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반전 매력일까. 가을 하늘을 닮은 맑은 웃음과 청순한 외모 뒤에는 “오직 연기!”만을 외치는 진취적인 느낌이 한껏 묻어났다. 케이블채널 tvN ‘아홉수 소년’을 통해 꽃피운 배우 경수진에 대한 이야기이다.Q. 근 세 달간을 마세영으로 살았다. 개인적으로는 ‘밀회’의 다미보다 더 당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홉수 소년’의 마세영은 그야말로 경수진만을 위한 캐릭터였다. 새초롬한 표정과 대비되는 털털한 성격부터 두 남자를 녹이는 생기발랄한 미소까지. 경수진은 ‘아홉수 소년’을 통해 앞서 전작 드라마 ‘밀회’에서 연기한 박다미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브라운관 밖 남심(男心)을 훔쳤다.
‘적도의 남자’를 통해 데뷔한 경수진은 ‘드라마스페셜-스틸사진’, ‘상어’, ‘TV소설 은희’, ‘밀회’ 등을 통해 쉼 없이 달려왔다. 스물여섯이라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데뷔, 매 작품에 배우를 꿈꾸는 이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왔던 그녀는 ‘아홉수 소년’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며, 배우 인생의 두 번째 장을 열어젖혔다. 스타가 아닌 배우를 꿈꾼다는 경수진. 진취적인 그녀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경수진: 내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삼식이(극 중 마세영의 별칭)’는 여러모로 정이 갔던 캐릭터다. 다미보다 더 털털하고, 밝고, 먹는 것도 잘 먹었으니까, 하하하. 애착이 컸던 만큼 작품이 끝난 뒤 공허함도 느꼈다.
Q. 진구 역의 김영과의 호흡도 화제였다. 항간에서는 실제로 사귀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경수진: 동갑내기에, 알고 보니 고향(인천)도 같더라. 함께 뮤직비디오 찍을 때와는 또 다르게 동질감이 형성됐다. 촬영 내내 장난도 많이 치고 즐겁게 지냈다. 아마 그렇게 편한 사이였기 때문에 더 그림이 잘 나온 것 같다.
Q. 마세영은 여행사 직원, 먹방녀 등 다양한 설정이 가득했던 캐릭터였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준비는 어떻게 했나.
경수진: 직장인 역할은 처음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직장과 관련해 다룬 내용은 없어서…, 하하. 그보다는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 것처럼 보일까’를 고민했다. 캐릭터 설정에 ‘먹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는 부분이 있었다. 피자, 햄버거 등 다양한 먹거리를 먹는 방식을 연구했다.
Q. 초반의 톡톡 튀던 느낌과 달리, 후반부에는 갈수록 ‘공분’을 일으키는 캐릭터로 변해가더라. 세영이 어떤 지점에서 진구와 재범(김현준)을 놓고 갈등하는지 좀 자세히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진: 아무래도 남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라, 세영의 감정선은 약하게 다뤄졌다. 나도 그 부분이 아쉽다.
Q. 사실 ‘밀회’ 속 다미는 작품의 무게감이 상당했던 터라 배우가 스스로 표현해낼 영역이 많지는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어땠나.
경수진: 유학찬 PD님이 굉장히 리얼한 걸 좋아하셨다. 디렉션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대본에 나온 대사를 다 해도 컷 사인 없이 계속 찍으시더라. 정말 표현하고 싶은 만큼 표현했던 것 같다. 스스로 연기력이 얼마큼 올라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캐릭터를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Q. 세영-진구 외에 다른 커플들의 호연 덕분인지, ‘아홉수 소년’은 시청률보다도 체감 반응이 좋았던 작품이었다.
경수진: 이전 작품과는 반응이 다르더라. 작품 시작할 때쯤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팔로워 수가 20명 정도였다. 근데 작품이 끝나니까 만 명이 넘었다. 예전에 일일드라마와는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Q. 작품을 통해 배운 것도 많을 것 같다.
경수진: 미니시리즈를 길게 출연해본 건 처음이다. 정말 모든 게 빠르더라. 애드리브에 대한 순발력도 키우고, 감정신이 많다 보니 표정연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또 한 단계 올라선 느낌이다.
Q. 드라마 ‘상어’ 이후 텐아시아와의 첫 인터뷰에서 당신이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소속사와 처음으로 계약을 맺던 날 일기장에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고 적었다”고. 어느덧 데뷔한 지 3년이 지났고 그때와는 마음이 또 다르겠다.
경수진: 그때는 오직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다. 너무나도 간절히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굉장히 행복하다. 아직 시청자와 대중에게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꿈에 가까이 다가가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경수진: 인기가 높아질수록 자유를 잃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현장이 더 편하다. 모두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니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진다. 무엇보다도 요즘 나를 사로잡고 있는 건 ‘연기’다. 정말 애증의 관계가 따로 없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힘들고. 배우로 사는 동안 계속 안고 가야 할 문제다.
Q. 올해로 스물여덟이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았다. 연애할 시간도 없지 않나.
경수진: 지금은 일단 일에 매진하고 싶다. 일에 대한 욕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사랑은 서른 살이 넘어서 이쪽 분야에서 인정받은 뒤에 시작하고 싶다, 하하.
Q. 근 10편에 가까운 작품으로 대중을 만났는데, 여전히 개인적인 부분은 베일에 싸여있다. 예능 등을 통해 좀 더 당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경수진: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잘 맞을 것 같지도 않고. 방송에 적합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말주변도 없다. 또 배우로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힘겹게 쌓아온 청순한 이미지가 무너져 버릴까봐, 하하하.
Q.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이 굉장히 진취적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보면 지칠 법도 하다.
경수진: 그렇지도 않다. 일이 없을 때는 소소한 일들을 하며 기분전환을 한다. 예를 들면, 한강에서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를 탄다거나, 영화를 보고, 캠핑을 하는 등의 것들.
Q. 최근 재밌게 본 영화가 있나.
경수진: 안 그래도 작품을 마친 뒤 ‘비긴 어게인’을 봤다. 그것도 혼자서 조조로, 하하하. 평소에 음악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라 더 즐겁게 봤다. 영화 속 프로듀서와 작곡가의 만남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더라. 일상의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순간이 예술이 되는 경험. 정말 낭만적이지 않나, 극 중 키이라 나이틀리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그 ‘긍정적인 에너지’라는 게 당신이 배우를 꿈꾸는 이유와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경수진: 다양한 작품, 장르, 캐릭터로 대중을 만나고 싶다.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많다. 사극도 도전해보고 싶다. 그렇게 계속 새로운 것을 쫓다 보면, 언젠가는 마세영처럼 내게 잘 맞는 옷을 또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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