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용, 김보미, 이일우(왼쪽부터)
유럽 대륙에 별을 그렸다. 퓨전국악그룹 잠비나이는 지난 5~7월 두 달간 유럽 14개국을 돌며 총 26회의 공연을 가졌다. 벨기에로 시작해 슬로베니아-네덜란드-체코-폴란드-이탈리아-영국-독일-덴마크-포르투갈 등지를 돌다보니 자연스럽게 유럽지도에 별이 그려졌다. 이 스케줄에는 세계적인 페스티벌들인 ‘글래스턴베리’ ‘엑시트’ ‘로스킬데’ 등이 포함됐다. 이런 대규모의 해외투어는 유명 케이팝 아이돌그룹조차 엄두를 내기 힘든 스케줄이다. 정작 우리는 낯설어한 잠비나이의 음악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Q. 지난 5월 28일부터 7월 27일까지 유럽 14개국을 돌며 26회 공연을 했다.
세계 최대 음악박람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의 디렉터 토드 퍽카버(Todd Puckhaber)는 텐아시아와 만났을 때 “잠비나이를 처음 봤을 때 엄청난 사운드에 큰 감동을 받았다. 동양의 음악이지만 서양인들에게 익숙할 만한 어법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잠비나이는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해외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악과 록을 환상적으로 조화시킨 이들의 음악은 단박에 그들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해외 페스티벌 관계자들 사이에서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으로 호평 받으며 내후년 공연 스케줄까지 의뢰가 오고 있는 상황. 이는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왜 그들은 잠비나이에게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잠비나이의 멤버 이일우(기타), 김보미(해금), 심은용(거문고), 그리고 매니저 김형군 대표를 함께 만났다.
일우: 굉장히 힘들었다. 해외 투어를 간다고 하면 관광도 하고 맛난 것도 먹고 오는 줄 아는데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밴을 타고 거의 하루에 10시간 씩 달렸다. ‘공연장-숙소-다시 이동’이 반복됐다. 한 3주 정도 하니까 적응되더라. 그때부터 관객들의 열기가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Q.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이다. 이렇게 긴 투어는 처음 아닌가?
형군: 숙소에 가서 짐 풀 시간 없이 바로 무대로 가서 리허설 하고, 잠시 앉았다가 바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페스티벌 일정을 따르다보니 유럽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아우토반을 몇 번을 왕복했는지 모르겠다. 세르비아 ‘엑시트’를 마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동할 해에는 무려 나흘간 차를 타고 갔다. 하루에 800~900㎞ 씩 달리곤 했다.
보미: 별모양으로 돌았다. 하하.
Q. ‘이렇게 공연하다 죽겠다’ 싶은 적 없었나?
보미: 무대 위에서 몇 번 휘청한 적은 있다. 공연 막판에 몽롱해질 때가 있더라.
Q. 잠비나이는 최근 국내 팀을 통틀어 가장 활발하게 해외 공연을 갖고 있다. 첫 해외 공연은 언제였나?
형군: 작년 5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이 처음이었다. 지금 잠비나이의 해외 투어 에이전시를 맡고 있는 네덜란드 회사 ‘어스 비트(Earth Beat)’의 제롬 윌리엄스가 다리를 놔줬다. 제롬은 2012년 가을에 울산 ‘에이팜’(음악박람회)에 델리게이트로 들어왔다가 한국 음악을 접하게 됐다. 그때 잠비나이의 ‘소멸의 시간’ 뮤직비디오를 보고 우리를 찾게 된 거다. “5월에 핀란드에 가는 밴드를 찾는 중인데 잠비나이가 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바로 승낙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Q. 작년에 섰던 세계 최대 월드뮤직 박람호인 ‘워맥스(WOMEX)’에서 현지 관계자들의 극찬을 얻었다.
형군: ‘워맥스’가 2013년 마지막 주였는데 그 전 10월 초부터 국내 음악박람회인 ‘에이팜’, ‘뮤콘’, ‘팸스’에 참여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특히 ‘에이팜’에는 ‘글래스턴베리’의 말콤 헤인즈를 비롯해 ‘워맥스’의 이사진들, 그리고 ‘엑시트’ ‘스핑크스 믹스드(Sfinks Mixed)’ 등 전 세계 거물급 페스티벌 디렉터들이 많이 왔다. 그들이 ‘에이팜’에서 잠비나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들이 그대로 또 ‘워맥스’로 넘어가서 ‘잠비나이를 꼭 보라’는 입소문이 퍼트려줬다. 덕분에 공연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워맥스’에는 공연 관계자들이 좋은 뮤지션을 발굴하기 위해 모이기 때문에 보통 5분 보고 간다. 오죽하면 ‘워맥스’ 스태프가 ‘관객이 없어도 상처받지 마라’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 공연장에는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반응이 대단했다. 10분 만에 약 300장 있던 프로모션 CD가 바닥이 났다. 그리고 우리 책상에 그들이 주고 간 명함이 쌓여있더라.
Q. ‘워맥스’는 어떻게 나가게 됐나?
보미: 내가 응모해보자고 했다. 2006년 ‘워맥스’를 직접 보러 갔다가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워맥스’에 서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지원을 했는데 선정됐다는 메일을 받고 다 같이 만세를 불렀다.
Q. 당시 워맥스에서 잠비나이를 본 해외 관계자들이 그 공연 이야기를 하더라. 정말 대단했다고.
보미: 대단했다. ‘워맥스’ 공연에는 사운드 데시벨을 제한하는 ‘소리 제한’이 있는데 그걸 담당자가 과감히 풀어버렸다.
형군: 어느 정도 데시벨을 넘기면 담당자가 공연 사운드를 꺼버린다. 공연장 주변이 호텔, 쇼핑몰이라서 법으로 정해진 데시벨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담당자가 공연을 보더니, ‘이 음악의 소리를 줄이는 것은 못할 짓’이라며 소리 제한을 없앴다. 그리고 나에게 “나 감옥 가면 너희 탓이야”라고 말하더라.(웃음)
일우: 난 회사에 사표를 쓰고 ‘워맥스’에 갔다. 정말 비장의 각오로 간 거다. 다행히도 반응이 좋았다. ‘내가 여기에 오지 않고 그냥 한국에 남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고민이 확 정리가 되더라.
Q. 그렇게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형군: 올해 3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공연이 확정됐을 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의 디렉터에게서 메일이 왔다. ‘워맥스’에서 우리를 봤다며 여러 스테이지를 해달라고 하더라. 때문에 보다 많은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덴마크 ‘로스킬데’
Q. 5~7월 유럽투어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일동: 덴마크 ‘로스킬데’가 최고였다. 그 외에 폴란드에서 열린 ‘에스노포트 포즈난’ 슬로바키아 ‘포호다’가 좋았다.
보미: ‘로스킬데’는 시스템이 완벽했다. 사실 해외 페스티벌을 돌다보면 공연 시간이 딜레이도 되고 음향이 불안한 경우도 있는데 ‘로스킬데’는 모든 것이 물 흐르듯이 원활하게 진행됐다. 딜레이가 3분을 안 넘겼다. 특히 우리는 해금, 거문고와 같은 국악기를 써서 음향을 잡기가 까다로운데 그런 면에 있어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리가 공연한 날에는 롤링 스톤즈가 헤드라이너였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다를 이룬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은용: ‘로스킬데’에서 ‘소멸의 시간’을 연주하는데 거문고가 당당당하고 시작하는 도입부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더라. 우리 음악을 알고 보러 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정말 대단한 감동이었다.
Q. 해외에도 팬이 생기기 시작한 건가?
형군: 해외 팬을 만나보면 케이팝을 듣다가 잠비나이를 알게 됐다는 이들도 있다. 우리 ‘소멸의 시간’ 뮤직비디오가 공개됐을 때 해외 케이팝 웹진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우리 역시 케이팝 중의 하나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Q. 유럽 각국을 돌다보면 나라마다 관객 반응의 차이가 느껴지겠다.
일우: 세르비아 ‘엑시트 페스티벌’에서는 헤비메탈 밴드들과 같은 무대에 선 적도 있다. 당시 관객들은 메탈마니아들이었는데, 그들 특징이 ‘메탈만이 진리’라고 여긴다. 때문에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강남스타일’의 나라에서 왔다며 비웃더니 어서 하고 내려가라는 반응들이었다. 그런데 공연을 마치고 나니까 반응이 180도 바뀌었다. 우리 음악이 그들을 요리해버린 거다. 대기실에서 우리의 국악기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던 뮤지션들이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니 환호성을 보내더라. 그래서 그들과도 친구가 됐다.
형군: 원래 우리는 메탈 스테이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엑시트’의 디렉터 이반이 그 전에 중국에서 우리 공연을 보고서는 “너희는 센 곳에 가도 된다. 그 곳이 무대도 크고, 사람도 많다”며 메탈 스테이지에 넣어줬다. 덕분에 스래쉬 메탈 밴드 사이에서 공연했다. 매우 즐거웠다.
일우: 정말 재밌었다. 유럽 메탈 밴드들은 의상과 퍼포먼스가 독특했다. 십자군갑옷을 입고 엑스칼리버와 같은 긴 칼과 방패, 도끼를 들고 무대에 오르는 팀도 있고, 불 쇼를 한느 이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해금과 거문고를 들고 공연을 한 거다. 하하.
Q. 공연 관계자, 평론가들은 잠비나이의 음악이 해외에서 각광받는 이유로 신선함과 친숙함을 꼽는다. 국악기에서 오는 신선함과 록의 질감을 가진 친숙함이 결합됐다는 것이다. 본인들은 왜 해외에서 각광받는다고 생각하나?
형군: 처음에는 생소한 악기가 주는 소리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게 호기심으로 그치지 않고 음악으로 이끄는 것이다. 한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악기가 주는 호기심으로 끌리지만, 결국 너희를 좋아하는 이유는 잠비나이가 가지고 있는 정서에 공감하고 빠져들기 때문”이라고.
은용: 우리 음악이 메탈처럼 강렬한 부분도 있지만, 그 안에 부드럽고 섬세한 면들이 있다. 그런 다채로운 요소들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가지고 공연에 집중하게끔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공연이 끝날 때면 우리에게 반하는 거지.(웃음)
Q. 기나긴 두 달 투어 마치고 나서 기분이 어땠나?
보미: 드디어 김치찌개 먹는구나! 예상 외로 마지막 공연 끝나고 남자 스태프들이 울더라.
형군: 내가 울었다. 마지막 곡으로 ‘커넥션(Connection)’을 연주하는데 연주자들과 관객들의 표정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이 내 가슴을 막 때리더라. 사실 두 달 투어를 시작하면서 완벽하게 마쳐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정말 중요한 기회였으니까. 그래서 초기에는 잠비나이 멤버들을 막 조르기도 했다. 그런데 한 달 정도가 지나니까 잠비나이의 무대에 자연스레 신뢰가 생겨났다. 그런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가다보니 고마움과 미안함이 겹쳐서 눈물이 흐른 것 같다.
보미: 앞으로도 투어가 계속 잡혀 있는데 울 이유가 없지.(웃음)
Q. 내후년까지 해외공연 스케줄이 잡혀있다고 하던데?
형군: 내후년 오퍼까지 들어온 상황이라서 스케줄 조율 중이다. 일단은 올해 12월 투어까지 확정이 됐고 내년 여름 투어는 올해 11월 안에 결정될 거다.
Q. 잠비나이의 해외 투어 에이전시를 맡고 있는 제롬 윌리엄스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형군: ‘어스비트’의 디렉터로 우리 해외 투어를 잡아준다. 어스비트에는 한국 팀으로는 잠비나이와 ‘숨’이 계약을 했고 그 외에 일본, 중국, 몽골 등의 팀들도 있다.
Q. 계약한 팀들은 주로 어떤 음악을 하나?
형군: 가지각색이다. 주로 자기들의 전통음악에 록, 일렉트로니카 등을 섞은 팀들이 많다. 요새 월드뮤직의 흐름이기도 하다.
Q. 잠비나이의 스케줄을 보니 처음 들어보는 페스티벌이 정말 많다.
일우: 제롬 말로는 이것도 극히 일부라고 하더라. 올해 투어를 마치고 나서 내년에는 섭외가 안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대개 페스티벌은 같은 팀을 연속으로 섭외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제롬이 내년에는 더 많은 곳에서 투어를 하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Q. 개인적으로 잠비나이를 처음 본 것은 2011년 EBS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 ‘헬로루키’ 경연에서였다.
보미: 그때는 지금처럼 해외에 다닐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냥 ‘헬로루키’ 선정만 되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형군: 그냥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해외 페스티벌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현실이 됐다.
Q. 아직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바쁘다.
일우: 국내에서도 많이 바빠졌으면 좋겠다. 왜들 우리를 어려워하시는지….
형군: 해외를 돌며 확인한 것은 우리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연령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힙’한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막상 나가니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좋아해주시더라. 음악을 쉽다 어렵다 구분하기 전에 일단 들어줬으면 좋겠다.
Q. 향후 계획은?
형군: 9월과 10월 중국 상해 공연이 잡혀있다. 11월부터는 새 앨범 녹음에 들어간다. 12월에는 2주에 걸쳐 베네룩스 2국과 프랑스를 돌며 10회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그리고 정규 1집 ‘차연’이 오는 12월에 유럽에서 LP로 발매된다.
Q. 새 앨범에 대해 살짝 귀띔을 해준다면?
일우: 새 앨범은 보다 어두운 면을 부각시킬 것 같다. 포스트 록보다는 둠 메탈, 익스페리멘탈 록 쪽으로 더 실험을 해볼 것 같다. 더 헤비해진다고 더 여려워지는 것은 아니다.(웃음) 더 원초적인 음악이 될 것 같다.
잠비나이 유럽투어 스케줄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사진제공. 잠비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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