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런닝맨’ 딱지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웃고 있어도 왠지 도와주고 싶은 측은지심이 드는 예능 프로그램 속 캐릭터가 있다면 단연 SBS ‘런닝맨’의 지석진이 떠오른다. 이젠 이름 석자보다 ‘왕코형님’이라는 별칭이 더 익숙한 그는 ‘런닝맨’의 최연장자 형님이자 허당기 가득한 매력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런닝맨’을 시작한 지 장장 4년만에 ‘런닝맨 딱지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쥔 숨겨진 실력자로 우뚝 섰다. ‘왕코 형님’이라는 별명 속에 감춰진 데뷔 22년의 내공이 빛나는 그의 모습을 만나봤다.
지석진: ‘런닝맨’에 출연한 이후 4년만의 첫 우승이다. 그동안 다른 멤버들과 요행으로 우승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실력으로 1등하기는 처음이라 감동스럽다. 2012년 SBS 연예대상에서 수상했을 때보다 더 울컥하더라. 딱지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힘만으로 해서도 안되고 딱지 중앙을 정확히 가격해야 하는 거라 포인트를 잘 맞춰야 한다. 그동안 운동한 보람도 많이 느꼈다.
Q.요즘 ‘런닝맨’은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권에서도 큰 인기다.
지석진: SNS를 통해 해외 팬들이 ‘임팔라’라는 프로그램 속 별명으로도 불러주고 해외 녹화를 가면 마중나오는 팬들이 꽤 많은 걸 보면 무척 놀랍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팬들이 생길 줄 어떻게 알았겠나.
Q. ‘런닝맨’ 출연때문에 운동을 열심히 했나보다.
지석진: 녹화할 때 푸시업을 150~200개 정도 하고 시작하다. 녹화시간만 16~18시간에 달하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이 필요하다. 집에 20kg짜리 쌀가마니도 있는데 운동삼아 들었다 놨다 하곤 한다.
Q. 얘기듣고 보니 ‘런닝맨’은 정말 체력적으로 운동량이 많이 필요한 프로그램인가보다.
지석진: 계속 달리면서 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처음에는 녹화 중간중간에 거의 녹초가 되서 멤버들끼리 말할 기운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이젠 다들 체력이 좋아져서 쉬는 시간에 서로 장난치고 놀 정도로 눈에 띄게 체력적으로 좋아졌다.
Q. 2010년에 시작한 ‘런닝맨’이 벌써 4년이 됐다. 개편 때마다 사라지는 예능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인 것 같다.
지석진: 사실 처음에는 내겐 커다란 도전이었다. 주로 스튜디오 녹화 프로그램에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배급해주는 게 내 역할이었는데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생애 처음이라 많이 당황했다. 녹화 처음부터 오디오가 물리고(소리가 겹쳐서 나오는 현상) 정리가 하나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과연 방송이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밤에 악몽을 꿀 정도였으니까.
Q. 아, 처음에는 내심 심적인 부담감이 컸나보다.
지석진: 내 역할을 잡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프로그램에서 하는 일이 없다는 욕도 많이 먹었고. 하하. 방송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그만둬야 하나란 생각도 여러 번했다. 그 때마다 PD들이나 멤버들이 ‘잘 하고 있다’고 격려를 많이 해 주더라.
Q. 적응 기간을 거쳐 방송에서 자리잡게 된 계기가 있나.
지석진: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온 방송분 모니터를 하다 보니 내가 봐도 지루하더라. 기존의 깔끔한 방송 스타일에 익숙해있던지라 멤버들과 섞이고 어울리는 데 어려워했던 것 같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모니터를 해 보니 ‘난 참 이기적인 방송인이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안되겠다 싶어 동료들과 촬영장에서 얘기도 많이 하고 섞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스스로가 재밌어지고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더라.
Q. 그래도 지금까지도 가장 힘든 상대는 누구인가.
지석진: (김)종국이는 정말 말 그래도 ‘벽’같다. 4년간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분명히 종국이가 몸이 안 좋은 날도 있는데 아파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종국이는 쇠사슬을 다리에 묶든지 해야 한다는 얘길 하곤 한다.
Q. 멤버들의 캐릭터가 이제 확고해진 것 같은데 프로그램 초반부터 만들어간 것인지 궁금하다.
지석진: ‘런닝맨’의 묘미는 처음부터 만들어진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 미리 캐릭터를 만들고 그에 맞추려는 예능 프로그램을 하려 하면 힘도 많이 들어가고 보는 사람도 불편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가식적인 캐릭터 잡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예를 들면 (송)지효는 실제로도 멍한 듯하면서도 에이스의 역할을 하는 반전 매력이 있고 광수는 정말 웃긴 친구다.
Q.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떻게 자평하나.
지석진: 나는 불운한 천재같다. 하하. 아무리 노력해도 우승하기 힘들고 늘 뒤쳐지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제작진도 멤버들도 상승세라고 하더라. 스스로는 ‘지독한 상승세’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제는 뭘 해도 될 것 같다.
Q. 아마도 ‘런닝맨’에서의 호흡은 유재석과 오랜 시간을 통해 쌓아온 우정을 통해 발현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지석진: 맞다. 유재석과는 연예계 데뷔 전부터 만난 친구 사이다. 성격도 취향도 비슷해서 김용만 박수홍 등 90년대 초반 데뷔한 개그맨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고 만나면 술이나 유흥을 즐기기보다는 서로 수다떨며 노는 게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집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맛있는 거 먹으며 한번 얘기하기 시작하면 새벽 네시도 넘기곤 하는데 그렇게 노는 게 가장 즐겁다.
Q. 남자들끼리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도록 하나.
지석진: 뭐 일상다반사부터 오래 전 추억까지 다양하다. 사업 실패한 얘기, 동료들 얘기, 아이들 얘기까지 끊임없이 도돌이표처럼 이어진다.
Q. 사실 ‘런닝맨’에서는 왕코 형님으로 때론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한때 연예인 지석진의 시작은 주목받는 대학생 가수였다.
지석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희화화시켜 얘기하곤 하지만 데뷔 당시에는 나름 촉망받는 가수였다. 하하. 발라드곡으로 시작했는데 당시 인기 많았던 부산MBC ‘별이 빛나는 밤에’ DJ를 제안받기도 했었고 소녀팬들도 꽤 있었다.
Q. 다시 노래에 도전해보고 싶진 않나.
지석진: 큰 욕심은 없고 좋아하는 발라드 장르의 곡을 내거나 맘맞는 사람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해보고 싶기는 하다. 아마 기회가 닿으면 서로 즐거울 수 있는 프로젝트로 도전해보고 싶다.
Q. 노래 외에도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지석진: 젊은 방송을 해보고 싶다. ‘런닝맨’을 통해서 내가 못했던 영역에서 성과를 얻으면서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 사람이 철없어야 즐거울 수 있지 않나. 그런 철없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방송을 해보고 싶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의 강점을 이용해 외로운 골드미스들을 위로하는 방송도 좋을 것 같고. 거창한 규모가 아니더라도 소규모로 둘러앉아 수다 떠는 토크 프로그램 한번 해보고 싶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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