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가자 불빛에 취한 그 길을, 지금까지 노래했던 우리 추억의 길을 워어, 작은 클럽에서 청춘의 밤을 태웠지, 우린 마치 시한폭탄 같았어크라잉넛 노브레인 ‘96’
크라잉넛 노브레인 ‘96’ 中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같이 한 무대에 오른 것을 실제로 처음 본 건 2012년 ‘잔다리 페스타’에서였다. 두 팀은 실로 오랜만에 ‘인디의 성지’ 드럭을 전신으로 하는 DGBD에서 같이 무대에 올랐다. 이는 상당히 감격스런 무대였다. 크라잉넛을 드럭에 가서 직접 본 게 199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십수 년이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홍대 앞에서 미친듯한 록을 토해내고 있다. 신기하지만, 신기하지 않은 일.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인디 신의 태동은 드럭이었고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그 중심에 있었다. 두 팀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 지형도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이들은 ‘조선 펑크’라고 하는 한국 특유의 펑크록을 개척한 대표적인 밴드이기도 하다. 두 팀은 역사적인 첫 협연앨범 ‘96’에서 서로의 대표곡을 바꿔 부르고 있다. 노브레인이 노래하는 ‘말달리자’, 크라잉넛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들으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90년대 말 드럭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함께 만들고 부른 ‘96’을 듣고 울지 마라. ‘넌 내게 반했어’ ‘룩셈부르크’ 등은 원곡과 사뭇 다르게 해석돼 듣는 재미를 더해준다.
태티서 ‘Holler’
소녀시대의 유닛 태티서의 두 번째 EP. 수많은 아이돌그룹의 유닛이 있는데 그들이 본래의 그룹과 얼마나 다른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멤버 일부가 헤쳐모임으로 인해서 보컬의 편성, 그리고 퍼포먼스의 변화가 오는 부분은 있지만, 음악적으로 큰 변신을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태티서도 마찬가지다. 음악의 작법으로 봤을 때 소녀시대와 태티서를 구분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타이틀곡 ‘할러(Holler)’, 그리고 ‘아이즈(EYES)’ 등이 소녀시대의 앨범에 수록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작인 ‘트윙클’의 경우 소녀시대에 비해 보다 단순하고 스트레이트한 맛이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는 SM엔터테인먼트 특유의 ‘복합성’이 강하게 드러나 소녀시대와 더 닮아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점은 있다. 태티서의 경우 소녀시대보다 히트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 않아서 그런지 음악적으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보다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것. 강렬한 리듬감의 ‘아드레날린’의 경우 소녀시대와 에프엑스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는 사운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에피톤 프로젝트 ‘각자의 밤’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의 정규 3집. 에피톤 프로젝트라고 하면 보통 1집 ‘유실물 보관소’에 실린 ‘이화동’을 떠올리는 팬들이 많다. (모 선배기자는 술만 취하면 그 곡을 찾는다) 이제는 그러한 에피톤 프로젝트 특유의 감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고, 에피톤 프로젝트는 작곡가로도 바빠졌다. 새 앨범은 그러한 자신의 스타일에서 상당한 변신을 꾀한 결과물이다. 본인은 “이른바 ‘에피톤표’ 음악이라 불리는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한 번 부숴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음악을 들어보면 아이덴티티가 부숴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선우정아와 함께 한 ‘각자의 밤’의 리드미컬함, 몽환적인 느낌의 ‘플레어’가 기존의 에피톤 프로젝트와 사뭇 다른 곡들. 이탈리아 여행의 감흥을 담았다는 ‘친퀘테레’는 복합적인 풍광이 느껴지는 곡이다. 그 외에 손주희가 부른 ‘미움’, 그리고 ‘낮잠’, ‘유서’ 등에 에피톤 프로젝트 특유의 상념들이 잘 담겨 있다. 각자의 밤을 다른 방식의 채워줄 상념들 말이다.
고상지 ‘Maycgre 1.0’
예전에 피아노 치던 후배가 대뜸 반도네온을 배우겠다고 한 적이 있다. 한국에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이 반도네온을 배우면 세션연주자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하고도 불순한 생각이다) 탱고에서 빠지지 않는 악기 반도네온. 가까운 일본만 해도 료타 고마츠와 같은 유명 반도네오니스트가 있었지만, 국내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실제로 고상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던 반도네오니스트는 거의 전무했다. 여러 공연에서 고상지의 뜨거운 연주를 들어온 탓에 그녀의 솔로앨범이 언제 나올지 은근히 기다려졌다. 앨범 제목 ‘마이크그레 1.0(Maycgre)’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재패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이니셜을 조합한 이름이라고 한다. 반도네온과 애니메이션의 조합이 언뜻 상상이 안 가겠지만 첫 곡 ‘출격’을 들으면 누군가는 자연스레 ‘에반게리온’ 내지 ‘나디아’를 떠올릴 것이다. 수록곡들에는 애니메이션(정확히는 OST)에 대한 추억이 서려있는데, 해당 애니메이션에 빠졌던 사람은 그 자취를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이런 흥미로운 앨범이 나왔을까? 고상지가 탱고에 빠진 이유가 그 음악이 어릴 적 즐겨 하던 ‘드래곤 퀘스트 3’의 OST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음악들이 참 좋긴 좋았지.
클래지콰이 ‘Blink’
클래지콰이의 데뷔 10주년에 나온 정규 6집. 요즘 같은 때에 10년 동안 팀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6집이라는 숫자도 참 놀랍다. 클래지콰이의 정확한 팀명은 ‘클래지콰이 프로젝트’다. 본래 DJ 클래지의 개인 프로젝트 성격으로 시작됐지만, 보컬을 맡은 알렉스, 호란과 10년 간 함께 해오며 프로젝트는 엄연한 하나의 팀이 됐다. 2004년 클래지콰이가 데뷔했을 때 이들은 새로운 유행을 이끄는 트렌드세터와 같은 존재였다. 캐스커, 허밍 어반 스테레오 등과 함께 시부야케이, 칠아웃 등을 국내에 들여왔고, 클래지콰이는 이를 자신들의 스타일로 점점 발전시켜나갔다. 이제는 알렉스와 호란은 자신의 활동반경을 가진 연예인(?)이 됐지만 그래도 클래지콰이로 뭉쳤을 때는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 반갑다. 지난 달 29일 10주년 파티에서도 ‘젠틀레인’ ‘노바보사’ ‘컴 투 미’ 등을 노래하는 모습이 참 정겹더라. 이제는 클래지콰이 풍의 가요도 많아졌고, 일렉트로 팝 자체가 유행의 중심이 됐다. 클래지콰이는 더 이상 트렌드세터는 아니겠지만, ‘블링크(Blink)’의 한결같은 모습이 오히려 좋다.
빅베이비드라이버 ‘A Story of A Boring Monkey and A Baby Girl’
여성 싱어송라이터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정규 2집. 지난 2011년 빅베이비드라이버가 1집을 발표했을 때 ‘아톰북의 리더 sp의 솔로 프로젝트’라는 소개가 따라왔다. 이제는 아톰북보다 빅베이비드라이버가 더 유명해졌다. 1집을 통해 푸근한 감성을 선보인 빅베이비드라이버는 이제 여러 드라마의 OST에도 쓰이면서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갔다. 새 앨범은 비교적 단순했던 전작에 비해 음악적으로 훨씬 풍부해졌으며, 컨트리, 포크 등이 지닌 각각의 특징을 보다 맵시 있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로써 본인의 색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제 빅베이비드라이버는 한국 인디 신에서 자신만의 구별되는 목소리를 지닌 아티스트로 구분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전작부터 바시티 버니언과 같은 청명함이 살짝 느껴졌는데 이번 앨범은 더욱 바시티 버니언과 닮아있는 것 같다. 이건 칭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윤도현 ‘노래하는 윤도현’
윤도현의 5년 만의 솔로앨범. 록밴드 YB의 보컬 윤도현도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1995년에 나온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포크 록적인 성향이 짙었다. 한동안 윤도현을 상징했던 ‘타잔’은 록이었지만, ‘가을 우체국 앞에서’ ‘너를 보내고’ ‘사랑 투’ 등은 잔잔한 포크록의 여운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윤도현에게서는 김광석, 안치환, 그리고 강산에의 색을 언뜻 볼 수 있었다. 신보는 어쿠스틱 기타를 기본으로 하는 잔잔한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앨범 이름 ‘노래하는 윤도현’은 윤도현이 사인을 할 때 쓰는 문구. 대학로 학전에서 누군가 처음으로 사인을 요청했을 때 그냥 이름만 썼다가 뭔가 멋진 걸 쓰고 싶어서 고민해서 만든 게 ‘노래하는 윤도현’이라고. 케이윌, 타블로, 옥상달빛, 에스나 등이 참가했지만 콜라보 앨범은 아니고 윤도현 개인의 색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시 노래한 대표곡 ‘가을 우체국 앞에서’은 여전히 깊은 감흥을 전한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윤도현의 목소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Partners’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미국 팝의 역사를 대표하는, 또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가수다. 우리나라로 치면 패티김, 이미자 정도 위치에 서는 가수라고 할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가 곧 스탠더드가 됐으니 말이다. 새 앨범 ‘파트너스(Partners)’는 남성가수들과 듀엣을 한 앨범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해 스티비 원더, 빌리 조엘, 라이오넬 리치와 같은 거장들부터 베이비페이스, 마이클 부블레, 조쉬 그로반, 존 레전드, 존 메이어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이들이 참여했다. 이는 바브라이기에 가능한 매치가 아닌가 한다.(고인이 된 엘비스 프레슬리는 옛 녹음을 가져와 함께 부른 것) 바브라는 자신의 히트곡과 함께 널리 사랑받는 스탠더드 넘버들을 노래하고 있다. 워낙에 기라성과 같은, 목소리만 들으면 누군지 아는 가수들이 참여했기에 매 곡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브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세월이 선사한 여유로움까지 지니고 있다.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더 웨이 위 워(The Way We Were)’는 라이오넬 리치와 함께 노래했다. 거의 손자뻘인 존 메이어와 함께 한 ‘컴 레인 오어 컴 샤인(Come Rain or Come Shine)’도 잘 어울린다.
오아시스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오아시스의 대표작 ‘(왓츠 더 스토리) 모닝 글로리?((What’s The Story) Morning Glory)’가 리마스터 앨범으로 발매됐다. 데뷔작 ‘디피니틀리 메이비(Definitely Maybe)’ 발매 20주년을 기념해 오아시스 1~3집이 차례로 리마스터링 되고 있는 것. 1995년에 나온 이 앨범의 인기는 가히 대단했다. 영국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됐고, 당시 오아시스는 영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밴드가 됐다. ‘원더월(Wonderwall)’을 필두로 수많은 곡이 히트했고 ‘돈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는 팝송 안 듣는 국내 일반인들도 알 정도로 유명한 곡으로 남아있다. 이들이 블러(Blur)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던 것도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됐지만, 이 앨범의 곡들은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리마스터 앨범은 음질의 개선 외에 명반을 다시금 조명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니 아이들아, 이 앨범을 들어보렴. 귀를 트이게 해줄지도 몰라.
찰리 헤이든, 짐 홀 ‘Charlie Haden – Jim Hall’
이제는 짐 홀도 찰리 헤이든도 저 세상 사람이 됐다. 짐 홀은 작년 12월, 그리고 찰리 헤이든은 올해 7월에 각각 사망해 전 세계 재즈 팬들을 아쉽게 했다. 이 앨범은 짐 홀과 찰리 헤이든이 1990년 ‘몬트리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서 듀오로 공연한 실황을 녹음한 앨범으로 고인들의 유작인 셈이다. 짐 홀도, 찰리 헤이든은 각각 수많은 거장들과 함께 연주했다. 헌데 정작 둘이 함께 녹음에 참여한 것은 매우 드물다. 둘이 처음 녹음을 한 것은 1972년 찰리 헤이든이 오넷 콜맨 퀄텟의 일원일 때 집 홀이 게스트로 참여한 앨범 ‘브로큰 섀도우스(Broken Shadows)’였고, 짐 홀의 앨범 ‘짐 홀 & 베이시스(Jim Hall & Basses)’에서 두 곡을 함께 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황에서 둘은 매우 밀접한 앙상블을 들려준다. 사실 짐 홀과 찰리 헤이든은 화려함을 내세우기보다는 절제를 아는 연주자들이다. 또한 둘 다 ‘듀오의 달인’이라 할 정도로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명인들이다. 덕분에 손발을 맞춘 적이 많지 않더라도, 이렇게 음악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첫 곡 ‘뱀샤 스윙(Bemsha Swing)’부터 경건해지니 말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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