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내며 성공적으로 첫 공연을 마친 미미시스터즈는 흥분의 도가니를 맛봤다. “완전 미칠 것 같았어요.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받아본 반응은 영화 관계자들의 까임이 전부였는데 1m앞에서 ‘와’하고 좋아해주는 관객을 보면서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솔직히 무대에 대한 욕심이 없었는데 이런 세계가 있었나 싶더군요. 그래서 그래 시나리오는 못생기고 뚱뚱한 오타쿠 애들이나 쓰는 거야. 나 같은 애는 이렇게 놀면서 살아야 된다고 자기주문을 넣으며 캐릭터에 몰입했던 것 같아요.”(작은미미) “저는 춤을 추는 공연을 꾸준하게 하고 있어 무대에 관한 갈증은 없었고 그저 또 다른 퍼포먼스 정도로 생각했지만 작은미미는 유일한 무대여서 더 각별했을 것이라 생각해요.”(큰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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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장기하와 얼굴들은 첫 공연인 클럽 빵을 시작으로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쌈지사운드페스티발 10주년 무대에 이어 EBS 스페이스 공감에도 출전해 9월의 헬로루키에 선정되었다. 연말결선에서도 인기상을 받는 대박행진이 이어졌다. 인디와 주류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독립문화를 화두로 떠오르게 했던 신드롬 급 퍼레이드였다. 당시 미미시스터즈는 무대 위에서 담배 불을 붙이고 필 때 금기를 깨는 통쾌함을 맛보았다. 그녀들은 억지춘향 격 웃음유발이 아닌 너무도 진지한 모습인지라 더 웃겼다. “관객들도 대리만족을 하는지 저희가 공연 때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서운해 하는 분위기더군요.(웃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에 저희는 담배를 피질 않았기에 라이터도 켤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퍼포먼스를 하다 실수를 할까 원터치 라이터를 사용해 ‘피치’라는 복숭아 향이 강하게 톡 쏘는 맛을 냈던 일본 담배를 피웠습니다. 퍼포먼스를 위해 담배까지 배운 셈이죠.”(큰미미)
2009년 7월, 크라잉넛과 김창완 밴드와 조인트로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돌았던 전국투어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관객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규모 공연이었고 말로만 들었던 록스타 생활을 직접 경험한지라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입니다. 당시 김창완 선생님이 공연 전에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기분 좋게 무대에 오르라고 양주를 마시게 했어요. 너무 많이 마신 것이 문제였죠. 당시 무대에서 크라잉넛은 그게 생활인지라 별 문제 없었지만 김창완 선생님은 음이 나갔고 저희들도 춤, 연주, 보컬을 다 틀린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 관객들은 잘 몰랐을 겁니다.(웃음)”(큰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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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4일, 남산예술극장에서 장기하와 얼굴들 1집 마무리 공연이 끝났다. 2010년 1월 가혹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장기하가 ‘밴드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던 장소인 낙원동 아구찜 식당에서 미미시스터즈에게 갑자기 이별을 통고했던 것. “장기하는 1집은 재미있게 음악을 하려고 했는데 2집에서는 퍼포먼스를 걷어내고 진지하게 밴드음악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다짜고짜 예의 없이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고 마치 오래 사귄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 꺼내기가 어렵듯 빙빙 둘려서 이야기했습니다.”(작은미미) “솔직히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너무 빨리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실감이 나지 않더군요. 무엇보다 장기하와 얼굴들 1집 노래들을 너무 사랑했는데 그 음악으로는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습니다.”(큰미미)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미미 시스터즈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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