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타 PD’의 전성시대다. 본래 방송국의 프로그램기획자로 작품 선정, 인력관리, 예산 통제 등을 담당했던 PD들의 활동 영역은 최근 들어 전에 없이 확장됐다. PD들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서는 경우도 잦아졌다. 예능 PD들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제3의 멤버’와 같이 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관찰자는 관찰하는 대상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Q. 정말 ‘어느덧 방송 5주년’이다. 요즘처럼 유행에 따라 프로그램 신설·폐지가 빈번한 시대에 ‘스케치북’의 인기는 놀라울 따름이다.
PD의 이름이 곧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질 만큼 명확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PD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독창적인 색깔을 드러내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이들에 시청자들의 열광 한다.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가 그만큼 깊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증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소위 ‘스타 PD’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 걸까.
최근 방송을 통해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를 즐길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상파·케이블채널을 통틀어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제외한다면 음악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 어느덧 방송 5주년을 목전에 둔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이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다.
정통 음악프로그램에 대한 KBS의 노력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는 1992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을 시작으로 ‘이문세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탄생시키며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왔다. 특히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부터 함께한 강승원 음악감독과 ‘이소라의 프로포즈’부터 인연을 맺은 이연 작가가 포진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KBS가 그간 선보여온 음악 프로그램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 ‘대중성’과 ‘다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평가받는 ‘스케치북’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프로그램의 중심에 선 KBS 조현아 PD(‘스케치북’은 조현아, 이경윤, 이예지 PD가 교대로 연출을 맡는다)를 만나 ‘스케치북’의 성공 비결과 나아갈 방향에 관해 물었다.
조현아 PD: 아직 갈 길이 멀다. 5주년을 맞으니 부담감도 배가 됐다. ‘스케치북’은 햇수를 더할수록 연출하기가 녹록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소박한 세트에서 오로지 토크와 라이브 무대만으로 꾸며지니까. 사실 그게 요즘 추세와는 정반대이지 않나. 하지만 ‘스케치북’의 연출을 거쳐 간 모든 PD가 동의하는 한 가지는 ‘스케치북’만의 전통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만의 색깔을 유지해나가면서 나름의 변화를 모색하는 게 숙제인 것 같다.
Q. 지난 11일 5주년 특집 편 녹화를 진행했다고 들었다. 콘셉트가 굉장히 독특하다. 송해부터 황수경 아나운서, 그룹 2AM의 진운과 씨스타의 보라까지, KBS 음악프로그램과 관련된 분들이 총출동했다.
조현아 PD: KBS 장수프로그램 중 음악프로그램이 많다. KBS1 ‘전국노래자랑’, ‘열린음악회’, KBS2 ‘뮤직뱅크’ 등 정말 역사가 유구하지 않나, 하하. 각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 활약 중인 분들을 초대해서 프로그램 진행 노하우와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래도 5주년 특집 편이다 보니 여러모로 뜻깊은 한 회가 됐다.
Q. 앞서 세월호 침몰 참사로 장기간 결방 이후 ‘스케치북’에서 마련한 세월호 특집 편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선곡부터 무대 구성까지, ‘스케치북’이 5년간 명맥을 이어온 이유를 알겠더라.
조현아 PD: 우리도 참사 발생 직후에는 방송 재개에 대한 부담이 컸다. 워낙 분위기가 무거웠으니까. 그래서 방송 재개할 때는 꼭 ‘스케치북’만의 방식으로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하자고 뜻을 모았었다. 마침 MC 유희열이 먼저 “애도의 표하는 방식으로 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해왔다. 유희열이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추모곡 ‘엄마의 바다’를 만들어 무료 배포한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Q. 5년이라는 시간이 그저 흐른 건 아닌 것 같다. 그 안에 다져온 호흡이라는 게 있으니까.
조현아 PD: 물론이다. 유희열은 이제 거의 PD가 다 됐다, 하하. 흔히 방송가에서는 “유재석은 PD 마인드로 일하는 것 같다”고 하지 않나. 그런 것과 비슷하다. 유희열도 손발 맞춘 지 5년쯤 되니까 제작진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를 가장 먼저 생각하더라. 특집하고 이럴 때도 “회의할 때 내가 필요하면 불러 달라”며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서로 자유롭게 주장을 꺼내놓고 접점을 찾아가니 결과물도 좋을 수밖에 없다.
Q. 자기 분야의 전문성과 진행능력, 대중성까지 그 정도로 갖춘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조현아 PD: ‘스케치북’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역할이 컸지. 굉장히 스마트한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입지를 잘 잡아나간다. MC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거지.
Q. 보통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에는 그 사람의 성향이 강하게 묻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스케치북’은 라인업과 선곡 등 MC가 개입할 여지가 많을 것 같은데.
조현아 PD: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일단 실제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출연자가 어떤 음악을 들고 나와도 존중해준다. 토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방송에 나가든 안 나가든 적당히 끊는 것 없이 모든 토크를 다 살려낸다. 편집이 되더라도 그 사람만은 빛나게 해주는 거지. 예전에 악동뮤지션이 출연했을 때는 정말 감동했다. 찬혁 군이 ‘스케치북’에 정말 나오고 싶어 했다고 들은 유희열이 무대에서 “그 마음을 즉석에서 노래로 표현해 보라”고 부탁했다. 근데 찬혁 군이 꿈에 그리던 ‘스케치북’에 나오니까 얼어버렸다, 긴장이 되니까. 이후 몇 번을 시도해도 잘 안 되니까 유희열이 기타를 잡고 도와주더라. ‘스케치북’에서 그가 기타를 치는 건 처음 봤다. 그때 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지 알겠더라.
Q. 찬혁 군도 그렇지만, ‘스케치북’ 무대는 기성 가수들도 떠는 무대로 유명하다. 어찌 보면 규모는 콘서트보다도 더 적은 데 참 아이러니하다.
조현아 PD: 보아도 떨더라, 하하. 이번에 출연한 백지영도 무대 올라가기 전까지 떨고 긴장하더라. ‘뮤직뱅크’처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긴장감이 더하지 않을까 싶은데 출연 가수들 보면 꼭 그런 것 아니더라. 아무래도 타 프로그램은 무대와 객석이 꽤 떨어져 있는데 반해 ‘스케치북’은 거리가 가깝고 소극장 같은 느낌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희열(喜悅)도 크게 느끼니까 가수들 입장에서도 색다른 경험이 아닌가 싶다.
Q. ‘스케치북’ 팀이 그렇게 회식을 자주 한다고 들었다, 하하. 그것도 희열이 큰 것과 관계가 있을까.
조현아 PD: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 객석이 워낙 가까우니까 녹화할 때 관객들 눈치 보는 게 여간 긴장이 돼야지. 끝나면 맥주라도 한 잔 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잘 되면 잘됐다고 한 잔, 못 하면 자아비판 하면서 또 한 잔. 하하하.
Q. 그렇게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음에도 항상 완성도 높은 무대가 나오는 데는 강승원 음악감독의 공이 클 것 같다.
조현아 PD: 당연하다. 강 감독은 벌써 십수 년째 음악프로그램을 맡고 있으니 거의 장인이나 다름없다. 이분은 지금도 대충하는 법이 없다. 쉴 때는 출연 가수들 콘서트 다니면서 무대를 직접 본다. 그러니까 나중에 출연할 때 “콘서트 때 그 곡 편곡 좋더라”하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가수들도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강 감독과 선곡 등 음악 이야기를 하는 게 편할 거다. 사실 PD들은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빈틈을 강 감독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Q. 이연 작가는 어떤가. ‘이소라의 프로포즈’ 때부터 프로그램을 맡아 왔으니 벌써 ‘스케치북’만 19년 차다. 관록이 보통이 아니겠다.
조현아 PD: 이 작가 별명이 ‘이태원 지하 세계의 여왕’이다, 하하하. 모르는 이야기가 없거든. 가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으니 좀 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 ‘스케치북’이 무대만큼 토크에도 힘을 싣고 있는 만큼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데는 이 작가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Q. 전체적으로 분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조현아 PD: 모두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스케치북’의 시청률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프로그램이 상징하는 의미는 무척 크다. 대중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하는 거니까. 좋은 대중문화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스케치북’의 근간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건 딱 하나다. ‘현장에서 무대를 본 관객들이 행복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 녹화 마치고 출구에서 관객들의 미소를 볼 때면 그간 고생했던 기억도 다 잊게 된다.
Q. 앞으로 ‘스케치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구체적으로 변화를 주려는 부분이 있나.
조현아 PD: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겠지만, 좀 더 다양한 장치를 넣어서 분위기를 띄워볼 생각이다. 특집도 늘려나갈 생각이다. 여름에는 스탠딩 파티식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도 있고, 예전처럼 배우들을 초대해 무대를 꾸민다든지 박지선의 ‘수질검사 하러 왔어요’ 같은 코너도 다시 살려볼까 고민 중이다. 물론 음악의 원형은 손상하지 않도록 노력할 거다. 재미보다도 중요한 건 음악이니까.
Q. 마지막 질문이다. 장시간 ‘스케치북’을 지켜봐 온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현아 PD: 방송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항상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밖에 할 수 없어서 더 죄송하고, 하하. 앞으로 다양한 음악을 소개해드리려고 노력할 거다. 방송을 보시고 홈페이지든, SNS 등 새로운 출연자의 등장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도 보시는 분들이 무엇에 반응하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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