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제인, 나이 서른 하나, 직업 가수 그리고 예능계 떠오르는 샛별

어느 날 문득 레이디제인이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자신의 사생활을 거리낌없이 이야기했다. ‘전 남자친구와 여전히 잘 지낸다’며 전화연결을 하는 방식이었음에도, ‘연예인 사생활 폭로’가 주는 자극성과는 묘하게 동떨어져있다. 그 이유가 궁금해 만나자고 말했다.

이유를 말하기 앞서 그녀의 별명이 ‘홍대 비둘기 아줌마’라는 사실을 먼저 알리겠다. 홍대에서 음악을 하며 수입이 없는 친구들 밥을 그렇게나 자주 사준다하여 붙은 별명이다. 어려서 장래희망은 변호사였다 한다. 그녀가 꽤 정의로운 캐릭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힌트다.

성인이 되고 또 뮤지션이 된 그녀는 청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드는 불타는 사명감 속에 음악에는 반드시 철학을 담아야한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시간도 보냈다. 그렇지만 세월이 좀 더 흘러서는 음악을 하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야 한다며 세상과 타협했다. 그것이 딱히 비굴해 보이지 않는 이유? 특유의 정의로움과 책임감 탓이다. 그 성격 탓에 늘 주변을 샅샅이 챙기며 살아왔다. 뭐, 그 중 한 명이 전남자친구라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긴 하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또한 정의롭게 살아온 레이디제인은 그녀가 경험한 풍요로운 인생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을 경청하는 여유를 갖췄고 그 어떤 질문에도 꽤나 현명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되었다. 정의의 레이디에게 어쩌면 비겁한 오늘날 청춘의 사랑방식, ‘썸’에 대해 질문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별명은 홍대 비둘기 아줌마

Q. ‘전(前)남친’과 관련된 질문이 참으로 지겹기도 할테고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텐데, 그럼에도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라디오스타’에서 ‘전남친’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하고, 심지어 그와 전화연결까지 하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한국 예능사에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레이디제인 : 하하하. 자연스럽게 또 솔직하게 임했다. 전화연결 같은 것을 하는지도 모르고 들어갔지만, 거부감도 딱히 없었다.

Q. ‘라디오스타’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레이디제인 :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자, 일단 박수를 쳐’라며 손바닥을 쭉 내밀더니, ‘레이디제인, 네가 ‘라디오스타’에 나가게됐어!’라고 하는 거다. 정작 나는 ‘뭐? 내가 거기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라고 말했다. 다시 매니저는 ‘우리가 살 길은 이것 밖에 없어!’라며 ‘나가서 뭐든지 해. 회사를 먹여 살려야 되니까!’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비장한 각오로 다 내려 놓고 무슨 이야기든 하자고 마음 먹고 나갔다.

Q. 옆에 있는 매니저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하하.
레이디제인 : (풀 죽은 목소리의 매니저 : 우리가 ‘노예12년’도 아니고…) 그렇지만 맞잖아? 뭐, 덕분에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Q. 확실히 젊은 세대들은 전전긍긍해하거나 불편해하기보다 쿨한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당신과 같은 존재가 환영받는 것 같다.
레이디제인 :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 열리고 솔직한 방송인을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기존 방송인들이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기는 아무래도 조심스럽고 힘들다. 나 역시도 그들의 기분을 체감할만한 경험을 했다. 최근 한 강연에 나갔다가 ‘제가 요즘 ‘로더필’에서 홍진호 씨랑 썸타는 콘셉트 인데요’라고 이야기 한 것이 기사화되니까 파장이 크더라. 그런 일들을 겪은 분들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에 비해 나는 탈직업화된 포지션같고, 또 나이도 어리지 않으니 더 그럴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김구라 오빠같은 느낌이랄까?

Q. 그러고보니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가 유독 즐거워했다.
레이디제인 : 구라 오빠가 엄청 좋아했다. 마음에 들어하며 잘 했다고 격려해주시더라.

대중음악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녀의 다음 음악도 궁금해진다

Q. 요즘 프로그램 제안이 많아 회사도 본인도 행복하겠다.
레이디제인 : 그렇다. 나를 찾아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그리고 내게 맡긴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기대에 충족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Q. 아니, 그런데 무슨 책임감이 이렇게나 강한가. 소속사를 자기가 먹여 살려야한다는 사명감도 그렇고.
레이디제인 : 그런가. 그러고보니 후배들이 나를 ‘홍대 비둘기 아줌마’라고 부른다. 음악하며 돈 못버는 친구들 밥 사먹이고 나오라고 해 커피사주고 그러다보니 후배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

Q.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레이디제인 : 고등학교 때 연습생이었고, 대학에서는 밴드를 했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앨범까지 내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다.

Q. 요즘 예능한다고 바빠 음악작업을 할 시간이 많지 않겠다.
레이디제인 : 딜레마다. 음악을 하고 싶을 때는 돈이 없어 못했고, 돈을 버니 시간이 없어 못한다. 과거에 사장님께 ‘앨범 내주세요’라고 하면 ‘나도 내주고 싶지만 우린 돈이 없잖니’라고 하셨다. 뭐, 사실이 아닌 것은 또 아니니까. 회사나 모든 시스템이 돈이 있어야 굴러가지않나. 또 생계를 위해서라도 방송을 많이 해야하는 만큼 나도 타협해야했다. 불만을 잠시 접고 방송을 할 때는 최선을 다 한다. 남은 시간을 쪼개어 음악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힘들다. 요즘은 ‘지금 붐을 탈 때 열심히 방송을 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앨범 작업에 열중해야겠다’는 계획 정도를 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사장님은 더 많이 벌어오라고 채찍질 하고 있다. 소속사에 다른 가수는 신인인터라 요즘은 거의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피할 수 없다면 즐겨버리겠다.

Q. 그 와중에도 혹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레이디제인 : 교양이나 시사 프로그램을 하고싶다. 사회적인 이슈나 현상들에 대해 다루는 프로그램.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고, 또 특히나 음악이나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일원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만나보면 의외의(?) 정의파인 레이디제인에게 썸을 물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Q. 책임감이나 정의감이 느껴지는데, 혹시 당신이 사회에 대해 가진 생각들을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레이디제인 : 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심했다. ‘뮤지션이라면 노래에 자신만의 메시지, 철학을 담아야 돼’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사도 더 어렵게 쓰려고 했다. 남들이 ‘가사가 어려워’라고 하면, ‘네가 못알아들을 뿐이야’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그런 생각에 꽂혀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어쩌면 나를 위한 음악일 뿐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음악,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음악, 즉 대중음악이 오히려 더 어렵고 수준도 높다고 생각하게 됐다. 요즘은 청자들의 귀도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대중음악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아닐까 싶다. 쉽고 신속하지만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지.

Q. 혹시 스무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인생을 살겠나.
레이디제인 : 음악을 정말 열심히 하고싶다. 지금 이 나이에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렇지만 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내가 네 나이만 되면’이라는 말을 할테니, 지금 내 할 일을 잘 하자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십대 초반 친구들에게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라고. 그러면 10년 후엔 무엇이든 된다. 만약,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겠다면 그것을 찾는 것에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Q.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에 무모하게 달려드는 것이 쉬운 세상이 아니다.
레이디제인 : 그렇다. 선택해야 한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 역시 시간을 많이 끌었던 사람이다. 20대 후반까지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음악이 내게 취미인지, 부업인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좋아하니까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고민하면서 계속 끌고 온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젊은 날, 좋아하는 것에 엄청난 열정과 투지를 바치라 말하게 되는 것 같다.

Q. 당신 인생의 목표는?
레이디제인 : 재미있게 사는 것이다. 연애도 재미있게 하고 일도 재미있게 하고, 나중에는 남편이랑도 재미있게 사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사는 것이 재미있기란 힘들다. 돈도 벌어야하고 다른 사람도 신경써야 하고 그러다보면 재미는 반감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찾으려면 정말이지 멘탈이 건강해야한다. 스스로 사랑하고 가꿔야 멘탈도 건강해진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선택이 그 사람의 멘탈을 건강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싫은데 세탁을 해야한다면, 나는 눈 질끈 감고 일어나서 세탁기를 돌린다. 그게 나의 선택이고, 그런 선택들이 쌓여 멘탈이 된다.

레이디제인은 국민썸녀라는 단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Q. 그런데 말이다. 사실 이 인터뷰는 ‘썸남썸녀’ 특집이었다. 전남친에 대한 이야기로 예능을 휘어잡아, 연애를 이야기하는 예능(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 까지 진출한 당신이야말로 제격이라 생각했었다.
레이디제인 : 오! 나야말로 ‘전여친’에서 이제는 ‘예비여친’, ‘썸녀’가 되길 원한다. 나는 누구와도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강조해달라.

Q. 레이디제인의 ‘국민썸녀’화 좋다! 그런데 정말 왜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들 ‘썸’을 탄다고 생각하나.
레이디제인 : 서로를 진중하게 잘 알아보려 하지 않아서 아닐까. 주변 동생들을 보면 홍대 클럽에서 만나 그날 사귀는 이도 있다. 당연히 금방 헤어진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이 연애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호한 관계들이 반복되다보니 썸이라는 단어로 그 관계를 정의하려 하는 것 같다. 좀 더 마음의 문을 열고 연애를 많이 해보아야하는데, 그 연애라는 것은 가벼운 터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깊이 탐구해보라는 말이다.

Q. 하긴 그놈의 썸타령이 깊은 사랑을 못하는 시대를 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레이디제인 : 요즘 친구들이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다들 SNS에 골몰해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왜 하늘색, 파란색인 줄 아나. 사람들이 너무 하늘을 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이제는 전화도 어색해진 시대다. 모든 것이 스크롤로 내리면 후딱 답이 나오길 원한다. 하지만 관계란 천천히 대화를 해보고 기다려도 보아야 하는 것인데, ‘너 나 좋아? 싫어?’ 이렇게 돼버리니까. 그렇게 스피디하게 끝나버린 사이를 정의할 말이 없으니까 ‘썸’이 생긴 것 같다. 사실 그 전에는 ‘썸’이란 사귀기 전의 알콩달콩한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그 예쁜 단어가 훼손되고 있다. 썸이 아름답고 진중한 만남의 전단계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으면 한다.

Q.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나.
레이디제인 : 멘탈이 건강한 남자. 나는 잘생긴 남자는 싫다. ‘나랑 떡볶이 먹으러 갈 수나 있을까’ 싶어서. 다만 좋은 가정에서 잘 자라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 능력은 있는데 멘탈이 이상하면 결국 그 관계가 진흙탕이 되버리는 것 같다.

Q. 참, ‘썸타는 콘셉트’인 홍진호와의 발전가능성은?
레이디제인 : 반반. 사람일은 단언할 수 없으니까, 흐하.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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