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도 특별히 없었고, 착한 학생이었어요.”

한혜린은 공포영화 ‘소녀괴담’에서 여자 일진 현지 역을 연기했다. 현지에게 찍히면 그날로 인정사정없는 폭력과 괴롭힘이 가해진다.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학창시절을 묻는 말에 그녀는 “착한 학생이었다”며 웃음이다. 흥행과 평가를 떠나 한혜린은 자신의 첫 번째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신기생뎐’ 이후 여러 작품의 제안이 있었을 법도 한데 이제야 스크린 데뷔란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 구분이 중요하지 않았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나 접근하는 방식은 똑같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하지만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준비하는 마음에서만큼은 차이를 느낀다. “기분 좋은 설렘”이란 소감처럼, 그녀의 스크린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Q. 드라마 ‘신기생뎐’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는 다소 묻히는 경향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고민이겠다.
한혜린 : 그런 건 없다. 대중의 호응도는 차이가 있지만, 내가 임했던 작품이니까. 그리고 ‘신기생뎐’의 임팩트가 강했으니까 그에 대한 서운함은 없다. 많은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도 좋겠지만, 그게 1순위가 되면 안 될 것 같다. 항상 연기에 임하는 방법은 캐릭터로 접근하는 편이다. 상업적으로 나의 필모를 만드는 건 염두 하지 않고, 더 경계하는 것도 있다. 그래야 더 건강한 것 같다.

Q. 그래서 일부러 그런 행보를 걷고 있는 건가. ‘신기생뎐’ 이후 숱한 작품 섭외가 왔을 것 같다.
한혜린 : 그렇다. ‘신기생뎐’부터 경계하고, 스스로 다그치는 부분도 있었다. 왜냐면 변수도 많고,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건 갈고 닦고, 배우고, 습득하는 거다. 연기뿐만 아니라 굉장히 욕심이 많은데 내 것이 아닌 거엔 욕심이 없다. 그게 맞는 거로 생각한다. 내 건 다부지게 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후회가 없다. 그 이외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Q.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되면, 자신은 그대로인데 주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휩쓸리게 된다. 그런데 성격적으로 스스로 통제를 잘 하나는 편인가 보다.
한혜린 :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초연하다’까지는 아닌데, 그런 거 보면 이성적인 것 같기도 하다. 소신껏 행동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치기 어린 행동 등은 많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냉정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게 쉽지 않을 땐 그냥 넘어지면 된다. 아픔도 느껴보고, 극복하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한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그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니까.


Q. 어찌 됐던 영화 제안도 많았을 것 같은데, 이번이 첫 영화다.

한혜린 :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선택한 게 아니라 캐릭터를 보고 선택한 거다. 드라마와 영화, 다르다고 하는데 접근방식은 똑같았다. 내가 접근했던 방식은 일진, 영화연기 등 이런 게 아니라 현지란 인물에 진지한 태도로 접근했다. 첫 스크린 작품인데 주변에선 사실 의외라고 했다. 이전에 했던 이미지와 많이 다르고, 영화사 쪽에서도 내가 하겠다고 했을 때 의외였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라. 한 가지 목적이 있다면, 브라운과의 모습과 다른 사람 같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Q. 영화나 드라마나 어차피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무엇을 하든 큰 상관이 없었다는 의미인가.
한혜린 :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것 같은데, 처음 시작할 때는 캐릭터로 접근했기 때문에 큰 차별성은 없었다.

Q. 영화 한 편을 끝난 지금, 뭔가 다른 점이 있나.
한혜린 : 영화는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를 품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주체적으로 캐릭터를 이끌고 갈 수도 있다. 드라마는 한정된 틀이 있어서 안전하다면 안전할 수 있고, 답답하다면 답답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는 옆걸음으로 나가보기도 하고, 모험도 할 수 있었다.

Q. ‘소녀괴담’을 첫 영화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한혜린 : 아까 대답이랑 비슷한데, 스크린 데뷔작 이런 의미는 없었다. 대본 볼 때 캐릭터를 찾았고, 어떻게 연기로 접근할까 생각했다. 첫 영화라는 점에는 관심이 적었다. 이제는 그것도 챙기면서 해야 할 것 같긴 하다. 지금까지 16부작, 120부작이든 항상 캐릭터였던 것 같다.

Q. 그리고 오랜만에 교복을 입은 소감은 어떤가. 그리고 연기하면서 교복은 처음인 것 같은데.
한혜린 : 편해지고, 자유로워진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긍정적인 힘을 많이 받았다. 기능으로 치면 분명 플러스다. 이전에 역할이 하이힐, 짧은 치마 등 스타일리시한 느낌이었는데, 그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즐거웠다. 그리고 (교복을) 입을 수만 있다면 좋은 것 같다. 교복뿐만 아니라 제복에 관심이 많다. 옷에 따라 태도나 말투가 바뀌지 않나. 옷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거 같다.


Q. 대부분 또래다. 현장의 느낌도 이전과는 다른 기분이었겠다.

한혜린 : 함께 호흡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 분위기라는 게 정말 있었다. 그래서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다 같이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정말 친구처럼 지냈다. 동료 배우라기보다 친구 같은 느낌으로, 학교 온 것 같은 느낌으로 했다. 그 분위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그런데 그렇게 친구처럼, 자유롭게 지내다 보면 오히려 연기에 있어서는 흐트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령, 쟁쟁한 선배들이 있을 땐 아무래도 더 긴장하고, 하나라도 더 연습해서 현장에 갈 것 아닌가.
한혜린 : 연기는 풀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서로 동년배고, 또래니까 이심전심도 있었을 거다. ‘모 아니면 도’일 텐데, 정말 안 좋을 수 있는 현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건강한 경쟁심이 있었다.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경쟁심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서로 힘 빠지는 일은 하지 말자는 분위기였다. 직접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다 느끼고 있었다. 연차도 비슷하고, 다들 촌스럽지 않고 싶었던 것 같다. 포장 같지만, 그래서 부끄럽지 않다.

Q. 일진 역할이 참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앉아있는 자세만으로도 굉장한 포스가 나오더라. 또 성숙해 보이는 얼굴도 한몫을 한 것 같다. 특별히 일진을 표현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었나.
한혜린 : 그냥 현지의 감정을 따라가면 그렇게 된다. 일부러 무게 잡고, 차갑게 할 필요가 없었다. 현지라는 아이를 보고, 감정이든 심리든 따라가다 보니까 그렇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어떤 콘셉트를 따로 넣었던 건 없다.

Q. 누구나 학창시절은 있다. 그리고 어느 학교든 일진은 꼭 있다. 한혜린 씨도 마찬가지일 텐데, 혹시 당시 기억을 가져온 게 있나.
한혜린 : 없다. 어떤 정형화돼 있는 걸 참고하진 않았다. ‘나는 누구야’라고 명찰 달고 있는 건 촌스러울 것 같아 그런 설정은 하지 않았다.

Q. 혹시 본인이 일진이었던 건…. (웃음). 농담이고, 학창 시절 한혜린은 어떤 학생이었나.
한혜린 : 착한 학생이었다. 사춘기도 특별히 없었다. 지금 성향이 학교 때와 비슷했던 것 같다. 성숙했다면 성숙했다고 할 수 있는데, 마냥 어리광을 피우지 않았고, 치기 어린 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이런 캐릭터를 손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조용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친구랑 어울려 노는 것 좋아하고, 군것질 좋아하고. 그래도 얌전하고 참한 느낌은 있었던 것 같다.

Q. 결국, 현지는 왜 일진이 됐을까. 그 히스토리가 많지 않아서 캐릭터를 풍성하게 구축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겠다.
한혜린 : 불행한 아이다. 자기 자신을 아끼는 친구는 분명 아닌 것 같다. 다 쓸려나가고, 텅 빈 친구기도 하고, 그래서 차갑고 가라앉아 있는 친구다. 처음 인수(강하늘)한테 관심을 보이는데 그게 사랑이나 호감의 의미는 전혀 아니다. 해철(박두식)도 마찬가지다. 이 아이에겐 사랑이란 감정 자체가 사치다. 또 어릴 적 상처나 뒤틀림을 해소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파하는 친구다. 괜한 자만심에 또는 장난스럽게 누군가를 괴롭혔다면, 현지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현지에 대한 히스토리가 짧았지만, 충분히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Q. 그럼 한혜린이 생각하는 현지는 어떤 아이인가.
한혜린 : 아프고 약한 아이다. 그리고 약한 사람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악한 사람이 되기 쉽다. 현지는 그냥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아이다. 특별히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거나 성향이 정말 독특한 게 아니라 그런 환경을 거치면 나올 수 있는 아이인 거다.

Q. 여하튼 보통 일진은 전형적인 악역으로 그려지기 마련인데, 현지는 그런 악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한혜린 : 단순한 악역이었으면 매력을 느끼거나 파고들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단면적으로 보였던 것도 히스토리를 담으려고 했다. 그게 설득이라는 거다.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고 싶어서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따라 갔다.


Q. ‘소녀괴담’은 공포 장르이면서도 풋풋한 멜로, 학교 폭력 등 다양한 것들이 들어가 있다.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다.

한혜린 : 당연히 장점이다. 단점이 될 수 있는데, 보편적으로 원했던 그런 공포영화였다면, 굳이 네 배우가 열심히 고군분투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드라마를 살릴 필요도 없었을 것 같고. 공포영화인데 안 무섭다고 할 수도 있긴 하다. 그래도 좋다. 색다를 수 있고.

Q. 다른 인터뷰 에서 ‘멜로’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데.
한혜린 : 사실 멜로 연기를 낯뜨거워했던 것 같다. 사랑이란 감정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거라고 믿고 있는데 연기는 만드는 거고, 어딘가에 적혀져 있는 걸 표현하는 거다. 그래서 작위적일 것 같기도 하고, 진정성 있게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자신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진실성 있는 멜로를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절절’까지는 아니어도 화학작용이 느껴지는 멜로에 관심이 간다.

Q. 뭔가 독특하다. 여배우들이 예뻐 보이는 게 멜로라고 생각한다. 또 많은 여배우가 하고 싶은 것도 멜로 장르 아닐까 싶은데.
한혜린 : 인정. 맞는 것 같다. 보편적이고 평범한데 나한테는 너무 어렵다. 연기 내공을 필요할 것 같은. 한편으론 정말 여성스럽고, 예쁜 꽃일 때 그리고 좀 더 성숙했을 때 하려고 아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Q. 여하튼 ‘소녀괴담’은 많은 걸 담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건 뭔가.
한혜린 : 1순위는 메시지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일들이다. 사소하더라도 아주 큰 효용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쓴 책 한 줄로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면 뿌듯하지 않나. 그런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

Q. 선택할 때는 영화, 드라마가 중요하지 않았더라도 개봉할 때 기분은 분명 다를 것 같다. 그리고 첫 영화 개봉에 대한 기대감도 있을 것 같다.
한혜린 : 사실 실감은 안 난다. 개봉 이런 걸 준비해본 적도 없고. 그동안 연기 잘하면 됐지 했는데 이번엔 관객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 좋겠고, 첫 작품이니까 좋은 평도 받았으면 좋겠다. 드라마 첫 방은 모니터하기 바쁜데, 그래도 영화는 좀 더 설레는 느낌이 있다. 기분 좋은 설렘이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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