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은 10년째 연기라는 길을 여행 중이다. 2003년 영화 ‘올드보이’로 입문한 그는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며 자신을 실험했다. 그의 이름이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건 불과 1년 밖에 안됐다. 지난해 출연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비로소 여행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최근 출연중인 ‘꽃보다 청춘’은 유연석에 대한 대중의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자신에게 인기를 안긴 ‘여심을 흔드는 달달한 남자’의 이미지를 뒤로 하고, 유연석이 선택한 영화는 ‘제보자’다. 2005년 대한민국을 달궜던 줄기세포 조작논란을 영화화 한 ‘제보자’에서 유연석은 비밀을 폭로하는 제보자 심민호를 맡았다. ‘제보자’ 이후 그의 행보는 더욱 바빠질 예정. ‘은밀한 유혹’ ‘상의원’ ‘그날의 분위기’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의 여행이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Q. 최근 한국에서 가장 바쁜 남자 중 한 명이 됐다. 황홀한가.
유연석: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니 기분 좋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느낀다. 조금 더 신중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Q. 이럴 땐 중심을 잃기 쉽다. 조절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나.
유연석:
날 바라보는 주변 시선과 기대치가 달라진 것일 뿐, 유연석이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다.

Q.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연기라는 한우물만 팠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유연석: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어려움도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 작품마다 내 나름대로는 얻는 것들이 항상 있었다. 큰돈을 벌지 못하고, 많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지언정, 작품이 끝날 때마다 곁에 사람은 남았다. 그런 소중한 경험들이 누적돼서 지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이전 인터뷰에서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고 했더라.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 이후 많은 캐릭터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제 그런 목마름은 조금 누그러졌나.
유연석:
충족이 안 된다.(웃음) 항상 아쉬움이 남는데, 이건 배우의 숙명이지 않을까 싶다. 날 좋아해주는 분들은 내가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길 원한다. 나 역시 이전과 다른 나를 발견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더 새로운 걸 갈망하게 되고 도전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


Q. ‘건축학개론’의 강남 선배 재욱, ‘늑대소년’의 얄미운 지태,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등을 거치며 ‘국민 나쁜놈’이란 이미지가 붙었다. 당시엔 사람들이 그것이 유연석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응사’가 그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이젠 사람들이 어떻게 유연석이 나쁜 놈을 연기 할 수 있겠냐고 한다. 그래서 질문하고 싶은데, 배우에게 이미지란 뭐라고 생각하나.
유연석:
배우를 기억하게끔 하는 하나의 매개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특정 이미지에 안주하고 싶지도 않고. 계속적으로 새로운 걸 갈구하는 것도 이런 성향 때문인 것 같다.

Q. ‘제보자’에서 함께 연기한 박해일은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배우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널뛰기하고, 캐릭터를 변화무쌍하게 오간다. 당신도 비슷한 행보를 보여 왔는데, 그래서일까. 유연석에게서 미래의 박해일이 보인다.(유연석은 오래전부터 롤모델로 박해일을 꼽아왔다.)
유연석: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무래도 내가 오래전부터 존경해 왔던 선배이니, 무의식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거다. 영화 사이즈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는 선배처럼, 나 역시 그런 길을 가고 싶다.

Q. ‘제보자’에서 연기한 제보자 심민호는 사건의 발단이자 제목 그대로 핵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다. 연기적으로도 고저 없이 간 느낌이 있고. 어떤 점을 주력해서 표현하려고 했나.
유연석:
나는 심민호가남들이 진실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인물이라고 느꼈다. 심민호를 연기하면서 ‘사실을 얘기하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얘기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은 굳이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진심되게 전달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최대한 담담하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사실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Q. 실제의 유연석도 그런가? 사실 진실이라는 것이 상대방의 믿음이 수반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그 진실을 모두가 믿어주지 않는다면 답답한 노릇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확고하게 견지하기란 쉽지 않다.
유연석:
적어도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서는 지키려 하는 것 같다. 배우로서의 소신이랄지, 초반에 지녔던 열정이랄지. 어쩌면 내 연기의 화두는 ‘변하지 않는 열정’이다. ‘꽃보다 할배’ 선배님들을 보면서 ‘저 분들은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느낀 것도 그 지점 때문이다. 오랜 세월 연기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끊임없이 갈구하고 배우고 도전하신다. 그런 선배님들의 열정을 보면서 많은 용기를 얻는다.


Q. 심민호 캐릭터를 받고 가장 먼저 어떤 것을 준비했나.
유연석:
기본적인 사건개요에 대해서는 숙지했다. 그리고 줄기세포에 대한 기초지식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겠다는 생각에 실제 수의대 연구원 분들을 만났다. 그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지켜보면서 함께 실습도 해보고, 대화도 하고, “당신들에게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Q, 뭐라고 답하던가) 힘들 것 같다고.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고 진실을 밝히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고들 하더라.

Q. 줄기세포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고등학교 때 생물은 좀 잘 했나.(웃음)
유연석:
하하. 과학시간을 좋아했다. 의학 계통에 흥미가 많아서, TV에서 수술하는 장면이 나오면 관심 있게 지켜보곤 했다. ‘종합병원2’ 촬영 때도 병원 실습 씬에서 굉장히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레지던트라고 착각하고 다닐 정도로.(웃음)

Q. 고등학교 때는 이과? 문과?
유연석:
예체능.(웃음) 예고는 아니었는데, 인문계 고등학교 예체능과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때 진주로 이사를 갔다. 진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 경기고로 전학을 왔고.

Q.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배우라는 길에 발을 들였으니, 어떻게 보면 연기라는 것 자체가 당신에겐 일종의 여행 같다는 생각도 든다.
유연석:
그럴 수도 있겠다. 배우의 길이 어떻게 보면 여행과 비슷하다. 연기도 여행도 정해진 코스가 있는 게 아니니까. 떠나보기 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고. 그런 점에서 여행도 연기도 참 설레고 흥미로운 작업인 것 같다.

Q. 연기의 어떤 면에 꽂혀서 배우의 꿈을 품은 건가.
유연석:
초등학교 학예회 때 연극을 한편 했다. 연극이 끝난 후 학부모들과 친구들이 박수를 쳐주는데, 어린 나이에 그런 반응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꽂혀서 연기자라는 꿈을 품었는데, 진주에서는 연기를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형이 재수한다고 서울에 갈 때 따라오게 됐다.


Q. 원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 같다.
유연석: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후회하더라도, 해 보고 후회하자는 주의다.

Q. 부모님의 믿음도 큰 힘이었을 것 같다.
유연석:
예전에는 몰랐는데, 서울에 가겠다고 할 때 보내주신 것 자체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이해를 해 주신 거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나와 형 때문에 서울과 진주를 왔다 갔다 하셨고, 그러면서 아버지는 졸지에 기러기 아빠가 되셨다.(웃음) 묵묵하게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다.

Q. tvN ‘꽃보다 청춘’을 보니까 여행을 가기 전에 꼼꼼하게 계획을 짜는 스타일이더라. 일상생활이나, 배우활동에서도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편인가.
유연석:
그런 편이다.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무방비 상태로 지내기보다는 꼼꼼하게 시간을 쓰려고 한다. 작품에 들어갈 때도 고민과 준비를 많이 해서 접근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야 덜 불안하거든. 그런데 ‘꽃보다 청춘’을 통해 라오스를 다녀온 후, 생각이 조금 변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계획하기보다는 맨 몸으로 부딪혀 볼 필요도 있겠다고 느꼈다. 그게, 청춘이니까.

Q. ‘꽃보다 청춘’을 보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더라. 사과한 사람들은 대부분 ‘친구 따라 다니며 무계획으로 여행하는’ 손호준 스타일.(웃음) 당신을 통해 여행계획을 치밀하게 짜는 친구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뒤늦게 깨달은 거지.
유연석:
하하하. 그런데 호준이는 방해하는 성격은 아니다. 잘 따라주는 성격이어서 오히려 편했다. 만약 나 같은 스타일의 친구가 한명 더 있으면 힘들 거다. 부딪히니까. 여행에서 A형이 두 명이면, 정말 피곤할 것 같다.


Q. 당신, A형?
유연석:
맞다. A형.(웃음)

Q. 사진에도 소질이 많은 걸로 아는데, 전시회 사진들을 보니 풍경보다 인물 사진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유연석:
아버지가 선물해 준 수동 카메라 ‘라이카 M3’을 계기로 사진에 취미가 생겼다. 인물 사진에 대한 흥미는 에티오피아를 다녀오면서 생겼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부터 인물사진을 많이 찍기 시작했다.

Q. 사진 찍을 때는 어떤 마음인가.
유연석:
배우로서 카메라 앞이 섰을 때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연기를 해야 한다. 반면 (사진)카메라 뒤편에 있을 땐, 내가 온전히 주체가 된다. 주위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을 작품 안에 녹여낼 수 있는 거지. 그런 사진에 매력을 느낀다.

Q. 사진 외에 또 배우는 게 있나.
유연석:
얼마 전에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땄다. 서핑도 해볼까 한다. 그런데 이젠 취미를 넓히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심화시켜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웃음)

Q. ‘제보자’는 10년 전 논란이 있었던 ‘줄기세포 스캔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의 사건, 기억하나.
유연석:
어느 정도는 기억하는데,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들만 겉핥기로 알았던 것 같고, 언론의 얘기를 너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속에서 어떤 진실들이 오고갔는지는 깊이 바라보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지금도 신문 헤드라이만 보고 그러려니 할 때가 있다. 실제로 많은 언론이 내용과는 무관한 제목을 헤드라인을 뽑을 때가 많고. 이 영화를 통과하면서 미디어에 대해, 그리고 그런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여러 가지 반성과 생각을 했다.


Q. ‘제보자’에는 “국익이 우선이냐 진실이 우선이냐” 하는 대사가 나온다. 살짝 비틀어서 질문하자면 유연석에게는 ‘관객수(대중의 사랑)가 우선인가 작품성이’ 우선인가.
유연석:
작품성이 우선이다. 언젠가부터 관객수, 특히 드라마 시청률은 내 선택의 기준에서 멀어진 것 같다. 좋은 작품 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배우의 인지도는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고 믿는다. 물론 운도 필요하다. 어떤 작품과 경쟁하는지, 어느 시기에 관객을 만나는지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니 말이다. 결국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게 임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Q. 우리가 모르는 유연석의 진실을 하나 알 수 있을까. 알면 위험할까.(웃음)
유연석:
하하하. 아니다. 뭐가 있을까… ‘응사 ’칠봉이나 ‘꽃보다 청춘’ 이미지를 보고 마냥 다정다감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아니다. 내가 경상도에서 살다 와서 무뚝뚝한 면이 있다. 부모님에게 말도 잘 안 하고. 이 정도 고백이면 될까?(웃음)

Q. 하나 더. 그래서 유연석은 진실 된 사람 같나.
유연석:
진실을 추구하려고 한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늘,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Q. 마지막으로 출연 배우로서 ‘제보자’를 관객들에게 제보한다면.
유연석:
촬영할 때도 느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느꼈다. ‘제보자’가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걸. 최근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봤을 때 ‘제보자’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제보자’ 안에서 제보자의 입장을 연기하면서 공익 제보자들이 온전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제보자 분들에게 이 영화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보자’를 보시는 분들이 모두 이 시대의 제보자가 되셨으면 좋겠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is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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