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번째 영화 ‘화장’을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임권택 감독.(부산국제영화제)

임권택 감독. 분명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이다. 100편을 넘어 102번째 작품 ‘화장’을 내놓은 임권택 감독에게 ‘영화’는 쉬울것만 같다. 하지만 ‘거장’ 호칭을 받는 그에게도 깊은 고민과 어려움이 자리했다. 또 젊고 유능한 감독, 그 이상으로 영화에 대한 치열한 열정이 전해졌다. 그는 여전히 ‘젊은’ 현역이었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월석아트홀에서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화장’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102번째 영화 ‘화장’을 하면서 느낀 고민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102번째 영화로 ‘화장’을 선택한 이유

임권택 감독이 ‘화장’ 메가폰을 잡은 이유는 명필름의 권유와 도전이다. 임 감독은 “명필름에서 어느 날 권유를 해왔다”고 언급하면서 “그간 100여 편의 영화를 해오면서 기존의 틀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며 “단편을 보면서 이 소재라면 기존 내 영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소재란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화장’은 오랜 투병 중인 아내가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다른 여자를 깊이 사랑하게 된 남자의 서글픈 갈망을 그린 이야기.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라는 게 살아온 세월만큼 찍히는 것 같다. 물론 오래 살았다고 대단한 명작이 나온다는 게 아니다. 나이만큼 세상을 보고, 또 우리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거다. 이번 ‘화장’이야 말로, 조금 세월을 오래 산 사람들이 찍어볼만한 소재였다는 생각을 했다.”

임 감독은 “살아온 이야기를 영화로 삼았고, 거기에 한국적 정서 등을 심어내려고 했다. 이번에는 그런 것과 관계 없이 영화를 했으면 했다”며 “잘 찍어보고 싶었던 것은 중병을 앓고 살아가는 부인에게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또 한쪽으로 끼어들고 있는 매력 있는 부하 직원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화장’ 속 오상무는 젊고 아름다운 부하 직원을 갈망하면서도 그 마음을 절제한다. 그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한다. “살아보니 욕망이란 게 끝도 없이 달라 붙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이겨내는 것이 절제의 힘인 것 같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는 생각을 지금은 하고 있다”고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들려줬다.

임권택 감독, 배우 김규리, 안성기, 김호정(왼쪽부터)이 영화 ‘화장’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부산국제영화제)

# “늙어서 그런지 잘 안 된다”는 임권택 감독

쉽지는 않았다. 평소와 달리 촬영 중 앓기도 했다. 임 감독은 “늙어서 그런지 잘 안 된다”며 “일년에 걸쳐 띄엄띄엄 촬영을 해가면서 완성시켰던 감독인데, 회차를 정해놓고 영화제에 한 번 내보자는 목표를 향해서 강행군을 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나이가 장애로 작용한다는 것과 강행군이 만나면서, 영화 촬영 중 아프거나 하지 않았는데 한 달 정도 아파가면서 찍었다”고 덧붙였다. 또 “김훈 선생의 엄청난 문장이 주는 힘을 영상으로 드러내야 하는데, 그건 영상으로는 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흥행 안 되는 감독이 쉽게 찍을 일도 없다. 쉬엄쉬엄 (다음 작품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고 걱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화장’은 올해 칸 영화제에 출품했다. 하지만 부름을 받지 못했다. 2002년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던 임 감독이기에 자존심이 상할 법하다. 임 감독은 “칸에 출품했는데 관심 밖으로 밀려나 참 난처했다”며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다시 한 번 편집을 해 보자고 건의를 해 왔고, 심 대표를 심 감독이라 부르는데 심 감독과 젊은 편집자가 새롭게 편집한 게 현재의 영화”라고 말했다.

“칸에 보낸 버전은 너무 졸속이다. 완성도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기한 내에 출품하고, 본선에 들면 다시 작업해 보내자는 생각이었는데 통하지 않았다. 이후 생판 다른 인상을 주는 영화로 편집을 다시 해보자는 제의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산뜻하게 정돈됐다. 그래서 기자분들이 어떻게 영화를 봤을지 오히려 취재하고 싶은 영화다.”

부산=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부산=사진. 변지은 인턴기자 qus122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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