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오빠들로 더욱 뜨거워진 여름이다. 브라운관도 스크린도 오빠들이 꽉꽉 채우고 있다. 돌아온 오빠들이 쌓인 세월만큼의 관록으로 떵떵거리고 있는 반면, 풋풋하여 더없이 아름다웠으나 어딘지 어리숙한 연하남들은 오빠들의 위세에 잠깐 주춤하는 처지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셀레브리티 뉴스의 가치를 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와 활기, 지혜와 신뢰를 줄 수 있는 안내(guide)로 꼽았다. 그런 면에서 존재 자체로 묘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연약한 숙명을 지닌 연하남들보다 긴 세월을 우리와 함께 살아 교훈적 영감마저 제공해줄 수 있는 든든한 오빠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셀러브리티다. 물론, 이 자리에서 꼽게 된 오빠들은 그들 중에서도 최고의 오빠들이다.
이쯤이면, 하정우라 쓰고 충무로라 읽는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충무로의 거의 모든 시나리오가 하정우를 통한다는 말도 있었다. 소속사에 따르면, 하정우의 2015년 스케줄은 일찌감치 예약된 상태. 그런만큼 하정우는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는 부지런한 영화배우 중 한 명이다. 또 존재감이 묵직한 배우로 우뚝 솟아 있음에도 작품 안에만 들어서면 철저히 캐릭터화가 되어 관객의 뇌리에 하정우라는 또렷한 이름을 잊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최근작 ‘군도, 민란의 시대’(군도)에서는 작품이 줄을 서 있는 정상 위치의 배우가 도전하기 힘든 캐릭터에 선뜻 임하는 것만으로 그가 가진 역량과 여전히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지닌 배우라는 것을 입증한다. 물론 돌을 맞는 장면에서 눈을 끔벅인다거나, 틱 연기를 어떻게 얼마만큼 등장시키는 지 등 몇몇 신에서 보여주는 탁월한 감각의 연기로 도전 이상의 명확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군도’는 그의 최근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비롯해, ‘베를린’이나 ‘더 테러 라이브’ 등에서의 하정우 활용법을 정반대로 비틀었다. 초반 군도 패거리에서 유독 카메라의 시선이 길게 머물던 가면을 쓴 인물이 당연히 하정우일 것이라는 예상을 빗겨가고 가장 먼저 보이는 하정우의 얼굴은 투박하고 어눌하며 어딘지 모자라보이는 표정을 가진다. 영화의 가장 인상깊은 유머는 실제 서른 여섯 하정우가 극중 열여덟 살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부터 관객을 배반한 이 영화는 영화 초중반부 내내 이런 하정우의 반전에 기대어 간다.
‘군도’는 하정우의 오랜 영화적 동지, 윤종빈 감독과의 또 한 편의 합심작이기에 어쩌면 철저하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엇는지 모르겠다. 많은 것을 혹은 전부를 보여줬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확인한 하정우의 도치, 도치의 하정우는 풍부한 얼굴을 가진 동시에 그 어떤 얼굴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배우의 숙명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또렷한 예가 됐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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