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김강우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KBS2 수목드라마 ‘골든 크로스’로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그에게는 기대보다도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다. 작품이 음모에 휘말려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복수극을 다루는 만큼 김강우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했으나, 그간 영화, 드라마를 통해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여 왔음에도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었다는 점은 그런 우려를 키웠다. 또 앞서 예능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개된 반듯한 이미지도 ‘복수’라는 소재와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평도 뒤따랐다.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숨 가빴던 초반부를 지나 각 인물이 나름의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자, 김강우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내보였다. ‘골든 크로스’의 주된 얼개가 여동생 강하윤(서민지)과 아버지 강주완(이대연)의 죽음 이후 복수를 그리는 강도윤(김강우)의 감정 변화를 따라간다는 점에서 그의 각성은 ‘골든 크로스’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대적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어느덧 40대의 초입에 들어선 그는 “작품의 성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직업 배우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져가되 결코 자만하지 않겠다”는 그는 ‘골든 크로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40대 중반은 되어야만 연기적으로 평가를 받을 만 하다”고 말하는 이 남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속이 꽉꽉 들어찼다.

Q.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작품을 끝마친 소감도 남다르겠다.
김강우: 좋은 드라마였기에 뿌듯하다. 가족들과 즐겁게 볼만한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보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있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또 특히 요즘에는 그런 드라마가 드무니까. 마지막에 시청률이 10%를 돌파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Q.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해서 장단점이 있었던 작품 같다.
김강우: 분명 세월호 침몰 참사, 6.4 지방선거 등의 이슈가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도 이렇게 어둡고 칙칙한데 드라마까지 그래야만 하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던 걸로 안다.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었을 거다.

Q. 제작발표회 때는 “가장으로서 작품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강우: 확실히 그렇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아버지 강주완(이대연)의 삶을 부정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후회하는 마음이 연기에 강하게 묻어나왔다. 총각 때 연기하던 것과는 다른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엔딩을 찍을 때도 뭔지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Q. 결말에 대한 이야기도 분분했다. 어찌 보면 ‘미완의 복수’였던 셈인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김강우: 이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가 담긴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악인은 항상 존재하고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라는 것. 그렇기에 우리가 악인이 악행을 반복하지 않도록 항상 그들을 지켜봐야 한다는 ‘공동의 시선’에 대한 문제가 잘 제기된 결말이라고 본다.

Q. ‘공동의 시선’이라. 당신도 악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시하는 부분이 있나.
김강우: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건 책임감의 문제이기도 하다. 배우는 수십억이 오가는 이 산업의 틀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이는 정치인, 더 나아가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악해지지 않기 위해 더 평범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Q. 배우라는 직업이 평범하게 살기 어려운 직업 중 하나가 아닌가.
김강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배우라고 해서 어떤 특권 의식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연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저 서른일곱 살 먹은 남자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Q. 직업의식이 굉장히 투철한 것 같다.
김강우: 배우도 어차피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다. 평생 해나갈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이미 마친 작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평가는 작품을 봐주신 분들이 내려주시는 것이니까.

Q. 작품을 마친 뒤가 그렇다면,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떨까. ‘골든 크로스’라는 작품을 선택했을 때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김강우: 강도윤이라는 인물이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캐릭터 같았다. 배우로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캐릭터였다.

Q. 사실 강도윤 역은 연기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캐릭터였다. 후반부에는 감정폭발이 계속됐기에 완급조절에 애를 먹었을 것 같기도 하다.
김강우: 완급조절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강도윤을 따라 작품을 보신 분들은 분명 후반부에도 감정이입을 하실 거라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 물론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살면서 그렇게 절규하고 오열할만한 일이 몇 번이나 있겠나. 하지만 나는 주연 배우로서 중심을 잡아야 했다. 매일 집에서 나올 때 거울에 붙은 포스트잇을 보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 그 포스트잇에는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자’고 적혀있었다. 내가 무너지면 드라마가 무너진다는 생각에서였다.



Q. 많은 악역이 등장했고, 각각 질감이 다른 악역이라 고생 좀 했겠다.
김강우: 모두가 톤이 달랐다. 많게는 하루에 7~8명의 악역을 상대해야 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정말 그러기 쉽지 않은데. 왜 또 설정은 태권도 유단자로 돼 있어서 액션을 적당히 하지 못하게 했는지, 하하. 그럼에도 중반부를 지나면서 도윤의 목표가 확실해지니까 연기하는 어려움은 점차 줄어들었다.

Q. 도윤에게는 삶의 목표가 ‘복수’이자 ‘제대로 사는 것’이었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김강우: 그게 참 대답하기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건데 어떤 때는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고, 또 어떤 때는 유연하게 돌아가야 하는 시점도 있다. 그래서 섣불리 거기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의연하게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Q. 배우라는 직업이 특히 의연해지기 어려운 직업이 아닌가. 주변에서 유혹도 많을 텐데 어떻게 중심을 잡아나가나.
김강우: 먼저 나 자신을 설득시켜야 한다. 내가 명확해야 흔들리지 않는다. 근데 그렇게 되면 외로워진다. 지금도 나는 배우 친구가 없다. 하지만 외로움을 즐기지 못하면 안 좋은 선택을 하게 되더라.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직업 외의 삶이 더 크다. 배우라고 해서 다른 삶은 뭉그러뜨린 채 연기만 할 수는 없는 거다. 오히려 나를 평균치에 맞추고 배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Q. 그 과정 중에 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김강우: 과외 활동도 있겠지만, 주로 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다. 연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스트레스는 가득하다. 그런 것들을 연기로 푸는 거다. 또 이렇게 좋은 일은 돈까지 받아가면서 한다고 생각하면 더 즐거워진다.



Q. 굉장히 평균적인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태도가 배우로서 절박함이 없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김강우: 오히려 더 절박하다. 표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이런 태도 때문에 감각의 예민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아버지가 되면서 점점 유해지고, 그런 부분이 날 선 감정을 무디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은 된다.

Q. 배우에게 특히 그런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이 중요할 것 같다.
김강우: 그래서 자꾸 자신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을 할 때는 가족도 등한시한다. 작품을 마치면 혼자 훌쩍 떠나기도 한다. 가서 얼마간 모든 걸 잊고 감정을 비우는 거다. 내가 워낙 이런 성향이 강하다 보니까 이제는 아내도 이해해준다.

Q. 어느덧 40대 진입을 코앞에 뒀다. 남자로서 배우로서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질 만한 나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김강우: 아직은 연기의 맛을 살리기에는 내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젊을 때는 ‘30대가 되면 기가 막힌 연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연기인 것 같다. 40대 중반쯤이 되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열심히 살아가면서 ‘삶에 대한 느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세상에 백만 가지 감정이 있다면 내가 아는 감정은 손에 꼽을 정도일 거다. 그 감정을 느껴나가고 써먹을 수 있을 때까지 다듬는 것, 그게 앞으로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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