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동인에게 ‘스톤’은 큰 의미다. 아버지의 유작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첫 주연 작품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개봉을 앞둔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고인이 된 감독이자 아버지의 작품. 신예 조동인에게 영화 ‘스톤’은 바로 그런 의미다. 흥미로운 점은 ‘스톤’이 조동인의 첫 주연작인 동시에 조세래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아쉽게도 조세래 감독은 개봉을 기다리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분신과 같은 아들을 ‘스톤’에 남겼다.
조동인은 극 중 천재적인 바둑 실력을 갖췄음에도 별다른 인생의 목표 없이 살아가는 20대 청년 민수 역을 맡았다. 조동인의 표현을 빌리면, 민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젊은 시절 어딘가는 아들 조동인의 지금 모습과 닮았다. 이렇게 ‘부자(父子) 영화인’은 완성됐다.
하지만 조동인에게 ‘스톤’은 큰 부담이다. 이제 갓 연기를 경험한 신인이 영화 한 편을 온전히 이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더욱이 남해 역의 김뢰하, 인걸 역의 박원상 등 베테랑과 호흡을 이뤄야만 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 실력 차는 뚜렷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는 “맹독을 품었다”는 말로 당시 각오를 대신했다. 조동인을 만나 아버지이자 감독 그리고 ‘스톤’을 탐구했다.
조동인 : 떨리면서도 설렌다.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도 있지만,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게 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불안감도 있고, 자신감도 있다.
Q.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바둑을 접했다고 들었다. 그 계기는 무엇인가. 혹시 부모님의 강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바둑을 접했으면 바둑의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조동인 : 강요라기보다 권유다. 하하. 그리고 기재가 뛰어나진 않았던 것 같다. (실력 말하는 건가?) 실력과 기재는 조금 다른 의미다. 기재는 바둑에 대한 재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열심히 두면 어느 정도 실력까지는 올라갈 수 있는데, 기재가 없으면 그 이상은 힘들다.
Q. 스스로 기재가 없다고 느꼈다는 건가.
조동인 : 당시 학원에 다녔는데, 일단 그 학원에서 가장 잘 두진 못했다. 나보다 잘 두신 분이 두 분 정도 있었는데, 그분들도 프로가 되지 못했을 정도다. 프로 입단 테스트를 보는 것도, 통과하기도 어렵다.
Q. 그럼 연기에 대한 관심은 언제 생겨났나. 뭔가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조동인 : 계기라기보다 집안 환경이 큰 일조를 했다. 기억나는 게 있는데, 초등학교 때 ‘태조 왕건’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극 중 인물을 흉내 냈던 것 같다. 내가 흉내 내는 걸 보고 가족들끼리 웃고. 그러면서 어렴풋이 길을 잡지 않았을까 싶다.
Q. 바둑은 어렸을 때 접했고, 연기도 어렴풋이나마 어려서부터 관심이 있었던 거다. 개인적으로 바둑과 연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게 되는 건가.
조동인 :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가진 꿈을 확신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바둑으로 뭔가 승부를 보기엔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
Q. 그럼 연기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나.
조동인 : 연기를 해야겠다,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중학교 2학년 때다. 당시 같은 반 친구가 연기 학원에 다녔는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그 친구한테 연기를 해보라고 시켰다. 당시 그 친구가 했던 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 나야. 그 바보 같은 사람이 바로 나야’란 대사였다. 굉장히 오글거리는데 그때도 그랬다. 그런데 그 친구의 진지한 모습이 정말 멋있게 느껴졌다. 그때 본격적으로 생각했고, 18살 때 극단 꼭두에 들어가게 됐다.
Q. 아까 말한 것처럼 부모님이 영화 계통에서 종사하셨다. 어려서부터 연기에 관심을 보였다면, 아역 등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조동인 : 일단 아버지가 영화 쪽에서 일했던 사람인 줄 몰랐다. 중학교 때까지 그냥 글 쓰는 분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음…. 잘 모르겠다. 하하.
Q. 어린 시절 이야기는 그만하고, ‘스톤’에 대해 들어가 보자. 아버지의 작품에 주연으로 참여한다는 게 사실 참 눈치 보이는 일이다. 말 그대로 ‘낙하산’처럼 비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출연 결심까지 남모를 고민이 있었겠다.
조동인 : 낙하산이다. 하하. 고민도 많았고, 부담감도 심했다. 내가 못하면, 나 혼자 욕먹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감독님도 분명 욕을 먹을 거니까. 그러다가 중간에 한 번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고, 그래서 군대에 가려고 했다. 결과적으론 하게 됐지만, 못할 수도 있었을 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히려 마음이 살짝 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찍는 내내 부담스러웠고, 처음 영화를 봤을 때도 참담한 마음이었다. 감독님께 ‘너무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렇게 못하지 않았다. 해야 할 역할을 다했다’고 하더라.
Q. 방금 말처럼 중간에 못 할 뻔했는데 결국 하게 됐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조동인 : 안 한다고 버텼다. 솔직히 삐친 것도 있었다. 열심히 연습했는데, 어느 날 감독님께서 모든 스태프가 반대한다면서 이번에는 같이 못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좋은 연기자 구해서 하세요’라고 한 뒤 입대를 준비했다. 결국, 주연을 못 찾고 다시 왔을 땐 무조건 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음 접고 군대 간다고 마음도 정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최종태 감독님(‘플라이대디’ 등 연출)과 술 드시는데 날 불렀다. 그 자리에서 최 감독님께 많이 혼나면서 ‘아차’ 싶었다. 그래서 피디님을 만나보겠다고 했다. 피디님을 만났더니 ‘보기보다 괜찮네.’ 하시더라.
Q. 처음 제안했을 때,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다시 하게 됐을 때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나.
조동인 : 어느 날 그 이야기를 하더라. 군대 간다고 했을 때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고. 뭔가 배포 같은 게 보여서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 좋았다는 말을 해주셨다. 최종적으로 합류했을 때는 ‘열심히 하자’ 정도.
Q. 아버지가 아들에게 극 중 민수 역을 직접 제안한 것 아닌가. 그럼 어느 정도 캐릭터를 만들 때 아들을 염두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조동인 : 감독님의 젊었을 때 시절이 민수다. 그런데 내가 아들이다 보니 분명 닮은 면이 있긴 있을 거다. 그래서 잘 맞아떨어진 것도 있고. 확실한 건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를 생각하고 민수 캐릭터를 만든 건 없었다.
Q. 많은 현장을 경험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아버지 현장이기 때문에 편한 것도 있고, 반대인 것도 있을 수 있다. 분명 감독 덕에 주연 맡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독을 품고 했을 것 같다.
조동인 : 맹독을 품었다. 하하. 감독님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현장이 편한 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불편한 게 다였던 것 같다. 일단 주위의 시선들. 근데 사실은 그 시선을 신경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냐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정이었다. 앞으로 연기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작품에 임했다. 눈치 볼 정도의 정신도 없었다. 하하.
Q. 맹독을 품었다고.
조동인 : 대사만 한 달 정도 혼자서 연습했다. 시나리오 지문까지 다 외울 정도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현장 가니까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혼자 연습할 때 동선까지 만들어가면서까지 했는데 말이다. 하하.
Q. 처음 주연이란 점에서 노력한다 해도 부족한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조동인 : 바둑 두는 신이 많은데 NG가 정말 많았다. 바둑 두는 게 다 똑같은 것 같은데 감독님 눈엔 아니었던 거다. 또 남해와 민수가 함께 아파트에 있는 장면인데, 편하게 생각했던 장면인데 한 번 NG 나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는 거다. 다행히 뢰하 선배님께서 힘을 북돋아 주셔서 벗어날 수 있었다.
Q. 김뢰하, 박원상 등과 호흡이 중요했을 것 같다. 잘해 주던가.
조동인 : 일단 선배님들이 배려를 해주셨다.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리허설도 좀 더 많이 해주셨다. 현장에서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한 번은 계속되는 NG 때문에 혼자 의기소침해 있는데 뢰하 선배가 ‘연기자는 언제든지 그런 날이 온다. 한 번 올 수도 있고, 여러 번 올 수도 있지만, 그때 잘 이겨나가야 하는데 쉽진 않다. 그걸 이겨내려면, 네가 연습한 연기를 생각한 대로 해라. 그러면 좀 나을 거다’라고 해주셨다. 굉장한 용기가 됐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Q. 주연으로서 한 편의 영화를 끝마쳤는데, 스스로 판단했을 때 가장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칭찬한다면.
조동인 : 부족한 면은 너무 많다. 특히 딕션. 이에 대한 훈련은 끊임없이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한데, 정말 민수처럼 보였던 장면이 있다. 딱 그거 하나 마음에 든다.
Q. 바둑을 흔히 인생에 이유하곤 하는데, ‘스톤’도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나 있다. 혹시 개인적인 바람이 있나.
조동인 : 개인적으로 아직 꿈을 찾고 있는 친구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지치지 않고 용기 내서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게 영화의 메시지 중 하나다.
Q. 그나저나 바둑의 매력은 무엇인가.
조동인 : 바둑은 서로 한 수씩 놓는, 그건 영화 대사고. 하하. 바둑은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재밌는 놀이다. 온라인 게임 등 쉽게 즐길 수 있다. 물론 알아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점점 세상이 빨리 돌아갈수록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조금 속상하다. 바둑은 내 자존심이기도 하다. 지면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인터넷상에서 중국 기사와 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자세부터 달라진다. 하하
Q. 승부욕이 좀 있어 보인다.
조동인 : 있다. 뭘 하더라도 지는 걸 안 좋아한다. 결국엔 잘하고 싶다. 연기도 그렇다. 아직 좀 모자라지만, 결국엔 잘하고 싶은 게 연기다.
Q. 아버지 조세래, 감독 조세래를 각각 설명한다면.
조동인 : 각각이 안 된다. 그게 안 되는 게 현장에서도 아버지 같은 면이 분명 있다. 그런 질문을 가끔 받는데, 대답하기 힘들더라.
Q.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또는 아버지가 어떤 말을 해주셨을 것 같나.
조동인 : 뭐라고 그랬을까? 나도 궁금하다.
Q. 배우의 꿈을 듣고 싶다.
조동인 : 짧은 계획은 작품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뭐든지.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아직 한 게 없으니까 당연한 거다. 크게 본다면, 개인적으로 얻고 싶은 타이틀이 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거다. 건방지게 볼 수 있겠지만, 그런 타이틀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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