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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옥빈에게 올해는 잊지 못할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봄부터 겨울까지 장장 8개월간에 걸쳐 50부작 드라마인 종합편성채널 JTBC ‘유나의 거리’를 통해 의미 있는 연기 변신을 이뤄냈고, 작품과 함께 사랑도 얻었다. 드라마 종영 후 그는 파트너로 호흡을 맞춘 배우 이희준과 교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열 아홉이던 2005년 풋풋한 청춘 스타로 데뷔해 이제 조금씩 원숙함이 엿보이는 서른을 향해 가는 20대를 오롯이 연예인으로 보낸 그는 “이제 일상적인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어보인다. 애교는 절대 못 떨고, 돌려 말하기보단 돌직구를 즐기며, 이제는 연기자로서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를 함께 해 내는 데 기쁨을 느낀다는 그에게서는 청춘을 뜨겁게 보낸 이의 여유가 묻어났다.

Q. ‘유나의 거리’가 4월부터 11월까지, 봄에 시작해 겨울에 끝났다.
김옥빈: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는 한편, 헛헛한 마음도 감출 수 없어서 일부러 배우들과 모임을 만들어 함께 연극도 보고 술마시며 웃고 떠들고 그랬다. 이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유나의 거리’ 배우들과 술자리가 있다.

Q. 여주인공의 무게감이 꽤 컸던 작품이다.
김옥빈: 분량으로 따지면 사실 미니시리즈가 더 많은데, 이 작품은 다들 여러모로 수고가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나보다는 창만(이희준)이 더 고생 많았지만. (웃음)

Q. 여자들간의 의리가 특히 돋보였다. 시크하면서도 카리스마와 정이 넘쳤달까.
김옥빈: 재밌었다. 유나도 그저 여성스러운 캐릭터가 아니라 의리도 많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전형적으로 여성스럽지는 않았다. 처음 연기할 땐 나와 너무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끝날 때는 ‘유나와 내가 다른 점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Q. 김옥빈이라는 배우 개인적으로 이미지 변신 측면에서 터닝 포인트가 됐다.
김옥빈: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전환넘이라는 느낌이 있었고, 무엇보다 일상적인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함께 연기한 조희봉 선배나 이희준 선배를 보면 표현이 크면서도 일상적인 연기의 조절이 자유자재로 되는 걸 보니 부럽더라. 두 분의 연기를 보면 극의 활력이 생기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심한 신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그런 테크닉을 연구해봐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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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상적인 연기 스타일처럼 극중 유나의 스타일링도 자연스럽게 멋스러웠다.

김옥빈: 감독님이 예쁜 옷을 못 입게 했다. 흔히 입는 야상(야전상의)도 못 입게 했다. 내가 입으니 너무 멋스러워 그랬는지 예뻐 보인다고 입지 말라시더라(웃음). 방송 메이크업 때 흔히 하는 속눈썹도 못 붙이게 하시고 브랜드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옷은 절대 금지였다.나중에는 입을 옷이 점점 없어지더라.

Q. 아, 메이크업도 규제를 받은 건가
김옥빈: 예를 들어 찜질방 장면은 진짜 찜질방에서 찍었다. 감독님께 찜질방 장면 후에는 화장도 다시 해야 하고 어려움이 많다고 온도를 낮추고 촬영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맨 얼굴을 보자’ 면서 안된다시더라. 결국 땀을 줄줄 흘리며 촬영했다.(웃음) 감독님께 ‘다른 건 좀 몰라도 화장은 좀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며 찍은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정말 이곳 저곳에서 많이 감지됐다.

Q. 그런 현실감있는 모습이 드라마 곳곳에서 묻어났다.
김옥빈: 멋진 남녀주인공이 나와 폼나고 세련된 느낌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아무거나 막 입고, 심지어 이희준 씨는 양복과 트레이닝복 단 두 벌로 작품을 끝냈다.

Q. 좀더 실제같은 면을 살리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는 본인의 의견도 많이 개진하는 편인가 .
김옥빈: 현장에서는. 아닌 것 같으면 ‘못하겠다’고 얘기를 확실히 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장면도 꽤 있다. 몇몇 장면에 대해서는 실제 상황과 다르다며 ‘요즘 세상에 누가 이렇게 하냐’고 제기해 바꾼 장면도 있다.(웃음) 예를 들어 키스신에서 감독님은 ‘벽으로 밀치라’고 했는데 난 ‘요즘 누가 그렇게 하냐’며 바꾸자고 했다. 거부할 건 확실히 거부했다(웃음)

Q. 남자주인공 창만 역의 이희준과는 잘 맞았나보다.
김옥빈: 희준 오빠는 정말 멋있는 배우다. 아이디어도 정말 많고 쾌활하고 모든 사람을 아우를 줄 안다. 스태프들이나 후배들이나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정말 사랑했다. 동료들과는 즐겁게 얘기하고 선생님들 앞에서는 망가질 줄 안다. 연극무대 경험을 쌓아서 그런지 남다른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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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극중 창만이라는 인물은 조금씩 사람을 변화시키는 캐릭터였다. 실제로 이런 남자는 어떤가?

김옥빈: 극중 창만은 자기 자신을 무척 사랑해서 정신이 건강하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남들에게 호의적이고 아무런 댓가 없이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항상 사랑으로 가득한 캐릭터이고, 자신이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믿음도 확실하다. 이런 남자 좋아한다. 가족이라면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지 왜 나서고 그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Q. 얘기를 듣다 보니 이번 작품은 특히 현장에서 배우고 느낀 바가 많았나보다.
김옥빈: 나는 모두를 동료로 생각하는 현장이 좋다. 선배니까 어렵고 후배니까 말 못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배우든 아이디어를 내고 더 좋은 장면을 내려고 노력할 때 재미가 있지 않나. 다 같이 동료로서 ‘뭐가 더 있을까’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각자 자기 것만 하고 돌아가는 건 별로다. 이번엔 특히 대기실이 하나라 교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웃음) 선생님 신인들 할 거 없이 남녀 하나씩 대기실이 있어서 다 같이 모여있었다. 서로 격려가 되더라.

Q. 연극무대에 대한 관심도 생겼나보다.
김옥빈: 궁금해졌다. 촬영중 오랫동안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단 생각에 위기감이 들어 촬영장에서 선배님들께 물어봤다. 대부분 연극 무대에서 갈고 닦으신 분들이라 연극은 매번 같은 대사를 하는데 어떤 느낌인지를 물으니 ‘몇번씩 같은 대사를 하지만 매번 다 다르다’고 하시더라. 관객들의 반응도 제각각이고. 미리 예측하고 해도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계속 무대에 서다 보면 나중엔 정수만 남는다고 하시더라. 그런 얘길 들으니 기회가 되면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Q. 연기에 대한 나름의 연구와 분석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
김옥빈: 사실 연극영화과를 다니다 그만뒀다. 작품에 대해 연구하는 부분은 정확히는 모른다. 그래서인지 한국종합예술학교에 다니는 동생(배우 김고은)을 보면 새롭다. 매일 장면 연습을 하고 책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놀랍다. ‘내 동생 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극부터 시작해 별별 장르를 다양하게 넘나들면서 하더라. 발표 연습한다고 밤새고 들어오는 거 보면 기특하다.

Q. 학교를 그만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옥빈: 아, 그 당시 내 등록금 대신 동생 등록금을 내 줬다. 그 때는 수입도 많지 않아서 내 거 대신 동생의 등록금을 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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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얘기 속에서 뭉클한 자매애가 느껴진다.

김옥빈: 열 아홉살에 서울에 올라와 데뷔했고, 이후 동생들이 차례로 서울에 왔다. 둘째는 대학생, 셋째는 중학생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가 엄마처럼됐다. 동생들을 보살펴주며 사는 게 내게도 도움이 됐다. 가족들에게 더 애틋해지고, 동기부여도 됐다. 덕분에 철도 좀 들었고.

Q. 서울에 올라온지 벌써 10년이다. 돌아보니 어떤가
김옥빈: 실감은 안 난다. 마치 엊그제 올라온 것 같다. 그래도 성숙해진 부분도 있겠지. 이제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데, 초조함이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하는데 ‘그래야 하는건가?’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난 빨리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딱 눈 앞의 것만 신경쓰는 편이다.

Q. 나름의 슬럼프도 있었을 텐데 연기자로서 잘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것 같다.
김옥빈: 누군가는 고민없이 사는 것 같아 보인다고 얘기하더라.(웃음) 그래도 먼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워놓고 괴로워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긴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렇다. 열심히 사랑하고, 끝나면 좋은 기억으로 묻어두고, 그런 편이다.

Q. 사랑에 대해서는 쿨한 편인가?
김옥빈: 난 ‘사랑에 있어 쿨한 사이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헤어진 후 세상의 모든 사람와 이별한 듯 상대방을 공격하는 듯한 글을 볼 때면 잘 이해가 안 간다. 나와 헤어졌다고 해서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니까. 뭔가 하나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랑이 어느 순간 끝이 난 것일 뿐인데. 옛 연인을 보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했던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니 동료애같은 게 남아있으면 좋겠다.

Q. 올해는 드라마로 상(대전 드라마페스티벌 ‘에이판스타어워즈’ 우수연기상)도 받았다
김옥빈: 시체스 영화제(영화 ‘박쥐’) 이후 처음이어서 새로웠다. 예상을 못했다. 종편 채널 드라마라 상을 받을 줄 전혀 몰랐는세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쁘더라. 그동안 상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막상 시상대에 올라가보니 기분이 괜찮았다.

Q. 한 해 농사를 잘 지었다는 뿌듯함 속에 마무리를 할 것 같다. 연말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김옥빈: 여행을 다녀온 후 새해에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 드라마 촬영중 광양에 있는 식구들이 이사를 했는데 내가 바빠 아직 집들이를 못 했다. 빨리 내려와 집들이 하자고 하시더라. 아직 작품은 정해진 건 없지만 신나는 걸 해보고 싶다. ‘유나의 거리’가 설정상 좀 무거운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재밌게 신을 만들어볼 수 있는 경쾌한 작품이면 좋겠다.

글.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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