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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에서 계속) 반 년 만에 인도여행에서 돌아와 복학한 빅베이비드라이버는 1997년 과 동기 김경민이 만든 기타소모임에 들어갔다. 정식으로 기본 코드부터 배우면서 모임친구들과 사구려 기타를 치기위해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열의를 보였지만 음악활동을 하게 되는 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처음 포크가수 김원중의 히트곡 ‘바위섬’의 코드를 배웠고 일주일 뒤에 초보자들도 연주가 가능한 핑크 플로이드의 위시 유 워 히어(Wish You Were Here)와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 레너드 스키너드의 리듬 코드를 배웠습니다.” 기본 코드를 익히자 드럼을 미디로 찍어 너나나 음악을 카피해 합주가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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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홍대 인디음악의 태동을 직접 목도했지만 인디음악보다는 60년대 외국 팝음악만을 들었다. “그땐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난 지 조차도 몰랐어요. 기타소모임에 참여하면서 동시대 음악을 처음 듣게 되었는데 라이브클럽 드럭이 문을 열고 펑크 1세대 밴드들이 공연하는 걸 직접 봤죠. 드럭은 처음엔 그냥 음악을 크게 틀어주는 술집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공연을 하더군요. 그 유명한 스트리트 펑크 쑈에서 어린 여고생이 다이빙하는 것도 목도했지만 인디음악을 즐겨 듣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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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친구들이 모두 취입준비를 했을 때 그녀는 회사는 다니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막연하게 공부를 더 하고자 이화여대 대학원 영문과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공부를 너무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저 어른들이 좋아하는 여대라고만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죠. 그래서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무엇이든 무조건 열심히 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지만 공부를 계속할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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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친구가 ‘친구동생이 밴드를 하는데 연주도 못해도 상관없고 그냥 베이스만 들고 있으면 되는데 해볼래?’라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 10만원 베스타 베이스기타를 구입해 3인조 하드록/싸이키델릭 밴드 ‘노네임(나중에 우울한 밴드로 개명)’에 정식 멤버로 들어갔다. 당시 그녀는 기본적인 도레미 정도는 칠 줄 알지만 창작은 꿈도 꾸지 못했고 기타에 앰프 잭을 연결하는 방법도 몰랐다. 기타를 잘 쳤던 리드기타 최유혁과 유명 메탈밴드 출신 드러머와 합주를 시작했는데 3개월 후 드러머가 나가버렸다. “처음엔 이상한 곡 몇 개를 카피했는데 3개월 후 자작곡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2001년 밴드 ‘코코어’ 출신이면서 ‘네눈박이 나무 밑 쑤시기’에서 드럼을 친 류광희가 들어와 라이브클럽 프리버드, 재머스에서 공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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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밴드 노네임은 류광희가 운영하는 산울림 소극장 뒤쪽에 위치한 아우라 합주실에서 연습을 했다. 빅베이비드라이버는 2년간 밴드활동을 하면서 음악 내공을 키웠다. 충분히 배웠다는 생각에 자신의 음악취향과 맞지 않았던 밴드를 탈퇴했다. “밴드에는 항상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음악적 핵심인 두 사람은 자주 충돌을 했는데 제가 완충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합주실에서 재미있는 음악동료들을 많이 만났다. ‘투 스토리’의 김미영와 ‘오르켈탄츠’와 ‘네눈박이나무 밑 쑤시기’의 기타 손근정은 테크닉은 없었지만 특이하게도 여자 둘이서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했다. 음악도 모던 록이 대세였던 당시에 올드하고 싸이키델릭한 곡을 연주했다. 훗날 밴드 스타리아이드를 결성하는 멤버들도 만났다.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의 음악취향을 알게 되녀서 자연스럽게 노래 몇 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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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실 근처에서 만난 모던록 밴드 ‘꽃’의 멤버였던 과 선배 구본훈이 ‘기타를 쳐달라’고 제의했다. 15만 원 에 댄 일렉트릭 기타를 구입해 리드기타로 들어갔다. 포지션을 옮겨 의미가 있었지만 세션개념이라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편곡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그녀는 전문적으로 맞춤 연주를 하면서 편곡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다시 혼자서 한두 달 기타 연습을 한 후, 밴드 ‘스타리아이드’의 기타리스트 배인숙의 도움을 받아 2002년 3월부터 라이브클럽 빵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관객이 있건 없건 무대에 올랐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음악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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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바레사운드에서 앨범을 낸 브리티시 포크밴드 위치윌의 기타겸 보컬 박상준, 못 다루는 악기가 없는 재주꾼 이재희, ‘애스’라는 예명을 쓰는 어쿠스틱 블루스 연주자 등 재능이 많은 음악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박상준은 자신이 만든 인디레이블을 통해 그녀의 데뷔음반 제작에 도움을 주었다. 로봇 에니메이션 ‘아톰’을 좋아했던 박상준의 제안으로 ‘아톰’에다 기타연주를 도와주었던 배인숙이 제안한 영어 ‘북’을 붙이는 말도 안 되는 조합으로 2인조 밴드 ‘아톰북’을 결성했다. 그때부터 인터넷 모임에서 사용했던 닉네임 SP를 예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선드라이 레코드는 레이블 개념보다는 음악인들의 모임 정도였습니다. 2002년에 제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앨범커버를 만들고 손수 구은 CD-R에 마스터 음원을 담아 데뷔 EP를 제작했습니다. 처음 50장 만들어 향뮤직과 퍼플레코드 두 곳에서 유통을 했는데 금방 다 팔려 신기했습니다.”
아톰북 데뷔시절 SP 공연 2002년
아톰북 데뷔시절 SP 공연 2002년
아톰북 데뷔 EP는 위치 윌(Witch Will), 디 애스(The Ass)의 음반과 더불어 당시 국내 인디음악에서는 생소했던 ‘포크’ 장르를 수혈한 선구적 앨범이다. 그해 9월 말 클럽 빵에서 앨범발매기념 공연을 한 번 하고선 해체를 했다. “제가 기타와 보컬을 맡고 기타 배윤석, 드럼 정호정의 3인조 라인업을 구축했는데 멤버들은 해체를 아쉬워했죠. 저는 스스로 뮤지션이란 생각도 없이 그저 재미가 있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냈던 음반이라 계속 활동할 것이란 생각을 못했고 이유도 없어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6년의 공백기는 그녀에게 엄청난 시련의 시기였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맞은 그녀는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애매했다. 수료를 한 상태에서 공부를 계속할 것도 아닌데 논물을 왜 쓰나 싶어 석사학위를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나섰다.(part4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