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배우 이상윤에게 붙는 첫 번째 수식어다. 이를 떼 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만들어진 선입견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작품 섭외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간 반듯하고, 정직한 인물을 주로 해 왔던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당장 이 선입견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건 비생산적인 일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상윤은 “지금 주어진 것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다른 걸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영화 ‘산타바바라’는 이상윤에게 전환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첫 주연은 물론 그가 연기한 정우란 인물은 그간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반듯한 모습과 달리 어리숙하고 ‘찌질’하다. 연애하는 사람 앞에서도 어딘가 모르게 부족해 보이는 인물이다. 특히 이상윤의 자연스러움이 정우에게 가득 베어 있다. 영화 속 이상윤은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을 법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인상 깊다. 이상윤을 만나, 그의 첫 영화 주연작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Q. 데뷔 초기에 영화 ‘색즉시공2’에 출연한 바 있더라. 그 이후론 드라마만 해 왔다. 그리고 이번이 첫 영화 주연이던데, 그간 기회가 없었던 건가.
이상윤 : 섭외가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몇 번 있었는데 잘 연결이 안 됐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쪽으로 많이 하게 됐다.

Q. 영화에 대한 마음이나 생각은 없었나 보다. 마음이 있었다면 직접 찾아 나설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윤 : 특별히 뭐가 좋다는 건 없다. 장르, 매체가 다를 뿐이지 나에겐 똑같다. 단지 소재나 주제 측면에서 드라마보다 자유로워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영화 쪽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Q. 처음 주연을 맡았는데, 소감이나 느낀 바는 무엇인가.
이상윤 : 재밌었다. 영화 쪽으로 한발 다가간 건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를 떠나서 즐거운 촬영 기간이었다. 연기를 생각하지 않고, 놀면서 했다. 감독님도 흘러가듯 연출을 하는 편이다. 정말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점 가서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그리고 잠깐 세팅해놓고 찍는 분위기였다. 물론 이게 일반적인 영화 촬영 현장은 아닌 것 같다.


Q. 사실 ‘산타바바라’는 소소한 이야기다. 앞서 말했던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엔 그다지 적절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이상윤 : 그 소소하고 일상적인 느낌이 좋았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가 강렬하고, 잔인한 게 많다. 그게 심한 경우엔 막장으로 치닫는 거고. 그런 가운데 잔잔하고 일상적인 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의아했고, 궁금했다. 더욱이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감정적으로 한창 갈등 중이었던 터라 더 독특하게 다가왔다. 이런 게 과연 작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만들어지면 어떤 느낌일까, 또 사람들은 볼까 등 너무 궁금했다. 그 분위기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Q. ‘산타바바라’는 작은 영화다.(실제 이 영화는 다양성영화로 분류됐다.) 그래서 뭔가 남다른 출연 이유가 있을지 알았다. 예를 들어 친분으로 참여했다든지 하는 거 말이다. 그런데 들어보니 참 단순한 이유다.
이상윤 : 정말 단순했다. 감독님도, 윤진서 씨도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작품의 색깔에 궁금증을 느낀 단순한 마음이었다. 하나 의미를 둔다면, 드라마를 계속 하다가 영화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정도다. 사실 이 작품이 어느 정도로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했다.

Q. 혹시 다른 작품 선택할 때도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산타바바라’처럼 단순하게 선택하는 편인가.
이상윤 : 내가 원하는 한 부분이 있으면 그냥 하는 것 같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 한 편, 한 편 모두 꼭 성공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Q. 조성규 감독은 섭외하면서 뭐라고 하던가. 사실 친분도 없었던 사인데 말이다.
이상윤 : 뜻밖에 그간 드라마에서 내가 보여줬던 모습의 이면이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고 하더라. 그간 철저하고 똑똑한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했다면, 그 이면에 어리숙한 모습을 생각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 모습을 뽑아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이 굉장히 좋았다. 처음 뵌 분인데도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아 좋았던 것 같다.


Q. 그럼 이상윤은 감독에게 무엇을 물었나.
이상윤 : 작품 색깔에 대해 많이 물어봤다. 전작인 ‘내가 고백을 하면’도 그렇고, ‘산타바바라’도 마찬가지고,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그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뭔가 치열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물론 치열함이 필요한 요소지만, 그것 때문에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시청률을 위해, 관객을 위해 좀 더 자극적이 되고, 그러면서 진짜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를 찾을 수 있고,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영화가 개봉을 안 했다고 해도 만족스러운 작업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개봉하니까 잘 돼서 그때 고생했던 스태프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긍정적 의미에서 치열하지 않았다는 거다.

Q. 맞는 말이다. 특별히 큰 사건이나 감정의 진폭이 크진 않다. 대신 아기자기하고, 풋풋한 맛이 있다. 영화를 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래서 관객들이 극장에 오는 게 관건일 것 같다.
이상윤 :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과정이 즐거웠으니까 결과까지 즐거우면 완벽한데…. 그런데 방금 말처럼, 영화를 본 분들이 지금처럼만 얘기해줘도 정말 좋을 것 같다. 실제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딱 그 느낌이었다.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 활짝 웃는 게 아닌데 입꼬리가 살짝살짝 올라가는 느낌이 좋았다. 보신 분들도 그렇게 느낀다면, 나로서는 성공한 게 아닐까.

Q. 장르적으로 로맨스다. 그런데 솔직히 밋밋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키스도 거의 없지 않나. 찍는데 너무 밋밋해서 아쉽진 않았나.
이상윤 : 리얼하게 표현돼 더 좋았다. 드라마, 영화에서 보는 여러 멜로들이 결과적으론 이상적인 모습이다. 물론 실제 그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과정상 허구적이고 드라마틱한 모습이 많다. ‘산타바바라’는 조금 더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게 재밌었다.

Q. 윤진서와 처음 호흡을 맞추는 건데 멜로 호흡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있었나.
이상윤 : 촬영 전까지 서로 많은 시간을 가졌다. 감독님도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진서 씨가 영화를 많이 했고, 연기적 접근 성향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좀 더 인간적으로 교류를 많이 한 다음에 참여하려는 게 있더라. 그 덕도 좀 보고, 그 친구에 대한 편견도 깰 수 있었다.

Q. 편견이라는 건.
이상윤 : 색깔이 진한 배우지 않나. 그래서 자기만의 주관이 지나치게 강해서 자기 색깔만 고집할 것 같고, 어떤 면에서는 도도하고 차가울 것 같았다. 자기 색깔이 확실한 건 분명한데, 그것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부분을 인정할 줄 알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게 있더라. 많은 도움이 됐다. 이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나와 다른 색깔을 못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배타적인데, 이 작업을 하면서 개성 있는 사람들이 무조건 나와 상충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만의 생각이 묻어 있고, 깊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Q. 종합적으로 윤진서는 어떤 사람 같은가.
이상윤 : 짙은 색깔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색깔도 있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친구다. 그리고 촬영 마치고, 지금 다시 보니 더 어른이 된 것 같다. 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Q. 영화 제목이자 극 중 주요 배경인 산타바바라는 어떤 곳인가. 직접 보고, 느낀 산타바바라에 대해 들려 달라.
이상윤 : 계속 가고 싶다. 한 곳 한 곳이 다 예쁜 곳이다. 길거리의 노숙자조차도 아티스트다. 실제로 진서 씨는 길거리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그림을 샀다. 그런 면이 그 친구의 독특한 면이라면 면일 수 있다. 나였다면 ‘저런 사람이 그림도 그리네’ 하고 지나갔을 텐데, 그걸 보고 구매까지 하니까. 물론 돈만 주고, 결국 그림은 못 받았지만, 진서 씨의 독특함이 이런 부분이다.

Q. 진서 씨 말고, 산타바바라에 대해 궁금하다.
이상윤 : 기본적인 기후 조건이 완벽하다. 활동하기도 정말 좋다. 5월 초에 갔으니까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고 있을 때인데 햇볕은 뜨거워도 그늘은 서늘하다. 햇볕이 좋으니까 풀색이 더 진한 것 같기도 하고. 영화 찍을 때도 광이 좋으니까 영상도 잘 담기는 것 같다. 기념사진 찍는데 배경이 일반적인 교차로였다. 그런데도 화보인 거다. 광이 다르니까 결과물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Q. 실제 음악은 하는 편인가.
이상윤 : 찾아 듣는 편은 아니다.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음악 듣는 건 좋아하는데, 마니아처럼 장르 구별해서 음악을 찾아 듣는 편은 아니다.

Q, 극 중 역할은 음악 감독이다. 이 역할을 위해 준비할 게 많았겠다.
이상윤 : 디테일하게 준비하진 않았다. 영화 속 공간이 실제 음악감독님 작업실인데, 거기에서 기타와 장비 다루는 법을 배웠다. 거의 즉석 해서 배운 셈이다. VIP 시사회 끝나고 뒤풀이 때 한 분이 ‘너무 바르게 열심히 음악을 하더라’는 말을 해줬다. 전혀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실제 다루는 것처럼 하려다 보니 실제 음악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열심히만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흔히 진짜 춤꾼은 ‘설렁설렁’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렇게까지 비치지 못한 거다. 향후엔 더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실제 연애 스타일은 어떤가. ‘마녀사냥’ 스타일로 표현한다면.
이상윤 : 음…. 열심히 한다. 서로 호감이 있는 걸 확인할 때까지는 조심하는 편인데, 그게 확실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영화처럼 　술 마시고 (고백) 하진 않는다. 그리고 ‘낮져밤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알고 져주는 게 맞는데 아직 여자 마음을 잘 캐치하지 못하는 편인 것 같다. ‘밤이’는 내 능력 밖인 듯.

Q. 영화 속 정우는 사랑에 있어 뭔가 답답한 인물이다. 여자 마음을 전혀 모르기도 하고.
이상윤 : 실제 그 정도는 아니다. 연기하지 않았을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정우랑 더 비슷할 것 같다. 그런데 멜로 연기를 하면서 작가들이 이야기해주는 남자의 모습, 여자의 마음 등을 보면서 배우게 된다. 조금씩 알게 된다.

Q. 서울대 출신이라는 게 선입견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 섭외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이를 이겨내는 것도 이상윤의 숙제겠다.
이상윤 : 그에 해결 방향은 그 점을 인정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먼저다. 그리고 난 후에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 같다. 지금 제안이 들어오는 역할을 잘해낸다면, 다른 걸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갈아엎고 새로운 걸 창조하겠다, 이것도 가능한 길이겠지만, 그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을 탄탄히 한 후에 다음 영역으로 넓혀 가고자 한다. 대신 기회가 주어지면, 당연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걸 선택한다.

Q. 스스로 생각했을 때 다른 걸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정도가 지금 현시점에서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이상윤 : 만약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10번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기존에는 한 번 올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두 번 또는 세 번까지는 고려해주지 않을까. 감독님, 작가님, 제작하시는 분들 모두 한 20~30%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해줄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다. 30%면 더 좋고, 20%만 돼도 좋겠다.

Q.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첫 번째는 무엇인가.
이상윤 : 좋은 사람 캐릭터를 많이 맡아 왔다. 드라마에서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악역을 보여주고 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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