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의 머라이어 캐리는 없었다. 폭발적인 성량, 5옥타브를 넘나드는 돌고래 소리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히트곡들을 어느 정도 재현만 해주길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불안한 음정과 가사였고, 음을 낮춰 부르다보니 원곡의 멜로디는 사라지기 일쑤였다. 어디를 틀리는지 관객은 다 알았다. 멜로디를 알고 있는 노래니까. 머라이어 캐리의 전성기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에게 이 공연은 상처와도 같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상처 말이다.

오후 8시 18분 올림픽공원 잔디마당 바비 워맥의 ‘어크로스 110th 스트리트(Across 110th Street)’가 시그널로 깔리면서 공연의 막이 올랐다. 첫 곡 ‘판타지(Fantasy)’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노래는 전혀 공간을 채우지 못했다. 처음에는 마이크 볼륨이 지나치게 작은 것이 아닌가했다. 성량의 문제였다. 반가운 레퍼토리였지만, 원곡의 매력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첫 곡이라 조금 불안한 것이리라 여겼다. 이어진 ‘터치 마이 바디(Touch My Body)’에서는 머라이어 캐리 특유의 소울풀한 가성이 나와 줬다. 안도의 한숨을 쉬려고 했지만 노래 전개는 여전히 불안했다. 예전과 많이 다른, 통통한 몸매와 땡땡해진 얼굴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마이크를 객석에 대기도 했지만, 어느 장단에 몸을 맡겨야 할지 모르겠더라. 공연장을 가득 채운 1만2,000명의 관객은 슬슬 무안해지기 시작했다.



“과거로 가자”며 ‘이모션(Emotion)’을 노래하자 객석에서는 반가운 함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장식하는 ‘돌고래 소리’가 나오지 않자 감흥이 반감됐다. 그래도 머라이어 캐리의 목소리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보려 했다. 그런데 고음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됐지만, 음정이 불안한 것은 참기 힘들었다. ‘마이 올(My All)’은 음정을 아예 낮춰 부르고, 감정이 터져 나오는 부분은 아예 빼버려서 대충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도무지 공연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등 뒤의 개기월식이 더 궁금해지더라.

공연 중반에는 리듬감 있는 곡들이 메들리로 이어졌다. 코러스를 포함해 모두 흑인들로 이루어진 밴드의 연주는 훌륭했다. 하지만 보컬이 불안하니 밴드도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연주자들도 무안했고, 관객도 무안했다. 차라리 머라이어 캐리에게서 스무 발자국 떨어진 코러스들의 노래가 훨씬 훌륭했다.

감동이 있었다면 야외 공연장의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감동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에 한기가 온몸으로 다가왔고, 이러다가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헐벗은 머라이어 캐리도 추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저 사람들은 화장실에 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목소리를 잃어버린 디바의 애처로운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이 점점 커졌다.



몇몇 곡에서는 예전의 목소리가 잠시 돌아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찰나였다. 가끔씩 인상을 쓰면서 힘주어 노래해보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 같았다. 비교적 쉬운 곡이라 할 수 있는 ‘올웨이즈 비 마이 베이비(Allways Be My Baby)’를 부르는 모습도 힘겨워 보였다. 저 정도 컨디션이면 투어를 취소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슈퍼내추럴(Supernatural)’을 노래할 때에는 무대 위 스크린으로 머라이어 캐리가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찍은 영상이 흘렀다. 그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한때 너희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여가수 중 한 명이었단다”라고 말이다. 마지막 곡으로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흐를 때에는 그래도 반갑더라. 이 노래만이라도 잘 불러줬으면 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예스컴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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