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7시 반쯤 가평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인 재즈 아일랜드에 도착하자 도미닉 밀러가 ‘쉐이프 오브 하트(Shape of My Heart)’를 연주하고 있었다. 사흘간의 페스티벌 마지막 날의 마지막 무대인 앨런 홀스워스의 공연을 앞둔 시간이었다.

앨런 홀스워스 외에도 마세오 파커, 파퀴토 드리베라, 테르예 립달, 케틸 비외른스타드 등을 비롯해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올해 자라섬을 찾았다. 그런데 달랑 앨런 홀스워스만 보는 것은 풍성한 라인업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만 스케줄상 어쩔 수 없었다. 앨런만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앨런이라도 보기 위해 자라섬을 찾은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행사 다 끝나 가는데, 이제 왔어? 하긴 앨런 홀스워스는 꼭 봐야지. 이번이 아니면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들 텐데.”

먼저 온 선배가 반겼다. 우리는 무대에서 꽤 떨어진 발치에서 도미닉 밀러의 연주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연주는 잘하는데 어째 연주가 다 스팅 노래같네.” 선배 말처럼 곡들이 심심했다. 하지만 자라섬의 가을밤과는 정말 잘 어울렸다. 와인과 음악을 함께 즐기는 대다수의 관객들에게는 이런 심심한 연주가 자리를 지키기에 더 나을 것이다. 날씨도 제법 추웠다.

도미닉 밀러의 무대가 끝나자 가평군수가 나와 성공적인 개최를 자축하는 인사말을 전했다. 드디어 앨런 홀스워스가 나올 참이었다. “앨런 홀스워스는 앞에 가서 봐야지. 무대로 갑시다.”

앨런 홀스워스

사실 앨런 홀스워스는 유명한 연주자는 아니다. 업적과 실력은 대단하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은 무림의 고수랄까? 영국 출신인 그는 재즈 록·퓨전 기타의 괴물로 꼽힌다. 그는 일찍이 재즈 록 기타에 하이 테크닉을 도입한 ‘원조’격 인물로 동시대의 존 맥러플린, 래리 코리엘보다도 정교한 테크닉을 구사했다. 앨런은 1969년 데뷔작인 이깅버텀(Igginbottom)의 ‘렌치(Wrench)’에서부터 록보다 재즈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였고, 1975년 소프트머신의 ‘번들스(Bundles)’와 토니 윌리암스 뉴 라이프타임의 ‘빌리브 잇(Believe It)’에서 고도의 변박, 타이트한 리듬, 깔끔한 레가토를 선보였다. 때문에 그는 세계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스승을 꼽힌다. 이번이 첫 내한으로 드러머 개리 허즈번드, 베이시스트 지미 하슬립과 함께 스페셜 프로젝트로 무대에 올랐다.

실제로 본 앨런 홀스워스는 사진과 영상으로 보던 호리호리한 몸매와 달리 살이 좀 쪘다. 1946년생이니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나이도 먹고, 체격도 불었지만 그의 연주는 영상과 음반으로 듣던 현란함, 날카로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독특한 코드 보이싱으로 견고한 벌판을 만들더니, 엄청난 속주로 그 위를 자유롭게 유영했다. 또한 볼륨 주법 등으로 우주적인 분위기를 선사하기도 했다.

“역시 대단하다. 재즈를 꼭 스피드메탈처럼 연주하네 그려. 그런데 곡들이 다 비슷비슷하네. 어렵다.”

선배의 말이 맞았다. 앨런 홀스워스의 연주는 정말로 훌륭했지만, 남아있는 관객들의 표정은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남아서 연주를 감상했다. 뒤쪽에는 아직도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이런 풍경은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족단위의 엄청난 관객이 몰리지만, 쉽고 친절한 재즈 뮤지션보다는,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는 거장들을 섭외하며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다. 음악을 추구하면 대중과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다지 대중 친화적이지 않은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올해 ‘자라섬’은 3일 통산 관객이 20만 명을 훌쩍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개천절인 10월 3일의 관객 수는 일일 관객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사흘간의 행사 중 금, 토 양일이 매진된 것은 최초라고 한다. 해외에도 이렇게 많은 관객이 오는 재즈 페스티벌은 없다고 한다. ‘자라섬’은 그야말로 마법의 섬인 것이다.



그나저나 2014년은 최고의 기타리스트들이 대거 한국을 찾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앨런 홀스워스와 같은 날 서울에서 공연한 팻 메시니를 비롯해 존 맥러플린, 제프 벡, 브라이언 메이(퀸) 거스리 고반, 테르예 립달, 누노 베텐코트(익스트림), 폴 길버트(미스터 빅), 존 패트루치(드림씨어터), 리치 샘보라(본 조비) 등이 왔으니 말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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