. 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고 싫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편인데 그게 직장생활에서는 쉽지가 않더라. 절차가 많은 점도 인상적이었다. 예를들어 배우들은 작품에 들어가려면 PD님을 만나고, 오디션을 보면 되는데 회사에서는 한 가지 일이 진행되는 데 착수되기까지 결재와 서류 등 절차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의 기획단계에 있어서의 중요성, 어려움을 많이 배웠다.
Q. 그런 지점들을 안영이라는 인물에도 많이 반영했나
강소라: 예를 들어 여직원들의 물건 중에는 방석 가습기 등 태어나 처음보는 아이템이 많았는데 영이의 물건은 성격상 최대한 심플함을 살렸다. 자원팀 장면이 나올 때는 모니터에 지도를 띄워놓는다는지 하는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다.
Q. 직장인들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아졌겠다.
강소라: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굉장히 많이 하게 됐다. 왜 그렇게 술을 드시고 들어올 수밖에 없는지, 왜 수염 안 깎은 얼굴을 가족들에게 들이밀 수밖에 없는지, 왜 퇴근 때면 치킨을 사들고 들어오시는지를, 작품을 하면서 많이 공감하게 됐다. 여성 직장인들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다. 비단 여성이라 더 많이 힘들다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겪는 어려움을 이제는 사회가 분담해줘야할 때인 것 같다.
Q. ‘미생’ 시즌2에 대한 이야기도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시즌2’의 안영이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강소라: 개인적으론 밥먹는 장면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도록. 또 영이를 사수로 하는 사원이 들어와서 영이보다 더 독하다면 재밌을 것 같다. 승진도 하고 싶고(웃음) 장그래와도 훨씬 친근감 있는 사이가 될 것 같다. 사적인 얘기도 많이 하고, 바둑했던 얘기도 들어보고 싶다.
Q. 강소라의 초반 연기인 KBS2 ‘드림하이2’를 보면 몇몇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띄는데 그동안 연기가 많이 는 것 같다.
강소라: 영화와 드라마는 장르적 차이가 있는데 당시 드라마 주연이 처음이었고, 아무래도 그때 당시에는 내가 많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표현할 수 있을지를 잘 몰랐다
Q. 강소라를 비롯해 영화 ‘써니’에서 함께 연기했던 심은경 천우희 등도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강소라: (천)우희 언니의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소식을 뉴스를 통해 보고 촬영중 전화했다. 더 오래 전에 알려지고 상을 받았어야 했는데 ‘한공주’를 통해 알려져서 무척 축하한다고 했다. 조만간 만나기로 했는데 1월쯤 (심)은경이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나 또한 영화를 무척 하고 싶어지더다.
Q. 내년 계획은 어떤 게 있을까?
강소라: 아직은 딱히 없다. 다음 작품 들어가게 되면 세 작품 연달아 부모님과의 관계가 무척 안 좋았고 상처도 많은 인물이었다. 다음 작품에는 표현도 많이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끄럽고 활기찬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 내 실제 모습을 많이 투영해서 다음 작품은 강소라가 더 많이 보이는 작품을 해 보고 싶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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