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MBC 일요 아침드라마 ‘짝’의 이민영은 현대적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의 스튜어디스 역할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당시 그는 특유의 기품있는 이미지와 맑은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모습으로 김혜수와 함께 작품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다양한 연령대의 팬층을 확보했다.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민영은 다시금 SBS 아침드라마 ‘나만의 당신’으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이번에는 긴 공백을 겪은 후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간을 딛고 일어나 지상파 드라마에는 2006년 ‘사랑과 야망’ 이후 8년만의 노크다. “아침마다 촬영장에 갈 때마다 남몰래 ‘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는 그의 얼굴에는 예전의 청초한 미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는 좀 더 편안해지고 열린 모습으로 한 발자국씩 연기자로서 다시 발걸음을 떼고 있다는 그에게서는 조심스러운 자신감이 읽혔다.

Q. SBS ‘나만의 당신’은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주인공 고은정의 우여곡절이 이어지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맺어졌다.
이민영: 고난과 역경으로 시작했던 작품이었다. 마지막에는 결국 권선징악적으로 웃으며 끝나서 좋은 기억으로 홀가분하게 보낼 수 있었다. 많이 고생했던 캐릭터라 마음이 짠했는데 진정으로 잘 돼서 마음이 편하다. 7개월간의 촬영이 이 하루의 웃음을 위해 있어왔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뭉클했다.

Q. 개인적으로는 8년만에 지상파 드라마에 복귀하게 된 작품이라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민영: 처음에는 촬영장에서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긴장이 많이 됐었다. 예전에는 스태프들이 모두 언니, 오빠들이었는데 이번엔 조연출들이 내게 다들 ‘누나’라고 부르니 그것도 어색했고. 하하. 내게는 무척 뜻깊은 작품이라 동료 연기자들, 스태프들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Q. 아침드라마로서 시청률면에서도 선전했다.
이민영: 성적이 잘 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루하루 기도하는 심정으로 촬영을 나갔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시청률도 잘 나와서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아침이나 일일드라마는 특히 반응이 바로 오는 편이라 밖에 나가면 어머님 아버님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동네 분들과 마주칠 때도 재밌게 보고 있다며 ‘빨리 복수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뿌듯하더라.



Q. 데뷔 후 처음으로 복수극에 도전했다.
이민영: 초반에는 은정이라는 인물이 너무 안타까웠다. 강성재(송재희)의 악행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복수하기 시작할 때는 주위분들이 무척 통쾌해하고 응원해주셔서 신나게 촬영했던 것 같다. 복수극 장르를 처음 해보면서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강성재가 건강이 악화되면서 면죄부를 받았는데 생각했던 것 만큼 아주 속시원한 복수는 못했던 것 같다. 아마 감독님이 너무 독하게 가는 드라마를 원치 않으셨던 것 같다.

Q. 그런데 사실 극중 여자의 복수극이라는 지점이 이전에 개인적으로 겪었던 힘들었던 시간이 생각날 수도 있는 설정이었는데.
이민영: 작가 선생님도 처음에는 강한 역할이라 내가 하는 게 괜찮을지 걱정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연기였기 때문에 보시는 분들도 그런 생각은 안 하셨을 것 같다. 6개월간은 이민영이라기보다 고은정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작품과 캐릭터에 비춰서 나를 봐주셨을 것 같다.

Q. 극중 고은정을 괴롭히던 악역이었던 송재희가 최근 인터뷰에서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이민영이 아닌 한다민을 꼽았다.
이민영: 끝나고 재희씨가 내게 한 전화를 못 받았는데 그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나 싶다. 나도 송재희는 처음부터 원하지도 않았다. 하하. 평소에도 강성재 역할이랑 비슷해서 난 관심이 없었다. 동생으로 나왔던 이명훈씨가 나를 이상형으로 꼽아서 괜찮다.

Q. 드라마가 연장이 되면서 120부에 이르는 대장정을 이어왔다. 7개월간 매일같이 여주인공으로 극을 끌어가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을 텐데 어느 지점이 가장 어려웠나.
이민영: 이 작품은 워낙 사건이 많아서 대본을 받을 때마다 조마조마한 느낌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매주 대본을 받을 때마다 대사량도 많아서 ‘오늘도 계 탔구나’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마지막 촬영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재미가 있었다.



Q. 그동안 맡았던 역할은 대부분 착한 역할이라 이미지 변신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민영: 데뷔 초부터 비슷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성격의 변화를 겪으면서 다양한 캐릭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 같다. 사실 예전엔 겁이 많고 생각도 많아서 여러모로 시도를 못했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이 끝나니 수사물이나 메디컬 드라마같은 전문적인 장르 드라마에 욕심이 나더라. 무엇보다 억울함이 통쾌하게 풀리는 작품에 매력을 느낀다.

Q. 5년 공백 후 JTBC ‘발효가족’(2011)으로 복귀했었는데 그 후로도 3년간의 공백이 있었다.
이민영: 하려고 했던 작품이 무산되거나 중간에 역할이 바뀌면서 본의 아니게 쉬는 기간이 길어졌다. 역할을 위해 액션스쿨도 다니고 준비를 했는데 제작 과정상 내 역할이 바뀌면서 하차를 결정하다보니 기간이 길어졌다. 모든 일에는 확실히 타이밍과 운이라는 부분이 작용하는 것 같다.

Q. 오랜만에 돌아온 촬영장 공기는 좀 다르던가.
이민영: 이번 작품 감독님이 SBS ‘젊은 태양’ 이후 15년만에 만난 감독님이었다. 간만에 좋은 작품, 스태프들을 만난건 내게 정말 복받은 기회였던 것 같다. 어릴 때 뵀던 스태프나 조감독들이 모두 감독이 돼 있으니 신기하더라. 새삼 인연이라는 게 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사람들에게 잘 하면서 살아야겠단 다짐이 들었다.

Q. 올 초 채널A ‘혼자 사는 여자’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민영: 처음 도전해봤는데 드라마보다 열 배는 부담이 되더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 어색했는데 그런 점을 오히려 시청자분들이 좋아하시더라. 하하. 나중에 또 기회가 있다면 좀 편안하게 풀어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예전에는 겁이 많아서 예능 제의가 굉장히 많이 와도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연기하는 모습 외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Q. 겁이 많았던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민영: 겁은 여전히 많은 편이고 생각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은게 좋은 판단을 내리는 것 같지는 않더라. 조금은 쉽게 가자는 생각을 했다. 미리 너무 걱정을 많이 하다 보니 어긋난 판단을 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지’란 생각때문에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았던 적이 있었고. 지금은 조금 풀어져도 좋겠단 생각을 한다.

Q. 자신에게 좀 관대해졌나보다.
이민영: 남에게는 관대한데 스스로에게는 그렇지 못하고 틀에 가둬 놓는 성향이 있다. 완벽하지도 아니면서 완벽하려고 한다고 할까? 평생을 그랬던 것 같다. 이제는 나한테 좀 자유를 주고 자신을 좀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Q. 짧지 않은 공백기를 딛고 긴 작품을 끝내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것 같아 보인다.
이민영: 작품 쫑파티날 스태프분들께 이런 얘기를 들었다. ‘민영 씨가 처음에는 경직돼 있고 잘 웃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밝아지고 풀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좋다’고. 그런 진심 어린 얘기를 들으니 울컥할 정도로 감사했다. 모든 일은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고 호흡이 맞았을 때 효과를 내는 것 같다. 나를 걱정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구나란 생각에 한없이 고맙더라.

Q. 일이 아닌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민영: 일단은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올해 물꼬를 잘 텄으니 또다른 좋은 작품도 만났으면 좋겠고…. 드라마 제목처럼 ‘나만의 당신’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극중 고은정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돌고 돌아 누군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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