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 ‘닥터 이방인’, 수목 ‘너포위’ 기대 이하의 완성도에 상처뿐인 1위 유지

미식가들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무리 비싸고 질 좋은 재료로 레시피에 따라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도 만든 이의 미각과 재능이 떨어지면 맛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아무리 더 비싸고 좋은 재료를 사 요리를 만든다 해도 요리사가 음식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훌륭한 음식이 나올 수 없다. 그만큼 모든 재료를 총괄하고 매만지는 요리사의 중요성은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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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요즘 SBS 월화수목 미니시리즈를 보다보면 떠오르는 속담이다. 타사 방송사에서 부러워할 정도의 화려한 캐스팅과 스타 연출자, 흥미진진한 소재, 막대한 제작비로 무장했지만 기대만큼의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특별한 게 없다.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로 이유를 돌리는 이들도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기대에 비해 사랑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거친 내러티브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 힘든 설정, 중심을 잡지 못하는 연출에 시청자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망한 시청자들은 타사 방송으로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주중 미니시리즈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며 차기작을 기다리는 중이다. 나처럼 배우들에 대한 사랑으로 ‘의리’를 지키는 시청자들은 이야기를 벌려만 놓고 도무지 수습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드라마의 향방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나 화제성 덕분인지 시청률 순위는 1위다. 그러나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름값을 못하고 체면치레만 하는 상황이다. 월화드라마 ‘닥터 이방인’(이하 이방인, 극본 박진우 김주, 연출 진혁)과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이하 너포위, 극본 이정선, 연출 유인식)는 각각 뒷심을 발휘 중인 KBS 월화드라마 ‘빅맨’(극본 최진원, 연출 지영수)과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극본 유현미, 연출 홍석창)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심지어 ‘너포위’는 12일 1위는 유지했지만 두 자릿수가 무너져 9.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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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일까? 경쟁작들이 강력한 것도 아니다. 사실 화려한 진용만 보면 20%대는 아니어도 10% 중반대는 넘을 거로 예상됐다. ‘이방인’은 이종석 진세연 박해진 강소라, ‘너포위’는 차승원 이승기 고아라 안재현. 모두 각자가 한 작품을 이끌 만한 화제성과 능력을 가진 배우들이다. 또한 연출진도 모든 배우가 다 함께 일하고 싶은 ‘SBS의 에이스’인 진혁 PD와 유인식 PD다. 기대치가 한껏 올라갈 수밖에 없다.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

많은 이들이 대본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드라마 성공의 키는 역시 작가라는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닥터 이방인’은 ‘한성별곡’으로 화제를 모은 박진우 작가가 2009년 ‘바람의 나라’ 이후 5년 만에 집필하는 작품. 너무 오랜만의 작품인지 실력발휘를 못하고 있다.

남에서 태어나 북에서 의사가 된 탈북자 ‘천재의사’ 박훈(이종석)의 성장담을 담은 메디컬 드라마와 총리 심장 수술을 둘러싼 첩보전, 그에 얽힌 첫사랑 한재희와 비련의 사랑, 라이벌 의사 한재준(박해진)의 복수극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엮이지 않고 서로 겉돌면서 드라마가 표류하고 있다. 총리 수술을 둘러싼 박훈과 한재준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이야기가 탄력을 받고 있지만 곁가지가 너무 많아 몰입하기 힘들다. 사람의 목숨을 두고 서로 실력을 경쟁하는 모습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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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포위’는 ‘오작표 형제들’ ‘외과의사 봉달희’ 등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주로 써온 이정선 작가의 작품. 네 명의 오합지졸 신참형사들이 베테랑 서판석 형사(차승원)의 지도 아래 진정한 형사가 돼가는 성장담과 신구세대의 세대교감을 그리고 있다. 이작가가 변신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하다. 문제점은 여주인공 극중 이름 어수선(고아라)처럼 드라마가 어수선하다는 것. 마치 일본 만화 영화처럼 과장되고 경쾌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중구난방이어서 몰입하기가 힘들다. 인물 설정도 지극히 과장돼 공감되지 않고 매력도 부족하다. 또한 극의 큰 축을 이루는 은대구(이승기)의 어머니의 죽음에 관련된 비밀도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해 지루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SBS 드라마 ‘닥터이방인’

연출의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작가 탓만 할 수 없다. 진혁 PD와 유인식 PD 모두 기대 이하의 연출력을 보이고 있다. 연출자가 해야 할 중심축을 전혀 잡아주지 못하고 있다. ‘닥터 이방인’에서 공원에서 송재희와 낯간지럽게 데이트를 하던 박훈이 어설픈 절체절명의 납치극에 휘말려 협박을 당한 지 몇시간 만에 회식에서 아무 생각없이 신나서 ‘텔미텔미’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게 “진혁 PD 작품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극중 인물의 감정선이 연결되지 않고 있다. 또한 ‘너포위’ 초반부 어설픈 추격전과 인질 소동을 보다가도 연출자 이름 유인식 PD를 다시 한번 확인해볼 수밖에 없었다. 두 PD의 전작들이 성공한 게 스타 작가들과 일해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이방인’과 ‘너포위’는 이제 막 중반을 넘어섰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청자들이 ‘이방인’과 ‘너포위’에 미련을 여전히 갖고 있는 건 화려한 진용에 맞는 이름값을 언젠가는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문제점이 뭔지를 하루빨리 파악하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제발 제작진이 끈기있게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기대치에 부응해 활짝 웃는 결말을 맞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런 평가를 내린 내가 아주 많이 멋쩍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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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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