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타 PD’의 전성시대다. 본래 방송국의 프로그램기획자로 작품 선정, 인력관리, 예산 통제 등을 담당했던 PD들의 활동 영역은 최근 들어 전에 없이 확장됐다. PD들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서는 경우도 잦아졌다. 예능 PD들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제3의 멤버’와 같이 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관찰자는 관찰하는 대상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PD의 이름이 곧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질 만큼 명확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PD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독창적인 색깔을 드러내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이들에 시청자들의 열광 한다.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가 그만큼 깊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증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소위 ‘스타 PD’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 걸까.

그런 측면에서 공개형 개그프로그램의 새 장을 연 CJ E&M 안상휘 CP의 행보는 눈길을 끈다. 지난 2011년 케이블채널 tvN ‘SNL 코리아(이하 SNL)’ 들고 나타난 그는 대한민국 방송가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며 단번에 스타 PD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SNL’의 인기는 그야말로 열풍에 가까웠다. 신랄한 정치 풍자를 바탕으로 19금 개그를 결합한 ‘SNL’은 인기에 힘입어 2014년 다섯 번째 시즌을 맞는 쾌거를 이뤘다.

매 시즌 새 멤버 영입과 지상파 채널보다 반 발짝 빠른 움직임으로 유행을 선도해온 ‘SNL’은 어느덧 스타들이 먼저 출연하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오래된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SNL’에도 부침이 따랐다. 기획 자체의 신선함이 많이 상쇄된 시점부터는 ‘지나치게 19금 코드에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었다.

그렇기에 다섯 번째 시즌의 향방은 더 중요해졌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온 끝에 도달한 시즌5의 성공 여부는 ‘SNL’의 장기화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이토록 중대한 시점에 ‘SNL’의 시작과 성장을 지켜봐 온 안 CP의 머릿속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지. 그에게 ‘SNL’의 미래와 변화의 방향성을 물었다.

Q. 세월호 침몰 참사 발생 이후 꽤 오랜 시간 방송이 불발됐다. 헌데 막상 방송이 재개됐음에도 반응은 다소 미적지근한 상태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안상휘 CP: 아무래도 이런 반응의 근저에는 ‘풍자 코드’가 다소 약화된 ‘SNL’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이 있을 거다. 본래 ‘SNL’의 두 축이 ‘풍자’와 ‘19금 개그’라는 두 가지 축으로 이뤄져 있는 데 그 틀을 바꾸는 과정에 있다 보니 보시는 분들에 따라서는 당연히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Q. 점차 ‘풍자 코드’를 방송에서 살리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민감한 이슈들이 많아서….
안상휘 CP: 우리나라는 그런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슈를 던지면 좌우논란으로 번지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프로그램만 놓고 본다면 이슈에 중심에 선다는 건 좋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추구하는 ‘SNL’의 방향과는 다르다. (Q. 그 방향이라 함은 무엇인가.) 사회에 도움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근데 그게 점점 어려워진다. ‘성인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참 양립하기 어려운 거거든.



Q. 올 초 미국에 방문해 원조 ‘SNL’을 보고 돌아왔다. 느끼는 바가 컸겠다.
안상휘 CP: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하하하. 어느덧 ‘SNL’도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은 터라 예전에 시즌1을 기획할 때와는 다른 부분들이 보이더라. 미국 ‘SNL’은 정말 성역이 없다. 성(性)은 말할 것도 없고, 장애인, 종교까지 건들더라. 꼭 그걸 ‘좋다’, ‘나쁘다’로 구분 지을 문제는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만큼은 보장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에 다녀온 뒤에 고민이 더 깊어졌다.

Q.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인가.
안상휘 CP: ‘SNL’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세운 원칙이 있다. 바로 ‘7 대 3 원칙’이다. 70%가 즐겁다고 해도 30%가 불편하다면 그 소재는 다루지 않는 거다. 그러다 보니 ‘SNL’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더라.

Q. 시즌5에 이르러 유독 패러디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뭔가 예전과는 반응의 온도 차가 있는 것 같다.
안상휘 CP: 그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패러디도 풍자나 촌철살인이 들어가야 맛이 산다. 그나마 다년간 호흡을 맞춰온 크루들의 연기력이 그 빈틈을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Q. 총체적 난국이다. ‘SNL’에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안상휘 CP: 또 다른 축을 찾으려고 한다. ‘GTA’ 시리즈에서 약간의 가능성을 봤다. 최근 ‘SNL’가 힘을 싣고 있는 부분이 바로 ‘병맛 코드’다. ‘SNL’의 안정적인 포맷에 새로운 코드를 더해 하나의 장르를 개척한 게 ‘GTA’ 시리즈였다. 그 부분에 좀 더 집중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볼 생각이다.

Q. 지난 2011년 처음 ‘SNL’을 들여올 때의 최초 기획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미국과 문화 차가 큰 만큼 ‘SNL’을 ‘한국화’하는 게 숙제였을 것 같은데.
안상휘 CP: 사실 포맷이 아니라 브랜드만 들여온 셈이다. 이름은 달랐지만, 비슷한 장르의 프로그램은 많았다. SBS ‘헤이헤이헤이’도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였고. 한국 정서에 맞는 코미디를 만드는 게 숙제라면 숙제였다. ‘SNL’ 시즌1, 2가 그런 작업이었다. 초창기에는 웃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 생방송 무대를 꾸미는 데 크루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여도 방청객 반응이 냉랭했다. 그때만 해도 이런 코드의 무대가 없었으니까. 크루들만 진땀을 뺏었지, 하하.

Q. 그러고 보면 ‘SNL’은 공개형 개그프로그램에 가깝다. 그때만 해도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등 비슷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었을 때다.
안상휘 CP: 공개형 개그프로그램의 출발점은 ‘개콘’이다. 대학로에서 출발한 뒤 방송을 거쳐 성공적으로 안착했지. 개인적으로 코미디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하지만 ‘개콘’은 아무래도 지상파 채널이고 좀 더 넓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SNL’은 그런 한계를 깨고 ‘엣지(Edge)’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기획이다. 젊은 세대의 유행이라는 건 지상파 채널보다 훨씬 앞서있지 않나. 웹툰, 유튜브를 즐겨 보는 세대에게는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Q.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다. ‘SNL’의 인기만 봐도 그런 콘텐츠에 대한 소구층은 확실히 존재했다.
안상휘 CP: 그만큼 성인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또 ‘19금 코드’가 제대로 터지면서 ‘SNL’도 상승세를 탔다.

신동엽(위쪽)과 유희열은 ‘SNL’을 중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Q. 그 상승세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바로 신동엽이다.
안상휘 CP: 섭외할 때도 확신이 있었다. 그가 출연하면 분명히 한 번은 터질 것이라고. 그래서 설득을 했지.

Q. 설득했다고? 느낌으로는 단번에 출연을 승낙했을 것 같은데.
안상휘 CP: 그렇지 않다. 그가 출연을 고심하던 시기가 한 번 나락에 떨어진 뒤 다시 이미지를 회복했을 때였다. ‘SNL’이 확실히 자리 잡기 이전인데 대중에게 생소한 코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본인한테는 부담이지 않았겠나. 근데 결국 아내(MBC 선혜윤 PD)의 말을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더라. 우리가 선 PD에게 설득 좀 해 달라고 부탁했었거든. 원래 남편들이 아내의 말에 약하다, 하하. 이후 이야기는 아시는 대로다. 어느덧 ‘SNL’과 ‘신동엽’이 거의 동일 시 됐다. 사실 신동엽은 ‘개그맨’이라기보다는 ‘연기자’에 더 가깝다. 원래 연기를 전공하기도 했고 본인 자체가 콩트를 정말 좋아한다. 그 열정에 연기 내공까지 더해지니 결과가 좋을 수밖에.

Q. 신동엽이 터트린 이후에는 유희열이 들어왔다.
안상휘 CP: ‘SNL’에 모시기까지 8개월이나 걸렸다. 유희열은 굉장히 신중한 성격이라 자신이 ‘SNL’을 통해 할 수 있을 일이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하더라. 결국, 유희열도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하하하.

Q. 그가 ‘위켄트 업데이트’에 나올 때만 해도 굉장히 의욕적으로 보였는데, 정작 코너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시즌5에서 그가 맡은 코너가 ‘피플 업데이트’다. ‘피플 업데이트’는 사실상 시즌5에서 가장 힘을 실어준 코너가 아닌가.
안상휘 CP: 본인이 원하는 만큼 판을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그래서 논의 끝에 유희열이 잘하는 ‘토크’로 한 번 새롭게 해보기로 한 것이다. 유희열의 진행은 정말 탁월한 구석이 있다. 남성보다도 여성에게 더 어필하는 진행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신동엽의 ‘19금 코드’가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라면, 유희열의 ‘19금 코드’는 여성들에게 특화돼 있다. 그런 두 사람의 조합이 ‘SNL’에서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Q. 다섯 시즌을 거치면서 ‘SNL’은 변화를 거듭했다. ‘시즌5’라는 타이틀이 가볍지 않다. 프로그램이 장기화될 것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시점 같기도 하다. 자체적인 평가는 어떤가.
안상휘 CP: 물론이다. 이번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 시즌을 거치면서 퀄리티(Quality)적인 측면에서는 안정감을 찾았다. 이전 시즌에는 ‘여의도 텔레토비’나 ‘이엉돈 PD의 먹거리X파일’ 등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평이 많았다. 반면 시즌5는 아직 킬러 콘텐츠라 부를 만한 핵심 코너는 부족하지만, 크루, 제작진의 팀워크가 극대화되면서 전체적인 수준이 향상됐다. 화제의 코너를 만들고 제2의 김슬기, 김민교와 같은 크루를 발굴하는 게 당면과제다.



Q. 그 외에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나.
안상휘 CP: 올해에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불발되기는 했는데 해외 스타들을 초대하는 특집 편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SNL’ 콘서트도 기획 중이다. MBC ‘무한도전’과 같은 프로그램이 장기화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기획’이다. 크리스마스 때 ‘SNL’을 콘서트를 열어보면 어떨까 싶다. ‘SNL’을 통해 공연 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또 스핀오프를 만들어 볼 생각도 했다. 이건 최초 기획 단계부터 생각했던 부분이다. 미국 ‘SNL’에 샘플이 있으니까. 큰 틀에서는 내달 방송 예정인 tvN ‘잉여공주’도 같은 맥락이다.

Q. ‘SNL’에 꽤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만 같은 예감이다. 마지막으로 ‘SNL’의 애청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안상휘 CP: ‘SNL’은 우리 아이들도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 “방송 잘 보고 있다”고 말할 때 만감이 교차한다. 그만큼 이런 유행이나 문화가 어린 세대에까지 내려왔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어쩌면 가장 뒤처진 건 방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 자식이 본다는 마음으로 부끄럽지 않은, ‘하이퀄리티 웃음’을 만들어나가겠다. 좋은 콘텐츠를 향유해야 그걸 보고 자란 젊은 세대들이 자라서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게 아니겠나.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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