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백성현. 지난 1994년 ‘아역 배우’로 데뷔한 그는 어느덧 데뷔 21년 차를 맞았다. 그간 출연한 작품 수만 해도 30편 이상. 이런 그에게 ‘성공한 아역스타’, ‘마의 16세를 잘 넘긴 배우’ 등의 수식이 따라붙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Q. 총 151부작이나 되는 작품을 끝마쳤다. 30%대 시청률을 웃돌 정도로 반응도 뜨거웠고. 주연배우로서 기분이 남다르겠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그는 “이제야 연기에 대한 부담을 떨쳐낼 수 있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는 ‘물을 마신다’는 간단한 연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자신을 스스로 옥죈 시간이 있었다”는 그는 최근 종방한 KBS1 일일드라마 ‘사랑은 노래를 타고(이하 사노타)’를 통해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고 말했다.
지난 8개월간 ‘사노타’로 시청자를 만난 그는 ‘박현우(극 중 백성현이 맡은 역할)’의 성장과 ‘인간 백성현’의 성장을 연결했다. “이제야 연기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다”는 어느 아역 출신 배우의 고백은 한 소년의 성장통을 지켜보듯 아련한 느낌을 자아냈다. 부쩍 자란 외모 속에는 나이테처럼 성장통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어, 소년이 아닌 남자로 거듭난 그의 활약이 더 궁금해진다.
백성현: 8개월간 사건·사고 없이 끝마쳤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연장 방송을 안 했다는 것? 하하. 박현우로 8개월을 살았으니 캐릭터에서 벗어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Q. 아무래도 ‘사노타’의 뜨거운 반응에는 요즘 세태도 작용한 것 같다. 세월호 침몰 참사 발생 이후 참담한 기분을 느꼈던 분들에게는 ‘사노타’가 힐링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백성현: 그야말로 정의가 실종된 사회가 아닌가. ‘사노타’에는 일일극의 특성상 다소 ‘막장 드라마’의 요소도 있었다고 하지만, 극의 큰 얼개는 ‘박현우’라는 인물을 통한 ‘정의’와 아픈 가정사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그려진 가족적인 메시지이다. 연기하는 배우들도
사노타‘를 통해 시청자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가라앉기를 바랐다.
Q. 출연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사노타’는 일일극임에도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터라 공감대 형성이 잘 됐을 것 같다.
백성현: 단합이 잘 됐다. 서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눴다. 인간적으로도 다 좋은 친구들이었고.
Q. 그간 영화 등 다수 작품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적은 있었지만, 일일극 주연은 처음이었다. 부담감을 떨쳐내는 게 숙제였겠다.
백성현: 첫 한 달이 가장 힘들었다. 질책도 많이 들었고 개선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일일극의 장점은 매일 모니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하하. 모니터를 통해 단점을 포착해서 바꿔나가는 작업을 계속했다. 중반부터는 흐름을 타니까 ‘박현우’가 이해되기 시작하더라. 그다음에 어떻게 인물에게 변화를 주고 ‘백성현만의 느낌’을 담을 것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Q. 박현우를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족과 진실을 놓고 정의를 선택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결론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백성현: 사실 그렇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니, 어느 누가 이 문제에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있겠나.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극의 흐름과 그간 내가 구축한 캐릭터의 판단에 맡기자고 생각했다. 실제 내 상황이었다면 힘들었겠지만, 내가 아닌 현우라면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
Q. 가족적인 메시지는 잘 살았지만, 후반부는 다소 급하게 봉합된 느낌이 있다. 공들임(다솜)과의 러브라인도 그렇고.
백성현: 그 부분이 맹점이었다. 들임이와 사랑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앞서 풀어놓은 수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임과의 러브라인이 줄어들었다. 마지막 회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오픈 엔딩으로 끝난 것도 아마 그런 영향 탓이지 않을까 싶다.
Q. 어쨌든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사노타’ 이후 새로이 깨달은 게 있다면.
백성현: 나에게 있어서 연기는 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한 터라 더 그랬고. 근데 이제 뭔가 연기가 직업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매 순간 고민은 하지만, 캐릭터를 구현하고 연기하는 데 조금씩 재미를 느껴가는 것 같다. 이전에는 항상 ‘베스트’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일일극은 그게 잘 안 된다, 또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도 있고. 하나의 색깔만 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색깔을 내는 게 중요하더라. 배우로서는 큰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Q. ‘아역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뗐다는 것도 큰 성과겠다.
백성현: 초반만 해도 ‘아역 출신 누구’라고 기사가 나오더니, 뒤로 갈수록 ‘사노타’ 백성현이라고 불러주시더라. 이런 게 정말 흡족했다, 하하하.
Q. 여러모로 ‘사노타’가 당신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백성현: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한 캐릭터를 이토록 오래, 깊게 연기할 기회가 또 있겠나. 나중에는 대본만 봐도 내 안에서 자동 반응처럼 감정이 일더라. ‘사노타’로 부담감도 떨칠 수 있었다. 예전에 KBS2 ‘빅’이나 ‘아이리스’ 등에 출연할 때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사노타’에 출연하며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어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긴 호흡의 작품이라 이런 장점도 있는 것 같다.
Q. 칭찬일색이다. 또 일일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백성현: 언젠가는 다시 하겠지만, 지금은 좀…. 하하하. 박현우처럼 평탄하고 일반적인 이물보다는 나의 연기적 장르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다.
Q. 인터뷰 때마다 언급하는 ‘황정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하하.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은 건가.
백성현: 변화가 확실한 이야기가 좋다. 장르 영화나 누아르를 통해서 확실하게 이야기와 감정의 변화 폭이 큰 연기를 해보고 싶다. 때로는 연기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배우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서도 어마어마한 변신을 시도할 예정이다. (Q. 어떤 캐릭터인가.) 하반기 개봉 예정인 영화 ‘스피드’에서 ‘약쟁이’로 변신한다, 하하. 이상우 감독과 연이 닿아서 출연하게 됐는데 정말 파격에 가까운 캐릭터를 보실 수 있을 거다.
Q. 다수 작품에 출연했음에도 여전히 이미지 변신에 대한 갈망이 큰 것 같다. 이유가 있나.
백성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바스켓볼 다이어리’(1995)를 보고 좌절했다. 지금의 나는 장난치고 있구나 싶더라. 오늘날의 대배우 디카프리오는 그런 다양한 변신과 시도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더라. 어릴 때는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는데 나이를 먹어가며 그런 생각이 빈번히 깨지고, 부딪혀서 뛰어넘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마치 ‘배우 백성현’이 겪는 사춘기랄까. 지금은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한 상태다.
Q. 갈 길이 먼 것 같다. ‘배우 백성현’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백성현: 군대 문제도 있고 하지만, 그림을 크게 보려고 한다. 이번에 새롭게 자극을 받은 만큼 좀 더 집중해서 연기해나갈 계획이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백성현’이라는 이름이 어느 정도 대중에게 각인되지 않을까. 믿고 보는 배우, ‘평타 이상은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다소 부침을 거듭하더라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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