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세 스푼에 팝 다섯 스푼, 그리고 아름답게 차려 입은 여성관객 두 스푼.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5월 17일과 18일 서울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펼쳐진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는 약 3만8,000 명(연인원)의 인파가 몰렸다. 이는 작년에 비해 무려 3,000명이 늘어난 숫자.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재즈에 국한되지 않고 인기 뮤지션들을 대거 섭외해 매회 안정적인 집객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라인업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을 모을 정도로 브랜드의 힘이 생겼다.
올해 재즈 뮤지션으로는 전설적인 드러머 잭 디조넷과 라비 콜트레인, 맷 개리슨이 함께 하는 잭 디조넷 트리오를 필두로 이 시대 최고의 재즈 색소포니스트들인 조슈아 레드맨과 제럴드 알브라이트, 재즈와 일렉트로닉 음악을 녹인 퓨처 재즈를 선보일 닐스 페터 몰배르, 라틴 피아노의 거장 에디 팔미에리 등 다채로운 라인업이 기대를 모았다. 이와 함께 작년에 내한해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 데미안 라이스를 필두로 파울로 누티니, 얼렌드 오여 위드 밴드, 소년의 감성을 지닌 손드르 레르케, 제이미 컬럼, 바우터 하멜, 에릭 베네, 크렉 데이빗에 이르기까지 여성 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내한했다. 라인업을 보면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긴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이들 스타들이 오지 않으면 집객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국내 여성 팬의 기호를 가장 잘 파악한 축제일 것이다. 이틀간 살펴본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꼽아봤다.
조슈아 레드맨, 라비 콜트레인, 닐스 페터 몰배르(왼쪽부터)
#조슈아 레드맨 퀄텟 VS 잭 디조넷 트리오 VS 닐스 페터 몰배르재즈 페스티벌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사실상 이들의 공연이 진정한 메인 스테이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조슈아 레드맨(색소폰), 애런 골그버그(피아노), 루벤 로저스(베이스), 마커스 길모어(드럼)의 정상급 연주자로 구성된 퀄텟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였다. 조슈아 레드맨은 근작인 ‘워킹 셰도우즈(Waking Shadows)’에 실린 ‘스타더스트(Stardust)’ ‘아다지오(Adagio)’ 등의 발라드와 함께 빠른 비트의 하드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특히 미발표곡인 ‘D G A F’에서는 속사포와 같은 색소폰을 들려줬으며 애런 골드버그는 조슈아 레드맨 못지않은 강렬한 솔로잉으로 응수했다.
잭 디조넷 트리오는 난해하고도 프리한 연주의 연속이었다. 잭 디조넷(피아노), 라비 콜트레인(색소폰), 매튜 개리슨(베이스) 트리오의 살벌한 연주가 시작되자 잔디밭에서 먹고 마시던 관객들이 괴로워할 정도였다. 이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약 80분간 쉬지 않고 프리한 임프로비제이션과 앙상블을 선보였다. 매튜 게리슨이 연주 도중 튜닝을 마구 풀고, 줄을 긁어대는 소리를 즉석에서 이펙터로 샘플링해 반복시키자 라비 콜트레인은 그 괴이한 사운드에 맞춰 프리한 솔로잉을 마구 선보였다. 그리고 잭 디조넷은 에너제틱한 드럼 연주로 끊임없이 영감을 제시했다. 관객들은 상당히 괴로운 순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잭 디조넷 트리오의 공연은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진짜 재즈 페스티벌이 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막간에 흐른 잭 디조넷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노르웨이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닐스 페터 몰배르의 무대는 음악적으로는 단연 훌륭했지만, 관객이 너무 적어 아쉬운 공연이기도 했다. 만 명을 수용하는 커다란 체조경기장에 100명도 안 되는 관객들이 모여 이 공연을 봤다. 닐스 페터 몰배르는 페달스틸기타, 하모니카와 같은 악기와 샘플링이 뒤섞인 사운드 위로 강렬한 이미지의 즉흥연주를 선보였다. 관객의 수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송영주 퀄텟(좌), 윤석철 트리오
#송영주 퀄텟 VS 윤석철 트리오‘서울 재즈 페스티벌’에는 국내 실력파 재즈 연주자들도 무대에 올랐다. 두 피아니스트인 송영주와 윤석철은 같은 날 수변무대에서 공연했다. 젊은 피아니스트인 윤석철은 정통 피아노 트리오 외에도 일렉트릭 피아노 등을 통해 펑키한 연주를 선보였다. ‘음주권장경음악’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 등에서는 관객을 흥분시키는 연주가 돋보였다. 또한 ‘뮤즈(Muse)’ 사이에는 정기고 & 소유의 ‘썸’의 멜로디를 삽입해 관객을 즐겁게 했다.
송영주는 기타가 함께 하는 퀄텟 편성으로 평소와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기타리스트 박윤우와 함께 송영주는 매끄러운 앙상블을 선보이며 정통 재즈의 맛과 모던한 미감에 이르기까지 한층 단단해진 연주를 들려줬다. 최근에 발매된 정규 6집 ‘비트윈(Between)’ 수록곡들이 주로 연주돼 송영주의 달라진 면모도 살펴볼 수 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좌), 비 더 보이스
#장얼쌀롱 VS 비 더 보이스비재즈 계열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꼽자면 장얼쌀롱과 비 더 보이스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장얼쌀롱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다. 장기하는 “별거 없고 기존 곡들을 조용히 연주하는 것”이라며 “요새 세상이 시끄러운데 우리마저 시끄러울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함중아의 곡을 리메이크 한 ‘풍문으로 들었소’를 포함해 ‘별일 없이 산다’ 등을 조용하게 들려 주는가 했더니만 역시나 막판에는 록밴드답게 강렬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최근 이런저런 사정으로 공연을 쉬었던 장기하와 얼굴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무대.
비 더 보이스는 나이가 들어도 귀여웠다. 와다 준코(보컬) 외모는 이제 아줌마의 분위기가 났지만 첫 곡 ‘플라워즈(Flowers)’부터 그녀의 목소리는 음반과 변함이 없었다. 두 번째 곡으로 히트곡인 ‘올투게더 얼론(Altogether Alone)’을 해줘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풀밴드가 아닌 기타와 베이스의 단출한 구성으로 사운드가 비는 감이 있었다. 앨범에도 실렸던 동요 ‘섬집아기’를 한국어로 노래해줬다.
파올로 누티니, 제이미 컬럼, 데미안 라이스(왼쪽부터)
#파올로 누티니 VS 데미안 라이스 VS 제이미 컬럼처음 내한한 파올로 누티니의 무대는 이번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단연 기대를 모았다. 그의 노래는 실제로 들으니 오티스 레딩, 또는 조 카커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강렬했다. 아직 국내에서 지명도가 높지 않고 큰 히트곡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여 객석의 반응이 대단했다. 파올로 누티니를 처음 본 여성 관객들이 연신 ‘섹시하다’고 연발할 정도였다. 얼굴은 꽃미남이었지만 성대는 ‘홍삼성대’라 할 만큼 걸쭉한 노래를 들려줬다. 마지막 곡으로는 ‘아이언 스카이(Iron Sky)’를 열창했으며, 앵콜로 한 곡을 더 노래해줬다.
한국 관객을 잘 알고 있는 제이미 컬럼은 능숙한 실력으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로커를 방불케 하는 에너지로 피아노를 두드려대는가 하면, ‘왓 어 디퍼런스 어 데이 메이드(What a Difference a Day Made)’ ‘저스트 원 오브 도우즈 씽(Just One of Those Thing)’ 등의 재즈 스탠더드에서는 스윙감과 함께 완연하 재즈 연주로도 관객을 즐겁게 했다. 피아노 연주 역시 압권이었다. 또한 폴 매카트니, 마이클 잭슨, 라디오헤드 등의 익숙한 팝을 선곡하는 등 확실한 팬서비스를 선보였다.
데미안 라이스는 작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공연이었지만, 객석의 여성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관객이 기다렸던 ‘블로워스 도터(Blower’s Daughter)’는 무반주로 노래해 강한 여운을 남겼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프라이빗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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