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섭의 노래는 당신에게 무엇인가? 그의 노래는 우리에게 공기와도 같다. ‘홀로 된다는 것’ ‘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너에게로 또다시’ ‘숙녀에게’ ‘로라’ 그리고 ‘희망사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히트곡들이 1988년 그의 데뷔 때부터 우리 일상과 함께 해왔다. 변진섭의 1집이 국내 최초로 밀리언셀러(100만 장 판매)를 기록하면서 한국에는 발라드 전성시대가 열렸다. 1988~89년에만 무려 10여곡의 히트곡을 배출했다. 이후 약 사반세기가 흘렀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는 없다.Q. ‘히든싱어’에 출연 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변진섭의 노래들은 조금의 빛바램도 없이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 노래들이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흉내 내기 힘든 특유의 음색 때문이기도 하다. 가수를 모창하는 프로그램 ‘히든싱어’에서는 변진섭을 섭외 1순위로 꼽지만, 닮은 목소리를 찾을 수 없어 애를 먹고 있을 정도다. 히든싱어의 조홍경 트레이너는 한 인터뷰에서 “변진섭은 정말 도전해보고 싶은 가수다. 워낙 좋아했고 지금 들어도 괜히 설레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변진섭은 오는 10월 18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국투어에 돌입한다. 콘서트의 타이틀로 ‘I’m 변진섭’을 내걸고 주옥과 같은 히트곡들을 선사할 예정이다. 공연을 앞둔 그와 ‘변진섭의 발라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변진섭: 시즌1부터 섭외가 계속 왔다. 그런데 나랑 음색 비슷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고 하더라. 어느 정도 모창이 돼야 트레이닝을 할 것 아닌가.
Q. 흉내 내기 힘든 음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가수로서 굉장한 장점이 아닌가.
변진섭: 양날의 검인 것 같다. 흉내 내기 힘들다는 것은 정말 독특한 음색을 갖고 있거나, 아니며 개성이 없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흉내 내려면 어떤 독특한 점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그게 안 끄집어내지니까 그런 것 같다. 나도 이제껏 내 노래를 똑같이 부르는 가수를 못 봤다. 흉내 내기 어려운 목소리라고들 하시는데, 그래서 내 노래는 리메이크보다 원곡이 낫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Q. 1집에 담긴 ‘홀로 된다는 것’이 출세작이다. 하광훈이 만든 곡으로 트로트의 느낌이 약간 가미된 곡이었다. 그래서 본인은 이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던데.
변진섭: 맞다. 트로트의 느낌이 가미되서 우리는 이 곡을 ‘뽕 발라드’라고 했다. 성인풍의 곡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한국적인 정서를 건드린 거였다. 덕분에 다양한 연령층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 곡이 젊은 층에게만 어필했다면 그 인기가 오래 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Q. 1집에는 하광훈이 만든 ‘홀로 된다는 것’ 외에 지근식이 만든 ‘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내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등이 히트했다.
변진섭: 지근식은 천재다. 음악적인 전문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타고난 감성이 천재적인 사람이다. 노래처럼 상큼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소유자였다. 나와는 무명 때부터 함께 공연을 하러 다니던 친구다. ‘너무 늦었잖아요’ ‘내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은 앨범으로 공개하기 전에 지근식이 먼저 노래했다. 그 친구가 만드는 곡은 뭐든지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옆에서 ‘넌 참 천재다’라고 생각했다.
Q. 1집은 하광훈의 곡과 지근식의 곡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광훈이 한국적인 감성을 자극했다면, 지근식의 곡은 다분히 팝적이었다.
변진섭: 하광훈의 곡이 애조 띤 슬픈 감성이었다면 지근식의 곡은 상큼했다. 마이너 발라드와 메이저 발라드의 차이인 것 같다. 그러한 조합이 좋았다. 그 두 가지 상반된 색이 하나의 앨범을 채우다 보니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전곡을 쭉 듣게 되는 앨범 말이다.
Q. 1집은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100만 장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앨범. 비공식으로는 조용필, 이문세가 그 전에 100만 장을 돌파했다고도 한다.
변진섭: 비공식으로는 조용필, 이문세 선배가 먼저 100만 장을 돌파한 게 맞을 것이다. 문세 형 때만 해도 판매량이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80년대 후반부터 비로소 가요계에 앨범 판매 집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해서 정품 앨범이 얼마나 나간 지 알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로얄티’라는 것도 생겼다.
Q. 변진섭의 대히트를 기점으로 100만 장 시대가 열렸고, 이후 가요계가 부쩍 커졌다.
변진섭: 그 전까지만 해도 방송, 라디오에서 팝의 비중이 컸다. 젊은이들이 가는 카페에서도 주로 팝송을 틀어줬다. 80년대 말부터 대중가수들뿐 아니라 다운타운에서 활약하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도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Q. 2집에서는 히트곡이 더 많이 나왔다. 타이틀곡 ‘너에게로 또다시’는 ‘홀로 된다는 것’과 비슷한 감성의 곡이었다.
변진섭: 전작의 맥락을 이어간 것이었다. 한국적인 정서와 한이 서려 있는 발라드였다. 그렇게 내 색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는 다른 분위기의 곡 ‘희망사항’이 엄청나게 떴다.
Q. 그 앨범에 노영심 곡은 ‘희망사항’ 하나밖에 없다.
변진섭: ‘희망사항’은 원래 앨범에 들어갈 계획이 아니었다. 이미 앨범에 담길 10곡 작업이 모두 마친 상황에서 노영심을 만나게 됐다. 내가 라디오 DJ를 할 때 노영심이 날 찾아왔다. 당시 노영심은 이화여대 피아노과 학생이었다. 노래를 들어봤는데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다음 앨범에 넣자고 했더니 노영심이 다른 사람에게 가겠다는 거다. 얼굴을 해맑게 웃었지만 여간내기가 아니었다.(웃음) 그래서 앨범에 열한 번째 곡으로 넣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공연 때 하면 재밌을 곡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난리가 난 거다. ‘희망사항’이 타이틀곡인 ‘너에게로 또다시’와 ‘가요톱텐’ 1위를 다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희망사항’이 ‘너에게로 또다시’를 이기고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타게 됐다.
Q. 이 곡으로 변진섭의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다.
변진섭: 슬픈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에서 발랄하고 밝은 톤의 가수가 돼버렸다. 노래가 가수를 이겨버린 것이다. 그게 내 지향점은 아니었다. 사실 난 가수로서 엄청난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 바람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소박하게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음악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런데 1집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정신없이 바빠지게 됐다. ‘희망사항’이 뜬 이후로는 항상 가요프로그램에 나가야만 했다. 그 외에도 각종 방송 프로그램부터 영화 제의를 거절하느라 소속사에서는 온갖 제의를 거절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난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수로 남길 원했다.
Q. 2집에서는 윤상이 만든 ‘로라’도 히트를 했다. 윤상의 작곡가로서 거의 첫 히트곡이 아닌가.
변진섭: 당시 윤상은 내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밴드에 스타급 연주자들이 많았다. 베이스가 윤상, 기타가 손무현, 피아노 김형석 하광훈, 드럼이 시나위 출신의 김민기였으니 말이다. 윤상은 내 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2집을 만드는데 윤상이가 찾아와서 자기도 곡을 쓴다며 곡을 주고 싶다고 하더라. 두세 곡을 들려줬는데 그 중에 ‘로라’를 선택했다. 윤상이가 가이드로 부른 ‘로라’를 들어보니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내가 “이거 네가 부른 거니? 너 노래 한 번 해봐라. 괜찮겠다”라고 말했더니 윤상이가 “아니, 제가 무슨 노래를 해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다 다를까 김광수라는 예리한 기획자가 윤상을 데려갔고 대박이 났다. 원래 광수 형이 나를 예의주시하다가 윤상을 데려간 거다.
Q. 그 외에 하광훈의 ‘너에게로 또다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숙녀에게’ 등이 골고루 사랑받았다.
변진섭: ‘숙녀에게’는 정말 예쁜 노래다. 그 노래는 정말 숙녀에게 들려준다는 심정으로 불렀다. 라이브 할 때에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줄 수 있는 따스한 노래다.
Q. 변진섭의 밴드에서 건반을 연주한 김형석 작곡가는 5집에 실린 ‘그대 내게 다시’를 만들었다. 변진섭의 노래 중에서도 단연 세련되고 우아한 곡으로 회자된다. 당시까지 김형석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었다.
변진섭: 당시 김형석은 음악인들 사이에서 정평이 난 무림의 고수와 같은 존재였다. 나와는 동갑내기 친구다. 형석이와는 ‘그대 내게 다시’ 외에도 많은 곡을 함께 작업했다. 원래는 ‘그대 내게 다시’가 타이틀곡은 아니었다. 주위에서는 이 곡이 히트할지에 대해 염려가 있었다. 음악적으로는 너무나 뛰어난 곡이었지만 대중에게 어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이 곡이 너무 부르고 싶었다. 히트를 하지 않아도 이 곡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이 곡이 크게 히트를 했고, 내 노래 중에 가장 리메이크가 많이 되는 곡이기도 하다. 수많은 리메이크 곡들이 있지만 형석이는 내 버전이 가장 좋다고 하더라.(웃음)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Q. 변진섭이 가진 고유의 음색, 특히 눈물을 머금은 듯한 목소리가 이 곡에 특히 잘 살아있는 것 같다.
변진섭: 원래 사람들이 오리지널의 느낌을 가장 좋아하지 않나.
Q. 변진섭의 등장 후 가요계에 발라드 전성시대가 왔다. 당시 신승훈, 윤상 외에도 정말 많은 발라드 가수들이 생겨났다.
변진섭: 발라드가 흥행이 되던 시대였으니까. 제작자들이 너도 나도 발라드를 제작하려고 했다.
Q. 하광훈, 지근식 외에 김형석, 조규찬 등 여러 작곡가들과 함께 했다. 특히 4집은 앨범 절반을 김수철의 곡으로 채우는 나름의 파격을 보였다.
변진섭: 내가 수철이 형의 음악을 워낙 좋아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형의 색을 넣어보고 싶었다. 원래는 한 곡 정도를 넣으려 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곡이 점점 늘었다. 수철이 형의 음악적인 욕심이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 그 앨범에는 수철이 형의 색이 많이 들어갔다. 4집의 나머지 절반은 심상원 작곡가가 했다. 난 항상 그런 식으로 두 명의 작곡가를 중심으로 하나의 앨범을 만들곤 했다. 하광훈과 지근식, 김수철과 심상원, 김형석과 조규찬, 이런 식으로 말이다.
Q.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궁합은?
변진섭: 역시 지근식과 하광훈이다. 1~2집을 같이 한 두 명이다. 둘의 정서가 나와 잘 어울린다. 둘의 노래는 내가 자유롭게 표현을 해도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지근식과는 앞으로도 함께 작업을 해볼 계획이다.
Q. 변진섭의 곡들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변진섭: 대중적인 지점을 딱 짚어낸 곡들인 것 같다. 질리지 않는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옷으로 비유하자면 화려한 파티 복이나 멋진 유니폼은 아니지만, 소박하게 입을 수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와 같은 느낌이랄까. 내 몸에 착 달라붙는 옷처럼 편안한 음악 말이다.
Q. 최근 발표한 신곡 ‘빗물처럼’은 요즘 트렌드를 받아들인 곡이다.
변진섭: 편하게 노래한 곡이다. 요즘 세대의 사람들과도 호흡할 수 있는 곡이 될 것 같다.
Q. 지난 2007년에 정규 11집을 냈다. 2011년에는 EP도 냈다. 새 앨범 계획은 없나?
변진섭: 전에 낸 EP와 싱글에 신곡을 합쳐서 리패키지 형식으로 12집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데뷔 28주년을 맞는 내년에 나오지 않을까.
Q. 전국투어를 앞두고 있다.
변진섭: 투어는 매년 하고 있다. 점점 공연을 늘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결국 가수는 공연이 메인인 것이다. 요새는 콘서트에서 퍼포먼스나, 이벤트를 중요시하기도 하는데 난 그냥 제 노래를 명품 사운드로 들려드리고 싶다. 재미에 집중하는 것보다 노래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 힘을 쏟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Q. 이제 30년을 앞두고 있다. 이미 가수로 많은 것을 이뤘는데, 새로운 목표가 있다면?
변진섭: 난 10주년이나 20주년이나 항상 목표가 ‘지금처럼’이었다. 무조건 위를 바라보고 올라가는 화살표와 같은 음악인생도 의미가 있겠지만, 난 수평으로 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늘 팬들 옆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노래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이게 쉬운 것은 아니다. 이 수평을 지키기 위해서도 가수로서 쉼 없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만하지 말고, 나태하지 말아야 하낟.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가수로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