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비정상회담’
용납될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은 명백하다. 기미가요라니.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의 황민화 정책을 위해 하루에 1번 이상 부르게 한 노래다. 일본의 국가라고는 하나 군인이 아닌 극우단체 회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 주로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우리로서는 역사 속 상처를 되새기게 만드는 노래를 방송에서 틀었다는 것은 국민정서상 용납이 되지 않는 실수이긴 했다.그런 기미가요를 두 차례나 튼 ‘비정상회담’의 방송사 JTBC는 프리랜서 음악감독을 교체하고 책임프로듀서를 경질시킨다고 지난 달 31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을 향한 비난의 소리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첫 방송 이후 순풍에 돛단듯 순조롭기만 했던 이 프로그램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과연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폐지만이 정답일까? ‘비정상회담’은 11개국 외국인들이 등장해 하나의 주제를 두고 토론을 하는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들 외국인은 각자 나라의 문화권에서 성장하다 이후 저마다의 계기로 한국으로 흘러왔고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들이다. 자국인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 속에 한국에 대한 풍요로운 이해도 및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보유한 것이 제작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캐스팅 조건이기도 했다.
‘비정상회담’ 이전에도 외국인이 등장한 예능 프로그램은 많았으나, ‘비정상회담’은 이들과 궤를 달리한다. ‘비정상회담’ 이전 외국인 예능은 한국에서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이들의 서툰 모습을 부각하고 한국과 외국, 한국인과 외국인을 철저히 이분화하는 세계관을 드러냈다면 ‘비정상회담’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들이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서로 다르게 접근하는 모습을 드러내며 그 차이를 존중하는 다원화된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그러면서도 공통된 고민을 두고 골몰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나라의 청년들의 공통분모를 짚어내기도 했다. 미덕이 분명한 프로그램이었고, 외국인 예능의 진일보를 보여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예능이기에 진지한 토론의 분위기 사이사이 재미를 위한 캐릭터 설정도 존재했고 각 캐릭터 중에 대중적인 인지도가 올라간 인물들의 발언에 더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기도 했으나, 대부분 11개의 시선을 공평하게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여줬다.
또 초반에는 일본인 출연자를 향한 중국인 출연자의 반일감정도 그대로 드러내면서 “국제 평화 유지와 국제 안정성 보장에는 관심 없으나 전세계 청년의 평화와 미래를 위해 뭉쳤다”며 예능적 색채로 부드럽게 조절하기도 했다. 국가간 미묘하고도 예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도 예능이라는 공간 속에 여유롭게 담아낸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 프로그램이었던만큼, 이번 기미가요 문제 역시 어색한 모양새의 폐지보다는 11개국 청년이 이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보고 싶어진다. 특히나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문제를 가진 유럽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고, 일본인 출연자들의 다양한 속내도 궁금하다.
실수를 저질렀고, 엎질러진 실수를 수습하는 것은 제작진의 몫이다. 하지만 폐지라는 극단적인 방식만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어딘지 폭력적이다. 공평하고 유연한 소통이라는 지금껏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미덕을 칭찬해오던 분위기가 돌연 폐지를 강요하는 분위기로 전환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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