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스나이퍼를 만나고 싶었다. 힙합을 잘 모르던 시절에도 MC스나이퍼의 ‘베럴 댄 예스터데이(Better than yesterday)’,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BK 러브’ 등 주옥같은 힙합곡을 선보인 힙합 1세대다. 철학적이면서 감성적인 가사와 무대 장악력이 큰 무기로 평가받으며 ‘힙합계의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난 2012년 6집 정규앨범 ‘풀 타임(Full Time)’를 발표한 이후 슬럼프에 시달렸다. ‘암 선고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다시 힙합이었고, 음악이었다. MC스나이퍼는 ‘비카이트(B-Kite)’라는 레이블을 설립해 새로운 출발에의 의지도 보이고 있다.

지난달 5일 새로 발표한 미니앨범에는 MC스나이퍼가 그동안 쌓아온 솔직한 이야기를 담겼다. 아내를 위한 곡 ‘콜라병’부터 공개 디스곡 ‘자러 가자’까지, MC스나이퍼는 이번 앨범을 두고 “자가 치료”라고 표현했다. 그는 힙합으로 치유 받고, 힙합으로 표현하는 진짜 래퍼였다.

Q. 정말 오랜만에 컴백이다. 반응은 어떤 것 같나?
MC스나이퍼 : 슬금 기어 나온 것 같다.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족스러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일단은 너무 오래 쉬었고, 그 사이에 트렌드들이 변했고, 그럼에도 (내 이름이) 거론자체가 안될 줄 알았다. 신인처럼 돌아가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Q. 이번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휴지통에 버려졌던 곡 중 위안을 줬던 5곡을 골라서 담은 곡이라고 들었다.
MC스나이퍼 : 꼭 짚고 넘어 가야할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다 버렸는데 주위 사람들이 꼭 하고 지나가야할 것 같다고 조언해줬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디스한 적이 없었는데 나를 위해서라고도 생각하고 발표했다. 이번 미니앨범은 자가 치료 같은 앨범이라서 더 의미가 있다. 세상의 반응보다도 나를 위한 앨범이었다.

Q. ‘자러가자’의 경우, 아웃사이더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맞는가. 적나라한 디스인데도 라임이 살아있더라.
MC스나이퍼 : 낭만 없게 팩트만 가지고 싸우는 건 재미가 없다. 낭만을 살리려고 했다. 하하.

Q. 타이틀곡 ‘콜라병’은 솔직히 실망했다. MC스나이퍼는 ‘베러 댄 예스터데이(Better than yesterday)’나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같은 철학적인 가사가 대표곡인데 말이다.
MC스나이퍼 : 이번 앨범의 색깔을 위해서 ‘콜라병’을 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범키와도 작업도 고민했다. 그런데 명반을 만들겠다기보다 자가 치료의 의미가 큰 앨범이고, ‘콜라병’ 또한 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콜라병’은 꼭 넣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빛을 발하기 전에 부르고 싶었고, 또 내 와이프를 위한 곡이었다.

Q. ‘콜라병’을 타이틀곡으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MC스나이퍼 : 이번 앨범을 준비하기 전에 워낙 슬럼프가 심했기 때문에 내 의사로 결정하기가 힘들 정도로 결벽증이 심했다. 하나부터 끝까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야 하는 ‘사무적 결벽증’ 말이다. 그래서 타이틀곡을 직원들에게 정해라고 맡기고, 나머지는 내가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Q. 타이틀곡을 대중성을 노린 것이고, 나머지는 MC스나이퍼의 진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일까?
MC스나이퍼 : 음.. 대중성이 있다 없다를 떠나 모두 내 음악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뛰는 맥박’이 좋다.

Q. 범키가 피처링했는데 보컬을 정하는 데 있어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
MC스나이퍼 : 노래를 잘하거나 유명하거나로 결정하진 않고,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로 결정한다.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생판 모르는 애가 와서 부르게 할 순 없다. 범키는 라이머로 인해 워낙 친하게 지냈고, 내 결혼식에서 축가도 불렀다. 범키를 스타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범키가 진짜 대세에요?



Q. 레이첼 야마가타와의 친분도 있어서 정말 놀랐다.
MC스나이퍼 : 세계적인 가수라곤 하지만 나에게 홍대에 있는 어느 멋있는 뮤지션과 다르지 않다. 나의 강력한 팬이기를 자청하니까 고맙고, 무대를 보면 정말 멋있고, 매우 아름답다. 팬이라고 말해서 계속 만나고, 작업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레이첼 야마가타가 “당신의 팬인 나는 코러스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해줬을 때 정말 힘이 났다. 한창 슬럼프를 겪고 있었을 때도 무대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고 ‘헤비 웨이트’라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Q. 레이첼 야마가타가 내한했을 때, TV에서 MC스나이퍼의 무대를 보고 당장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는데 그 무대가 무엇인가?
MC스나이퍼 : 글쎄.. 나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냥 음악을 듣자마자 ‘저 사람이랑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더라. 레이첼 야마가타도 직관을 믿는 성격이라서 ‘당신과 나는 무조건 친해져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나보다. 내가 영어를 못하지만, 음악으로 그냥 친해졌다.

Q. 하긴, MC스나이퍼라면 무대장악력도 최고지 않나.
MC스나이퍼 : 그런가? 무대에 올라가면 신이 난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힘이 부칠 때는 맥주 한 캔씩 먹고 올라가기도 한다. 감기 걸렸다가도 무대에 올라가면 목이 풀린다. 운동 신나게 하고 내려오는 느낌도 있고.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다.

Q. 어렸을 때 어머니가 레코드 가게를 하셨다고. 많은 음악을 들었을 텐데 왜 힙합이었나?
MC스나이퍼 : 중학교 때 어머님이 레코드 가게를 하셨는데 그때 테이프로 듣던 게 듀스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투팍이나 사이프로스라든지 그런 음악에 그냥 끌렸다.

Q. 힙합에 대핸 궁금했던 점 중 하나는 투팍이나 비기 등으로 가사를 공부하거나 힙합에 입문했던 사람들이 많더라. 두 사람이 어떤 차이점이 있나?
MC스나이퍼 : 음악을 들을 때 분석적으로 듣는 사람이 있고, 그 느낌 안에서 노는 사람이 있다. 투팍 같은 경우는 랩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기분대로 하는데 음악 안에서 논다. 비기 같은 경우는 운율이라든지 각운이라든지 짜임 새있게 맞춰서 한다. 나는 지금도 아무리 멋진 화성학을 가지고 곡을 쓴다고 하더라도 안 좋은 건 안 좋더라. 그렇다고 대충 쓴다고 다 안 좋은 것도 아니고. 나는 듣는 스타일이지 분석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Q. 그래도 MC스나이퍼의 별명 중 하나는 ‘힙합의 음유시인’ 아닌가.
MC스나이퍼 : 하하. 음유시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감정적으로 잘 써서 그러나? 김훈 작가님의 문체를 좋아하는 거 사실이다.

Q. 가사 쓰는 노하우가 있다면?
MC스나이퍼 : 아, 이건 영업 비밀인데.. 하하. 어린 래퍼들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머리가 좋아서 막 쓰는데 10년을 하면 자주 쓰는 단어가 생기고, 비슷한 말이 생긴다. 나도 그런 게 생겨서 탈피를 하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방법은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생어를 채집하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해 쓰면 예전과 같은 주제가 아니라 이번에는 아버지의 이런 점을 쓸 것이라 생각하고 생어를 찾는 것이다.

Q. 그런데 케이블채널 Mnet ‘쇼미더머니’를 통해서도 생겼지만, 힙합엔 욕설이 난무한다는 비판도 있다.
MC스나이퍼 : 단어를 잘 쓰는 건 중요하다. 무엇이든 남발하면 안 좋은데 욕도 욕처럼 쓰면 정말 좋다. ‘오늘 인터뷰 매우 즐거웠어’보다 ‘와, 오늘 인터뷰 X나 재미있어’라고 말하는 게 더 생생하지 않나? 듣기 거북한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 뮤지션들이 알아서 잘 판단해야 한다.

Q. 힙합도 많이 대중화가 됐지 않나. 그런데 언더그라운드에서 대중성 있는 음악에 대한 비판도 있더라.
MC스나이퍼 : 예전에 내 노래를 두고도 랩발라드라고 욕을 먹은 적이 있다. 또 누가 그 욕을 보고 ‘저게 어떻게 랩발라드냐 전체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라고 말해준 적도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뭔가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소똥도 밭에 있으면 거름이고, 방에 있으면 똥이다. 내가 밭에 가까운 사람인지 아닌지 다를 것이다. 같은 건 다 음악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분류가 나뉘어지는 것을 뭐라고할 필요가 없다. 뮤지션을 만드는 것 까지만 있다. 듣는 것 리스너의 몫이고.

Q. MC스나이퍼의 음악은 어떤가?
MC스나이퍼 : 변화를 항상 추구하는데 그 변화의 강도만 생각한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대중의 몫이다. 자기들이 별로라면 별로인거다. 가장 나다운 앨범을 만들었을 때 ‘저 사람은 가식이 아니다’는 것을 듣는 게 좋다. 난 시대 반영적이고, 환경에 따라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제 나이에 맞는 것을 쓴다. 예전 ‘마법의 성’ 앨범 나왔을 때는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고 세상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런 곡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Q. 올해 안으로 또 다른 앨범을 기대할 수 있을까?
MC스나이퍼 : 계획이 있다. 그런데 싱글이나 미니앨범 형식이 고민을 짧게 해야 하니까 너무 어렵다. 고민을 하려니까 준비 기간이 끝나더라. 지난 6집에는 총 20트랙이 들어가 있는데 앨범을 만들 때는 색깔이나 분위기를 비롯해 1번부터 20번까지 전체 트랙이 영화 보듯이 흐름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듣고 싶은 트랙만 찍어서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이었다. 가수는 앨범을 통해서 그 사람의 성향, 성격, 방향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하.

Q.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뀐 것 같다. MC스나이퍼는 한 앨범에 정말 많은 트랙이 있다. 이전 노래 중 스스로 명곡을 꼽는다면?
MC스나이퍼 : 1집 앨범. 1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정말 많다. 1번부터 18번 트랙까지 차례대로 들어보라. 옛날 앨범이라 사운드가 좋지 않을 수 있지만 노래가 좋다.

Q. 그런데 슬럼프 극복은 어떻게 했나?
MC스나이퍼 : 슬럼프 극복 자체가 없었다. 무기력했고, 패배주의에 빠져있었다. 염세주의에 가까웠을 수도 있는데 마음이 병들어있었다. 정말 목적의식이 강한 스타일인데 거기만 집중을 하다보니까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적지 않았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점점 슬럼프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힘은 우리 와이프가 나를 재워줄 때다. 또, 슬럼프를 극복했다기보다 울타리 하나를 두고 건너온 것 같다. 남극에서 북극으로, 겨울에서 여름으로 확 넘어온 것 같은 느낌. 가사에도 있지만, 겪고 나니까 마음이 무쇠같이 단단해진다. 이제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내 마음의 핑계, 사소한 마음의 요동이라도 많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Q.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낸 것 같다.
MC스나이퍼 : 어느 정도였냐면 암 선고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인생에 대해서 크게 돌아보는 경우가 내일 갑자기 무기징역으로 교도소에 가게 됐을 때,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다. 죽음을 앞두니 삶이 새로워질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난 새로 태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아, 다 부질 없구나’가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지구력 있게 해야 되겠다. 자기 템포가 없는 사람이 많은데 남의 속도보다 내 속도로 가야 겠다.

Q. 이번 앨범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가?
MC스나이퍼 : 인기나 평가보다 내 음악이라는 것에 만족한다. 거기서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땡큐지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자기만족을 더 추구하고 싶다. 책에 몇 마디 문구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듯이 내 음악을 듣다가 힘을 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음악을 통해 자기가 처해진 환경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Q.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 50대의 풍경을 그려본다면.
MC스나이퍼 : 여유로울 것 같고, 행복할 것 같고, 주위에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이전에는 누구한테 ‘뭐 해봐’, ‘이거 해봐’ 막 트레이닝시키며 살았는데 이제는 지켜보고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파이팅이 넘치는 리더십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지게 됐다.

Q. 앞으로의 활동을 어떻게 되나?
MC스나이퍼 : 당분간은 음반 활동을 계속할 것 같다. 일단 수렁에서 나왔으니 세상을 만끽하고 싶다. 이 앨범을 꼭 기억할 것이다. ‘비카이트’라는 말 자체가 환골탈태를 의미한다.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제공. 비카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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