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이 팩션 사극 열풍을 재점화 하고 있다.
지난 23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은 전국 기준 9.7%(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2회만에 동시간대대 1위로 올라섰다. 줄곧 1위를 기록했던 MBC ‘야경꾼일지’는 9.5%에 그치며 0.2%p 차이로 ‘비밀의 문’에 왕좌를 내줬다
‘비밀의 문’은 강력한 왕권을 지향했던 영조와 신분의 귀천이 없는 ‘공평한 세상’을 주창했던 사도세자의 부자간의 갈등을 다룬 팩션 드라마다. 500년 조선왕조의 가장 참혹했던 가족사로 평가되고 있는 역사에 살인사건이라는 궁중미스터리를 입혀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대왕세종’ 등을 집필한 윤선주 작가와 ‘싸인’, ‘유령’, ‘수상한 가정부’ 등을 연출한 김형식PD가 의기투합 했다.
베일을 벗은 ‘비밀의 문’은 몰입도 높은 스토리 전개와 극의 재미를 한층 배가시킨 촘촘한 연출력, 제 옷을 입은 듯 변신에 성공한 배우들의 열연이 합을 이루며 ‘명품 사극’의 탄생을 알렸다. 특히 영조와 세자 이선으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한석규와 이제훈의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는 평가다.
한석규는 냉정하고도 예민한 영조로 분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완벽하게 표출, 깊은 내공을 발산하고 있다. 이제훈 또한 군 제대 후 첫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이선에 녹아들었다. 두 사람의 명불허전 호흡은 ‘비밀의 문’이 팩션 사극 열풍이 다시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팩션’은 ‘팩트(fact·사실)’와 ‘픽션(fiction·허구)’의 합성어.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더해 재구성한 이야기다. 이야기의 기본 뼈대는 실제 역사에 근거하지만 내용 대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드라마다운 갈등 구도를 펼쳐낸다.
‘다모’ ‘대장금’(2003) ‘태왕사신기’(2007) 등의 대성공을 통해 안방극장에 자리잡은 팩션 사극은 점점 진화된 양상을 띄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장르가 됐다. 올해도 앞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린 데 이어 KBS2 월화드라마 ‘조선총잡이’도 호응을 얻었다. 현재는 ‘비밀의 문’을 비롯해 MBC 월화드라마 ‘야경꾼 일지’, tvN 일요드라마 ‘삼총사’ 등이 방영 중이다.
현재 방영 중인 사극 중에서 이 열풍을 이어갈 주자는 단연 ‘비밀의 문’이 꼽힌다.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이미 익숙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부분이 흥미롭다. 지난 2011년 SBS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한석규가 의로운 군주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섬세한 연기로 능수능란하게 표현해 내며 숱한 화제를 낳은 것처럼, ‘비밀의 문’ 또한 새로운 시각과 이를 설득력있게 표출할 배우들의 만남이 좋은 출발을 알리고 있다.
한석규가 맡은 영조는 학자와 중신들이 인정한 주자학의 대가이자 무명옷과 소찬을 즐기는 근면한 군주인 한편, 성품은 냉온을 가파르게 넘나드는 다혈질이면서 동시에 눈물이 많은 인물이다. 특히 권력을 지키고자 애쓰는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백성들을 위한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 세자 이선(이제훈)과 끊임없이 대립, 갈등하며 긴장 백배의 극 전개를 이끌어가게 된다.
이제훈은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서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세자 이선 역할을 맡아 사도세자가 재조명 받게 할 전망이다. 그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기록한 한중록에는 흉악한 병에 걸린 광인으로, 사관의 기록인 영조실록에는 15세에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28세에 이르기까지 정사를 무리 없이 끌고 간 왕재로 기록됐다. 제작진은 후자쪽의 기록에 치중해 이선을 그린다. 이제훈은 이를 설득력있게 그려내야 하는 과제를 지고 있다.
한편 ‘비밀의 문’은 세자의 절친한 벗 흥복(서준영)의 죽음 뒤에 감춰있던 ‘맹의’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긴장감을 높였다. 맹의란 노론의 비밀 조직 ‘대일통회맹’의 결의문으로 영조가 왕이 되기 전인 연잉군 시절, 형 경종을 왕좌에서 밀어내고자 노론의 영수인 김택(김창완 분)과 결탁, 노론세력과 힘을 합치겠다 서약한 비밀 문서. 노론에겐 영조를 확실하게 묶어둘 족쇄이지만 영조에겐 노론 중심으로 조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덫인 셈이다.
신흥복 살해사건을 기점으로 영조와 세자 이선, 노론과 소론으로 나뉜 신하들까지 주인공들의 대립구도가 극명히 드러나며 더욱 흥미진진한 극 전개가 예상된다.
글. 최보란 orchid85a@tenasia.co.kr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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