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2시: 영화 ‘해무’가 첫 공개됐다. 꼬질꼬질한 의상, 서너 일은 씻지 않는 듯한 헤어스타일, 땀 냄새 머금은 얼굴. 전진호의 막내선원 동식으로 분한 박유천은 그러니까… 영락없는 뱃사람이었다.
29일 자정 : JYJ의 정규 2집 ‘JUST US’ 음원과 함께 타이틀곡 ‘백 싯(BACK SEAT)’ 뮤직비디오가 JYJ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깔끔한 슈트를 갖춰 입고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박유천은 남성미 넘치는 칼군무로 여심을 유혹하고 있었다.

불과 10시간 차이다. 10시간 차이를 두고 박유천을 보며 든 생각, “같은 사람이라고?”

# 의심을 호감으로



2010년 방영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가장 큰 공로라면, 재능 있는 20대 배우들을 대거 배출해냈다는 점일 게다. 아역 이미지가 강했던 유아인은 이 드라마를 통해 보다 다양한 캐릭터로 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색제왕’ ‘깐족지족’ 구용하로 분한 송중기는 변화무쌍한 매력을 선보이며 배우로서의 무한 잠재력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박유천. ‘가수 출신인 네가 얼마나 잘 하나 두고 보자’라는 따가운 시선 속에서 타이트 롤을 맡은 박유천은, 그러한 시선이 무안할 정도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배우 세계로의 성공적인 입문이었다. 기존의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며 가십의 대상이 된 것과는 분명 대조되는 풍광이었다. 화려한 무대 조명을 뒤로 하고 드라마로 걸어 온 가수들의 맨얼굴은 종종 ‘순수 혈통의 배우’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증명하는 제물로 전락하곤 하지만, 박유천을 달랐다. 자연광 앞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묘한 기운이 그에겐 있었다.


물론 의심은 남았다. 더 많은 증명이 필요했다. 증명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성균관 스캔들’을 시작으로 ‘미스 리플리’ ‘옥탑방 왕세자’ ‘보고 싶다’를 거치며 박유천은 ‘거대 팬덤을 등에 업고 무임승차한 게 아닌가’하는 일각의 인식을 빠르게 불식시켜나갔다. 사극, 현대극, 로맨틱 코미디, 정통 멜로를 오가며 다양한 장르를 체하지 않고 섭취하는 능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초반 연기력 논란을 일으켰던 ‘쓰리데이즈’ 역시 종국에는 호평으로 바꿔 놓으며 ‘위기관리 능력’에도 재능이 있음을 보여줬다. 한마디로 호락호락한 배우가 아니었다. 곱상하고 여리게 생긴 얼굴 안에 어떤 불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 그에게 충무로의 호출이 이어지는 건 당연했다. 박유천 자신도 스크린으로의 도전을 원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처음 만난 첫 영화가 ‘해무’다.

# 비극의 한 가운데에서

‘해무’는 극단 연우무대의 창립 30주년 기념작인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이 ‘마더’에 송새벽(세팍타크로 형사 역)을 발탁한 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박유천은 영화에서 송새벽이 연기했던 막내 선원 동식 역을 맡았다. 사랑하는 여자(한예리)를 지켜내기 위해 선장(김윤석)과 대립각을 세우는 동식은 ‘해무’의 나침반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비극의 한가운데, 키를 쥐고 있는 젊은 선원. 결코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송새벽이 워낙 자기 옷처럼 소화해 낸 캐릭터라는 점도 박유천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첫 영화 상대가 무려 김윤석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첫 경험이 될 것이 자명했다.

영화 ‘해무’ VS 연극 ‘해무’

결론부터 말하며 박유천은 ‘해무’를 통해 자신의 연기 보폭을 한 걸음 넓히는데 성공했다. 대 선배들 사이에서 주눅들거나 경계하는 기색이 없다. 이물감 없는 자연스러움이 박유천 연기의 가장 큰 장점인데 그러한 장점이 스크린에서도 여지없이 힘을 발휘했다. 우려했던 사투리 연기도 어색함 없이 소화해 낸 인상이다. 아마 박유천을 모르는 관객이 동식을 만난다면, 그가 아이돌 출신이란 사실을 알아채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해무’ 제작을 맡은 봉준호 감독은 “박유천이란 뛰어난 영화배우를 우리 영화계가 얻게 됐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말한바 있다. 그 말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를 위한 ‘립서비스’가 아님을 확인했다. 연극 ‘해무’에서 송새벽을 발군한 봉준호의 감식안이 영화 ‘해무’에서도 통할까. ‘그렇다’에 한 표를 던진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제공. NEW, 씨제스엔터테인먼트, 극단 연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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