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영화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좋다.
오랜 시간 신민아는 대중의 망막에 신비주의로 각인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치고 있을 것 같은 여배우, 밤마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을 공수해 마실 것 같은 여배우. TV 광고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민아의 분신’들이 그녀를 보다 비현실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민아가 예술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장률감독의 영화 ‘경주’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놀라워했다. 그리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스크린을 활보하는 그녀를 보고 더 놀라워했다. 그 속엔 CF스타 신민아가 아닌 진짜 신민아의 얼굴이 있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신민아는 다시 한 번 일상을 입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민아의 변화일까. 아니다. 우리가 그녀에 대해 몰랐을 뿐, 신민아는 신민아다. 이 인터뷰에는 신민아의 진짜 취향을 가늠할만한 실마리들이 있다.
신민아: 많이들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원작을 워낙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부담이 됐던 게 사실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엔 당대의 아이콘 고(故) 최진실 선배님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기에 부담의 크기가 상당했다. 끊임없이 비교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원작 그대로의 느낌보다는 지금 시대에 맞게 변화된 미영을 극에 녹여내려고 노력했다.
Q. 부담이라고 했지만, 뭔가 배우로서 도전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기에 출연을 결심했을 텐데.
신민아: 미영에 대한 공감이었던 것 같다. 원작에서의 미영이 전업주부였다면, 지금은 일을 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일에서 자괴감을 느끼는 부분 등 현대 여성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이고, 감정들이었기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도 났다. 그리고 신혼부부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국은 사랑 이야기다. 남성 관객들도 충분히 동할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Q.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굳이 따지자면 결혼을 지지하는 쪽의 영화다. 영화 촬영 후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하던데, 만약 엄정화 주연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이나, 마이클 더글라스-캐슬린 터너 주연의 ‘장미의 전쟁’처럼 결혼의 지리멸렬함을 보여주는 영화에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신민아: 하하.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과하면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한 건데, 만약 지극히 현실적인 결혼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찍었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Q. 영화에서 신혼부부로 등장한 것은 ‘키친’에 이어 두 번째다. 신혼 1년차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미영이 어느 날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키친’의 두레(주지훈)라는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키친’에서 결혼 1년차 모래(신민아)는, 두레를 만나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신민아: 하하하. 음란마귀가 생기지 않을까? 너무 다른 캐릭터라 상상이 안 간다. 흠…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여자의 첫사랑은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라,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의 첫 모습이다’라는 대사. 미영은 결국 그러지 않을까 싶다. 두레에게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랑하는 영민(조정석)의 모습을 찾을 것 같다.
Q. 오. 그런데, 주지훈에게서 조정석의 어떤 모습을…?
신민아: 아니, 조정석 씨가 어때서요?(일동 웃음)
Q. (웃음) 로맨틱 코미디의 관건은 주인공 남녀의 화학작용인데, 그런 면에서 조정석 씨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신민아: 조정석 씨와는 성격이 잘 맞았다. 성향도 비슷했고. 뭐랄까. 풀어지긴 풀어지는데, 마냥 풀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랄까. 조정석 씨는 굉장히 진지한 사람인데, 그 안에 위트가 있다. 그게 참 매력인 것 같다. 그러니까 코미디 연기를 ‘뻔’하지 않게 표현해 내는 것 같고.
Q. 신민아의 성향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신민아: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주의다.(웃음) 이왕이면 재미있게 일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본성적으로 착한 사람들이 좋다. 그런 사람들과는 일할 때는 뭔가를 애쓰지 않아도 그 자체로 행복하니까.
Q. 지금까지 많은 남자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작품을 할 때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 상대 배우의 영향을 받는 편인가.
신민아: 둘 다 받는다. 촬영할 때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게 만약 마음에 안 들면 촬영 내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다’라고 최면을 걸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그럴 필요 없이 워낙 분위기가 좋았다.
Q. 현장 분위기와 흥행이 비례해 왔나?
신민아: 다르게 가는 경우도 많았다.(웃음) 흥행은 진짜 우리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그건 신의 영역이다.
Q. 영화를 찍으면서 결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결혼의 좋은 점이라고 느끼는 부분과, 이 부분 때문에 결혼은 역시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게 있나.
신민아: 좋은 점이라면, 평생의 내 편이 생긴다는 거? 물론 싸우는 부부도 많지만, 어쨌든 같은 방향을 보며 갈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좋은 것 같다. 나쁜 점은 혼자만의 시간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나는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도 뭔가를 약속하고 평생 가야 하는 결혼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다.
Q. 주위에 유부남/유부녀들이 많나?
신민아: 별로 없다. 특이한 케이스다. 내 나이 때가 되면 결혼들을 많이 하는데,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결혼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조정석 씨는 결혼한 친구들이 많아서 조언을 많이 구했다고 하더라.
Q. 사랑이든 결혼이든 어느 순간 권태기가 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리’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결혼 혹은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신민아: 존중. 서로 존중하면 갈등이 있더라도 잘 풀리지 않을까 싶다. 둘만의 재미도 중요하다. 함께 있으면 뭘 해도 재미있는 사람이 있잖나. 친구 같은데, 존중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 것 같다.
Q. 올해 영화 ‘경주’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들고 나왔는데, 2009년 ‘10억’ 이후 스크린으로 돌아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신
민아: 나 역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사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른 줄도 몰랐다. 드라마를 연속으로 두 편 하면서 스크린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늦춰진 것도 있다.
Q. 쉬는 동안, 많은 시나리오들이 당신에게 들어갔을 텐데.
신민아: 시나리오를 많이 보긴 했는데, 잘 안 됐다. 비슷한 캐릭터의 영화들도 많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Q. 컴백작이 장률 감독의 ‘경주’라는 건 여러모로 놀라웠다. 그런데 뭐랄까. ‘경주’를 보면서 카메라 앞에서의 신민아가 굉장히 편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장률 감독님의 연출 스타일 덕분인가 했는데,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민아가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워졌구나 싶었다.
신민아: 그렇게 느끼셨다면, 쉬는 시간들이 나에게 헛된 시간은 아니었나보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나이 영향일 수도 있고 고민의 결과일 수도 있는데, 사실 마음가짐은 20대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건 없다. 지나온 모든 것들이 다 경험이 돼서 여유로워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직, 잘 모르겠다.
Q. 스스로도 카메라 앞에서 편해졌다고, 느끼나?
신민아: 편하게 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 내 의견도 많이 냈고. 20대 때에도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긴 했지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아마 배우가 아닌, 인간 신민아로 편해진 게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는 정해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힘들어하곤 했다. 그런데 배우가 아닌 나에게 집중하면서 오히려 일을 더 즐기게 됐다. 짐을 털어낸 느낌이랄까. 그것이 또 다른 의미의 욕심이라면 욕심일 수 있는데, 통상적으로 얘기하는 욕심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Q. 작품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을 텐데.
신민아: ‘이 작품을 통해 내 인생이 달라질 거야!’ 이런 건 없다. 나는 그냥 작품을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정도가 좋다. 스스로에게 ‘재밌어? 뿌듯해?’ 라고 물었을 때 ‘응, 재밌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다.
Q. 앞으로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까.
신민아: 그건, 모르겠다.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새로운 걸 느끼면, 그땐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Q. ‘경주’에서 보여준 공윤희라는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함이 있는 여자! 최근 많은 인터뷰에서 신비주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던데, ‘경주’를 보면서 여배우가 꼭 신비주의를 깰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신민아: ‘경주’의 공윤희는 사연을 지닌 캐릭터이기에 그 신비로움이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나의 경우, 여배우라고 해서 감추는 신비주의였던 것 같다. 나 역시 신비주의가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지만, 본의 아니게 만들어진 신비주의는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가령, 내가 광고나 화보에서 보여준 이미지들. 그런 것들로 인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있는데, 이젠 시기적으로 조금 더 편안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Q. 대중이 바라보는 신민아의 실제의 신민아 사이에 갭이 크다고 느끼나.
신민아: 대중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신비로움이라면, 갭이 큰 것 같다. 나는 굉장히 편안한 걸 추구하는 사람이다. 편한 사람이 좋고, 상대도 나에게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갭이 있다고 생각하다.
Q. 그런 면에서 오랜만에 출연한 예능이 신비주의를 벗는데 도움이 됐겠다.
신민아: 대중과의 소통은 나에게 중요하다. ‘런닝맨’ 출연하기 전에는 ‘편안한 모습을 보여줘야지’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하니까 안 되더라. 카메라가 너무 많아서 어색하기도 했고, 어떤 포인트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예능은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Q. 왜, ‘씬을 잘 따먹는 사람’이 예능은 잘 한다고 하지 않나. 연기는 어떤가.
신민아: 연기도 그런 게 있다. 영리한 배우들은 치밀하게 계산해서 어떤 씬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하던데, 나는 그걸 잘 못한다. 그게 과연 좋은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씬 마다의 주인공이 있을 텐데, 그땐 그 배우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좋다고 느끼기에 너무 계산적이고 싶지는 않다.
Q. 1998년 패션잡지 키키 1기 전속모델로 데뷔했다. 그때 하이틴 패션지들이 창간될 당시 데뷔한 모델 중에 이요원 배두나 김민희 공효진 등 오늘 날 스타가 된 배우들이 많다. 우연치고는 흥미롭다.
신민아: 그러니까 말이다.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동시기에 데뷔한 덕분에 도움 받은 부분들이 많다. 우리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공감대도 있다. 신비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다.
Q 처음 시작할 때는 배우가 꿈은 아니었던 걸로 안다.
신민아: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웃음) 그냥, 잡지에 내 얼굴이 실리면 좋겠다는 호기심만 있을 때였다. 패션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에도 너무 어렸고. 성격이나 자아가 자리를 잡기 전에 이 일을 했으니, 오죽 했겠나. 함께 데뷔한 배우들 중에서도 내가 유독 어렸다. 당시 언니들은 그래도 고3 아니면 대학생들이어서 선배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이 가는 느낌이라 새롭기도 하다.
Q. 그렇다면 언제쯤 스스로가 배우라는 자각을 한 건가.
신민아: 이게 어떻게 보면 나의 메워지지 않는 구멍일 수 있는데, 20대 초반에 배우로서의 자각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때 정말 어렸구나 싶다. 아마, 40대가 돼서 지금을 돌아봐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평생 구멍 난 부분을 지니고 살아갈 것 같다.
Q. 데뷔 초창기, 한 영화지와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7가지’와 ‘싫어하는 7가지’를 꼽은 적이 있다.
신민아: 어머! 기억날 것 같다. 하하하. 싫어하는 것 중에 아마 ‘R&B, 음악’도 있을 텐데… (기자가 수첩에 적어 온 목록을 확인하며 나긋나긋 읽는다) ‘좋아하는 7가지-음악, 가족과 주위 사람들, 해외 배낭여행(특히 프랑스!), 쇼핑, 영화, 아코디언, 스케이트’ ‘싫어하는 7가지-벌레, 황사, 무례하게 구는 것, R&B, 교통체증, 더위와 추위, 반칙.’ 하하하. 와,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 이때 봐. 배낭여행을 얘기하면서 ‘특히 프랑스’라고 했는데, 당시에 내가 유럽 예술영화에 흠뻑 취해 있었다. 지금도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Q. 그렇다면 컴백작으로 ‘경주’를 선택한 것이 전혀 의외가 아닌 거네. 오히려 이제야 본인이 원하는 걸 찾은 듯한 느낌이다.
신민아: 그러니까, 20대 때의 작품들은 내가 온전히 하고 싶었던 분위기의 작품은 아니었던 거다. R&B의 경우 너무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해서 약간 삐딱선을 탔던 거고.(웃음) 그때 당시에도 ‘R&B 가수들이 싫어하려나?’ 하면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Q 그러고 보니, 프랑스 여배우의 느낌이 있다.
신민아: 내가 원했던 바다. 20대 때의 목표가 그거였는데…(웃음) 그런데 현실과 이상은 너무 다르고, 내 역량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Q. 조만간, 신민아가 프랑스 여배우처럼 나오는 작품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신
민아: 생각만 해도 좋은데.(웃음)
글. 정시우 siwoorain@tenais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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