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선녀 달달한 케미에 시청자 가슴이 콩닥콩닥 “진정한 완소커플이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주어지는 과제와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다. 매순간 다가오는 문제들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제대로 된 결정을 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미래에 난관이 다가올 가능성이 높기에 살얼음판에 발을 내딛듯 긴장감 속에서 살고 있다. 항상 어깨에 큰 짐 봇다리를 들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힘든 삶을 사는 현대인들은 가끔씩 모든 부담감을 던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단순하게 바라보고 분석하지 않고 감정이 느끼는 대로 따라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차피 아무리 복닥거려도 인생이란 눈 깜짝 하면 지나가는 허무한 상대. 시간도 멈추고 싶을수록 더욱 가속도가 붙어 멀리 달아난다. 그래서 ‘어른’의 타이틀을 버리고 아이 때의 꿈과 감성을 유지하려는 ‘어른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런‘어른아이’들을 위한 콘텐츠들도 늘어나고 있다.

야외에서 전쟁놀이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야 말로 진정한 ‘어른아이’들을 위한 맞춤용 게임. 다 큰 어른들이 숲속을 뛰어다니며 물감 총을 쏘아대는 모습은 직접 하기 전에는 고개를 가로젓게 만들지만, 누구나 가슴 속에 아이가 하나 살아있기에 이런 게임을 하다보면 모두가 소년소녀로 돌아가고 만다.



안방극장에서 ‘어른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꼽으라 하면 아마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가 가장 적합하지 않나 싶다. 유명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을 다루는 ‘우결’은 ‘21세기식 공개 소꿉놀이’다. 어른 시절 누구나 한번 경험해봤을 ‘소꿉놀이’를 다 큰 어른들이 공개적으로 하면서 8년째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우결’의 장수 비결은 아마도 어린 시절 꿈꿨던 로맨틱한 감성을 되살려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청자들도 말 그대로 ‘가상 결혼’이기에 출연 커플의 관계가 현실이 아닌 ‘일’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선남선녀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묘한 케미스트리(화학작용)가 두 사람의 관계가 왠지 사실이라고 믿고 싶게 만든다. 이런 ‘썸’인 듯 아닌 듯한 복잡미묘한 감정 기류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가장 큰 동력이다.

많은 이들은 ‘우결’ 속 커플들을 철저히 대본에 의해 맺어진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진실은 연예기자를 오래 한 나도 사실 잘 모른다. 그러나 꾸준히 지켜본 사람들은 안다. 아무리 대본이 있고 설정을 정해준다 해도 출연자 대부분 아직 피 끓는 젊은 청춘이기에 ‘케미’는 분명히 형성된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철저히 일로만 받아들이는 비즈니스적인 커플들도 꽤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커플들은 대부분 서로에 대한 호감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오히려 일로 만나 모든 게 오픈돼 그 감정이 진전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순진한 발상일 수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내 말에 분명 공감할 것이다.

최근 나는 오랜만에 ‘우결’을 매주 챙겨보게 됐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5시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선남선녀들이 펼치는 소꿉놀이에 푹 빠져 있다. 그 이유는 걸스데이 유라-홍종현 커플 때문이다. 방송을 놓치면 다른 커플은 지나가도 두 사람 분량은 꼭 찾아본다. 그 이유는 이미 지난 봄 칼럼에서 고백했듯이 나는 유라의 열성 팬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바탕 화면에는 유라의 사진이 여전히 깔려 있다.

그런 가운데 유라의 ‘우결’출연 소식은 반갑기도 했지만 우려도 컸다. 겨울밤 누구도 밟지 않은 흰 눈밭처럼 해맑고 순수한 유라가 혹여 ‘안티’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기 때문. 또한 세계 최고 미녀 2위에 오른 오렌지캬라멜 나나에게 굴욕을 안겨줘 화제에 오른 ‘철벽남’ 홍종현이 상처를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삼촌팬의 애정이지 결코 질투(?)는 아니다.



그러나 막상 첫 회를 보고 나서 모든 우려는 가셨다. 유라-종현 커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것. 순정만화에서나 봐온 명랑하고 귀여운 여주인공과 잘생기고 무뚝뚝한 남주인공이 티격대다 가까워지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져 더욱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이들 커플이 더욱 뜨거운 반응을 얻는 건 아직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카메라 앞에서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속마음을 숨기는 게 아예 불가능한 유라와 천방지축 유라의 매력에 당황하다 견고했던 철벽이 차츰차츰 무너져가는 홍종현의 모습이 방송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지난 28일 방송에서 마냥 철없어 보이던 유라가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보여준 알뜰한 반전 면모와 홍종현이 ‘철벽남’의 면모를 벗고 군인들을 질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이 커플이 펼쳐갈 애정전선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사실 난 요즘 고정 팬이지만 ‘우결’을 즐겨 본다는 말을 아직 어디 가서 쉽게 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선입견이 아직 팽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일지라도 뭐하고 있냐 물으면 다른 프로그램을 본다고 대답하곤 한다. 가끔 ‘우결’이 대화주제로 나오면 “그거 아직도 해”라며 “요즘 누가 나와”라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용기가 생길 거 같다. 유라-종현 커플이 주는 재미를 남들과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두 사람간의 감정의 진실유무는 논할 필요도 없다. 두 사람의 빛나는 젊음과 풋풋함, 설렘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하니까. 이들의 아름다운 젊음이 현실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상큼한 힐링을 선사하며 활력소가 될 걸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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